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제15민사부 판결
【사건】 2020나2011542 손해배상(기)
【원고, 항소인】 A
【피고, 피항소인】 1. 대한민국, 2. B, 3. C, 4. D, 5. E
【제1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2. 19. 선고 2019가합504793 판결
【변론종결】 2021. 6. 11.
【판결선고】 2021. 7. 23.
【주문】
1. 제1심판결 중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금액에 해당하는 피고 대한민국에 대한 원고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에게 1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6. 9. 5.부터 2021. 7. 23.까지는 연 5%, 그 다음 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원고의 피고 대한민국에 대한 나머지 항소와 피고 B, C, D, E에 대한 각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3. 원고와 피고 대한민국 사이에 생긴 소송 총비용 중 60%는 원고가, 나머지는 피고 대한민국이 각 부담하고, 원고와 피고 B, C, D, E 사이에 생긴 항소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4. 제1항 중 금전지급 부분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에게 5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6. 9. 5.부터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 그 다음 날부터 2019. 5. 31.까지는 연 15%, 그 다음 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이유】
1. 기초사실
가. 당사자의 관계
1) 원고는 2016. 9. 5. 구인을 위한 구속영장이 집행된 사람인데, 인치장소인 서울 F법원(이하 ‘F’이라고 한다) 앞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언론사 기자들에 의하여 그 모습이 사진 및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관련 기사와 함께 보도되었다.
2) 피고 B는 2016. 9.경(이하 피고들의 소속 및 근무처는 별도의 설명이 없는 한 2016. 9.경 당시의 소속 및 근무처를 말한다) 서울G검찰청(이하 ‘G’이라고 한다) 형사*부 소속으로서 원고에 대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이하에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을 ‘특경법’으로 줄여서 표시한다) 등 사건을 수사한 주임검사이고, 피고 C은 G 형사*부 소속으로서 2016. 9. 7. 위 사건을 재배당받아 원고에 대한 수사를 지휘한 부장검사이며, 피고 D은 G 형사*부, 피고 E은 G 형사*부 소속으로서 G 소속 수사관 H 등과 함께 2016. 9. 5. 원주시에서 원고를 체포·호송하여 F에 인치한 수사관들이다(이하 4명의 피고를 통틀어 ‘피고 공무원들’이라고 한다).
나. 원고와 부장검사 J 사이의 유착 의혹 제기
1) 원고는 2016. 4.경 자신이 운영하는 I 주식회사가 M 제품의 독점적인 공급자라는 등의 거짓말로 피해자들로부터 물품대금 등을 편취하였다는 특경법위반(사기) 및 I 주식회사의 자금을 개인적인 채무변제 등에 사용하였다는 특경법위반(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되었다.
2) 피고 B는 위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하던 중 원고가 횡령한 자금의 일부가 부장 검사 J에게 제공되었을 가능성을 파악하고 2016. 5. 17.경 이를 G 형사4부 부장검사 K에게 보고하였다. K은 2016. 5. 18. 피고 B가 작성한 J에 대한 비위사실 보고서를 대검찰청 감찰부에 송부하였다.
3) 원고는 2016. 6. 20. 피고 B로부터 첫 소환조사를 받으면서 검찰수사관 L에게 자신이 J과 유착관계를 유지하면서 금전과 향응을 제공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피고 B는 별도로 그의 비위를 뇌물죄 등으로 인지하지 않았다.
다. 원고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 경위
1) F 담당 판사는 2016. 8. 29. 원고에 대하여 특경법위반(사기) 및 특경법위반(횡령) 등의 범죄사실로 구인을 위한 구속영장(이하 ‘이 사건 구속영장’이라고 한다)을 발부하였다. 이 사건 구속영장에는 원고를 인치할 장소가 ‘F 309호 법정’으로 기재되어 있다.
2) 원고는 이 사건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도주한 뒤 2016. 8. 31. N신문 기자를 만나 자신과 J 사이의 유착관계를 제보하면서 검찰이 그의 비위를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원고와 J 사이의 유착관계에 관한 기사는 2016. 9. 5. 최초로 보도되었다.
3) 변호사 O은 J의 소개로 원고를 변호하게 되었는데, 2016. 9. 4.경 피고 B에게 원고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화번호를 알려주었고, G에서는 차장검사 등의 지시로 위 전화번호에 대한 위치추적 등을 통해 원고의 소재를 파악하고 피고 D, E과 H을 비롯한 소속 수사관들을 원주시로 보내 2016. 9. 5. 15:21경 원고를 체포하여 이 사건 구속영장에 인치장소로 기재된 F으로 호송하였다.
라. 원고에 대한 촬영 및 보도 경위
1) 원고가 원주시에서 체포된 직후 G 차장검사는 다수의 언론사 기자들에게 원고가 원주시 외곽 오토캠핑장 내 찜질방에서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원고를 태운 호송차량이 2016. 9. 5. 18:00경 F에 도착할 무렵에 건물 정면 출입문 부근에는 다수의 언론사 기자들이 원고를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일부 언론에서는 원고가 F에 도착하기 전인 2016. 9. 5. 16:59경에 이미 ‘원고가 원주시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하였는바(을나 제7호증의6, 제15증의3),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 사건 구속영장 집행 사실을 신속히 확인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검찰공무원이 기자들에게 원고의 체포 사실을 알려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2) 원고는 호송차량 안에서 수사관들로부터 F에 도착하면 포토라인에 서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거부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한편 얼굴과 수갑을 가릴 수 있는 물품을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를 제공받지 못하였다. 다만 원고는 F에 도착하기 전에 자신의 가방에 소지하고 있던 흰 수건을 꺼내 수갑만 가린 채 호송차량에서 내렸다.
3) 피고 D과 H은 F 건물 출입문 앞에 도착하여 원고와 함께 호송차량에서 내려 원고의 양옆에서 원고의 팔짱을 낀 채 건물 출입문 계단을 올라갔는데,1)출입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원고 주위로 몰려오자 원고의 팔짱을 푼 채 기자들이 원고의 주위를 둘러싸고 촬영 및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원고와 기자들의 뒤쪽으로 물러나 있다가 기자들의 취재가 끝난 뒤 다시 원고의 팔짱을 끼고 건물 정문을 통해 인치장소인 F 309호 법정으로 들어갔고, 담당 판사는 원고에게 영장실질심사 기일을 2016. 9. 6. 13:00로 통지하였다.
[각주1] 원고는 당시 피고 E이 피고 D과 함께 호송차량에서 내린 원고를 대리고 F 건물로 들어간 것으로 알고 피고 E을 이 사건 소송의 피고로 포함시켰으나, 실제로는 피고 D과 함께 원고를 데리고 들어간 사람은 H이고, 피고 E은 호송차량을 운전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고 E도 위법행위에 가담하였다고 인정된다).
4) 원고는 위와 같이 F에 도착하여 법정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얼굴이 노출된 채로 ① 호송 차량에서 내리는 모습, ② 수갑을 흰 수건으로 가리고 서서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는 모습 등이 촬영되었다. 그 중 ① 원고가 하차하는 장면이 촬영된 사진 등(갑 제3호증의 각 사진)은 원고의 얼굴 윤곽선이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비식별화 처리가 되어 보도되었으나, ② 원고가 인터뷰에 응하고 건물로 들어가는 장면의 사진들 중 일부(갑 제4, 38, 39호증의 각 사진)는 비록 모자이크 처리가 되기는 하였으나 원고의 얼굴 윤곽과 이목구비가 대략적으로 드러나 원고를 어느 정도 식별할 수 있는 상태로 보도되었다.
마. 원고에 대한 수사와 재판 결과
1) G에서는 원고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J의 비위를 은폐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2016. 9. 7. 원고에 대한 위 특경법위반(사기) 등 사건을 피고 C이 부장검사로 있는 형사5부에 재배당하였다.
2) 원고는 위 사건에 관하여 F 2016고합308호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았고, 2017. 9.경 원고와 검사의 항소가 모두 기각되어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
바. 관련 규정
이 사건 구속영장 집행 당시인 2016. 9.경을 기준으로, 수사과정에서 사건관계인의 인권보호 등을 위해 검사 등 수사업무 종사자가 지켜야 할 기본 준칙을 정한 법무부훈령인 ‘인권보호수사준칙’(이하 ‘수사준칙’이라고 한다)과 형사사건에 대한 공보와 관련하여 검찰공무원 등이 준수해야 할 사항 등을 규정한 법무부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이하 ‘공보준칙’이라고 한다)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각주2] 법무부령인 ‘인권보호수사규칙’이 2019. 10. 31. 제정되어, 2019. 12. 1. 시행되면서 법무부훈령인 ‘인권보호수사준칙’은 2019. 12. 1.자로 폐지되었는바, 수사준칙의 주요 내용은 ‘인권보호수사규칙’에 포함되어 있다.
[각주3] 법무부훈령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2019. 10. 30. 제정되어 2019. 12. 1.부터 시행됨에 따라 공보준칙은 2019. 12. 1.자로 폐지되었는바, 공보준칙의 주요 내용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판한 규정’에 포함되어 있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2 내지 13, 16, 28, 29, 34, 38, 39호증, 을나 제1, 3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달리 언급이 없는 경우 가지번호를 포함하는바, 이하 같다)의 각 기재, 원고, 피고 B, D(일부), E(일부)에 대한 각 본인신문 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2. 원고의 주장
피고 공무원들을 비롯한 피고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들은, 원고에 대한 이 사건 구속 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원고로 하여금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얼굴이 노출된 상태에서 수갑을 찬 채 호송되는 원고의 모습이 기자들에 의해 사진 및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보도되도록 함으로써, 원고의 초상권을 침해하였으므로, 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에게 초상권 침해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원고는 피고 공무원들이 포토라인을 설치하고 원고를 강제로 그 앞에 세웠다고 주장하나,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고 D, E이 이 사건 구속 영장을 집행하여 원고를 F으로 인치하는 과정에서 원고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잘못(작위의무 위반)을 인정할 수 있을 뿐, 나아가서 피고 공무원들이 포토라인을 설치하고 원고를 강제로 그 앞에 세우기 위해 불필요하게 F 정문으로 데려가는 등 적극적으로 금지규정을 위반하였다고 인정할 증거는 없으므로,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3. 피고 대한민국에 대한 청구에 관한 판단
가. 관련 법리
1) 헌법 제10조 제1문, 제17조, 제21조 제4항, 형법 제316조, 제317조 등 여러 규정을 종합하여 보면, 사람은 자신의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사항을 함부로 타인에게 공개당하지 아니할 법적 이익을 가진다고 할 것이므로,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사항은 그것이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이 아닌 한, 비밀로서 보호되어야 한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 기타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하여 함부로 촬영 또는 그림묘사되거나 공표되지 아니하며 영리적으로 이용당하지 아니할 권리를 가지는데, 이러한 초상권도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하여 헌법적으로 보장되는 권리이다. 그러므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또는 초상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대법원 2013. 6. 27. 선고 2012다31628 판결 참조).
2) 언론기관이 범죄사실의 보도와 함께 피의자의 실명을 공개하기 위해서는 피의자의 실명을 보도함으로써 얻어지는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과 피의자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이 유지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을 비교형량한 후 전자의 이익이 후자의 이익보다 더 우월하다고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어떠한 경우에 피의자의 실명보도를 허용할 수 있을 정도로 공공의 정보에 관한 이익이 더 우월하다고 보아야 할 것인지는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고, 범죄사실의 내용 및 태양, 범죄 발생 당시의 정치·사회·경제 문화적 배경과 그 범죄가 정치·사회·경제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 피의자의 직업, 사회적 지위·활동 내지 공적 인물로서의 성격 여부, 범죄사건 보도에 피의자의 특정이 필요한 정도, 개별 법률에 피의자의 실명 공개를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여부, 피의자의 실명을 공개함으로써 침해되는 이익 및 당해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의 광협 등을 종합·참작하여 정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고도의 해악성을 가진 중대한 범죄에 관한 것이거나 사안의 중대성이 그보다 다소 떨어지더라도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측면에서 비범성을 갖고 있어 공공에게 중요성을 가지거나 공공의 이익과 연관성을 갖는 경우 또는 피의자가 갖는 공적 인물로서의 특성과 그 업무 내지 활동과의 연관성 때문에 일반 범죄로서의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서 공공에 중요성을 갖게 되는 등 시사성이 인정되는 경우 등에는, 개별 법률에 달리 정함이 있다거나 그 밖에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공의 정보에 관한 이익이 더 우월하다고 보아 피의자의 실명을 공개하여 보도하는 것도 허용될 수 있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7다71 판결 등 참조). 피의자의 초상을 공개하는 행위는 단지 수사대상 범죄의 내용을 공개하는 데서 나아가 해당 피의자의 신원을 특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면에서 피의자의 실명공개에 관한 위와 같은 법리가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3) 헌법은 제10조 제2문에서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 제27조 제4항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각 천명하고 있고, 형법 제126조는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등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으며, 형사소송법 제198조 제2항은 수사에 관계있는 자는 피의자 등의 인권을 존중하고 수사과정에서 취득한 비밀을 엄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는 엄격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하여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얼굴, 성명 등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헌법과 법률의 규정으로부터 수사기관의 사건관계인에 대한 명예보호의무가 도출되고, 그러한 명예보호의무에는 초상권보호의무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앞서 본 바와 같이 법무부훈령인 수사준칙과 공보준칙은 일정한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수사상황을 공개하거나 언론이나 제3자로 하여금 촬영이나 녹화, 면담 등 접촉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나아가 검찰총장, 각급 검찰청의 장으로 하여금 사건관계인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포토라인 설치 금지 등 일정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검찰청 내외에서 피의자가 촬영이나 녹화 등을 통해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수사기관 소속 공무원으로 하여금 사건관계인의 초상권을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행정조직의 내부 질서를 규율하는 훈령과 같은 행정규칙의 위반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규정한 ‘법령위반’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될 수 있으나, 행정규칙의 법규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행정작용의 객관적 기준을 설정하는 행정규칙의 기능을 고려할 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제시된 행정사무 처리기준에 위반한 행위는 위법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4) 검찰공무원은 피의자 등 사건관계인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앞서 본 바와 같이 수사상황을 공개하거나 촬영이나 녹화를 허용하거나 면담 등 접촉을 하도록 하는 행위가 금지되는 데서 더 나아가 체포·구속된 피의자가 제3자로부터 촬영이나 녹화를 당할 처지에 놓인 경우에 피의자의 얼굴 등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신체적 표지를 가려 초상권을 침해당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보호할 작위의무(이하 ‘차패의무’라고 한다)까지 있는지 문제될 수 있다. 위에서 본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 내지 수사기관의 명예보호의무에 관한 법리에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 등이 집행되어 수사과정에서 호송·계호를 받는 피의자는 수사기관에 의한 신체의 결박 등으로 인하여 스스로 얼굴을 가리는 등으로 초상권 침해를 방어할 능력을 박탈당한 상태인 점, ② 피의자는 일단 초상이 촬영되면 그 사진이 공개될 즉각적인 위험에 노출되고, 초상의 공개로 인한 피해는 회복하기 어려워 권리의 침해가 절박하다고 할 수 있는 점, ③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한 수사기관이 모자나 옷가지 등으로 피의자의 안면 등을 가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호송·계호 업무에 별다른 부담을 주지 아니한 채 용이하게 취할 수 있는 조치인 점(오히려 피의자의 얼굴 등을 차폐하고 제3자와 접촉을 차단하는 것이 호송·계호 등 과정에서 신병을 관리하기에도 용이하다) 등을 종합하여 보면, 체포·구속으로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수사기관은 원하지 않는 촬영이나 녹화를 당할 절박한 상황에 놓인 피의자에 대하여 호송·계호 등의 업무에 중대한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얼굴을 가리거나 제3자의 접촉을 차단하는 등 초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보호할 작위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나. 피고 대한민국의 위법행위로 인한 원고의 초상권 침해
위에서 인정한 사실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피고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들은 구속된 피의자인 원고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하여 위법한 일련의 작위 및 부작위를 통해 원고의 명예와 초상권을 침해하였다고 인정되므로,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에게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인바,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원칙적으로 ‘범죄사실’ 자체가 아닌 그 범죄를 저지른 자가 누구인지, 즉 ‘피의자’ 개인에 관한 부분은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할 공공성을 지닌다고 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예외는 피의자가 공인으로서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이 되는 경우, 특정강력범죄나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을 위한 경우(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3조 참조), 체포되지 않은 피의자의 검거나 중요한 증거의 발견을 위하여 공개수배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등에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될 수 있을 뿐이다(대법원 1998. 7. 14. 선고 96다17257 판결, 헌법재판소 2014. 3. 27. 선고 2012헌마652 결정 등 참조), 그런데 원고는 I 주식회사라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로서 어떠한 의미에서도 ‘공인’ 또는 ‘공적 인물’이라고 볼 수 없고, 앞서 본 공보준칙 제17조 제2항에 열거된 공적 인물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것도 분명하다. 나아가 특정강력범죄나 성폭력범죄를 저질러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을 위해 신상을 공개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아니고, 이미 이 사건 구속영장이 집행되어 공개수배 및 검거를 위해 신상을 공개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아니어서, 신원공개가 허용되는 어떠한 예외사유에도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원고의 신원 및 초상 공개를 정당화할 사유가 없으므로, 원고는 사진 및 동영상 촬영으로 위법하게 초상권을 침해당한 것이다.
2) 공보준칙과 수사준칙은 대외적으로 구속력이 없는 법무부훈령에 불과하지만, ‘형사사건에 대한 공보와 관련하여 검사 등 검찰공무원 및 법무부 소속 공무원이 준수해야 할 사항과 인권보호조치 등을 명확히 규정’하고(공보준칙), ‘수사과정에서 모든 사건관계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를 확립하기 위하여 검사를 비롯한 수사업무 종사자가 지켜야 할 기본 준칙을 정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수사준칙)이므로, 이러한 직무규칙을 위반하여 이루어진 검찰공무원의 행위는 이를 정당화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법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공보준칙은 공소제기 전의 수사사건에 대하여는 제10조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혐의사실 및 수사상황을 비롯하여 그 내용 일체를 공개하여서는 아니 되고(제9조 제1항), 제23조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사건관계인의 초상권 보호를 위하여 소환, 조사, 압수수색, 체포, 구속 등 일체의 수사과정에 대하여 언론이나 그 밖의 제3자의 촬영·녹화·중계방송을 허용하여서는 아니 되며(제22조 제1항), 사건관계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언론이나 그 밖의 제3자와 면담 등 접촉을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되고, 언론 등과의 접촉을 권유 또는 유도하여서도 아니 된다(제22조 제2항)고 규정하고 있으며, 수사준칙은 제64조 제3항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피의자를 기소하기 전에 수사 중인 사건의 혐의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여서는 아니 되고(제64조 제1항), 사건관계인의 소환 여부와 소환 일시, 귀가시간 및 구속영장 집행시간 등 수사상황이나 구속영장 등 수사관련 서류 및 증거물도 그 사건의 기소 전에 공개하여서는 아니 되며(제2항), 공익상 특히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론기관이나 그 밖의 제3자에게 수사광경을 촬영·녹화·중계방송하도록 하여서는 아니 되고(제66조 제1항), 피의자 등 사건관계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언론기관이나 그 밖의 제3자와 면담 등 접촉을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제3항)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공무원에게 부과된 위와 같은 직무상 의무는 단순히 공공 일반의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행정기관 내부의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또는 부수적으로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G 차장검사는 원고에 대한 이 사건 구속영장이 집행된 직후에 언론사 기자들에게 구체적인 경위를 알려주어, 공보준칙과 수사준칙의 관련 규정을 위반함으로써 원고의 초상권이 침해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3) G 차장검사로부터 이 사건 구속영장 집행 사실을 확인한 언론사 기자들이 원고가 F에 도착할 무렵 건물 현관에 대기하고 있었고, 피고 D, E과 H 등 수사관들이 늦어도 호송차량에서 내리기 전에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였으며(원고가 호송차량에서 내리기 전에 미리 자신의 가방에 보관하고 있던 수건으로 수갑을 가리는 조치를 취한 것만 보더라도 호송차량이 도착하기 전에 원고와 함께 탑승한 수사관들도 기자들이 F 현관에 대기하고 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추단할 수 있다), 원고로부터 얼굴 등 차폐를 위한 조치를 요청받았으므로, 원고를 체포하여 호송한 수사관들은 원고로 하여금 얼굴 등을 가리거나 기자들과 접촉하지 않고 회피할 수 있도록 하여 줄 의무가 발생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피고 D, E은 원고의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하여주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원고에 대한 촬영, 녹화, 인터뷰가 가능하도록 방치하여, 차폐의무 등을 위반하였다(설령 일반적으로 피의자가 촬영 등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 얼굴을 가리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인지 여부가 수사기관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스스로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상황 등을 공개함으로써 피의자가 촬영 등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하였고, 호송 과정에서 기자들이 촬영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였으며, 모자나 옷가지 등을 제공하여 손쉽게 얼굴을 가리고, 신속하게 현장을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수사기관으로서는 피의자로 하여금 얼굴을 가리는 등 초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취해 주는 것 외의 재량은 행사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4) 피고들은, 원고가 일부 언론사 기자들에게 J과의 유착관계 및 일부 검사들의 비위 등을 폭로하여 스스로 언론의 관심을 유도한 점, 호송차량에서 내린 후 바로 인치 장소로 진입하지 않고 기자들 앞에 서서 다수의 질문에 대하여 차분하게 답변하고, 당시 그 심정에 대한 질문에 ‘담담하다’고 말한 점, 흰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지 않고 수갑을 가린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초상의 촬영을 원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묵시적인 동의의 의사를 추단할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원고가 일부 언론사에 검사들의 비위 등을 제보한 경위와 그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스스로 언론의 관심을 받거나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담담하다’고 말한 것은 신체가 결박되어 자신의 힘으로는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비굴하거나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사정들만으로는 원고가 겉으로는 호송을 담당한 수사관들에게 차폐를 위한 물품을 요청하고 기자들과의 면담을 거절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촬영에 응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5) 따라서 원고는 일련의 작위 및 부작위의무를 위반한 피고 대한민국 소속 검찰 공무원들(G 차장검사 및 원고를 호송한 수사관들)의 위법행위로 인해 초상권이 침해되는 손해를 입었다.
다. 손해배상의 범위
원고에 대한 이 사건 구속영장이 집행되고 언론사 기자들에 의한 촬영 및 녹화 등으로 초상권이 침해되기에 이른 경위, 침해의 정도, 원고의 직업, 사회적 지위 등을 비롯하여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사정들을 참작하여 보면, 원고의 초상권 침해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는 1,000만 원으로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에게 손해배상금 1,000만 원 및 이에 대하여 불법행위일인 2016. 9. 5.부터 피고 대한민국이 그 이행의무의 존재 여부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판결 선고일일 2021. 7. 23.까지는 민법에 정해진 연 5%, 그 다음 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정해진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4. 피고 공무원들에 대한 청구에 관한 판단
가. 피고 B, C에 대한 청구에 관한 판단
피고 B가 이 사건 구속영장 집행 당시 원고를 수사한 주임검사였고, J과 원고 사이에 유착관계를 알고 있었으나 별도로 J의 비위를 뇌물죄 등으로 입건하지 아니한 사실, 이 사건 구속영장 집행 직후 원고에 대한 위 특경법위반(사기) 등 사건이 피고 C이 부장검사로 있던 G 형사5부에 재배당된 사실, J의 소개로 검사 출신 변호사인 O이 원고의 변호를 맡게 되었는데, O이 2016. 9. 1.경부터 2016. 9. 6.경까지 J과 하루에도 수차례 통화할 정도로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원고가 체포될 무렵인 2016. 9. 4. ~ 5.경 피고 B, C과도 여러 차례 통화하거나 문자메시지를 교환하기도 하였으며, 피고 B에게 원고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화번호를 알려준 사실, 원고를 체포하여 호송한 피고 D은 피고 B가 소속된 G 형사4부, 피고 E은 피고 C이 소속된 G 형사5부에 각 소속된 사실, 원고가 호송차량 안에서 수사관들로부터 F에 도착하면 포토라인에 서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사실 등은 앞서 본 증거들과 갑 제8, 10, 11, 12호증의 각 기재, 원고, 피고 B에 대한 각 본인신문결과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위 인정사실들, 앞서 본 증거들만으로는 피고 B, C이 여러 언론사 기자들에게 원고에 대한 이 사건 구속영장의 집행 경위를 비롯한 수사상황을 공개하거나 체포되어 호송되는 원고의 모습을 촬영, 녹화하고 원고와 접촉하여 인터뷰하도록 허용하고, 피고 D, E으로 하여금 그 과정에서 원고에게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물품을 제공하지 않도록 지시하거나 관여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피고 B, C이 위법한 직무집행을 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
나. 피고 D, E에 대한 청구에 관한 판단
헌법 제29조 제1항 본문과 단서 및 국가배상법 제2조를 그 입법취지에 조화되도록 해석하면 공무원이 직무수행 중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하는 외에 공무원 개인도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지만, 공무원에게 경과실이 있을 뿐인 경우에는 공무원 개인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하고(대법원 1996. 2. 15. 선고 95다38677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여기서 공무원의 중과실이라 함은 공무원에게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상당한 주의를 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주의를 한다면 손쉽게 위법·유해한 결과를 예견할 수 있는 경우임에도 만연히 이를 간과함과 같은 거의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96. 8. 23. 선고 96다19833 판결, 2003. 12. 26. 선고 2003다13307 판결 등 참조).
위에서 인정한 사실들, 앞서 채택한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피고 D, E을 비롯한 G 소속 수사관들은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이 사건 구속영장을 집행하였을 뿐, 이 사건 구속영장의 집행을 비롯한 수사상황을 언론사 기자들에게 공개하는 데 관여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어, 수사상황 공개 금지 등의 규정을 적극적으로 위반하였다고는 인정할 수 없는 점, 원고에 대한 차폐의무가 형식적 의미의 법령이나 법무부훈령 등에도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아니하므로 이를 용이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 D, E이 차폐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데 중과실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5.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피고 대한민국에 대한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는 이유 없으므로 기각하며, 피고 공무원들에 대한 각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기각하여야 한다. 제1심판결 중 피고 대한민국에 대한 부분은 위 인정범위에 해당하는 부분이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제1심판결의 해당 부분을 취소하고, 피고 대한민국에게 해당 금액의 지급을 명하며, 나머지 항소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고, 피고 공무원들에 대한 부분은 이와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이에 대한 원고의 항소는 이유 없어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숙연(재판장), 서삼희, 양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