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명의신탁 약정을 맺은 수탁자가 원소유자(매도인)와 직접 부동산 매개계약을 체결해 취득세와 농어촌특별세를 납부했다면, 계약명의신탁자가 수탁자에게서 부동산의 명의를 이전받을 때 다시 취득세 등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계약명의신탁물에 대한 과세를 대법원 판례와는 달리 '이중과세'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고법 행정1부(재판장 고의영 부장판사)는 최근 D사가 남양주시장을 상대로 낸 취득세 등 부과처분 취소소송 항소심(2011누38133)에서 1심을 취소하고 "남양주시는 취득세 등 10억9500만원을 돌려주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계약명의신탁이란 신탁자가 수탁자와 약정을 맺고, 수탁자가 당사자로서 매도인과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등기도 자기 앞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부동산실명법에 따라 명의신탁약정은 무효이지만, 매도인이 명의신탁을 알지 못했을 때, 즉 선의인 경우에는 명의수탁자 명의의 등기는 유효하다.
이 경우 취득세는 누가 부담하는지가 문제되는데, 대법원은 "매도인이 명의신탁을 알았을 때, 즉 악의이면 권리 이전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선의이면 명의수탁자가 확정적으로 재산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게 돼, 어느 경우이든 재산에 대한 권리가 명의신탁자에게 귀속되지는 않으므로 명의신탁자에 대해 취득세를 부과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2012두14804). 따라서 명의수탁자가 취득세를 부담해야 한다.
문제는 명의수탁자가 신탁해지에 따라 등기를 신탁자에게 넘겼을 때 취득세를 다시 부과할 것인가 여부다. 대법원 판례를 기계적으로 따르면 '선의의 매도인에게서 명의수탁자로 이전하는 것'과 '명의수탁자에게서 신탁자로 이전하는 것'은 별개이므로 신탁자에게 다시 취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당연하다. 1심 재판부도 "별개의 취득행위이므로 이중과세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담세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명의신탁자에게 대금지급과 같은 소유권 취득의 실질적 요건을 갖춘 취득행위가 있었던 단계의 담세력이 포착돼 취득세 납세의무가 이행됐다면, 그 후 신탁해지에 따라 등기명의라는 소유권이전의 형식에 의한 취득행위가 있었던 단계의 담세력이 별개로 포착돼 명의신탁자가 또다시 취득세 납세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취득세는 재화의 이전이라는 사실 자체를 포착해 거기에 담세력을 인정하고 부과하는 유통세의 일종"이라며 "담세력이란 납세의무자가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의 조세를 부담할 수 있는가 하는 경제적 능력으로, 두 번째 단계에서 포착되는 명의신탁자의 담세력은 별개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대금지급과 같은 소유권 취득의 실질적 요건을 갖춘 취득행위가 있었던 단계와 등기명의라는 소유권 이전의 형식에 의한 취득행위가 있었던 단계 등 두 단계 중 한 번만 취득세를 부담하면 된다는 취지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이번 항소심 재판부가 개발한 법리를 받아들일지 관심이 집중된다.
D사는 남양주시에서 공동주택 신축사업을 추진하면서 농지법상의 제한을 피하기 위해 2003~2004년에 걸쳐 대표이사 등을 내세워 9만5121㎡의 농지를 매입했고 취득세 등 11억770만원도 대표이사 등의 명의로 납부했다. 2007년 D사는 이 토지의 명의를 넘겨받았는데, 남양주시는 2010년 8월 취득세 등 10억9500만원을 다시 부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