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제19–1민사부 판결
【사건】 2021나2010775 손해배상(기)
【원고, 항소인 겸 피항소인】 이○○, 전주시,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동인 담당변호사 김미리
【피고, 피항소인 겸 항소인】 주식회사 ◇◇코리아(변경 전 상호: 주식회사 △△△코리아닷컴), 서울, 대표이사 허○○,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충정 담당변호사 조성환
【제1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2. 3. 선고 2019가합515496 판결
【변론종결】 2021. 10. 13.
【판결선고】 2021. 12. 8.
【주문】
1. 이 법원에서 추가한 주위적 청구 및 확장한 예비적 청구를 포함하여 제1심판결을 아래와 같이 변경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비트코인 암호화폐 5.03비트코인(BTC)을 인도하고, 위 비트코인 암호화폐에 대한 강제집행이 불능일 때에는 비트코인 암호화폐 1비트코인(BTC)당 54,280,000원의 비율로 환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소송 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3.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1. 청구취지
가. 주위적으로, 피고는 원고에게 비트코인 암호화폐 5.03비트코인(BTC)을 인도하고, 위 비트코인 암호화폐에 대한 강제집행이 불능일 때에는 비트코인 암호화폐 1비트코인(BTC)당 54,280,000원의 비율로 환산한 돈을 지급하라.
나. 예비적으로, 피고는 원고에게 273,028,400원 및 그중 25,904,500원에 대하여는 2018. 11. 22.부터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 연 6%,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31,241,330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 2020. 6. 15.자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 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 49,193,400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 2020. 11. 26.자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 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 166,689,170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 2021. 9. 30.자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 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 각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원고는 이 법원에 이르러 비트코인 암호화폐 인도청구 및 그 강제집행이 불능인 경우에 대비한 대상청구를 주위적 청구로 추가하고, 제1심에서의 손해배상청구를 예비적 청구로 변경하면서 청구취지를 확장하였다.]
2. 항소취지1)
가. 원고
제1심 판결 중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금원에 해당하는 원고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80,389,460원 및 그중 45,270원에 대하여는 2018. 11. 22.부터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 연 6%,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31,241,330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 2020. 6. 15.자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 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 49,193,400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 2020. 11. 26.자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 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 각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제1심판결 중 원고에 대한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그 취소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각주1] 제1심 공동원고 이BB, 정CC, 박DD, 이EE, 박FF에 대한 부분은 쌍방 모두 항소하지 않아 분리 확정되었다.
【이유】
1. 기초사실
가. 피고는 암호화폐 거래소인 ‘◇◇’(bit****)을 운영하면서 암호화폐 매매와 중개 등의 업무를 하는 회사이고, 원고는 ◇◇을 통하여 암호화폐를 거래하던 사람이다.
나. 피고가 운영하는 암호화폐 거래소인 ◇◇을 이용하여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매수하거나 송금받는 경우, 거래소 회원은 각 거래마다 피고로부터 부여받은 계정(가상의 입금주소로서 은행의 가상계좌와 유사하다)을 이용하지만 회원이 지급받은 암호화폐는 피고 소유의 전자지갑(영문과 숫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고유 주소를 가지는 디지털 보관함으로서 은행계좌와 유사하다)에 보관되고, 다만 회원의 계정상 잔고에 입금된 암호화폐의 수량이 표시된다. 비트코인을 보관하는 개인 또는 거래소의 전자지갑은 고유한 주소 값을 가지지만, 비트코인 자체는 고유한 값이나 번호가 부여되어 있지 않아 각개의 개성이 중요시되는 것은 아니다.
다. 원고는 2018. 11. 22. 11:18경 자신의 계정상 잔고에 표시된 암호화폐 중 비트코인 암호화폐 5.03비트코인(BTC, 이하 비트코인 암호화폐를 ‘비트코인’으로, 비트코인 암호화폐의 수량을 나타내는 단위를 ‘BTC’로 각 약칭한다)을 ◇◇에서 타 거래소로 송금하기 위해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던 주소(3P56DUwfG7byAxUsigs***************)로 출금요청을 하였다. 그런데 위 비트코인이 원고가 요청하지 않은 다른 주소(lLYrdJSWdQ83GouUqUY***************)로 출금되었고(이하 ‘이 사건 사고’라 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이메일을 통해 위 다른 주소(lLYrdJSWdQ83G(5uUqUY***************)에 대한 출금요청이 등록되었고 그 출금이 완료되었음을 통보하였다.
라. 이 사건 사고 당시 시행되던 피고 약관 중 주요 부분은 아래와 같다.
마. 제1심 감정인 박GG은 이 사건 사고의 원인 등에 관한 감정보고서를 제1심법원에 제출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2018. 11. 22.경 종가 기준 비트코인 1BTC의 시세는 5,159,000원이었는데, 그 이후 비트코인의 시가가 상승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에 가까운 2021. 9. 23.경 비트코인 1BTC의 시세는 54,280,000원이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7, 14, 24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의 각 기재, 제1심 감정인 박GG의 감정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2. 원고의 주장 요지
가. 주위적 주장
원고와 피고 사이에는 원고 명의의 ◇◇ 계정에 보관되어 있는 암호화폐에 관한 유상임치계약이 성립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암호화폐는 객관적 성질상 각 암호화폐의 개성이 중요시되지 않고, 동종·동질·동량의 것으로 바꾸더라도 급부의 동일성이 유지되는 대체물에 해당하므로, 원고와 피고 사이의 임치계약은 소비임치 혹은 혼장임치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가 임치한 암호화폐가 잘못 출금되는 등 멸실된 경우에도 여전히 임치인인 원고의 반환청구에 따라 멸실된 암호화폐와 동종·동질·동량의 대체물을 반환할 의무가 있고, 만일 비트코인 인도의무의 강제집행이 불능인 경우에는 전보배상으로서 비트코인의 이 사건 변론종결 당시의 시가에 해당하는 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나. 예비적 주장
1) 피고는 아래와 같이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므로, 이 사건 사고에 관하여 원고에게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원고는 아래 각 청구원인을 선택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① 피고는 거래소 회원인 원고가 요청한 출금 주소와 실제 출금되는 주소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여야 할 계약상 의무를 부담함에도 이를 해태하였고, 그로 인해 다른 주소로 비트코인이 출금되는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여 원고가 손해를 입게 되었다(이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 주장’이라 한다).
② 피고는 전자상거래에 의한 금융업, 전자지급결제대행업,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 및 관리업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금융업과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피고에게는 전자금융거래법이 유추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피고는 전자금융거래가 안전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선관주의의무를 다해야 하고(전자금융거래법 제21조 제1항), 정보통신망에 침입하여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획득한 접근매체의 이용으로 발생한 사고로 인하여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전자금융거래법 제9조 제1항 제3호). 이 사건 사고는 피고의 관리영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피고의 과실이 존재하므로, 결국 피고는 전자금융거래법 제9조 제1항 제3호에 의하여 원고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이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주장’이라 한다).
③ 피고가 ◇◇ 홈페이지의 전산시스템을 안전하게 구축하고 관리하지 못한 과실로 인하여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여 원고가 손해를 입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이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주장’이라 한다).
2) 민법은 원상회복 방법에 의한 손해배상을 금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금전배상주의 원칙을 따를 경우 원물 가격 변동에 대한 위험을 일방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되어 공평·타당한 손해분담 및 실손해 보전이라는 손해배상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잘못 출금된 비트코인과 동종·동질·동량의 비트코인을 반환하는 방법으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3) 설령 금전배상 방법으로 손해를 배상하더라도,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사고 당시가 아닌 이 사건 변론종결 당시의 비트코인 시가를 기준으로 환산한 금액을 배상하여야 한다. 원고는 장기투자의 목적으로 비트코인을 매수하였고, 이 사건 사고 당시와 비교하여 비트코인의 거래량과 시세가 모두 크게 상승하였으며, 피고는 일반 투자자라면 비트코인의 시세가 매우 낮았던 이 사건 사고 당시에 굳이 비트코인을 처분하지 않았으리라는 사정과 추후 비트코인의 시세가 상승하면 그때 비트코인을 처분하리라는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3. 판단
가. 주위적 청구에 관한 판단
1) 원고와 피고 사이의 계약 내용과 법적 성격 및 피고의 의무 내용
가) 앞서의 인정사실에 의하면, 원고와 피고 사이에는 피고가 원고에게 원고 명의의 계정을 통해 피고 소유의 전자지갑에 저장·보관된 암호화폐에 관하여 일련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하는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원고가 ◇◇을 이용하여 비트코인 매수하거나 취득할 경우 원고는 피고에게 원고가 매수·취득한 비트코인의 보관을 위탁하게 된다는 점에서, 위 계약은 민법상 임치계약과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민법상 임치계약은 ‘금전이나 유가증권 기타 물건’을 대상으로 성립하고(민법 제693조 참조), 이 때 ‘물건’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의미하는데(민법 제98조 참조), 비트코인은 물리적인 실체 없이 경제적 가치를 디지털로 표상하여 전자적으로 이전, 저장 및 거래가 가능하도록 한 가상화폐의 일종으로서 디지털 정보에 해당하므로, 현행법상 물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2도745 판결 등 참조). 결국 비트코인 보관에 관한 법률관계를 민법상의 임치계약관계 그 자체로 볼 수는 없고, 원고와 피고 사이의 계약은 유상임치계약의 성질을 가지는 비전형계약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나) 한편, 원고와 피고 사이에 적용되는 피고 약관에는 피고가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로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판매 관련, 구매 관련, 거래 API 제공 등)를 명시하고 있고, 암호화폐의 판매 등 거래 과정에는 암호화폐의 이동이 수반될 수 있으므로, 위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에는 원고가 자신의 계정상 잔고에 표시된 암호화폐를 다른 주소로 이동시키는 것도 포함된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의 요청이 있는 경우 원고 명의의 계정을 통해 피고 소유의 전자지갑에 저장·보관된 암호화폐를 원고가 요청한 주소로 이전하거나 반환할 의무를 부담한다.
그런데 앞서 본 것과 같이 비트코인 자체에는 고유한 값이나 번호가 부여되어 있지 않아 각개의 개성이 중요시되지 않으므로, 피고의 원고에 대한 비트코인 이전 내지 반환의무는 종류채무와 유사한 성질을 가진다(민법 제375조 제1항 참조). 따라서 피고는 원고가 출금을 요청한 주소로 비트코인을 이전하기 전에 비트코인의 멸실·훼손 등 사정이 발생하였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에게 동종·동질·동량의 비트코인을 다시 조달하여 이전하거나 반환할 의무를 부담한다.
2) 비트코인 이전·반환의무의 이행 여부
가) 당사자들의 주장
피고는 피고가 최종 출금 요청이 진행되는 단계에서 피고 서버로 전송된 출금 주소로 비트코인을 이전한 이상 비트코인 이전 내지 반환의무를 모두 이행하였다고 주장하는 반면에,2)원고는 피고가 원고가 요청한 주소가 아닌 다른 주소로 비트코인을 이전한 이상 비트코인 이전 내지 반환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다툰다.
[각주2] 피고는 원고가 요청한 출금 주소와 실제 출금되는 주소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 속에는, 피고가 출금 요청이 진행되는 단계에서 최종적으로 피고 서버에 전송된 주소로 비트코인을 이전한 이상 비트코인 이전 내지 반환의무를 모두 이행한 것이라는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선해할 수 있다.
나) 판단
원고가 2018. 11. 22. 11:18경 자신의 계정상 잔고에 표시된 비트코인 5.03BTC를 ◇◇에서 타 거래소로 송금하기 위해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던 주소로 출금 요청을 한 사실, 원고의 위와 같은 출금 요청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원고가 기입한 출금 주소가 전혀 다른 주소로 변조되어 피고 서버로 전송된 사실, 피고가 이를 알지 못한 채 피고 서버에 변조되어 전송된 다른 주소로 비트코인 5.03BTC를 이전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러나 앞서 든 증거, 제1심법원의 농○은행 주식회사, 주식회사 하○은행, 주식회사 국○은행(이하 위 은행들을 지칭할 때 ‘주식회사’ 표시는 생략한다)에 대한 각 사실조회 결과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는 보안 프로그램 등을 통하여 출금 요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원고가 요청한 주소와 실제 출금이 이루어지는 주소의 동일성을 확인하여 악성 코드 또는 해킹 등 만일의 사태로 인하여 원고가 요청한 주소와 다른 주소로 출금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하여야 할 주의의무를 부담하므로, 피고가 원고와의 계약에 따라 비트코인을 이전하여야 할 출금 주소는 당초 원고가 요청한 출금 주소이지, 불상의 이유로 변조되어 피고 서버에 전송된 주소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피고가 실제 출금 요청이 진행되는 마지막 단계에서 피고의 서버에 수신된 출금 주소로 비트코인을 이전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주소가 당초 원고가 요청한 출금 주소와 일치하지 않는 이상, 원고에 대한 계약상 비트코인 이전 내지 반환의무를 모두 이행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① 피고의 비트코인 이전 내지 반환의무는, 피고가 원고 요청에 의하여 특정되는 주소로 비트코인 전송을 완료하여야만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이 완료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비트코인 이전 내지 반환의무의 이행을 위한 송부장소(출금 주소)는 원고가 지정하는 주소로 특정되는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가 출금요청을 하면서 지정한 주소 정보가 피고 서버에 접수되면 송부장소의 지정이 이루어지므로, 피고는 이 송부장소로 비트코인 전송을 마쳐야 채무이행을 완료하게 된다.
② ◇◇ 홈페이지에서 주소록 기능을 이용하여 출금 요청을 진행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5단계를 거쳐 출금이 이루어진다. 먼저 원고와 같은 고객이 주소록 화면에서 원하는 항목을 선택하면(1단계), 피고의 서버에서 선택한 항목에 대한 출금 주소를 획득하고(2단계), 획득한 출금 주소에 대한 유효성 검사를 진행한 다음(3단계), 출금 주소가 ◇◇ 내부 주소인지 검사한 후(4단계), 그 출금 주소로 출금 요청을 진행한다(5단계). 이 때 3 내지 5단계는 서로 독립적으로 진행되고, 각 단계는 피고 서버와의 통신을 통해 진행된다. 이 사건의 경우 원고가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던 주소 중 하나로 출금요청을 한 직후(1단계) 피고의 서버에는 원고가 요청한 위 주소가 정상적으로 전송 및 접수되었고(2단계), 피고는 위 주소를 토대로 3, 4단계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실제 출금 요청을 진행하는 마지막 단계(5단계)에서 피고가 수신한 주소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원고가 출금 요청을 한 주소로서 피고가 최초 수신한 주소와 달라졌다.
③ 그런데 아래와 같은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이 최초 수신한 원고의 의사표시 내용과 실제 출금 요청이 진행되는 단계에서 수신한 의사표시 내용이 달라진 경우 각 단계에서 수신한 주소의 동일성을 확인할 책임은 피고에게 있다고 보아야 한다. 피고는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 바람에 출금 주소가 변조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비트코인을 원고가 당초 요청한 주소가 아닌 다른 주소로 이전하였다.
㉠ 농○은행, 하○은행, 국○은행은 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이용한 출금 요청이 있을 때, 이체정보 입력 단계(1단계), 이체정보 확인 및 전자서명 단계(2단계), 이체 실행 및 거래 완료 단계(3단계)를 거쳐 출금을 실행하고 있다.
(i) 농○은행의 경우, 고객이 1단계에서 입력한 계좌에 대해 최종 단계까지 그 위·변조 여부를 체크하고, 중간단계에서 위 계좌가 변조된 경우에는 이체가 되지 않는다. 특히 고객이 선택한 계좌를 별도 메모리 영역(세션)에 저장하고, 다음 단계 진행 시마다 메모리 영역에 있는 계좌와 거래를 진행하는 계좌를 비교·검증하는 내부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위·변조 여부를 검증하고 있다.
(ii) 하○은행의 경우, 입금은행과 입금계좌를 선택한 경우 해당 계좌의 정상 여부를 확인하고 있고, 최종 출금하여 입금 처리될 때까지 고객이 요청한 입금계좌와 실제 입금하려는 계좌가 동일하지 않은 경우에는 해당 거래를 오류 처리하고 있다.
(iii) 국○은행의 경우, 계좌 오출금 방지를 위하여 2단계에서 이체정보를 확인·검증하여 고객에게 명시하고 있고, 이체정보 확인(2단계) 후 이체 본거래 진행 시(3단계) 마지막으로 계좌의 정상 여부, 수취 가능 여부 등을 확인하여 고객이 2단계에서 확인한 정보대로 송금을 완료하고 있다.
이처럼 위 은행들은 내부 프로그램 또는 전산을 통하여 위 1단계에서 고객이 입력한 계좌정보가 3단계에 이르기까지 위·변조되었는지 여부를 계속 확인하며, 중간단계에서 계좌정보가 변조된 경우에는 해당 거래를 오류처리하고 계좌이체를 실행하지 않고 있다.
㉡ 피고가 취급하는 암호화폐 거래가 은행 등 일반적인 금융기관이 취급하는 업무와 동일하지는 않아 전자금융거래법 적용 여부에 있어서 일부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은행 등 일반적인 금융기관이 취급하는 예금 이체 거래와 피고가 취급하는 암호화폐 출금 거래는 모두 계약에 따라 보관 중인 물건 등을 고객의 요청에 따라 다른 계좌 내지 주소로 이동시키는 것으로서, 그 과정에서 계약상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내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위 암호화폐 거래가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농○은행, 하○은행, 국○은행 등 여러 시중 은행들이 제공하는 인터넷 뱅킹에 있어서는 내부 프로그램 또는 전산을 통하여 최초에 고객이 입력한 계좌정보가 이체완료 단계에 이르기까지 위·변조되었는지 여부를 계속 확인하고, 중간단계에서 계좌정보가 변조된 경우에는 해당 거래를 오류처리하고 계좌 이체를 실행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는 온라인상으로 이루어지는 암호화폐 출금 거래에서 각 단계마다 피고 서버에 전송되는 출금 주소의 동일성을 확인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야 하고,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 피고는 자신의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를 이용하는 회원들을 위하여 온라인 키보드 보안, 악성코드 탐지, 네트워크 보호, 콘텐츠 위·변조 방지, 해킹 방지 등을 목적으로 한 「AhnLab Safe Transaction」 보안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이는 원고와 같은 회원들이 요청한 출금 주소와 동일한 주소로 출금 요청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는 것으로 판단되고, 피고 스스로도 이러한 계약상 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위와 같은 보안 프로그램을 제공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 피고가 출금 요청 단계에서 원고 요청 출금 주소와 실제 출금 주소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 바람에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다. 피고 약관 제21조 제2, 3항는 피고가 책임질 수 없는 불가항력인 사유로 발생한 사고의 경우 피고가 면책된다고 정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원고 및 제1심 공동원고들이 사용했던 컴퓨터 중 2대를 포렌식 분석한 결과 오출금에 영향을 줄만한 악성코드 및 그 흔적 등이 발견되지 않았고, 이 사건 사고 당시 원고 및 제1심 공동원고들의 접속지역 뿐 아니라 컴퓨터 운영체제도 다양하여, 원고 및 제1심 공동원고들의 공통된 귀책사유가 존재한다고 볼 만한 뚜렷한 근거가 발견되지도 않았다. 더욱이 이 사건 사고 발생 이후 피고는 원고 및 제1심 공동원고들의 문의에 대하여 피고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안내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이 사건 사고가 피고가 책임질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발생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나) 비트코인 인도의무의 이행불능 여부
(1) 피고의 주장
설령 피고의 비트코인 반환의무가 이행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원고의 출금요청에 따라 비트코인을 피고 소유의 보관용 전자지갑에서 출금서비스용 전자지갑으로 옮겨놓거나 타 거래소의 주소로 이전한 때 급부목적물은 특정되었고, 그 이후 잘못된 주소로 송금됨으로써 이미 특정이 이루어진 비트코인이 멸실된 것이므로, 원고에 대한 비트코인 반환의무는 이행불능이 되었다. 따라서 원고는 비트코인 자체의 반환을 구할 수는 없고, 단지 채무불이행책임만을 추궁할 수 있을 뿐이다.
(2) 판단
종류채권의 경우 채무자가 이행에 필요한 행위를 완료하거나 채권자의 동의를 얻어 이행할 물건을 지정한 때에는 그때로부터 그 물건이 채권의 목적물로 특정된다(민법 제375조 제2항 참조). 그런데 앞서 든 증거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을 고려하면, 제출된 증거만으로 피고의 비트코인 이전 과정에서 원고의 출금요청에 따른 급부목적물이 특정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① 피고가 원고와 원고의 출금요청에 따라 이전할 비트코인을 특정하는 합의를 하였다거나, 원고의 동의를 얻어 이전 대상이 되는 비트코인을 지정하였다고 볼 자료가 없다.
② 피고의 비트코인 이전 내지 반환의무는 피고가 원고의 요청에 따라 특정한 주소로 비트코인을 전송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점에서 피고의 의무는 피고가 급부목적물을 선정하고 이를 분리·획정하여 원고가 지정한 송부장소로 발송함으로써 ‘이행에 필요한 행위를 완료’한 것이 되어 그 때 급부목적물이 특정된다. 이 사건의 경우 송부장소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가 당초 출금요청을 한 주소이다. 그런데 피고는 이 사건 사고 당시 피고의 서버에 전송된 변조된 주소(출금 주소가 유효한지 및 출금 주소가 ◇◇ 내부 주소인지 검사하는 단계에서는 정상적인 주소가 전송되었으나, 마지막 출금 요청을 진행하는 단계에서 변조된 주소가 피고의 서버로 전송되었다)로 비트코인을 발송하였을 뿐, 원고가 지정한 송부장소인 정상적인 주소로 비트코인을 발송한 적이 없다. 따라서 피고는 채무 이행에 필요한 행위를 완료하였다고 볼 수 없다.
나. 소결론
피고는 원고에게 원고와의 계약에 따라 비트코인 5.03BTC를 인도할 의무가 있고, 만일 위 비트코인에 대한 강제집행이 불능일 때에는 비트코인 1BTC당 이 사건 변론종결일에 가까운 2021. 9. 23.경의 시가에 해당하는 54,280,000원의 비율로 환산한 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채권자가 본래적 급부청구에 이를 대신할 전보배상을 부가하여 대상청구를 병합하여 소구한 경우, 대상청구는 본래적 급부청구권이 현존함을 전제로 하여 이것이 판결확정 전에 이행불능되거나 또는 판결확정 후에 집행불능이 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전보배상을 미리 청구하는 경우로서 양자의 병합은 현재 급부청구와 장래 급부청구의 단순병합에 속하는 것으로 허용되고, 이 경우의 대상금액은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의 본래적 급부의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1975. 7. 22. 선고 75다450 판결, 대법원 2011. 8. 18. 선고 2011다30666, 30673 판결 등 참조). 피고가 위 비트코인 인도의무의 존부를 다투고 있는 이상, 원고가 장래이행의 소로서 위 비트코인에 대한 강제집행이 불능인 경우를 대비하여 전보배상을 미리 청구할 필요가 있다]. [원고의 주위적 청구를 인용하는 이상, 예비적 청구에 관하여는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않는다.]
4. 결론
원고의 주위적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하여야 한다. 이 법원에서 추가한 주위적 청구 및 확장한 예비적 청구를 포함하여 제1심판결을 주문과 같이 변경한다.
판사 정승규(재판장), 김동완, 배용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