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면서 변경하려는 내용을 파일로 만들어 CD에 담아 제출했다면 공소사실이 구체적으로 특정된 것으로 볼 수 없어 공소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종이문서가 아닌 CD로 제출된 검찰 공소내용은 효력이 없다는 지난달 대법원 첫 판결(2015도3682)과 같은 맥락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저작권법 위반 사건 등에서 범죄사실을 적시하느라 공소장 분량이 수만쪽에 이르는 등 방대해지면서 검찰이 공소장 내용을 CD나 USB(이동식 저장 장치)에 담아 기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데, 대법원이 공소제기나 공소장 변경의 엄격한 요식성을 강조하며 잇따라 이 같은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대부 중개업자 천모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최근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2016도11138).
천씨는 2014년 7월부터 2015년 6월까지 불법으로 취득한 개인정보 14억5324만9597건을 이용해 자신이 고용한 상담원에게 전화를 하게 한 다음, 이를 통해 대출 필요금액 등 2만9943명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4만7914명의 개인정보를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런데 검사는 천씨의 1심 제9회 공판기일에서 구술로 공소장 변경 허가신청을 하면서 변경하려는 공소사실의 일부인 범죄일람표를 엑셀 파일로 만들어 CD에 담아 제출했다.
대법원은 "검사가 구술로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을 하면서 변경하려는 공소사실의 일부만 진술하고 나머지는 전자적 형태의 문서로 저장한 저장매체를 제출했다면, 공소사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부분에 한해서만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저장매체에 저장된 전자적 형태의 문서는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없고, 법원이 그 부분에 대해서까지 공소장 변경 허가를 했다고 하더라도 적법하게 공소장 변경이 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또 "형사소송규칙 제142조는 '검사가 공소장을 변경하고자 하는 때에는 그 취지를 기재한 공소장변경허가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여야 하고, 다만 피고인이 재정하는 공판정에서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거나 피고인이 동의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법원은 구술에 의한 공소장변경을 허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검사가 구술에 의한 공소장변경허가신청을 하는 경우에도 변경하고자 하는 공소사실의 내용은 서면에 의해 신청할 때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으로 특정해 진술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앞서 1,2심은 적법하게 공소장이 변경됐다는 전제 하에 천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