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방어할 틈도 없이 기습적으로 유사성교행위를 한 경우 성립되는 범죄는 유사강간일까 아니면 강제추행일까. 어떤 범죄로 처벌해야 할지를 두고 최근 하급심에서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유사강간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제297조의2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사성교행위를 강제추행죄로만 처벌할 수 있었던 기존 형법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2012년 12월 신설된 규정이다.
"항거 불가능하게 할 폭행이었다고
보기 어려워 강제추행"
하지만 신설된 유사강간죄 역시 강간죄와 마찬가지로 '폭행 또는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어, 피해자가 누워있거나 마사지 등을 받는 와중에 기습적으로 당한 유사성교행위처럼 물리적인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사안에서도 유사강간죄가 적용될 수 있는지를 놓고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등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사강간죄가 인정되지 않으면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밖에 없는데 강제추행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유사강간죄에 비해 낮다. 어떤 범죄가 성립하느냐 하는 문제는 피고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통일적인 법해석 기준이 정립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습적인 유사성교'… 하급심 판단 엇갈려= 화장품 도소매업을 하는 A씨는 지난해 5~6월 인터넷 카페 등에 무료로 전신 마사지를 해준다는 광고를 냈다. A씨는 광고를 보고 찾아 온 여성 손님 4명에게 마사지를 해주면서 "몸속 나쁜 노폐물을 빼내야 한다"며 갑자기 누워있는 여성들의 성기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검찰은 A씨를 유사강간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1심은 지난 4월 A씨에게 강제추행죄만 적용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A씨처럼 기습적으로 손가락을 여성의 성기에 넣는 경우에는 유사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2심인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이광만 부장판사)는 최근 A씨에게 유사강간죄를 인정했다. 다만 A씨가 항소심 과정에서 피해자 대부분과 합의한 점 등을 감안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2016노1291).
"기습적 행위 자체가 폭력에 해당…
유사강간으로 처벌해야"
유사강간 혐의로 기소된 B씨 사건에서도 1,2심 판단이 엇갈렸다. B씨는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사우나 수면실에서 누워 있던 60대 남성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에서도 1심은 유사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이원형 부장판사)는 최근 유사강간죄를 인정해 B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1심을 취소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2016노1509).
◇'폭행·협박'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 이처럼 하급심 판단이 엇갈리는 이유는 피해자가 부지불식간에 당한 '기습 유사성교' 사례에서도 유사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폭행·협박을 구성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표적인 성폭력범죄는 강간죄와 강제추행죄가 있다. 대법원은 강간죄의 폭행·협박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은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면 족하다고 판시해 강간죄에 비해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 정도를 더 낮게 보고 있다. 대법원은 특히 강제추행죄의 경우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강제추행죄가 성립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같은 논리에 따라 대법원은 기습적인 추행행위(예컨대 갑자기 여성의 가슴을 만지는 행위)도 강제추행으로 인정하고 있다.
"기습은 유사강간 수단"
"폭행은 유형력 행사"
학계도 엇갈려
문제는 신설된 범죄 유형인 유사강간죄의 폭행·협박의 정도를 어느 정도로 봐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앞선 사건들에서 1심 재판부들은 유사강간죄도 강간죄의 한 유형인 만큼 기존 강간죄에서 요구하는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기습적인 유사성교 행위는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유사강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사건의 1심 재판부는 "강간죄와 유사강간죄는 그 행위가 강제로 이뤄지는 일정한 삽입을 전제로 한다"며 "유사강간죄의 법정형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강제추행죄의 법정형인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보다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강간죄의 법정형에 훨씬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습추행은 강제추행죄로 처벌하지 않으면 처벌의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기습유사강간은 강제추행죄로 최대 징역 10년까지 선고할 수 있어 (굳이 유사강간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행위에 상응한 적절한 처벌을 하지 못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들은 피해자의 반항이 실제로 억압됐다면 유사강간죄의 폭행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습적 행위 자체가 폭력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A씨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기습에 의한 강제추행이나 유사강간 행위의 경우, 피해자가 항거할 여유도 없어 결과적으로 항거가 곤란하거나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평가할 수 있다"며 "기습성이 강제성을 대체하기 때문에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학자들도 의견 엇갈려= 형법학자들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손동권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폭행은 유사강간행위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인데 기습유사강간의 경우 기습이 그 수단이 되는 것"이라며 "기습이라는 수단과 유사강간이라는 목적의 상관관계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손가락 등의) 삽입행위와 폭행이 동시에 일어났다고 봐 유사강간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하태훈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폭행은 유형력의 행사인데, 마사지를 한다고 눕혀놓고 기습적으로 유사성교행위를 한 것은 위계로는 볼 수 있지만 유형력의 행사로 보기는 어렵다"며 "강제추행죄로 처벌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