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제48민사부 판결
【사건】 2019가합518730 손해배상(기)
【원고】 1. A, 2. B, 3. C, 4. D
【피고】 대한민국
【변론종결】 2021. 12. 7.
【판결선고】 2022. 2. 10.
【주문】
1. 피고는 원고 A에게 577,487,772원 및 그중
가. 76,402,192원에 대하여는 2019. 1. 11.부터, 401,085,580원에 대하여는 2019. 2. 26.부터 각 2022. 2. 10.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나. 100,000,000원에 대하여는 2021. 12. 8.부터 2022. 2. 10.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피고는 원고 B에게 40,000,000원, 원고 C, D에게 각 5,000,000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2021. 12. 8.부터 2022. 2. 10.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3.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각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4.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한다.
5. 제1, 2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1. 피고는 원고 A에게 1,167,302,311원 및 그중
가. 76,402,192원에 대하여는 2019. 1. 11.부터, 790,900,119원에 대하여는 2019. 2. 26.부터 각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나. 300,000,000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 변론종결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피고는 원고 B에게 100,000,000원, 원고 C, D에게 각 30,000,000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이유】
1. 기초 사실
가. 원고 A(1935. 12. 19.생)는1)1958. 6. 16. 장기복무장교인 소위로 임관하여, 1968. 10. 28.부터 1970. 1. 16.까지 소령으로 베트남에서 F사단(사단장 G) 소속으로 근무하였고, 1970. 2. 3.부터 중령(진)으로 H부(사령관 G) 비서실장으로 근무하였다. 1970. 11. 1. 중령으로 진급하였고, 1972. 1. 27.부터 1973. 3. 22.까지 제○○○L대대장으로 근무하였다.
[각주1] 이하 정확한 일자 등에 관하여 차이가 있는 경우, 선행 행정사건 판결문(갑 제6호증의 1)이 아닌 장교 자력표(갑 제2호증의 2, 제21호증)의 기재에 따른다.
나. 1973년경 K(이하 ‘K’라고만 한다)는 당시 대통령이던 Q의 지시에 따라 H관 G과 그를 따르는 군내 사조직에 대하여 수사하였다. 그 수사 결과로 G 등 군인 10여 명이 구속되고, 30여 명이 전역하였다(이하 ‘G 사건’이라고만 한다).
다. 원고 A는 G 사건과 관련하여 1973. 3. 23. 제◇◇◇보충대로 보직대기 발령되었고, 1973. 4. 12.경 L학교로 보직대기 발령되었다. 원고 A는 1973년 4월 초순경 전역지원서를 작성하였고, FA부장관은 그 전역지원서에 근거하여 1973. 4. 10. 원고 A에게 1973. 4. 13.부 전역명령(이하 ‘이 사건 전역명령’이라고 한다)을 하였다.
라. 원고 A는 2018. 1. 30. 서울행정법원 2018구합53238호로 이 사건 전역명령에 관하여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였다. 위 법원은 2018. 10. 26. “원고 A가 K 소속 조사관들의 강요, 폭행, 협박에 의하여 전역지원서를 작성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 사건 전역명령은 그 전역지원서에 근거한 것이므로 그 하자가 중대·명백하여 무효이다.”라는 이유로 원고 A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위 판결은 2018. 11. 21. 그대로 확정되었다(이하 ‘선행 행정판결’이라고만 한다).
마. 피고는 2018. 11. 28. 원고 A에 대하여 이 사건 전역명령을 무효로 하고 1978. 11. 30.부로[구 군인사법(1980. 12. 4. 법률 제326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조 제1항 제1호, 제36조에 따른 계급정년(중령: 8년)이 되는 달(1978년 10월)의 다음 달 말일] 새로이 전역을 명하는 인사명령을 하였다.
바. 피고는 원고 A에게 2019. 1. 10. 1973년 4월부터 1978년 11월까지의 미지급 보수 원금으로 11,750,440원을 지급하고, 2019. 2. 25. 1978년 12월부터 2019년 1월까지의 미지급 퇴역연금 원금으로 598,563,830원을 지급하였다.
사. 원고 B은 원고 A의 처이고, 원고 C, D은 원고 A의 자녀들이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8, 15, 21, 22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이 법원의 FB단장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2020. 1. 8.자), 변론 전체의 취지
2. 당사자들의 주장 요지
가. 원고들: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국가배상)청구
1) 원고 A의 미지급 보수 및 퇴역연금에 대한 지연이자2)상당액 청구
공무원인 K 조사관들은 원고 A를 폭행, 협박하여 전역지원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하였다. 피고는 그 전역지원서에 근거하여 이 사건 전역명령을 함으로써 원고 A의 군인 신분을 박탈하였다(이하 통틀어 ‘이 사건 불법행위’라고 한다).
[각주2] 이 단원에서는 원고 A의 주장에 따라 ‘지연손해금’이 아니라 ‘지연이자’라고 기재한다.
이 사건 전역명령의 무효를 확인한 선행 행정판결 확정 후, 피고는 원고 A에게 2019. 1. 10. 미지급 보수 원금으로 11,750,440원, 2019. 2. 25. 미지급 퇴역연금 원금으로 598,563,880원을 지급하였으나, 위 미지급 보수 및 퇴역연금에 대한 지연이자는 지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고 A는 이 사건 전역명령이 없었더라면 본래의 지급기일에 보수와 퇴역연금을 수령하였을 것인바, 위 미지급 보수 및 퇴역연금을 뒤늦게 지급받음으로써 그 이자 상당의 손해를 입은 것이다. 따라서 위 미지급 보수 및 퇴역연금에 대한 지연이자 상당액 역시 이 사건 불법행위로 원고 A가 입은 재산상 손해(소극적 손해)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 A에게 이 사건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① 각 연도별 미지급 보수(합계 11,750,440원에) 대하여, 각 연도 말부터 지급일인 2019. 1. 10.까지 연 5%의 비율로 계산한 지연이자 상당액 합계 76,402,192원 및 이에 대한 위 지급일 다음 날부터의 지연손해금,
② 각 연도별 미지급 퇴역연금(합계 598,563,880원)에 대하여, 각 연도 말부터 지급일인 2019. 2. 25.까지 각 연도마다 정기예금금리 중 가장 높은 금리를 적용하여 계산한 지연이자 상당액 합계 790,900,119원 및 이에 대한 위 지급일 다음 날부터의 지연손해금을 각 지급할 의무가 있다.
[소장 10쪽의 기재에 의하면, 원고 A는 피고에 대하여 미지급 보수 및 퇴역연금에 대한 ‘지연이자 상당액’의 ‘배상’을 구하고 있다. 즉 원고 A는 미지급 보수 및 퇴역 연금에 대한 ‘지연손해금’ 자체의 지급을 청구하는 것이 아니라(이는 공법상의 법률관계에 해당하는 소송으로 당사자소송에 의하여야 한다),3)이 법원에 관할권이 있는 공무원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국가배상)청구를 하는 것으로 해석이 되므로, 이 부분 청구를 서울행정법원에 이송하지 아니하고 직접 판단한다.]
[각주3] 한편 군인연금법에 의한 퇴역연금을 받으려고 하는 자는 우선 관계 법령에 따라 FA부장관에게 그 권리의 인정을 청구하여 FA부장관이 그 인정 청구를 거부하거나 청구 중의 일부만을 인정하는 처분을 하는 경우 그 처분을 대상으로 항고소송을 제기하는 등으로 구체적 권리를 인정받은 다음 비로소 당사자소송으로 그 급여의 지급을 구하여야 할 것이고,구체적인 권리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국가를 상대로 한 당사자소송으로 그 권리의 확인이나 급여의 지급을 소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한다(대법원 2003. 9. 5. 선고 2002두3522 판결, 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8두5636 판결 참조). 그런데 이 사건에서 원고 A가 FA부장관 등으로부터 퇴역연금에 대한 지연손해금에 관하여 구체적 권리를 인정받았다고 볼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으므로, 원고 A가 국가를 상대로 당사자소송으로 그 지급을 소구하는 것은 어차피 부적법하다(이 점에서도 원고 A의 청구를 공법상의 법률관계에 관한 것으로 해석할 실익이 없다).
2) 원고들의 위자료 청구
피고는 이 사건 불법행위로 원고 가죽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원고 A에게 3억 원, 처인 원고 B에게 1억 원, 자녀인 원고 C, D에게 각 3,000만 원 및 이에 대한 이 사건 변론종결일 다음 날부터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나. 피고
1) 군인연금법상의 퇴역연금 등의 급여를 받을 권리는 FA부장관이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그 채권액이 확정되고, 이때에 구체적인 권리가 발생한다. 따라서 미지급 보수 및 퇴직연금에 대하여는 이자나 지연손해금 기타 부수적인 채권이 발생하지 않는다. 원고 A가 지연이자 상당액의 계산 근거로 들고 있는 구 군인연금법(2019. 12. 10. 법률 제16760호로 전부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군인연금법’이라고만 한다) 제33조 제2항은 퇴직급여가 형벌이나 징계 등에 의하여 제한되었다가 그 제한 사유가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 등으로 소급하여 소멸한 때에 적용되는 조항으로, ‘원에 의한 전역’을 한 원고 A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원고 A의 지연이자 상당액의 손해배상청구는 이유 없다.
2) 국가배상청구권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그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1항에 따른 주관적 기산점)로부터 3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4)그런데 원고들은 1973년 4월 당시 이미 불법행위의 가해자와 손해 발생사실을 알았다. 한편 이 사건 전역명령의 무효를 확인한 선행 행정판결이 2018. 11. 21. 확정되었다는 사정은 ‘사실상 장애사유’에 불과하고, 원고들은 이 사건 전역명령의 무효확인과는 별개로 1987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때 혹은 늦어도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때에는 이 사건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 사건 소는 그로부터 3년이 훨씬 지난 2019. 3. 28.에야 비로소 제기되었으므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완성으로 소멸하였다.
[각주4] 피고는 이른바 ‘객관적 기산점’에 따른 5년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은 철회하였다(2021. 11. 14.자 준비서면 3쪽).
다. 원고들의 재반박
1) 피고가 원고 A에게 2019. 1. 10. 미지급 보수, 2019. 2. 25. 미지급 퇴직연금을 각 지급하기 전까지는, 미지급 보수 및 퇴직연금에 대한 지연이자 상당액의 손해배상 청구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위 각 지급일이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된다.
2)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칙에 반하고 권리의 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
3.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가.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1) 이 사건 불법행위의 인정
기초 사실 및 그 거시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보면, 원고 A가 ① G 사건 조사가 한창 진행되던 1973년 3월경 보직대기 발령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용산구 N로 끌려간 사실, ② 첫날 G과의 관계 등에 관하여 조사를 받고 그 다음 날 전역지원서를 쓸 것을 요구받았으나 거부한 사실, ③ 그러자 조사관으로부터 욕설과 구타를 당하였고, 전역하라는 협박과 회유를 당한 사실, ④ 그럼에도 거부하자 조사관이 특실이라 불리는 컴컴한 방으로 데리고 갔고, 옆방에서 나는 비명소리와 숨넘어가는 소리를 들은 사실, ⑤ 결국 공포감에 전역지원서를 쓰게 된 사실이 인정된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 소속 공무원인 K 조사관들은 원고 A를 불법구금(적법한 구금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하고 가혹행위를 하여 이 사건 전역지원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하였고, 피고는 그 전역지원서를 근거로 이 사건 전역명령을 한 불법행위가 인정된다.
2) 원고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의무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원고 A 및 그 가족인 나머지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금전으로나마 배상할 의무가 있다.
3) 원고 A에 대한 지연손해금 상당액의 손해배상의무
가) 공무원에 대한 면직처분이 판결에 의하여 취소된 경우 취소판결의 형성력으로 인하여 처음부터 면직처분이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로 되므로 당해 공무원은 원래 면직되지 않았다면 보수를 받아야 하는 날에 그 보수를 지급받았어야 하는데 이를 지급받지 못하고 복귀일 또는 발령일에서야 이를 지급받게 되므로 그 사이의 지급지체로 인한 손해를 배상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위와 같은 지연손해금을 지급받기 위하여 특별한 규정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06. 6. 16. 선고 2005다28990 판결). 위와 같은 법리는 군인이 전역명령에 따라 전역하였으나, 그 전역명령의 무효를 확인한 판결이 확정되어 그 전역명령을 무효로 하고 당시 계급정년 예정일에 전역한 것으로 하는 새로운 인사명령이 발령되어, 위 계급정년 예정일까지의 보수 및 예정일 이후의 퇴역연금이 사후 지급된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5)
[각주5] G 사건의 다른 피해자인 S에 대한 서울행정법원 2016. 7. 14. 선고 2015구합78830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7. 1. 20. 선고 2016누59012 판결, 대법원 2017. 5. 16.자 2017두34377 심리불속행기각 판결 참조(갑 제16호증의 1, 2, 3)
나) 앞서 인정한 사실을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고 A는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하여 전역된 것으로, 이 사건 불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적어도 계급정년 예정일(새로운 인사명령에 따른 전역일)까지는 군인보수법이 정한 본래의 지급기일에 정기적으로 보수를 지급받았을 것이고, 위 전역일 이후에는 군인연금법에서 정한 본래의 지급기일에 퇴역연금을 지급받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불법행위와 보수 및 퇴역연금의 지급 지체로 인한 손해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원고 A에게 보수 및 퇴역연금에 대하여 본래의 각 지급기일부터 발생한 지연손해금 상당액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나.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판단
1) 관련 법리
가) 국가배상청구권에 관한 3년의 단기시효기간을 기산함에 있어서도 민법 제766조 제1항 외에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한 일반규정인 민법 제166조 제1항이 적용되므로, 위 3년의 단기시효기간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에 더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하여야 비로소 시효가 진행한다(대법원 1998. 7. 10. 선고 98다7001 판결 참조). 민법 제766조 제1항에서 정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은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때를 의 하고, 피해자 등이 언제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적 사건에서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대법원 2012. 4. 13. 선고 2009다33754 판결 등 참조). 그리고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민법 제766조 제1항에 따라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는 것이나, 여기에도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한 규정인 민법 제166조 제1항이 적용되어 시효기간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고, 이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라 함은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가 없는 경우를 가리킨다(대법원 1998. 7. 10. 선고 98다7001 판결 참조).
나) 한편 근로자가 사용자의 전보명령이 부당전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승소판결이 확정되었다면, 근로자로서는 그때에 비로소 그 손해를 알았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1981. 1. 13. 선고 80다1713 판결,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다71592 판결,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21다204367 판결 등 참조).
다)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 등으로 수집한 증거 등에 기초하여 공소가 제기되고 유죄의 확정판결까지 받았으나 재심사유의 존재 사실이 뒤늦게 밝혀짐에 따라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후 국가기관의 위법행위 등을 원인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채권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채무자인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다만 채권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장애가 해소된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는 6개월의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 한다(대법원 2013. 12. 12. 선고 2013다201844 판결 참조).
2) 구체적인 판단
가) 위 각 법리는 이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바, 원고들로서는 이 사건 전역명령의 무효가 확인된 선행 행정판결이 확정된 2018. 11. 21. 비로소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알았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 사건 소가 그때로부터 3년 내인 2019. 3. 28. 제기되었음은 기록상 명백하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 없다.
나) 설령 이 사건 불법행위에 관한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보더라도,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다음과 같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으므로, 피고의 이 부분 항변은 역시 이유 없다.
이 사건에서 원고들은 단순히 K 조사관들의 폭행·협박에 의한 일시적인 육체적·정신적 고통만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고 A의 군인 신분이 위법하게 박탈됨으로써 입은 정신적 손해와, 당연히 지급받을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였던 보수 및 퇴역연금을 지급받지 못함으로써 입은 재산상 손해를 함께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원고 A가 ‘원에 의하여 전역’한 것으로 되어 있는 이 사건 전역명령의 외관이 현존하는 이상, 원고 A가 법적 구제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미지급 보수 및 퇴역연금을 청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상태가 계속되었다고 보아야 하고, ‘군인으로서의 신분이 위법하게 박탈’된 데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청구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원고들은 선행 행정판결이 확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 사건 청구가 가능하였다. 원고들은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 행사에 관한 객관적 장애사유가 명백히 해소된 2018. 11. 21.로부터 6개월 내인 2019. 3. 28.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4.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가. 지연손해금 상당액의 산정
1) 지연손해금률: 민법상 연 5%
가) 원고는 ① 미지급 보수에 관하여는 각 연도 말부터 지급일인 2019. 1. 10.까지 민법이 정한 연 5%의 비율을 적용하여 지연손해금 상당액을 계산하고, ② 미지급 퇴직연금에 관하여는 각 연도 말부터 지급일인 2019. 2. 25.까지 구 군인연금법 제33조 제2항, 구 군인연금법 시행령(2020. 6. 9. 대통령령 제30759호로 전부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군인연금법 시행령’이라고만 한다) 제71조 제2항에서 정한 “해당 연도마다 1월 1일 현재 전국은행이 적용하는 정기예금금리 중 가장 높은 금리”를6)적용하여 지연손해금 상당액을 계산하였다.
[각주6] 이를 이유로 ‘지연이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나) 그러나 ① 미지급 보수뿐만 아니라 ② 미지급 퇴직연금에 관하여도 민법이 정한 연 5%의 비율을 적용함이 타당하다. 구체적인 판단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구 군인연금법 제33조 제2항 및 구 군인연금법 시행령 제71조 제2항은, 퇴직급여가 형벌이나 징계 등에 의하여 제한되었다가 그 제한 사유가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 등으로 소급하여 소멸한 때에 적용되는 조항이므로, 전역지원서를 제출하여 ‘원에 의한 전역’을 한 원고 A에게는 적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2) 갑 제2, 22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에 이 법원의 FB단장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2020. 1. 8.자)를 보태어 보면, 원고 A가 그동안 퇴역연금을 지급받지 못했던 것은 퇴역연금의 지급이 제한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1958. 6. 16. 임관 ~ 1973. 4. 10. 전역으로 연금복무기간 20년을7)충족하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선행 행정판결 확정 후 FA부장관이 1978. 11. 30.부로 새로이 전역을 명하는 인사명령을 하면서 비로소 연금복무기간 20년이 충족되어 퇴역연금을 소급하여 지급받게 된 것이다. 이에 비추어, 이 사건 전역명령이 무효라는 이유만으로 구 군인연금법 제33조 제2항을 이 사건에 유추적용하는 것이 위 법률조항의 문언과 체계, 목적 등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각주7] 구 군인연금법(1973. 10. 10. 법률 제262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1조 제1항
2) 지연손해금 상당액의 액수
가) 미지급 보수에 대한 지연손해금 상당액: 76,402,192원
미지급 보수에 원고 A가 구하는 각 해당 연도 말부터 원금 지급일인 2019. 1. 10.까지 민법상 연 5%의 비율을 적용한 액수에 관하여, 금액 산정의 기초가 되는 사실과 계산방법 및 그 결과에 관하여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다(원고들 2021. 8. 12.자 준비서면 [별지 1], 피고 2021. 11. 14.자 준비서면 3쪽).
나) 미지급 퇴역연금에 대한 지연손해금 상당액: 401,085,580원
1978년 12월분 퇴역연금부터 2018년분 퇴역연금에 대하여는 원고 A가 구하는 바에 따라 각 해당 연도 말부터(원고들 2021. 8. 12.자 준비서면 [별지2]), 2019년 1월 분 퇴역연금에 대하여는 본래의 지급기일 다음 날인 2019. 1. 26.부터(퇴역연금의 지급 시기는 매월 25일이다. 구 군인연금법 시행령 제32조 제1항 참조) 각 원금 지급일인 2019. 2. 25.까지8)민법이 정한 연 5%의 비율을 적용하여 계산하면 별지2 기재와 같이 합계 401,085,580원이 된다.
[각주8]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의 기재에 의하면, 원고는 퇴역연금 원금 지급일인 2019. 2. 25.까지 발생한 지연손해금 상당액의 손해배상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따라서 원고 2021. 8. 12.자 준비서면 [별지2]에 기재된 2019. 1. 25.는 오기(誤記)로 본다].
나. 위자료의 산정
1) 피고의 이 사건 각 불법행위는 1973년 4월경 행해졌는데, 불법행위시와 변론종결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시의 통화가치 등에 있어서 불법행위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사실심 변론종결일 당일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고, 이러한 경우에는 변론종결 시를 기준으로 위자료 원본 액수를 산정함에 있어서 불법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즉시 지급함이 적절하다고 보이는 액수의 위자료에 대하여 불법행위 시로부터 변론종결시까지 배상이 지연된 사정을 참작하여 변론종결시의 위자료 원본을 증액 산정할 필요가 있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다53419 판결 참조).
2) 기초 사실에 갑 제2, 15, 22, 25, 26, 27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인정할 수 있는 다음 사정들을 종합하여, 원고 A 본인의 위자료는 100,000,000원, 배우자인 원고 B의 위자료는 40,000,000원, 자녀인 원고 C, D의 위자료는 각 5,000,000원으로 정한다.
① 원고 A는 서울 용산구 N로 압송되어 폭행, 협박 등 가혹행위를 당하였는바,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② 원고 A는 P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에 임관한 이래 여러 차례의 표창을 받았고, 1969. 10. 11.에는 파월유공으로 화랑무공훈장까지 수여받은 우수한 군인이었는데, 이 사건 전역명령으로 인해 군인으로서 나라에 헌신할 기회를 박탈당하였다. 원고 A의 좌절을 지켜보아야 했던 원고 B과 자녀들(당시 11세, 10세)도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③ 한편 원고 A는 이후 기업에 취직하는 등으로 비교적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여 왔다. 특히 1982년 Q 사장, 1983~1987년, 1985~1996년 R 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기업인, 체육인으로서 이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여 왔는바, 이를 통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명예를 상당 부분 회복하였을 것으로 보이고, 원고 가족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해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④ 그 밖에 G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장기간 구금되었던 다른 피해자들과의 형평(별지1 참조), 시간의 경과에 따른 국민소득 및 통화가치의 상승 등을 참작한다.
다.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이 사건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1) 원고 A에게 577,487,772원 및 그중
① 미지급 보수에 대한 지연손해금 상당액 76,402,192원에 대하여는 그 원금 지급일 다음 날인 2019. 1. 11.부터,
② 미지급 퇴역연금에 대한 지연손해금 상당액 401,085,580원에 대하여는 그 원금 지급일 다음 날인 2019. 2. 26.부터,
각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부와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판결 선고일인 2022. 2. 10.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이하 기산일 및 비율의 특정 근거는 같다).
③ 위자료 100,000,000원에 대하여는 원고 A가 구하는 바에 따라 이 사건 변론종결 다음 날인 2021. 12. 8.부터 이 판결 선고일인 2022. 2. 10.까지는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고,
2) 위자료로 원고 B에게는 40,000,000원, 원고 C, D에게는 각 5,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위 원고들이 구하는 바에 따라 이 사건 변론종결 다음 날인 2021. 12. 8.부터 이 판결 선고일인 2022. 2. 10.까지는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각 지급할 의무가 있다.
5. 결론
원고들의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으므로 일부 인용한다.
판사 이기선(재판장), 윤남현, 현재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