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부품업체에서 일하다 혈액암에 걸려 숨진 노동자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4일 인권단체 반올림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혈액암으로 숨진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2018구합69677)에서 지난달 29일 원고승소 판결했다.
2011년부터 반도체 관련 전자부품 제조업체에서 근무한 A씨는 2014년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지 보름 만에 숨졌다. 당시 52세였던 A씨는 평소 음주·흡연을 하지 않았고 건강에 특별한 이상도 없었다. A씨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 신청을 했으나, 공단은 "A씨가 담당한 '펀칭' 공정이 화학물질을 취급하지 않는데다 다른 공정에서 사용하는 유기용제 등에 노출됐더라도 그 기간이 짧고 역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했다. 이에 반발한 유족은 소송을 냈다.
법원은 A씨가 펀칭 전후 공정에서 사용한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수 있다고 봤다. A씨가 근무한 업체는 층별로 공조 시스템과 공기 재순환 장치 등을 가동했으므로 한 곳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이 다른 곳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또 A씨가 2교대 근무에 연장근무, 주말특근으로 주 6일 이상 하루 10.5시간 내외로 일했던 점 등에 비춰보면 펀칭공정 외에 다른 공정에서도 상당시간 근무하고 다른 종류의 더 많은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인정됐는데, A씨에게 별다른 보호구가 지급되지 않아 노출가능성이 더 클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반올림은 "질병의 의학적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사정이 있더라도 곧바로 법적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본 판결"이라며 "근무 환경의 위험에 관한 정보를 사업장이 독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이를 밝힐 수 없는 사정을 적극적으로 고려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