파견근로자가 2년 이상 일하면 원청업체에 고용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지나친 규제일까. 기간제 근로자를 2년간만 쓸 수 있도록 한 법률규정은 과연 고용안정에 도움이 되는 규정일까. 재계와 정부, 노동계 관계자들이 헌법재판소에 모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에 관한 법률의 위헌성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헌법재판소는 13일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현대자동차가 구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대해 낸 헌법소원사건(2010헌바474,2011헌바64 병합)과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다 실직한 우모씨 등 2명이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대해 낸 헌법소원사건(2010헌마219, 2010헌마265)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헌법소원 대상이 된 법률들은 각각 2년 이상 파견근로를 한 노동자를 원청업체에 직접고용된 것으로 간주하고 기간제 근로자를 2년까지만 사용할 수있도록 해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다.
◇현대차, '고용의제 규정은 지나친 규제' 주장=현대차는 고용간주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등 덜 침해적인 수단을 강구하지 않고 2년이 지나면 곧바로 고용된 것으로 의제하는 규정은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대차 대리인으로 나선 법무법인 화우의 박상훈(52·사법연수원 16기) 변호사는 "고용의제 규정으로 고용안정 효과가 생기기보다는 기업이 파견기간이나 도급기간을 2년 이내로 단축하게 돼 효과가 불확실한 반면 직접고용규정으로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오히려 기존에 금지되던 파견근로자를 이 법을 통해 2년간 사용할 수 있게 됐으므로 기업의 자율성 침해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고용노동부측 대리인으로 나선 이경우(58·14기)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고용의제 규정은 2년 이상의 장기간 사용하는 경우를 요건으로 하고 있으므로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고, 법률에서 언급하지 않은 구체적 근로조건 등은 법원 판결을 통해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어 명확성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현대차 측 참고인으로 나선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불법파견에도 고용간주 규정을 적용하게 되면서 사업주의 비용부담이 엄청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한 반면, 강성태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파견근로는 노동법이 전제하고 있는 직접고용과 무기고용 원칙에서 벗어나는 방식이기 때문에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에서 사내협력체 소속 근로자로 일하다 해고된 최모씨의 대리인으로 나선 김선수(52·17기) 법무법인 시민 변호사도 "고용의제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는 것은 노동법에 대한 사망선고가 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2년 지나면 정규직 전환규정, 오히려 일자리 잃게 만들어" 주장=기간제 근로자로 일하다 일자리를 잃은 우씨 등 3명을 대리하고 있는 차기환(50·17기) 우정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입법목적과는 달리 이 법이 기간제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 기간제 근로계약의 갱신을 원하는 경우에도 정규직 전환이나 해고만 선택할 수 있도록 해 기간제 근로자가 직장을 잃을 수 밖에 없도록 하면서 더욱 열악한 지위로 전락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기간제근로자법이 기간제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측 대리인인 김도형(46·24기)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처지에 놓인 기간제 근로자의 권리를 일부나마 보호하기 위한 취지에서 법이 만들어졌다"며 "이 법이 시행되지 않았다면 기간제로 계속 근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참고인으로 나선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는 "대부분의 기간제 근로자들은 근로조건이 정규직보다 열악하더라도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 근로자로서의 신분 유지를 희망하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 권혁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근로관계 존속기간에 대한 합의는 고용불안을 초래하는 원인인데도 기간제 근로자들은 계약기간 갱신에 대한 희망때문에 열악한 근로조건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개선요구를 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이런 문제점을 간과하고 근로관계 존속기간에 대해 노사합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노동법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헌법재판관들은 '현대차가 불법파견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지', '현대차가 파견근로자 보호법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었다가 바뀐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질문하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