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소개돼 유명세를 탄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으로 형상화한 높이 82m의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상징건물인 '경주타워'에 법원 판결에 의해 원 저작권자의 이름이 적힌 청동명판이 부착될 전망이다. 저작권이 침해된 저작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성명 표지를 하라고 법원이 판결한 것은 처음이다.
아이티엠건축연구소는 2004년 (재)문화엑스포가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상징건축물 등을 건립하기 위해 공모한 '문화엑스포 설계용역 집행계획 및 상징건축물의 건축설계경기'에 참가했다. 아이티엠건축연구소는 상징건물 구성부분에 '황룡사 9층 탑 건립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상징 타워'라는 내용이 들어가도록 하라는 문화엑스포 측의 지침에 따라 신라 8층 석탑을 음각으로 형상화한 설계설명서<사진1>를 제출했다. 당시 아이티엠건축연구소는 심사결과 우수작으로 선정돼 상금 1000만원을 받았고, 최종 당선작은 A건축사무소가 제출한 설계물로 결정됐다.
그런데 이후 아이티엠건축연구소는 완성된 상징건축물에 자신들의 음각 형상화 아이디어가 반영된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문화엑스포 측이 당선작 발표 이후 A건축사무소에 당선작과 별도로 새로운 탑 모양에 대한 작업을 요구했고, 2차에 걸친 설계자문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상징건축물로 황룡사 9층 목탑을 선정하되 그 형태를 음각 처리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문화엑스포는 이 방안을 2004년 8월 최종 승인했으며, 이후 A건축사무소는 자문위의 결과를 반영해 당선된 설계를 변경하고,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으로 표현한 상징건축물을 건축했다<사진2>.
아이티엠건축연구소는 2009년 6월 문화엑스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소송을 내 1심에서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 3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승소 판결을 받고 대법원에서 승소가 확정됐다(2011다32747).
그러자 아이티엠건축연구소는 지난 2월 손해배상소송과는 별도로, 침해받은 저작권의 명예회복을 위해 "건축물에 저작권자 성명을 표시해 달라"며 문화엑스포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재판장 김현석 부장판사)는 지난달 21일 아아티엠건축연구소가 (재)문화엑스포를 상대로 낸 성명표시 등 청구소송(2012가합10930)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문화엑스포 측의 상징건축물은 아이티엠건축연구소 상징건축물에 의거해 실질적으로 유사하게 제작돼 아이티엠건축연구소의 저작권을 침해했으므로 아이티엠건축연구소의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성명 표시는 건축물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그 취지를 알림으로써 저작권자로서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적절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손해배상과 반드시 같이 청구할 필요는 없고, 손해배상 소송이 확정된 이후라도 명예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소송으로 구할 수 있다"며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하는 손해배상 청구권과 명예회복에 필요한 조치 청구권은 별개의 소송물로서 1개 청구에 관한 판결의 기판력이 다른 청구의 소송에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일간지에도 공고를 내고 같은 내용을 게재해 달라는 아이티엠건축연구소의 청구는 기각했다.
법원 관계자는 "민법 764조에 따라 법원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해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며 "이 판결은 건축물 설계자의 성명을 표시한 표지석을 설치하는 방법이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밝힌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