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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에 대한 신의칙 적용에 관해
I. 일반론 - 세법상 신의성실의 원칙 국세기본법(이하 '국기법') 제15조는 '신의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에 관한 규정으로, 일반적으로 이른바 '금반언 원칙'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과세관청이나 납세자가 일정한 언동(이하 '선행언동')을 한 후 이를 뒤집고 다른 언동(이하 '후행언동')을 한 경우 실체적 진실 또는 '실질'에 부합하는 후행언동과, 부합하지 않는 선행언동 중 어느 것에 따라 세법상의 법률효과를 부여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원칙으로 운용되어 왔다. 이러한 신의칙을 과세관청에 대하여 적용하는 것은 행정법학에서 흔히 '신뢰보호 원칙' 또는 '확약의 법리'로 불리는 경우의 한 예에 불과하다. 반면 '납세자에 대한 신의칙 적용'(이하 '납세자 신의칙 적용')이란, 납세자의 후행언동이 '실질'에 부합함에도 불구하고, 세법의 적용에 있어서는 납세자의 신의칙 위반을 이유로 하여 후행언동의 존재를 무시하고 선행언동을 근거로 과세하는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국기법 제15조를 하나의 일반적 과세근거로 보는 것과 같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종래 논란이 되어 왔던, 실질과세 원칙에 근거하여 민사법상 유효한 법률행위의 존재를 무시하고 세금을 물릴 수 있는가의 문제와, 신의칙에 근거하여 '실질'에 부합하는 후행언동의 존재를 무시하고 세금을 물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같은 차원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II.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1. 사실관계 (1) '실질': 갑은 강제집행면탈 목적으로 자신이 대주주 겸 대표이사인 을 회사 소유의 부동산을 2001.11. 처남인 원고에게 명의신탁하였으나, 그 후에도 을 회사는 위 부동산을 종전과 같이 사용하였으며 이를 위해 갑과의 임대차 계약 체결을 가장하였다. (2) 원고의 선행언동: 명의수탁자 원고는 자신이 위 부동산을 임대업에 공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과세관청 피고에게 부동산임대업 등의 사업자등록을 신청한 후, 위 부동산을 을 회사로부터 매입한 것으로 가장하고 그 매입세액 상당액을 2001년 제2기 부가가치세 표준에서 공제하여, 결국 2억 3천만 원이 넘는 세액을 환급 받았다. 대신 원고는 을 회사로부터의 임대료 상당액에 대하여 2003년 제2기까지 부가가치세를 신고납부하였다(다만 원심 대전고판 2006.8.24. 96누314에 따르면 실제 세금을 부담한 것은 을 회사였다). (3) 원고의 후행언동: 2004년 제1기 부가가치세로 신고한 금액 중 일부를 납부하지 않은 원고에게 피고가 미납세액의 징수고지를 하자 원고는 2004년 제2기에 와서 아예 폐업 신고를 하였다. 다시 피고는 이른바 '폐업시 잔존재화 자가공급 의제규정'(부가가치세법 제6조 제4항 전문)에 근거, 위 부동산을 원고가 시가로 '공급'한 것으로 보아 관련된 부가가치세 1억 1천만 원을 원고에게 부과하는 내용의 처분을 하였다(이하 '본건 과세처분'). 이에 대하여 원고는, 위 부동산은 명의신탁된 것이고 을 회사와의 임대차 계약도 가장행위에 불과하여 원고 스스로 부동산임대업을 영위한 바 없기 때문에, 결국 원고에게 위 공급의제 규정이 적용될 수 없어 본건 과세처분은 위법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본건 과세처분에 불복하였다. 2. 원심 판결의 내용 원심 법원은 납세자 신의칙 적용과 관련된 대법원 판례(아래 3.항 참조)를 전제한 후 위 1.항의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 원고의 선행언동이 '피고의 실지조사권을 방해하여 조세과징권의 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것'은 아니고 따라서 원고의 후행언동이 '심한 배신행위'에 해당하지는 않으며, 특히 실지조사권이 있는 피고는 본디 해당 사안의 '실질을 조사하여 과세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므로 피고가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여 본건 과세처분을 한 이상 선행언동에 대한 피고의 신뢰에 보호가치가 있다고도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결국 원심 법원은 원고의 후행언동이 신의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보아 본건 과세처분을 취소하였다. 3. 대법원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일반론으로서, 납세자 신의칙 적용은 '조세법률주의에 의하여 합법성의 원칙이 강하게 작용하는 조세실체법과 관련한 신의성실의 원칙의 적용은 합법성을 희생해서라도 구체적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적용된다고 할 것인바, 납세의무자에게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모순되는 행태가 존재하고, 그 행태가 납세의무자의 심한 배신행위에 기인하였으며, 그에 기하여 야기된 과세관청의 신뢰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였다(확립된 판례이다). 이어 대법원은 원심 법원이 인정한 사실에 따르더라도 이러한 '사실에 나타난 원고의 모순된 언동과 그에 이르게 된 경위 및 비난가능성의 정도, 이 사건 2004년 제2기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의 성격과 피고의 신뢰에 대한 보호가치의 정도, 부가가치세 등과 같이 원칙적으로 납세의무자가 스스로 과세표준과 세액을 정하여 신고하는 신고납세방식의 조세에 있어서 과세관청의 조사권은 2차적·보충적인 점 등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본건 과세처분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부동산임대업 영위는 가장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 위반이라고 보아, 본건 과세처분이 적법하다는 취지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III. 평석 1. 쟁점의 정리 원고가 부동산임대업을 실제로 영위하지 않아 부가가치세법상 납세의무자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고에 대한 본건 과세처분이 국기법 제15조의 적용요건을 충족한다는 이유로 결국 적법한 것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이 사건의 쟁점이다. 2. 신의칙 적용 제한에 관한 검토의 필요성 이 쟁점에 관한 대법원 판례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지만, 실제로 과세처분을 유지하는 결과가 나온 경우로서 공간된 것은, 대상판결 전에는 1990년의 어느 한 사건이 유일하다(대판 1990.8.24. 89누8224). 대법원이 분식회계에 대하여 납세자에게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는 등(대판 2006.1.26. 2005두6300) 비교적 최근까지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가 계속되어 왔으나, 2009년 대상판결 선고에 이어 심지어 조세심판원이 대상판결의 취지를 다른 세목에도 확장하는 재결을 하는 등(조세심판원 2010.6.7.자 2009전2367 결정은 신의칙을 근거로, 과세관청이 위 원고에게 임대 수입에 관한 종합소득세를 부과한 처분까지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최근 이 쟁점에 관한 실무의 태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납세자 신의칙 적용이란 결국, 본질적으로 불확정개념인 '신의칙'의 적용에 따라 세금의 부과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조세법률주의를 최고의 지도원리로 삼고 있는 현재의 이론 체계 하에서는, 이에 대한 일정한 제한 원리를 세울 필요가 있다(조세법률주의 개념에 대한 최근의 이론적 비판은 여기서는 이 글의 목적상 논외로 한다). 3. 금반언 원칙으로서의 신의칙 적용에 관한 제한 가능성 (1) 이론적 문제점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금반언 원칙으로서의 신의칙을 납세자에 적용하는 것은 신의칙 적용이 없었더라면 납세의무가 없을 사람에게 세금을 물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 논리적인 근거는 아마도 상법 제24조가 정하는 명의대여자의 연대납세의무나, 보다 일반적으로 민상법에서 인정하는 표현책임 -민법 제125조 이하의 표현대리나 상법 제395조의 표현대표이사의 책임 등- 과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다른 납세의무자가 존재하는 경우에 신의칙의 적용은 마치 국기법의 연대납세의무나 제2차 납세의무와 같은, 납세의무의 인적 확장에 유사한 결과를 낳는다. 이와 같이 납세자에 대한 신의칙 적용이 개념적·논리적으로 전혀 불가능하다고 할 것은 없다. 그러나 위의 연대납세의무나 표현책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납세의무의 확장에 관하여는 분명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며, 특히 이러한 필요성은 세법의 영역에서 더 현저하다. 조세법률주의의 핵심은 납세자의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과세요건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 반드시 법률에 명확한 내용으로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국기법 제15조만으로는 도저히 그러한 요구가 충족되었다고 하기 어려우며, 그렇다고 그 하위 법령에 어떤 구체화된 세부적 적용 기준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국기법 제14조 실질과세 원칙에 관한 대법원 판례(종래 자주 인용되어 오던 것으로서 대판 1991.5.14. 90누3027과 이를 재확인한 최근의 대판 2009.4.9. 2007두26629 등)와 비교하여 보면 이러한 문제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즉 대법원은 실질과세 원칙과 관련하여서는 이 법원칙이 구체적 과세의 근거가 될 수는 없으며, 조세회피 행위를 부인하고 과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별적·구체적 과세근거 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여 왔다. 그렇다면 유독 신의칙과 관련하여 국기법 제15조만에 의하여 과세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일관성이 없다. 따라서 기존의 판례나 이론체계와의 조화를 고려하는 이상 그 동안 대법원이 취하여온 소극적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나, 반면 1990년 이후 최초로 이러한 과세를 긍정한 대상판결의 입장에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이론적 문제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2) 신의칙 적용의 기준 어쨌든 현실적으로 신의칙 적용에 따른 과세를 긍정하는 대법원 판례가 변경될 가능성은 당분간은 없는 듯하다. 따라서 이 원칙이 다시 논란이 되기 시작한 현재로서는, 그 적용의 범위나 요건을 분명히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문제되는 것은 이 원칙의 적용요건으로서 대법원이 제시하고 있는 '심한 배신행위'라든지 '보호가치'와 같은 개념이 너무나 불명확하고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낳는다는 점이다. 이 요건들이 지금까지와 같이 단순히 이 원칙의 적용을 사실상 배제하는 방향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신의칙 적용을 가능하게도, 불가능하게도 하는 의미를 갖는다면 이러한 점은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조금 다른 기준들을 생각하여 보고자 한다. 1) 선행언동으로 인한 결과의 원상회복 문제 납세자 신의칙 적용에 관한 현재의 판례를 확립한 대판(전) 1997.3.20. 95누18383의 소수의견은, 납세자가 적어도 과세처분 취소소송의 사실심 변론 종결시까지는 선행언동의 결과를 스스로 제거(즉 '원상회복')을 하거나 아니면 선행언동에 따른 과세를 당하거나를 양자택일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한 결과이며, 따라서 원상회복이 없으면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견해는 무엇보다 그 적용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으며, 세금과 관련된 분쟁의 공평한 해결이라는 측면에서도 일단 수긍할 수 있는, 비교적 균형 잡힌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판결의 다수의견은 사실심 변론종결 후의 원상회복을 고려할 수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였으나, 이른바 후발적 경정청구(국기법 제45조의2 제2항)가 인정되고 있는 현행 법제 하에서는 이러한 지적이 문제될 여지도 작아졌다. 2) 선행언동이 세금과 관련된 것인지 여부 다음으로 선행언동의 동기를 따지는 방법이다. 즉 선행언동이 세금과 전혀 무관한 혜택을 얻을 의도에서 행하여진 것이라면, 세금을 동원하기보다는 그 다른 혜택과 관련된 법령에서 정하여진 제재에 의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반대로 선행언동으로 세금 관련 혜택을 얻은 것이라면, 이때는 세금을 신의칙 위반 행위에 대한 하나의 '제재'로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물론 세금에 관한 종래의 혜택을 박탈하고 가산세를 부과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부과제척기간 적용 등의 이유로 이러한 대처가 불가능한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신의칙에 따른 과세가 가능하다는 생각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이는 상증법 제45조의2 증여의제 규정의 해석론에 유사하다). 3) 대상판결과의 관련 이들 중 어느 쪽으로 보나 대상판결의 결론 자체는 정당화된다. 즉 이들 기준들은 현재 대법원의 입장과 크게 다른 결과를 낳지 않는 반면, 그러한 결과에 도달함에 있어 현재의 판례보다 훨씬 더 명확한 판단기준을 제공한다. 물론 해석론으로 이와 같은 구체적인 적용기준을 도출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이는 무엇보다 신의칙에 따라 과세 여부를 결정하는 대법원의 입장 자체에 근본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드러낼 따름이다. 4. 금반언 원칙을 넘어선 신의칙 적용의 가능성에 대한 제한 금반언 원칙에서 더 나아가, 신의칙이 납세자의 사회통념상 용납되지 않는 행위 일반에 적용되어, 국기법 제15조에 따라 납세자에게 세금과 관련된 불이익 -예컨대 소득 없는 사람에게 소득세를 부과하거나 세액계산 과정에서 특정 조문의 적용을 배제하는 등 세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세법을 해석- 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제시될 여지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과세 역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우선 국기법 제15조가 독립된 과세근거가 될 수 없다는 앞에서의 논의는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러한 의미에서 물리는 세금은, 표현책임 등과 같은 기존의 다른 개념으로도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고, 순수하게 신의칙 위반 행위에 대한 '제재'로 밖에는 볼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법치행정의 원리상 이러한 제재의 부과에 대하여는 역시 명확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세가 혹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법적용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보충적으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항상 우선되어야 한다. 즉 신의칙에 위반된 납세자의 행위에 대하여 법령에 형벌이나 행정벌, 가산세 등 별도의 제재에 관한 규정들이 이미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는 입법자가 그러한 유형의 행위를 미리 예견하고 그에 대하여 법질서 보호를 위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제재를 사전에 마련하여 둔 경우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 입법자가 정한 바를 넘어 과세관청이나 법원이 구체적 근거 규정 없이 납세자에게 세금과 관련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조세법률주의는 물론) 입법자의 의도에도 어긋나는 것이 된다(이태로·안경봉, 조세법강의(제4판), 2001, 37쪽 역시 납세자가 신의칙 위반 행위로 조세법상 각종 불이익한 처분을 받게 된다는 점을 들어, 이러한 신의칙 적용은 '사실상 극히 제한'된다고 설명한다). 요컨대 금반언과 무관한 신의칙의 납세자에 대한 적용은 (혹시 가능하다 고 보더라도) 어디까지나 보충적인 것으로서, 납세자의 행동이 국고의 일실을 결과하고 이러한 일실의 결과가 정의에 현저히 어긋날 뿐 아니라, 특히 입법자가 미리 마련하여 놓은 제재가 전혀 적용될 수 없어 신의칙 적용이 이에 대응할 유일한 수단인 경우에 한하여 가능하다고 하여야 한다(물론 비례의 원칙, 적법절차의 원칙과 같은 공법상의 일반 원칙들의 적용도 받는다). IV. 대상 판결에 대한 평가 및 결론 기존의 판례나 이를 전제로 한 논의 하에서 대상판결의 결론은 대체로 타당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혹시 이 판결의 취지가 신의칙 위반에 대한 과세의 범위를, 우리 세법 체계에 조화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넓히는 방향으로까지 작용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이 점에서 최근의 조세심판원 결정에는 우려되는 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행정부의 과세권 행사에 입법부의 구체적 권한 부여(즉 법률의 근거 규정)가 필요하다고 보는 체계를 갖고 있는 경우, 납세자의 행위가 신의칙에 위반되었다는 막연하고 불확정한 이유만으로 행정부나 법원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무제한 허용하는 것이 곤란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의칙의 구체적 적용범위 제약을 위한 논의는 앞으로도 활발하게 이어져야 할 것이다.
2010-10-11
표준지 공시지가결정과 수용재결간의 하자 승계인정 의의
Ⅰ. 判決要旨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은 이를 기초로 한 수용재결 등과는 별개의 독립된 처분으로서 서로 독립하여 별개의 법률효과를 목적으로 하지만, 표준지공시지가는 이를 인근 토지의 소유자나 기타 이해관계인에게 개별적으로 고지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인근 토지의 소유자 등이 표준지공시지가결정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전제하기가 곤란할 뿐만 아니라, 결정된 표준지공시지가가 공시될 당시 보상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표준지의 인근 토지를 함께 공시하는 것이 아니어서 인근 토지 소유자는 보상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표준지가 어느 토지인지를 알 수 없으므로, 인근 토지 소유자가 표준지의 공시지가가 확정되기 전에 이를 다투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장차 어떠한 수용재결 등 구체적인 불이익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경우에 비로소 권리구제의 길을 찾는 것이 우리 국민의 권리의식임을 감안하여 볼 때, 인근 토지소유자 등으로 하여금 결정된 표준지공시지가를 기초로 하여 장차 토지보상 등이 이루어질 것에 대비하여 항상 토지의 가격을 주시하고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이 잘못된 경우 정해진 시정절차를 통하여 이를 시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게 높은 주의의무를 지우는 것이고, 위법한 표준지공시지가결정에 대하여 그 정해진 시정절차를 통하여 시정하도록 요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법한 표준지공시지가를 기초로 한 수용재결 등 후행 행정처분에서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위법을 주장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수인한도를 넘는 불이익을 강요하는 것으로서 국민의 재산권과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한 헌법의 이념에도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이 위법한 경우에는 그 자체를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 보아 그 위법 여부를 다툴 수 있음은 물론, 수용보상금의 증액을 구하는 소송에서도 선행처분으로서 그 수용대상 토지 가격 산정의 기초가 된 비교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위법을 독립한 사유로 주장할 수 있다. Ⅱ. 瑕疵承繼와 관련한 對象判決의 波及效果 1. 判例變更의 次元 일찍이 대법원 1997.9.26. 선고 96누7649 판결은 "표준지로 선정된 토지의 공시지가에 대하여는 지가공시법 제8조 제1항 소정의 이의절차를 거쳐 처분청을 상대로 그 공시지가결정의 위법성을 다툴 수 있을 뿐 그러한 절차를 밟지 아니한 채 조세소송에서 그 공시지가결정의 위법성을 다툴 수는 없다"고 하였고, 그 논거로 "개별토지가격에 대한 불복방법과는 달리 표준지의 공시지가에 대한 불복방법을 위와 같이 제한하고 있는 것은 표준지의 공시지가와 개별토지가격은 그 목적·대상·결정기관·결정절차·금액 등 여러 가지면에서 서로 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므로, 이러한 차이점에 근거하여 표준지의 공시지가에 대한 불복방법을 개별토지가격에 대한 불복방법과 달리 인정한다고 하여 그것이 헌법상 평등의 원칙, 재판권 보장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제시하였다. 요컨대 수인한도성(기대가능성)의 근거에서 개별공시지가결정의 하자의 후행 과세처분에 대한 승계를 인정한 대법원 1994.1.25.선고 93누8542 판결의 기조를 대입한 대상판결은, 비록 직접 명시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판례변경을 가져다주었다 하겠다. 나아가 표준공시지가결정 ⇒ 개별공시지가결정 ⇒ 부과처분의 일련의 흐름을 전제하면, 표준공시지가결정과 개별공시지가결정간에 하자승계를 부인한 대법원 1995.3.28. 선고 94누12920 판결 역시 사실상 변경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2. 瑕疵承繼論의 次元 먼저 하자승계론과 관련하여 대상판결은 기왕의 도식에 대한 예외인정의 논거로 수인한도성(기대가능성)의 논거를 다시금 동원하였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의 상황은 직접 연이은 행위간의 상황을 대상으로 한 통상의 하자승계사례와는 다른 것임을 유의하여야 한다. 기왕의 하자승계론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의 하나는 바로 동일한 목적과 효과를 지향한다고 인정되면 몇 단계 선행한 행위로부터도 하자승계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이다. 일반적으로 대집행절차를 4단계(계고-대집행영장에 의한 통지-대집행실행행위-비용징수)로 보는데, 대상판결의 기조를 확대하여 반영한다면 계고처분상의 하자가 최종단계인 비용징수처분에 그대로 승계될 수 있을 법하다. 특히 수인한도성의 논거를 전가의 보도로 내세운다면 그 같은 논증이 전혀 불가능하진 않으리라 여겨진다(그러나 비용징수단계의 경우 독립적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문제점에 관해선 졸고, 행정법기본연구Ⅰ, 2008, 336면 이하). Ⅲ. 關聯 決定의 處分性과 관련한 對象判決의 波及效果 하자승계의 차원보다 더 의미로운 행정법도그마틱상의 결과는 바로 행정처분으로서의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을 비롯한 개별공시지가결정의 위상에 미친 영향이다. 과거 권리구제확대를 기치로 대법원 1993.1.15. 선고 92누12407 판결 등을 통해 개별공시지가결정의 처분성이, 대법원 1994.3.8. 선고 93누10828 판결을 통해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처분성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대상판결과 -개별공시지가결정과 후행 과세처분간의 하자승계를 인정한- 대법원 1994.1.25.선고 93누8542 판결로 인해 국민으로선 굳이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을 비롯 개별공시지가결정을 따로이 다툴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결정의 소송대상으로서의 가치는 반감되어 버린다. 즉, 이들 결정의 처분성인정은 별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나아가 행정행위의 개별화기능과 명확화기능을 포함하는 행정행위의 실체법적 기능(규율기능)의 차원에서 보자면, 이들 결정의 처분성은 명목적인 데 지나지 않는다.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은 물론 개별공시지가결정의 처분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갖는 필자로선, 대상판결을 통해 대법원 1993.1.15. 선고 92누12407 판결과 대법원 1994.3.8. 선고 93누10828 판결의 의의가 滅失되었다고 보고 싶다. 사실 대상판결은 이미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처분성인정이 권리구제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하였는데(대상판결에 대한 임영호 판사의 평석(대법원판례해설 제78호(2009.07) 9-22)에서도 비슷하게 지적하고 있으며. 나아가 임영호 판사는 그것의 처분성부정에 대해 매우 호의적 입장을 시사한다). 이런 사정은 개별공시지가결정의 경우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다. 그런데 假定法過去的 논증을 하여 만약 대법원 1993.1.15. 선고 92누12407판결 당시 정반대의 판결이 내려졌다면 대법원 1993.6.11. 선고 92누16706 판결을 비롯하여 그 후에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우선 후행행위와 관련해서 논란을 낳는 하자승계의 문제가 결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권리구제의 가능성이 결코 저하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별공시지가결정상의 하자는 별다른 논증을 하지 않더라도 종국적인 과세처분의 위법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별공시지가결정의 처분성을 논증하기 위해 명칭 그대로 행정규칙에 불과한 개별토지가격합동조사지침(1990.4.14. 국무총리훈령 제241호로 제정되어 1991.4.2. 국무총리훈령 제248호로 개정된 것)을 무리하게 법률보충적 집행명령으로 상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나아가 공시지가결정에 대한 이의제기를 특별행정심판으로 과하게 접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록 실정법(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과 기왕의 판례의 존재로 문제점을 정면으로 타개하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대상판결은 우회적이나마 그간의 논의상황을 바람직스럽게 일거에 정리하였다 하겠다. Ⅳ. 맺으면서-處分性認定의 逆說的 狀況 공시지가결정의 법적 성질 문제는 행정법의 대표적 쟁점이다. 언필칭 권리구제확대를 기치로 처분성확대를 모색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더라도, 처분성인정의 후속효과(불가쟁력의 발생)를 간과해선 곤란하다. 집행부정지원칙이 통용되는 우리로선, 처분성인정이 도리어 권리구제가능성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역설적 상황을 불가피하게 하자승계의 도그마틱을 통해 타개하고자 하였지만, 만약 처분성이 인정되지 않았다면 최종행위이전의 모든 상황을 그대로 처분의 위법사유로 삼을 수 있다. 관련 사안이 당시 토지공개념의 도입에 따른 사회적 핫이슈인 토지초과이득세 등과 관련되어서 성급함이 지나쳤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공시지가결정의 성급한 처분성인정이 행정법도그마틱상 심각한 요령부득을 야기하였다. 이제까지 공시지가결정을 독립된 존재로 보아 행정작용론의 차원에서 그것의 법적 성질을 논구한 것에 재고가 요구된다. 이를 과세처분상의 과세표준결정마냥 처분의 근거로 접근하였다면 그것의 법적 성질을 둘러싼 소모적 논의는 물론 현하의 혼란상황은 애시당초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과세표준결정의 처분성을 부인하는 대법원 1996.9.24. 선고 95누12842 판결 참조). 법학적 체계사고란 견고한 가치위계에 고정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필연적으로 靜的이지도 않다. 동시에 그런 사고에서의 언명은 오히려 미래의 향상된 인식과 바탕규준의 불변성의 유보하에 있다(Schmidt-Aßmann, Das allgemeine Verwaltungsrecht als Ordnung sidee, 2.Aufl., 2004, S.1.). 따라서 황혼녁을 넘어 다음 날 黎明에야 비로소 비상하는 법학적 미네르바의 부엉이마냥, 여기서의 논의가 때 늦은 감은 있지만, 대상판결을 계기로 과도하고 성급한 처분성인정의 문제를 성찰하는 분위기가 마련되길 仰望한다.
2010-09-09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허용이 신의칙·사회정의에 반하지 않는다는 사례
Ⅰ. 사실관계와 판결요지 1. 사실관계 X(원고, Y의 처)와 Y(피고, X의 남편)는 1990년 12월12일 혼인신고를 마친 부부로서 그 사이에 사건본인 S1(1993년생)갨2(1994년생)를 출산하였는데, X는 Y의 잦은 음주와 외박으로 원만하지 않은 혼인생활을 하던 중 1997년 11월30일 가출하여 따로 생활하다가 2003년 9월30일 Y의 설득으로 다시 집으로 들어 왔으나 한달 만인 2003년 10월30일 다시 가출하였다. X가 잠시 가정에 복귀한 기간을 제외하고, 11년이 넘게 X와 Y는 각자의 주거지에서 별개로 생활해오다가 X는 2007년 초에 소외 M과 현재까지 동거하면서 그들 사이에 2009년 2월12일 다리가 기형인 딸(D)을 출산하였다. S1갨2들은 X갳의 별거기간동안 Y의 어머니(G)의 도움으로 양육하여 왔으며 원심변론 종결일에 S1갨2는 각 고교 1학년, 중학교 3학년생으로 성장하였다. 이 사건 조정기일에서 X는 D의 치료·양육을 위해 가족관계등록을 하는데 장애가 되는 Y와의 혼인의 해소를 주장하였고 Y는 X의 가정복귀를 원하여 조정이 성립되지 않았다. 이에 제1심판결은 X의 청구를 기각하였고, 원심(광주고법)은 2009년 6월5일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X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이에 Y가 상고하기에 이르렀다. 2. 판결의 요지 원심판결의 요지(1심판결의 취소·이혼) : 부부의 별거가 상당히 장기간에 이르고 부부간의 어린 자녀가 없는 경우라면, 상대방이나 자녀가 이혼으로 인하여 정신적·사회적·경제적으로 심히 가혹한 상태에 처하게 되는 등 이혼청구를 인용하는 것이 현저하게 사회정의에 반한다고 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라는 이유만으로 당해 청구가 허용될 수 없다고 해석해서는 아니된다(각판공보, 2009. 8.10.). 대판요지(상고기각) : 원고와 피고사이의 11년이 넘는 장기간의 별거, 원고와 소외인 사이의 사실혼관계 형성 및 자의 출산 등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원고와 피고의 혼인은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고, 그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하여 혼인제도가 추구하는 목적과 민법의 지도이념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혼인관계의 파탄에 대한 원고의 유책성이 반드시 원고의 이혼청구를 배척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중한 것이라 단정할 수 없으므로 원고와 피고의 혼인에는 민법 제840조 제6호 소정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는 이혼원인이 존재한다. Ⅱ. 판례평석 1. 머리말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란 혼인관계의 파탄에 전적으로 주로 책임있는 배우자로부터 그 파탄을 이유로 하는 이혼청구이다. 이 판결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신의칙·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인용함으로써 종래의 소극적 파탄주의에 한정되어 왔던 입장에서 커다란 전환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논고는 본 판결의 의의와 금후의 과제에 관하여 고찰한다. 2. 판례연구 (1) 본 판결에서의 논의점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관한 종래 판례입장의 전환 여부와 본 판결의 '이혼파탄주의 법리'로의 전환여부이다. 또한 청구인과 소외인(M)과의 신분관계가 '사실혼'이냐 하는 점이다. (2)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관한 종래의 판례입장(기각)의 전환 여부 1)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관한 판례·학설의 동향 판례의 동향 : 대법원의 1965. 9.21. 판결(65므37)은 축첩한 청구인의 이혼청구를 정면으로 배척한 소극적 판결의 효시이었다. 대법원의 1987. 4.14. 판결(86므28)은 상대방이 혼인계속의 의사가 없으면서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표면상 이혼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용하고 있다(법원공보 801호: 같은 취지; 대판 1996. 6.25. 1994므741). 학설의 동향 :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배척하는 '일반론'의 안이한 적용은 엄격하게 좁혀야 하고 피고에게 이혼의사가 명백한 경우에는 배척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김주수, 친상법 p203~ 204)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할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의 별거기간이 지나면 유·무책사유와 관계 없이 이혼을 허용함이 타당하다는 견해(한봉희, 가족법 p161)가 주류이다. 그밖의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자의 이익을 위해 일정기간, 이혼을 유예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이희배, 가족법학논집 p1,046~ 1,049). 외국의 판례 : 일본최고재판소의 1987. 9.2. 판결(소화61오260호)은 부부의 별거가 상당히 장기간 등의 경우에는 이혼청구를 용인함이 사회정의에 반한다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유책배우자의 청구란 한 사유만으로 불허할 수는 없다고 판시한다(川井 健, 강좌 현대가족법, 2권 p216~219) 2) 종래의 판례 입장 전환여부 가) 종래의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관한 판례의 입장 대법원의 종래 판례의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원칙적으로 기각하였으며(대판 1989. 10.24. 89므429), 예외로 인용하는 입장이었다. 즉, 피청구인의 이혼의사가 명백한 경우(대판 1987. 12.8. 87므44), 오기 보복적 반감으로 표면상 이혼에 불응하는 경우(대판 1987. 9.22. 86므87), 청구인의 유책성이 피청구인보다 가벼운 경우(대판 1990. 3.27. 88므375), 유책행위와 파탄과의 인과관계가 없는 경우(대판1988. 4.25. 87므9), 청구인용이 사회정의에 반하지 않는 경우(서가판 1999. 5.27. 98드32995; 일본최고재판 1987. 9.2. 소화61오260호) 등을 들 수 있겠다. 나) 본건 대판의 입장 전환 원심판결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용하는 것이 현저히 '사회정의'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청구인용의 판시를 하고 있다. 본건 대판도 신의칙에 비추어 원고의 유책성이 반드시 청구를 배척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중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청구인용의 판결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취지의 판결은 대법원 판결로서는 본 판결이 처음인 것 같다. 이 판결의 의의는 원칙적 이혼규범의 2중상태가 수정되어 종래의 재판규범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변경'의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즉, 제한적 파탄주의(원칙적 기각-예외로 인용)를 극복하고 전면적 적극적 파탄주의를 지향한 진일보한 판결이라고 자리매김할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3) 본 판결의 '이혼파탄주의법리'로 전환여부 1)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인용의 배경 본 판결은 원고의 유책성을 '신의칙'에 입각하여 그 중대성 여부를 판단하였고 원심판결에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사회정의'에 비추어 그 인용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본 판결은 전면적 파탄주의에 입각한 판결이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종래의 오랫동안 제한적 파탄주의에 한정하고 있던 판례의 태도에 '변경'을 가져온 섬세한 조정의 역할을 하였으며 우리나라 이혼법에 커다란 전기가 되었다는 점에 그 역할의 의의를 인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2) 이 판결을 계기로 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대해서는 '원칙적 기각-예외로 인용'의 태도에서 진일보 하여 '원칙적 인용-예외로 이혼유보'의 방향의 발전을 거쳐 종국적으로는 전면적 파탄주의로의 발전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3. 여론 청구인과 소외인(M)과의 신분관계는 혼인신고 가능상태가 아닌 점에서 '사실혼'이 아니고(대판 1987. 2.10. 86므70, 대판 1978. 10.3. 78므37, 대판 1984. 8.21. 84므45 참조), 피청구인과의 이혼합의 없는 일방적 별거 중이므로 '중혼적 사실혼'이라고도 할 수 없다고 이해된다(대판 1996. 9.20. 96므530 참조 : 이희배, 가족법판례연구 p481~482 참조). 4. 맺는말 이 판결의 의의는 원칙적 이혼규범의 2중상태가 수정되어, 종래의 재판규범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변경'의 역할을 하였다고 할수 있다. 또한 제한적 파탄주의(원칙적 기각-예외로 인용)에서 발전하여 전면적 파탄주의를 지향한 진일보한 판결이라 자리매김할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판결은 전면적 파탄주의에 입각한 판결이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종래의 오랫동안 제한적 파탄주의에 한정하고 있던 판례의 '변경'을 가져 온 섬세한 조정의 역할을 하였으며, 우리나라 이혼법 발전에 커다란 전기가 되었다고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2010-03-08
국제항공운송사고로 인한 손해배상과 국제사법적 사고의 빈곤
Ⅰ. 사안의 개요 피고(중국국제항공공사)는 한국에도 영업소를 둔 중국 법인으로 이 사건 항공기의 운송인이고, 한국인인 망 A, 그 자녀들인 망 B와 C('망인들')는 출발지를 베이징, 도착지를 부산으로 하는 항공운송계약을 피고와 체결하고 항공기에 탑승했다. 항공기는 2002. 4.15. 베이징을 출발하여 김해공항에 착륙 시도 중, 항공기의 꼬리부분에서 부는 바람(배풍)의 강도가 커서 선회비행 시 활주로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면 즉시 이를 중단하고 고도를 높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만연히 선회비행을 계속하다가 김해공항 부근 돗대산 중턱에 부딪혀 추락했다. 망 A의 모이자 망 B와 C의 외조모인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망인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단독 상속인으로서 손해배상을 청구함과 동시에, 유족 고유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Ⅱ. 각급 법원의 판단 1. 1심판결 1심판결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이 사건은 한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사고에 관하여 항공여객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이므로 국제사법(제32조)에 의하여 한국법이 적용된다. 또한 한국은 1967년 1월 '1929. 10.12. 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 규칙의 통일에 관한 협약('바르샤바협약')을 개정하기 위한 의정서'('헤이그의정서')에 가입했으므로 바르샤바협약은 헤이그의정서에 의하여 개정된 내용대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개정협약'), 국제항공운송에 관한 법률관계에 대하여는 일반법인 민법에 대한 특별법으로 우선 적용되는데 중국도 바르샤바협약에 미가입한 채 헤이그의정서의 체약국이 되었고, 이 사건 항공운송계약은 헤이그의정서가 적용되는 국제항공운송이므로 이 사건에는 개정협약이 적용된다. 피고는 자신 및 그 고용인 또는 대리인들이 사고 발생을 방지하기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거나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점에 관하여 주장·입증이 없으므로,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망인들과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피고는, 개정협약(제22조 제1항)에 따른 책임제한(승객당 250,000 프랑스 골드프랑)을 주장하나, 사고경위에 비추어 기장 등의 행위는 '무모하게 그리고 손해가 아마 발생할 것이라는 인식으로써 행하여진 것'이므로 책임제한규정을 원용할 권리가 없다(제25조). 2. 원심판결 원심판결도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보았으나 개정협약은 언급하지 않았다. 3. 대법원판결 대법원판결은 준거법을 논의하지 않았다. 대법원판결은 항공기사고로 인한 불법행위의 경우 통상의 교통사고와 달리 위자료 산정에 있어 참작할 특수한 사정이 있음을 강조하고, 사실심 법원은 그 사정도 함께 참작하여 직권에 속하는 재량으로 위자료 액수를 정해야 하는데, 원심은 재량의 한계를 일탈했다는 이유로 원심판결 중 위자료에 관한 원고 패소부분을 파기했다. 이는 원고의 청구를 불법행위로 성질결정하고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본 것이다. 준거법이 중국법이면 위자료 산정도 중국법에 의하는데 중국 최고법원의 해석에 따르면 사망자 본인의 위자료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서울고등법원 2009. 6.19. 선고 2006나30787 판결). Ⅲ. 연구 1. 문제의 제기 대상판결은 모두 한국법을 적용하여 위자료를 포함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했다. 이 결론은 정당화될 여지도 있지만 논거는 의문이다(논거가 없는 대법원판결 제외). 이하 ① 청구원인 ② 개정협약의 적용근거와 ③ 손해배상청구권자, 손해배상의 종류(위자료 등)와 범위의 준거법을 살펴본다. 2. 청구원인에 관한 논점 가. 청구원인 항공운송사고에서 피해자(또는 그 상속인)는 청구원인으로서 채무불이행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을 선택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다만 판결문상으로는 청구원인이 애매하다. 왜냐하면 1심판결과 원심판결은 "이 사건은 … 항공여객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고 있는 사건"이라고 판시하고, 나아가 "… 피고는 위 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 망인들 및 원고가 입은 손해를 …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으며, 원심판결은 결론에서 '불법행위일'이라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다만 1심판결과 원심판결이 불법행위의 연결원칙을 정한 국제사법 제32조만을 언급하므로 불법행위책임을 다룬 것으로 보이고, '항공기사고로 인한 불법행위의 경우'라는 설시를 보면 대법원판결도 같다. 계약관계가 없는 원고가 유족 고유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근거는 불법행위책임이다. 나. 청구원인과 준거법 국제사법상 청구원인은 준거법 결정 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불법행위의 준거법은 국제사법 제32조에 의해, 계약의 준거법은 제25조에 의해 결정된다. 양자의 준거법이 다르면 청구권경합 여부의 판단이 어렵다. 1심판결과 원심판결이 채무불이행책임에도 제32조가 적용되는 듯이 설시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책임을 묻든 이는 개정협약이 정한 조건 및 제한 하에서만 허용되므로(제24조 제1항. 대법원 1986. 7.22. 선고 82다카1372 판결), 준거법 결정의 실익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개정협약이 손해배상책임의 모든 측면을 규율하는 것은 아니고, 아래에서 보듯이 승객의 사망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자와 그 권리의 내용을 규율하지 않으므로 그의 준거법 결정은 실익이 있는데 이는 계약책임인가 불법행위책임인가에 따라 다르다(개정협약 제17조는 독자적 청구기초를 창설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3. 개정협약 적용의 근거 조약의 적용범위를 정한 규정은 조약의 적용범위를 정함과 동시에, 법정지 국제사법에 대한 특칙이다. 그 한도 내에서는 조약이 국제사법에 우선한다. 즉 어떤 항공운송계약이 개정협약이 규율하는 국제항공운송계약에 해당되면 우리 국제사법의 연결원칙에 우선하여 개정협약이 적용된다. 이 사건에 개정협약이 적용되는 것은 그 요건이 구비되기 때문이지 불법행위(또는 계약)의 준거법이 한국법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1심판결(원심판결과 대법원판결은 아님)은 준거법이 한국법이라고 본 뒤 이어서 개정협약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혹시 준거법이 한국법이면 한국이 가입한 조약이 적용되고, 준거법이 외국법이면 그 외국이 가입한 조약이 적용된다고 본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이 사건에서 한중 모두 개정협약의 당사국이므로 실익은 없다). 왜냐하면 과거 개정협약에 가입한 한국과 바르샤바협약에 가입한 미국 간 국제항공운송에 개정협약을 적용한 대법원 판례(위 대법원 82다카1372 판결 등)의 이론적 근거로서 그런 견해가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한국법이 준거법인 경우 한국이 가입한 조약이 국내법에 대한 특별법으로서 적용되자면 그것이 조약의 적용범위에 속할 것이 전제되기 때문이다(다만 이는 1999년 3월 미국에서 몬트리올 추가의정서(No. 4)의 발효로 해소되었다). 4. 항공운송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자, 손해배상의 종류와 범위 국제사법(제32조)상 불법행위의 준거법은 불법행위의 요건과 효과를 규율한다. 그에는 불법행위능력, 위법성, 인과관계, 귀책사유, 손해배상청구권자, 청구권의 양도가능성과 상속가능성, 손해배상의 방법, 종류, 범위, 금액과 금지청구권 등이 포함된다. 가. 개정협약의 규정 바르샤바협약은(개정협약도) 국제항공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의 모든 측면을 규율하지는 않는다(제21조, 제22조 제1항, 제25조과 제28조 제2항은 법정지법에 의할 사항을 명시한다). 다만 제24조 제2항의 해석은 논란이 있다. 왜냐하면 "제18조 및 제19조에 정하여진 경우에는, 책임에 관한 소는 명의의 여하를 불문하고 본 협약에 정하여진 조건 및 제한 하에서만 제기할 수 있고"(제24조 제1항), "전항의 규정은 제17조에 정하여진 경우에도 적용된다. 다만 소를 제기하는 권리를 가진 자의 결정 및 이러한 자가 각자 가지는 권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제2항) 때문이다. 즉 바르샤바협약은(개정협약도) 승객의 사망 또는 신체상해로 인한 손해에서 손해배상청구권자와 손해배상의 종류, 범위 등을 규율하지 않는데, 이는 항공사에 대해 누가, 어떤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지는지는 규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규정한 이유는 1929년 당시 많은 국가에서, 특히 영미법계국가에서 승객 사망 시 손해배상규칙이 발전하지 못했고 있더라도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나. 개정협약상 손해배상청구권자, 손해배상의 종류와 범위의 준거법 따라서 개정협약상 승객의 사망 또는 신체상해를 이유로 불법행위에 기한 청구를 하는 경우 위 사항들(이 사건에서 망인들과 원고의 손해배상의 종류와 범위)의 준거법이 문제된다. 그것이 법정지법에 의한다는 점은 널리 승인되나 법정지법이 국제사법인지 실질법(민법 등)인지는 세계적으로 논란이 있다. ①설(법정지 국제사법설): 이는 법정지 국제사법을 적용하여, 협약이 없었더라면 적용되었을 준거법에 의한다. 법정지가 한국이면 불법행위의 연결원칙을 정한 국제사법(제32조)에 의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지도적인 Zicherman v. Korean Air Lines 사건 판결(516 U.S. 217, 229 (1996))은 이를 명시했고 동경지재 1997. 7.16. 판결도 같다(양자는 결국 자국법을 적용했다). 양자는 1983. 9.1. 자행된 구 소련의 야만적인 KAL 007기 격추에 기초한 사건이었다. 그 논거는 개정협약은 일부규칙만의 통일을 의도하는 점과, 손해배상청구권자와 그 권리의 내용은 실무상 중요하므로 ②설을 취할 의도라면 제24조 제2항에서 그를 명시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②설을 따르면 법정지와 사건 간의 관련성이 희박할 수 있고 법정지쇼핑을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②설(법정지 실질법설): ②설의 논거는, 국제항공운송계약에 대해 국제사법에 의해 결정된 준거법을 적용하는 데 따른 법적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국제적 통일규범을 제정하려는 바르샤바협약의 근본목적에 있다(Mankiewicz). 이는 제24조 제2항이 손해배상청구권자와 그 권리의 내용을 묵시적으로 법정지법에 회부했다고 본다(독일은 바르샤바협약시행법률(DGWB) 제1조에서 독일 항공운송법을 적용하도록 입법적으로 해결했고 영국도 같다). 이는 법적용이 쉽고, 동일 법정지에 제소된 사건에 동일한 실질법을 적용하는 장점이 있다. 별 논의는 없지만 한국에도 ②설이 있고(김두환, 김종복), 1989년 리비아 트리폴리공항 부근 KAL기 추락사고에서 서울민사지법 1993. 1. 15. 선고 91가합55778 판결도 ②설을 취한 것 같다. 생각건대 개정협약의 취지상 ②설이 옳아야겠지만 문언상 ①설이 설득력이 있다. 더욱이 개정협약이 연결원칙을 두지 않으면 일반원칙에 의해야 한다. 문제는 ①설의 경우 망인들(원고는 아님)의 손해배상청구를 계약책임에 종속적으로 연결할지(국제사법 제32조 제3항) 여부이다. 특정국가의 법이 운송계약의 준거법이면 종속적 연결을 하겠지만, 계약이 분열되어 일부는 특정국가의 법에, 다른 일부는 조약에 따를 경우 긍정설(①-1)과 부정설(①-2)이 가능하다. ①설의 경우 준거법이 외국법이면 반정(renvoi)이 문제되나 종속적 연결 시 이는 배제된다. 이 사건에서 당사자들이 준거법을 다투지 않았다면 준거법의 사후적 합의(국제사법 제33조)를 인정할 수도 있다. 입법론으로는 독일식 해결을 고려할 수 있다. 한편 피해자가 계약책임을 묻는다면 손해배상청구권자와 그 권리의 내용은 계약의 준거법에 의한다. 2007년 12월 한국에서 발효된 1999년 몬트리올협약(제29조)은 개정협약(제24조)을 수정하여 계약책임과 불법행위책임에 몬트리올협약이 적용되고 제24조 제2항의 예외가 수화물 및 화물손해에도 적용됨을 명시하고, 징벌배상을 배제하나(개정협약상 징벌배상을 배제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위 쟁점은 몬트리올협약에서도 여전히 문제된다. 어느 견해든 법정지가 중요하므로 국제재판관할을 정한 개정협약(제28조 제1항)을 주목해야 하는데 몬트리올협약(제33조)은 제5관할을 추가했다. 다. 대상판결의 태도 대상판결은 모두 한국법을 적용하였으므로 결론은 ②설과 같다. 하지만 대상판결(대법원판결 제외)은 불법행위지법으로서 한국법을 적용했으므로 ②설은 아니고, 오히려 우리 국제사법을 적용한 점에서 ①설처럼 보이나 종속적 연결을 외면한 점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대상판결의 결론은 ①설을 따르면서 국제조약이 적용되는 사안에서 종속적 연결을 배척하고 행위지법원칙을 적용한 것(①-2)과 같지만 대상판결이 이런 논리에 입각한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이런 태도는 위 서울민사지법 1993년 판결과는 다르다. 만일 종속적 연결을 긍정하면(①-1) 운송계약의 준거법과 불법행위의 준거법도 중국법일 수도 있다. 5. 맺음말 1심판결은 불법행위의 준거법을 한국법으로 본 뒤 개정협약을 적용했고, 대상판결은 모두 제24조 제2항을 외면했다. 그러나 개정협약을 적용한 뒤, 제24조 제2항의 해석상 손해배상청구권자, 손해배상의 종류와 범위에 대해 불법행위지법(아니면 법정지 실질법)인 한국법을 적용하되, 전자라면 종속적 연결을 검토했어야 한다(계약책임을 물었다면 그 준거법에 따랐어야 한다). 제24조 제2항의 의미는 우리 법원이 벌써 정리했어야 마땅한 쟁점이다. 1983년 KAL 007기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지도적 판결과 일본의 하급심판결이 나왔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하급심판결(서울고등법원 1998. 8. 27. 선고 96나37321 판결 등)은 있었지만 위 쟁점은 무시되었다. 이는 우리 법률가의 국제조약에 대한 이해 부족과 국제사법적 사고의 빈곤에 기인한다. 우리 항공사들은 세계 유수의 항공사로 성장했건만 우리 법률가는 대부분 여전히 국내법에 매몰되어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우리 모두가 반성할 일이다.
2010-02-08
영업권 양도와 부당행위계산부인 적용문제
1. 서론 특수관계에 있는 회사 간에 영업권을 양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영업권의 가격을 얼마로 할 것인지 여부가 문제된다. 당사자 간에 합의한 금액이라고 하더라도 과세관청의 입장에서는 시가가 불분명한 경우 그 가격이 적정한지 여부를 조사할 것이다. 조사 결과 그 가격이 과세관청이 계산한 것과 비교하여 차이가 있으면 “자산을 시가보다 높은 가액으로 매입하거나, 시가보다 낮은 가액으로 양도한 경우”(법인세법시행령 제88조 제1항)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과세관청은 거래가격을 부인하고 법인세를 추징한다. 한편 영업권 양도거래는 시가로 인정할 만한 “해당 거래와 유사한 상황에서 해당 법인이 특수관계자 외의 불특정다수인과 계속적으로 거래한 가격 또는 특수관계자가 아닌 제3자간에 일반적으로 거래된 가격”(법인세법시행령 제89조 제1항)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므로 과세관청과 사이에 마찰이 자주 발생하는 분야이다. 대상판결은 자산보다 부채가 많고, 거래 당시에도 순손실이 나는 기업의 영업권 평가에 관한 문제를 다룬 것으로서 선례적 가치가 있다. 2. 사실관계 및 판결요지 언론사가 계열사로부터 잡지사의 영업권을 9억원에 양수한 계약이 문제되었다. 대법원이 인정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① 이 잡지는 10여년 전에 창간된 이래 매주 3만부 이상 발간되고 유효 독자비율이 80%에 이르러 다른 주간지에 비해 우월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② 원고가 영업권을 인수한 이후 계속하여 당기순이익을 달성하고 있다, ③ 영업권 평가를 내부손익자료에 기초한 관리회계방식에 따랐다고 하여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④ 만일 장부상의 순자산가치만을 기준으로 청산대금을 산정했더라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관계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하였다는 지적을 받을 위험이 있었다, ⑤ 법원이 시행한 감정결과상 감정가액도 이 사건 거래가액을 상회한다. 이러한 제반 사정을 고려하면 원고가 상표권이 포함된 이 사건 영업권의 가치를 9억원으로 산정하여 인수한 것은 고가매입이라고 할 수 없다. 대법원은 상속세및증여세법상의 영업권 평가액이 0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거래대상이 경제주간지로서 매주 3만부 이상 발간되는 경쟁력 있는 영업권이라는 특수성, 거래시 회사내부손익자료를 바탕으로 영업권 가액을 산정한 경위, 영업권 인수 이후 당기순이익을 달성하는 실제 영업실적, 재판과정에서 의뢰한 영업권에 대한 감정결과가 거래가액보다 높게 평가되는 점을 종합하여 영업권을 9억원으로 한 거래가 경제적 합리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3. 평석 가. 영업권의 의미와 평가방법 영업권은 “그 기업의 전통, 사회적 신용, 그 입지조건, 특수한 제조기술 또는 특수거래관계의 존재 등을 비롯하여 제조판매의 독점성 등으로 동종의 사업을 영위하는 다른 기업이 올리는 수익보다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초과수익력이라는 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말한다”(대법원 1985. 4.23. 선고 84누281 판결 등). 따라서 영업권은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실제 거래도 빈번하다. 통상 영업권의 평가는 회계법인이 한다. 이 사건에서도 1심 법원의 감정촉탁에 따라 회계법인이 잡지사에 대한 영업권을 평가하였고, 그 결과 영업권 가액은 12억원이었다. 영업권 평가방법은 일반적으로 초과이익환원법과 현금흐름할인법이 많이 이용된다. 초과이익환원법은 장래의 초과이익을 자본화한 현재가치로 영업권의 가치를 산정하는 방법이고, 현금흐름할인법은 기업의 장래 영업활동에 의한 추정현금흐름을 일정한 할인율을 적용하여 계산한 현재가치로 전체 기업가치를 산정한 다음 여기에서 당해 기업 순자산의 공정가치를 차감하여 영업권의 가치를 산정하는 방법이다. 이 사건에서는 초과이익환원법이 적용되었다. 즉 영업권의 가치=[예상평균순이익-(순자산×정상이익률)]÷초과이익환원율의 공식이다. 판례도 초과이익환원법 적용이 적법하다는 전제하에, “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합병하여 그 영업상 기능 내지 특성을 흡수함으로써 합병 전의 통상수익보다 높은 초과수익을 갖게 된다면 합병 후 높은 수익률을 가져올 수 있는 피흡수회사의 무형적 가치는 영업권이라 보아 무방하다”(대법원 1986. 2.11. 선고 85누592 판결)고 함으로써 영업권 평가시점 이후에 발생할 수익을 초과수익력으로 인정하고 있다. 나. 부당행위계산부인의 법리와 실무 부당행위계산부인이란 “법인이 특수관계에 있는 자와의 거래에 있어 정상적인 경제인의 합리적인 방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법인세법시행령에서 정한 여러 거래형태를 빙자하여 남용함으로써 조세부담을 부당하게 회피하거나 경감시켰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과세권자가 이를 부인하고 법령에 정하는 방법에 의하여 객관적이고 타당하다고 보이는 소득이 있는 것으로 의제하는 제도”이다. 이는 경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거래형식을 취함으로 인하여 경제적 합리성을 무시하였다고 인정될 때에 한하여 적용되는 것이다. 실무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은 경제적 합리성 유무에 대한 판단인데, 판례는 “거래행위의 여러 사정을 구체적으로 고려하여 과연 그 거래행위가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상관행에 비추어 경제적 합리성을 결한 비정상적인 것인지의 여부에 따라 판단하되 비특수관계자 간의 거래가격, 거래 당시의 특별한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07. 12.13. 선고 2005두14257 판결 등). 이러한 법리는 확립된 판례의 입장이고, 실제 소송에서는 구체적 사건의 특수성에 대한 해명과 그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합리성이 없다는 과세관청의 주장이 교차된다. 다. 시가가 불분명한 경우의 처리 특수관계자 간에 거래가 발생하였으나 시가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되는가? 법인세법령상 시가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감정평가법인이 감정한 가액에 의하고, 그마저도 없는 경우에는 상증세법에 의한 평가가액에 의한다. 과세관청은 거래가액을 감정가액이나 평가가액과 비교하여 차이가 발생하면 부당행위계산부인제도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령에서 시가를 산정하는 방법을 규정한다고 하여 이를 부당행위계산부인과 연결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부당행위계산부인은 경제적 합리성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하는 바, 이에 대한 판단 없이 평가가액과 거래가액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만으로 문제 삼는 것은 부당행위계산부인제도를 둔 취지와 맞지 않고 확립된 판례의 입장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과세관청의 이러한 논리는 시가는 어떤 특정한 절대수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오해한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과세관청은 과세처분 당시에는 감정가액이 존재하지 않았고 상증세법으로 영업권을 평가하면 0원으로 평가되는데 당사자들이 영업권을 9억원으로 평가하여 거래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과세관청은 처분 당시를 기준으로 당기 순손실이 수년간 발생하고 있었고, 자산보다 부채가 많다는 점을 근거로 하였으나 이러한 판단은 영업권의 특성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즉 과세관청으로서는 이 사건 거래가 경제적 합리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영업권 인수 이후의 사정까지 고려하여 종합적인 검토를 했어야 했음에도 평가시점을 기준으로 한 검토에 그친 잘못이 있다. 라. 당기순손실 발생과 영업권 가치 영업권의 본질이 다른 기업이 올리는 수익보다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초과수익력이라는 무형의 재산적 가치라면 점을 고려하면 수년간 당기순손실을 본다고 하여 곧바로 영업권 가치가 없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회사는 경제사정의 급격한 변화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특정기간에 손실을 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나 장래 그 회사의 전망을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시점을 기준으로 나타난 결과만으로 영업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영업권의 특성에도 맞지 않다. 따라서 대상판결에서 설시한 바와 같은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영업권을 평가해야 할 것이고 거래 이후 실제로 발생한 영업실적도 고려될 수 있다. 이러한 평가를 할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외부 감정기관을 활용해야 할 것이지 상증법상의 평가가액과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바로 과세할 것은 아니다. 마. 다른 법령에 대한 종합적 고려 부당행위계산부인의 대상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조세법적인 측면 이외에 공정거래법 등 다른 법령의 측면에서 검토해 볼 필요도 있다. 현대사회에서 기업이 특정한 거래를 하면 그 거래효과는 특정한 법률이나 특정한 정부기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과세관청이 고가매입이라고 보는 경우에도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른 기관은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국가기관간에 특정 기관의 평가가액을 다른 기관이 존중해 준다는 법령상 근거가 없는 이상 거래가액 산정에 대한 위험을 회사에 부담시키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 대상판결도 과세관청 주장대로 거래하였더라면 오히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특수관계자를 부당하게 지원하였다는 제재를 받을 위험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상당한 경쟁력을 가진 잡지사를 영업권 0원으로 양수하는 경우에 거래의 공정성이 의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사건에서 과세관청은 당해 거래를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지 못하고 과세처분이라는 일면에서 본 잘못이 있다. 바. 소송시 유의점 처분 당시에는 시가로 볼 만한 거래가액이나 감정가액이 없는 경우라도 소송과정에서 이러한 가격을 찾을 수 있다. 판례는 소송 중에 소급 감정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감정신청을 통하여 새로운 가액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 감정신청을 할 경우에는 대상판결에서 설시한 바와 같은 제반 사정을 주장하여 이를 감정결과에 반영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된 최근 판례를 소개한다. 조세를 부과함에 있어 과세관청이 시가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보충적 평가방법에 의하여 평가하여 과세처분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 과세처분 취소소송의 사실심 변론종결시까지 시가가 입증된 때에는, 그 시가에 의한 정당한 세액을 산출한 다음 과세처분의 세액이 정당한 세액을 초과하는지 여부에 따라 과세처분의 위법 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여기에서 시가라 함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평가한 가액도 포함하는 개념이므로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의 감정가격도 시가로 볼 수 있고, 그 가액이 소급감정에 의한 것이라 하여도 달라지지 않는다(대법원 2008. 2.1. 선고 2004두1834 판결). 4. 결론 대상판결은 영업권이 무형의 재산적 가치라는 성질을 고려하여 부당행위계산부인제도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과 이 경우 부당행위계산부인에서는 거래 이후의 사정까지 고려하여 경제적 합리성이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판결의 이유와 결론에 모두 찬성한다. 법치주의 확립 및 납세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타당한 판결이라 생각한다.
2009-11-02
용도폐지공공시설의 무상양도신청의 거부에 관한 소고
Ⅰ. 事案의 槪要 피고가 2002년 11월5일 원고들에게 주택건설사업계획에 대한 사업계획승인을 하면서 다음을 포함한 54개 항목의 승인조건을 부가하였다: 사업계획부지 내에 포함된 도로는 행정재산 용도폐지 후 사업주체가 착공 전까지 매매계약을 체결할 것(제16항), 사업부지에 포함되어 있는 국·공유지는 착공신고 전까지 소유권을 확보할 것(제32항). 그런데 원고들은 사업부지 내 국공유지를 매수하여 착공신고 전까지 매수하여 소유권을 확보하라는 이들 승인조건과 관련하여 2003년 7월24일 피고에게 사업시행지에 속해 있는 피고 소유의 별지목록 기재 각 토지를 무상으로 양도하여 달라는 신청(이하 ‘이 사건 신청’이라 한다)을 하였다. 이에 피고는 2003년 8월25일 원고들에게 용도폐지 토지의 무상양도 여부는 피고의 재량인 점, 사업부지 내 국·공유지의 유상으로 매수한다는 이 사건 승인조건을 수용할 것을 전제로 사업계획승인을 신청하여 이에 따라 이 사건 승인조건이 부가된 점, 관내 다른 사업장과의 형평성 및 유사 민원의 재발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무상양도를 거부함과 아울러 기존의 이 사건 승인조건대로 사업부지 내 국·공유지를 조속히 매입하라고 통지하였다. Ⅱ. 判決의 要旨 행정청이 국민의 신청에 대하여 한 거부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 되려면 행정청의 행위를 요구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신청권이 국민에게 있어야 하고, 이러한 신청권의 근거 없이 한 국민의 신청을 행정청이 받아들이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거부로 인하여 신청인의 권리나 법적 이익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 할 수 없다(대법원 1984. 10.23. 선고 84누227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제소기간이 이미 도과하여 불가쟁력이 생긴 행정처분에 대하여는 개별 법규에서 그 변경을 요구할 신청권을 규정하고 있거나 관계 법령의 해석상 그러한 신청권이 인정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민에게 그 행정처분의 변경을 구할 신청권이 있다 할 수 없다. Ⅲ. 問題의 提起 해당 조건(제16·32항)을 부담으로 인식한 대상판결과 그 원심(서울고법 2005. 8.18. 선고 2004누22154 판결)은 ‘이 사건 신청’을 주택건설사업계획승인조건의 변경요청으로 받아들여, 일단 부담의 사후변경의 차원에서 접근을 하였다. 그리하여 대상판결과 그 원심은 (부담의)독립된 행정처분의 인정에서 비롯된 불가쟁력의 발생을 연계시켜, 행정행위의 재심(폐지)가능성의 물음과 관련해서 소극적 입장을 천명하고, 사안에서 거부처분의 성립을 부인하였다. 반면 1심(서울행정법원 2004. 10.12. 선고 2003구합35625 판결)은 전혀 다른 논증을 통해 거부처분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사안을 부관(부담) 및 그것의 변경과는 유리된 차원에서 접근하여 不可爭力의 측면을 분명히 배제하였으며, 구 주택건설촉진법 제33조 제8항의 준용규정에 따른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 제65조 제2항의 공공시설의 무상귀속의 위헌적 요소를 결정적인 착안점으로 삼았다. 이하에선 양자의 구분된 접근방식에서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Ⅳ. 사안상의 該當條件의 法的 性質 여기서 당초의 사업계획승인조건(제16·32항)이 과연 사업계획승인처분의 효력발생과 무관한 의미를 가지는 부관 즉, 부담인지 의문이 든다. 주택건설사업계획승인처분을 통해 사업계획의 적합성을 확인받고 합법적으로 건설시공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건축허가마냥 주택건설허가인 셈이다. 그리하여 건축허가와 마찬가지로 주택건설허가 역시 그 허가권자로선 해당 사업부지 전체에 관한 權原을 가져야 한다. 만약 사업부지의 일부라도 권원이 없다면 허가적격성이 결여된다. 나아가 사안처럼 그 사업부지 내에 도로에 제공된 토지(공물)가 존재할 때, 그 토지가 공용폐지가 되지 않는 한, 설령 아파트가 완성된다 하더라도 아파트의 소유관계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허가적격성의 차원에서 보면, 해당 승인조건은 건설허가로서의 승인처분이 형성효(건설시공)를 의문없이 갖게 하는 계기가 된다. 요컨대 여기서의 승인처분조건은 본체인 행정행위를 보충하는 의미의 부담은 아니며, 본체인 행정행위의 효력을 좌우하는 의미의 조건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조건의 양태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승인처분이 건설허가로서 형성효과를 지니며 조건이행의 시점이 공사착공 전까지인 점에서 사안의 조건은 정지조건이라 하겠다(반면 부담으로 보는 견해로 盧坰泌, 불가쟁력이 발생한 행정처분의 변경을 구할 조리상 신청권이 인정되는지 여부, 대법원판례해설 제68호, 2007. 12., 418면). 이처럼 정지조건의 차원에서 출발하면 ‘이 사건 신청’을 승인조건에 바로 연계시키지 않고 별 어려움 없이 그 취지-대상토지의 무상양도요청-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 사건 신청’은 승인조건을 나름대로 이행하기 위한 또는 착공 전에 사업부지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하여 승인조건을 사실상 실효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강구된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신청’을 승인처분의 일부(부관)의 변경을 구하는 것으로 볼 순 있겠지만(이를 2심은 명백히 부정한다), 독립된 부담으로서의 승인처분조건의 변경요청으로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Ⅴ. 독립된 無償讓渡申請의 차원에서의 접근  원고는 국토계획법 제65조 제2항 후단부분을 착안점으로 삼아 무상양도를 신청하였다. 기왕의 거부처분인정공식(행정행위의 신청+신청권의 존재)에 의하면, 대상행위의 처분성, 그에 관한 신청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1심은 전자의 물음과 관련해서, 용도폐지된 행정재산(일반재산: 잡종재산)의 양도나 매각이 원칙적으론 私法行爲이지만, “행정청이 공권력의 주체라는 우월한 지위에서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일정한 요건을 갖춘 특정한 상대방에게 경제적 합리성을 갖는 통상적인 가격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나 무상으로 국·공유재산을 양도할 수 있는 내용의 재량권을 가진 경우”, 그에 따른 현저히 낮은 가격이나 무상으로 양도하는 행위는 행정처분이 된다고 판시하였다. 매우 의미로운 논증이긴 하지만(이런 논증에 호감을 표한 문헌으로 崔桂暎, 용도폐지된 공공시설에 대한 무상양도신청거부의 처분성, 행정법연구 제14호, 2005. 10., 429면 이하), 결정적으로 대부국유임야대부·무상양여 및 그 거부와 폐천부지양여의 처분성을 부인하는 대법원 1983. 8.23. 선고 83누239 판결과 1985. 3.26. 선고 84누736 판결을 넘어서긴 어렵다. 생각건대 일반재산(잡종재산)의 양여에 관한 기왕의 논증을 벗어나기 위해선, 오히려 “「국유재산법」과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도 불구하고”라는 국토계획법 제65조 제2항 후단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私法的 관점을 수정하는 착안점으로 삼고 아울러 공법귀속의 문제에서 實體的 相關關係理論을 적용하면, 동규정상의 무상양도를 공법적으로 접근하는 데 크게 어렵지 않다. 요컨대 여기서의 무상양도결정은 私法的 효과(소유권의 무상이전)를 발생시키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이런 單獨的 私權形成的 行政行爲의 또 다른 예가 금융감독위원회의 계약이전결정이다. 대법원 2002. 4.12.선고 2001다38807 판결 참조). 그리고 대법원 1983. 8.23. 선고 83누239 판결 등의 사안은 공공시설의 무상귀속과는 무관하다. 私的 사업자로선, 유상양도를 설정한 사업계획승인조건의 부가에 즈음하여 무상양도의 가능성을 나름대로 모색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미 대법원 1998. 11.24. 선고 97다47651 판결은, 국토계획법 제65조 제2항 후단부분에 상응하였던 구 도시계획법 제83조 제2항 후단부분에 대해서, “문언에 반하여 ‘무상으로 양도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기속규정으로 해석할 근거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여기선 국토계획법 제65조 제2항에 관한 섬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전단부분이 신설 공공시설의 무상귀속을 통한 일종의 國庫的 特權(Fiskusprivilegien)을 규정한 것이라면, 후단부분은 그에 대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상양도여부를 전적으로 재량사항으로 보면, 私的 사업자의 지위는 매우 열악한 처지에 놓인다(공공시설 무상귀속의 위헌문제에 관해선, 헌법재판소 2003. 8.21. 선고 2000헌가11, 2001헌가29(병합) 결정 참조). 따라서 용도폐지공공시설의 무상양도를 신설공공시설의 무상귀속에 대한 일종의 제도적 방어기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양자간의 균형추가 신설공공시설의 설치비용범위이다. 이런 식의 접근을 하면 무상양도여부의 재량은 자연스럽게 축소될 수 있으며, 그 귀결은 -1심이 취하였듯이- 거부처분의 인정공식에서 요구하는 신청권의 인정이다(무상양도의무의 성립은 별개이다). 1심 역시 동항의 위헌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무상양도에 관한 조리상의 신청권의 존재를 정당하게 논증하였다(반론, 盧坰泌, 420면). Ⅵ. 負擔의 變更申請의 차원에서의 접근 한편 대상판결과 그 원심은 ‘이 사건 신청’을 기왕의 승인조건(부담)에 연계시켜 부담변경신청으로 접근한다. 그리하여 그것의 거부는 기왕의 부담(행정행위)의 변경신청에 대한 거부인 셈이고, 관건은 不可爭的 행정행위의 변경신청권의 존부이다. 허나 그런 변경신청권을 명시한 예가 없을 뿐더러, 판례상으로도 공사중지명령해제요구권(대법원 1997. 12.26.선고 96누17745판결)과 국토이용계획변경신청권(대법원 2003. 9.23.선고 2001두10936 판결)에서나 예외적으로 인정되었을 뿐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비록 상례적인 탈출구(관계 법령의 해석상 그러한 신청권이 인정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있긴 해도 판례의 기조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 독일 행정절차법 제51조(不可爭的 행정행위의 재심사)와 같은 명문규정이 없는 이상, 독일에서의 광의의 재심사에 착안하여 행정행위의 폐지(취소·철회)의 일반론에 의거하여 접근할 수 있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行政行爲의 廢止와 그에 따른 재심사는 협의의 재심사(행정절차법 제51조)와는 달리 원칙적으로 행정청의 재량에 속하는데, 오늘날 다수 경향은 과거와는 달리 이러한 재심사에 대한 무하자재량행사청구권과 (재량축소의 경우엔) 재심사청구권의 성립을 인정한다. 그리하여 어떠한 경우에 재심사의무와 재심사청구권을 발생시키는 재량영으로의 축소가 성립하는지가 문제된다(이에 관한 상론은 拙著, 행정법기본연구Ⅰ, 2008, 242면 이하 참조). 설령 負擔變更으로 접근한다 하더라도, 1심의 전향적 논의를 최대한 반영하여 不可爭力의 문제를 불식시키려는 시도가 강구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Ⅶ. 맺으면서-行政法發展의 停滯 일찍이 새만금판결(대법원 2006. 3.16. 선고 2006두330전원합의체판결)이 행정개입청구권과 행정행위의 재심사의 법리에서 접근하였지만(이에 관해선 拙著, 87면 이하), 전자의 기조는 이미 대법원 2006. 6.30. 선고 2004두701판결에서(동판결의 문제점에 관한 상세는 拙稿, 채석허가에 따른 적지복구상의 산림소유자의 법적 지위, 법률신문 제 3563호, 2007. 6.18. 참조), 후자의 기조는 대상판결에서 확실히 消失되어 버렸다. 부관의 사후부가에 대해 매우 관대한 입장인 점에서(대법원 1997. 5.30. 선고 97누2627판결), 판례가 부관의 사후변경을 통한 행정행위의 변경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것도 조화되지 않는다. 대법원 1984. 10.23. 선고 84누227판결에서 비롯된 (소송요건의 차원에서의) 신청권에 관한 기왕의 판례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행정법으로선 이론적 停滯를 피할 수 없고 司法으로서도 효과적인 권리보호기능을 다할 수 없다. 과연 언제쯤 행정행위의 폐지를 통한 재심사가 우리 행정법의 학문적 자산이 될 수 있을까?
2009-07-13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결정과 '제사용 재산'의 승계
Ⅰ. 사실관계 1. G(소외 피상속인, 원고·피고의 망부)는 1949년 이전 W1(소외 X의 모)와 혼인하여 1949년 X(원고, G와 W1 사이의 자)를 출산하였다. 그런데 G는 1961년경부터 약 44년간 장남인 X측과 절연한 채 W2(소외 피고 Y1, Y2, Y3의 생모)와 동거하면서 그들 사이에 X와 배다른 피고들을 출산하고, 그들과 함께 가정을 이루어 생활하여 왔다. 2. G는 그 연장선상에서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지정하는 의사표시를 하였고 이에 따라 피고들은 X에게는 G의 사망사실이나 장례절차에 관하여 알리지도 않은 채 G를 경기도 OO군 공원묘지에 매장·관리하여 왔다. 3. 이와 같이 G의 사망사실과 피고들이 G를 X 모르게 안장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X는 2005년경 피고들에게 위와 같은 비상식적인 처사를 항의하는 한편, 망 G에 대한 ‘제사주재자’는 X 자신이며, 따라서 망 G의 유체·유골은 X 자신이 승계권자이고, 망인(G)이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지정한 경우 그 효력은 제사주재자를 무조건 구속하지 않으며, X 자신은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Y1, Y2, Y3를 피고로 하여 ‘유체인도 등’의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서울고등법원에서 2007년 4월10일 승소판결을 받았다(2006나63268). 4. 이에 피고들은 상고하기에 이르렀고, 대법원은 2008년 11월20일 상고를 기각하였다. Ⅱ. 판결이유의 요지-상고기각 1. 제사주재자는 우선적으로 망인의 공동상속인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정해져야 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손자)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 중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 2. 사람의 유체·유골은 매장·관리·제사·공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체물로서 분묘에 안치되어 있는 선조의 유체·유골은 민법 제1008조의 3 소정의 제사용재산인 분묘와 함께 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되고, 피상속인 자신의 유체·유골 역시 위 제사용 재산에 준하여 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된다. 3. 피상속인이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지정한 경우에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 이상 그 의사는 존중되어야 하고, 이는 제사주재자로서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지만 피상속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의무는 도의적인 것에 그치고, 제사주재자가 무조건 이에 구속되어야 하는 법률적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 4. 어떤 경우에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 것인지에 관하여는 제사제도가 관습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관습을 고려하되, 여기에서의 관습은 과거의 관습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형성되어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관습을 말하므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적 이념이나 사회질서의 변화와 그에 따라 새롭게 형성되는 관습을 고려할 것인 바, 중대한 질병, 심한 낭비와 방탕한 생활, 장기간의 외국 거주, 생계가 곤란할 정도의 심각한 경제적 궁핍, 평소 부모를 학대하거나 심한 모욕 또는 위해를 가하는 행위, 선조의 분묘에 대한 수호·관리를 하지 않거나 제사를 거부하는 행위,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부모의 유지 내지 유훈에 현저히 반하는 행위 등으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제사를 주재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판례공보, 2008. 12.15. 제312호). Ⅲ. 판례 연구 1. 머리말 1) 민법은 1990. 1.13. 분묘 등의 승계(민법 제1008조의 3)에 관하여 ‘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와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고 규정하면서 그 ‘제사주재자’는 누가 되는지, 어떻게 결정하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다. 2) 따라서 본 판례연구에서 논의하여야 할 점은 ① 제사주재자의 결정방법 ② 망인의 유체·유골의 승계권자 ③ 망인(피상속인)이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지정하는 경우 그 효력 ④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의 의미 등이라고 할 수 있다. 2.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결정 1) ‘제사주재자’에 관한 학설·판례의 동향 가. 판례의 동향: (1) 판례는 구민법 제996조의 금양임야 및 묘토의 소유권 귀속에 관하여 종손인 ‘호주상속인’이 단독으로 그 소유권을 승계한다고 판시하였다(대판, 1993. 5.25. 92다50676, 동, 1995. 2.10. 94다39116). 그런데 1990년 민법개정에서 ‘호주상속인’을 ‘제사주재자’로 개정하였기 때문에(제1008조의 3) 제사주재자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견해의 대립이 있어 왔다. 그 후의 판례도 ‘제사주재자’는 ‘원칙적으로 종손’이라는 취지로 거의 동일하였다. 즉, 나. 제사주재자는 원칙적으로 종손이라는 판례: 대법원은 1997. 11.28.(96누18069) ‘제사주재자는 종손이 있는 경우라면 그에게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가 된다’고 판시한다(판례공보, 1998. 1.1. 제49호; 같은 취지: 대판, 2004. 1.16. 2001다79037; 판례공보, 2004. 3.1. 제197호). 다. 종손에게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판례: 대법원은 2004. 1.16.(2001다79037) ‘원고는 종손이지만 망 소외인(부)의 생존 시에도 가정불화 등을 이유로 선대의 제사 및 망 소외인의 부양을 소홀히 하여 피고들과 분쟁을 일으켜 왔으며, 막내아들인 피고 2가 망 소외인의 임종까지 그를 모시고 살다가 현재도 망 소외인의 영정을 보관하고 있는데 원고는 망 소외인의 사후 몇 달도 되지 않아 자신의 단독소유권을 주장하며, 이 사건 소(필자의 주=금양임야확인)를 제기한 “…” 행적에 비추어 볼때 원고가 종손이라 할지라도 판시 임야를 단독으로 승계하는 제사주재자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한다(판례공보, 2004. 3. 1. 제197호: 이 판례의 연구는 이희배, 가족법판례연구, 2007, 삼지원, p898~899 참조). 라. ‘제사주재자’는 종손이 아니고 ‘공동상속인의 협의’로 정해진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헌법재판소는 2008. 2.28.(2005헌바7, 전원재판부) “제사용재산을 승계하는 제사주재자는 ‘호주’나 ‘종손’이 아니라 ‘실제로 제사를 주재하는 자’로서 원칙적으로 공동상속인들의 협의에 따라 정해지고, 공동상속인들의 협의에 의하여 종손 이외의 차남이나 여자상속인을 제사주재자로 할 수도 있으며 다수의 상속인들이 공동으로 제사를 주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라고 판시한다(헌법재판소 판례집, 제20권 1집, 상, 2008, p221~228 참조). 마. 학설의 동향 : (1) ‘제사를 주재하는 자’라함은 원칙적으로 ‘호주승계인(이른바 종손)’을 가리킨다는 견해(소수설: 박병호, 가족법, 2002, p287)와 ‘사실상 제사를 주재하는 자’라는 견해(다수설: 김주수·김상용, 친족상속법, 2006, p581; 한봉희, 가족법, 2007, p402; 이희배, 친족상속법요해, 1995, p429 참조)로 대립하고 있다. (2) 제사주재자의 결정방법에 관하여는 제사주재자는 공동상속인 또는 친족의 협의에 의하여 정하며,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상속인의 공동승계로 될 수 밖에 없다는 견해가 있다(김주수·김상용, 전계서, p581, 이희배, 전계서, p431 참조). 2) 제사주재자결정에 관한 새로운 법리 가. 제사주재자의 결정방법에 관하여 본 판결(다수의견)은 ① 공동상속인들의 협의 → ②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손자) → ③ 아들이 없는 경우 장녀가 된다고 판시한다. 이에 대한 반대의견(본 판결의 소수의견)은 ① 공동상속인들의 협의 → ② 법원의 심리·판단으로 정하여야 한다(대법관 김영란, 대법관 김지형)는 견해 등이다. 나. 제사주재자는 우선적으로 망인의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하여 정해야 한다는 본 판결이유는 타당하다. 그 이유는 첫째, 제사주재자의 결정에 관하여는 법률규정이 없고, 1997년 이후의 판례에서 인정되었던 ‘종손(즉 호주승계인)’ 우선의 관습 내지 관습법도 2005년 호주제도에 관한 헌법불합치결정과 그 후의 민법상의 호주제도의 폐지로 인하여 변경되었다고 본다. 둘째, 따라서 2008. 2.28.(2005헌바7) 헌법재판소에서는 ‘제사주재자’는 호주나 종손이 아니라 ‘실제로 제사를 주재하는 자’로서 원칙적으로 공동상속인들의 협의에 따라 정해진다고 판시하고 있다. 셋째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1990년대 이후에 주창되어 온 전술한 학설(김주수 외 이희배)에도 부합될 뿐만 아니라, 가족생활에서의 개인(의사)존중이념 내지 사적자치원칙에도 부합된다. 다. 제사주재자의 결정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손자)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는 본 판결이유에 대하여는 후술하는 입법론이 있기는 하지만, 과도적·잠정적으로 일단 타당하다고 이해된다. 그 이유는 첫째,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되고 따라서 호적제도가 가족관계등록제도로 변경되었다 하더라도 관습상 이른바 호주가 제사를 주재하고, 대개는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이른 바 과거의 호주승계인이 분묘 등의 소유권을 승계하는 경우가 아직은 보통일 것이다. 둘째, 위와 같은 국민의식이 거의 퇴조되었음이 의식조사연구 등으로 확인된 경우에는 가사소송법 제2조 제1항 ‘라류사건’ 제25조의 2(민법 제1008조의 3,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결정’)를 신설하면서 협의에 의하여 제사주재자의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법원이 제반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심리·판단하여 제사주재자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 판결이유에 나타난, ‘종법사상’의 잔영인 장남(장손자) → 차남 → 장녀의 순위로 제사주재자가 되는 법리는 헌법상 가족정책이념에 따라 종국적으로는 바꿔져야 하겠기 때문이다. 3. 망인의 유체·유골의 승계원리 1) 본건 판결에서는 사람의 유체·유골은 제사용재산인 분묘와 함께 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된다고 판시한다(다수의견). 이에 대해서는 유체의 귀속은 분묘의 귀속과 분리해 처리되어야 한다는 반대의견(소수의견: 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양창수)이 있긴 하다. 그런데 민법은 분묘를 제사승계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 분묘에 대한 수호·관리권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누가 그 분묘를 설치하였느냐에 관계없이 제사주재자에게 속한다고 해석된다(대판, 1997. 9.5. 95다51182). 따라서 분묘의 본체인 유체·유골은 제사승계의 대상으로서 제사주재자에게 귀속된다는 이 판결이유는 타당하다. 2) 본건 판결에서는 피상속인이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지정한 경우에 그 의사는 존중되어야 하고, 이는 제사주재자로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의무는 도의적인 것에 그치고, 제사주재자가 법률적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수 없다고 판시한다(다수의견). 이에 대하여는 제사주재가 정당한 이유 없이 피상속인의 의사에 반하여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변경할 수 없다는 반대의견(소수의견: 대법관 박시환, 대법관 전수안)이 있다. 그리고 망인이 자신의 장례 기타 유체를 처리하는 것에 관하여 종국적인 의사를 명확하게 표명한 경우에는 그 의사는 법적으로도 존중되어야 하며, 따라서 유체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분묘를 파헤쳐 인도청구를 할수없다는 반대의견(소수의견: 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양창수)이 있다. 그런데 제사주재자라 하더라도 정당한 이유 없이 피상속인의 의사에 반하여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변경하는 것까지는 허용될 수 없다고 이해되어, 이점에 관하여는 소수의견(대법관 박시환, 대법관 전수안)이 망자의 의사존중이념에 비추어 일리있다고 이해된다. 4.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의 의미 대법원의 2004. 1.16.(2001다79037) 전술한 선행판례에 비추어, 본 판결이유 중 위와 같은 특별한 사정의 의미에 관한 판결이유는 타당하다고 이해 된다. 다만 ‘장기간의 외국거주’ 외에도 ‘외국국적을 취득하고 한국국적을 상실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5. 맺는말-요약과 과제 1) 본 판결 이유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2)민법제1008조의 3(금양임야·묘토의 제사주재자에의 승계규정)의 위헌여부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2008. 2.28.(2005헌바7), 합헌판결을 하였다(헌재판집, 제20권1집, 상, 2008). 3) 남은 과제로서는 본 판결 내지 본 판례연구의 결과, 즉 피상속인에 대한 상속인들 간의 ‘제사주재자의 결정’ 등에 관한 논의의 결과는 선조의 분묘관리와 제사주재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유추 적용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라고 하겠다.
2009-02-05
행정소송법 제12조 후단의 법률상 이익의 의미
1. 사실관계 1) 원고 추OO, 김OO, 문OO는 학교법인 A학원의 이사들이었고, 원고 김OO, 우OO는 A학원의 감사들이었다. A학원이 운영하는 OO대학교의 총장 손OO이 교수임용대가로 거액의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로 2004년 4월27일 구속된 것을 계기로 피고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2004년 6월21일부터 같은 해 7월8일까지 A학원과 OO대학교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후 2004년 9월15일 A학원에 거액의 교비자금의 법인회계로의 전출 등 여러 위법행위들이 있음을 지적하고 2004년 11월1일까지 피고가 요구하는 시정사항을 이행하고 위 기일까지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임원취임 승인을 취소할 것임을 계고하였다. 2) 피고는 2004년 12월24일 A학원이 일부 시정 요구사항에 대하여는 이행하였지만 대부분의 시정요구사항이 이행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사립학교법 제20조의2에 의하여 원고들에 대한 임원취임 승인을 취소하고, 사립학교법 제25조에 의하여 소외 김△△, 박△△, 오△△, 윤△△, 이△△, 최△△을 A학원의 임시이사로 임명하였다. 3) 원고들은 피고가 지시요구한 사항 중 상당한 부분은 단기간 내에 이행하기 어려운 것들로 불가능한 조치를 요구한 피고의 시정요구는 부당하며, 설령 피고의 시정요구가 적법하다 하더라도 원고들은 피고의 시정요구를 가능한 범위 내에서 모두 성실히 이행하였으며, 이 사건 교비회계의 불법집행은 원고들이 아닌 총장에 의하여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원고들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정요구사항을 성실히 이행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임원취임 승인취소처분에는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원고들은 임원취임취소처분 및 임시이사선임처분에 대하여 서울행정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기각판결을 받았고(2006. 1.18, 2005구합3943)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였으나 마찬가지로 기각판결을 받았다( 2006. 11.14, 2006누5177). 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대법원에 상고를 하였다. 원고들은 원심변론종결일 이전 또는 상고심에 이르러 모두 정식이사의 임기가 만료되었으며, 임시이사들 역시 원심별론종결일 이전에 임기가 만료되어 새로운 임시이사로 교체되었다. 2. 대법원 2007. 7.19. 선고 2006두19297 전원합의체판결의 요지 1) 제소 당시에는 권리보호의 이익을 갖추었는데 제소 후 취소대상 행정처분이 기간의 경과 등으로 그 효과가 소멸한 때, 동일한 소송 당사자 사이에서 동일한 사유로 위법한 처분이 반복될 위험성이 있어 행정처분의 위법성 확인 내지 불분명한 법률문제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리고 선행처분과 후행처분이 단계적인 일련의 절차로 연속하여 행하여져 후행처분이 선행처분의 적법함을 전제로 이루어짐에 따라 선행처분의 하자가 후행처분에 승계된다고 볼 수 있어 이미 소를 제기하여 다투고 있는 선행처분의 위법성을 확인하여 줄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는 행정의 적법성 확보와 그에 대한 사법통제, 국민의 권리구제의 확대 등의 측면에서 여전히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 2) 임시이사 선임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의 계속중 임기만료 등의 사유로 새로운 임시이사들로 교체된 경우, 선행 임시이사 선임처분의 효과가 소멸하였다는 이유로 그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보게 되면, 원래의 정식이사들로서는 계속중인 소를 취하하고 후행 임시이사 선임처분을 별개의 소로 다툴 수밖에 없게 되며, 그 별소 진행 도중 다시 임시이사가 교체되면 또 새로운 별소를 제기하여야 하는 등 무익한 처분과 소송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 법원이 선행 임시이사 선임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을 긍정하여 그 위법성 내지 하자의 존재를 판결로 명확히 해명하고 확인하여 준다면 위와 같은 구체적인 침해의 반복 위험을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후행 임시이사 선임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에서 기판력에 의하여 최초 내지 선행 임시이사 선임처분의 위법성을 다투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 선임처분을 전제로 이루어진 후행 임시이사 선임처분의 효력을 쉽게 배제할 수 있어 국민의 권리구제에 도움이 된다. 3) 그러므로 취임승인이 취소된 학교법인의 정식이사들로서는 그 취임승인취소처분 및 임시이사 선임처분에 대한 각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고, 나아가 선행 임시이사 선임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 도중에 선행 임시이사가 후행 임시이사로 교체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선행 임시이사 선임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 3. 문제의 제기 그동안 우리 행정소송법에서 가장 논란이 많이 되어 왔던 조항 중의 하나는 행정소송법 제12조 후단의 규정일 것이다. 행정소송법 제12조 후단은 “처분 등의 효과가 기간의 경과, 처분 등의 집행 그 밖의 사유로 인하여 소멸된 뒤에도 그 처분 등의 취소로 인하여 회복되는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의 경우에는 또한 같다”고 규정하고 있다. 체계적으로 그리고 문언상으로 볼 때 동 조항은 이른바 실효된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에 있어서 원고적격에 관한 규정으로 볼 수 있다. 즉 실효된 처분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원고적격은 부인되나 다만 그 처분의 취소로 인하여 회복될 수 있는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에게는 예외적으로 원고적격이 인정된다는 것이 법규정의 문언에 충실한 해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리적 해석을 따를 경우에 법리상으로 중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다수설과 판례는 행정소송법 제12조 전단의 법률상 이익을 “근거법률에 의하여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보호되는 이익”(법률상 이익구제설)으로 보아 이러한 이익이 인정되는 경우에 원고적격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실효된 처분에 있어서는 이러한 근거법률에 의하여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보호되는 이익은 원칙적으로 부인되어지고 예외적으로만 인정될 수 있다는 의미인가? “근거법률에 의하여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보호되는 이익”이 보호규범이론에 따라 개인적 공권의 개념에 해당된다면(憲裁決 1998. 4.30, 97헌마141 ; 鄭夏重, 獨逸公法學에 있어서 權利의 槪念, 行政法硏究 6호, 2000. 10, 30면 이하 참고), 이미 실효된 처분에 있어서는 원고의 권리가 원칙적으로 침해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그러나 이미 강제집행된 위법한 철거명령 및 기간이 경과된 영업허가의 위법한 정지처분, 집회의 위법한 해산명령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실효된 위법한 처분에 의하여도 상대방의 권리가 얼마든지 침해될 수 있음은 자명하다. 문언에 충실한 해석을 할 경우에 나타나는 이러한 왜곡을 피하기 위하여 판례와 학설은 행정소송법 제12조 후단을 취소소송의 원고적격에 관한 규정이 아니라 권리보호의 필요에 관한 규정으로 보고 있다. 즉 원고는 실효되지 않은 처분과 마찬가지로 실효된 처분에 의하여 근거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는 이익을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만 원고적격을 인정받는다. 다만 이미 처분이 실효되어 그의 취소는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어 각하판결을 받게 될 수 밖에 없지만, 예외적으로 행정소송법 제12조 후단에 따라 “취소로 인하여 회복될 수 있는 법률상 이익”이 있는 경우에는 권리보호의 필요가 인정되어 본안판단을 받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鄭夏重, 行政法槪論, 737면). 그러나 이로부터 또 다른 의문점이 발생된다. 과연 실효된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은 가능한 것일까? 또한 행정소송법 제12조 후단의 법률상 이익의 개념은 전단과 동일하게 해석되어야 할 것인가? 4. 종래 판례의 입장 종래 판례는 12조 후단의 소송은 처분이 실효되었다고 할 지라도 여전히 취소소송의 성격을 갖는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왔으며, 아울러 동 규정상의 법률상 이익의 개념을 전단과 동일하게 파악하여 “근거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는 직접적이고 구체적 이익”으로 판시하여 왔다. 이와 같은 판례의 입장은 결과적으로 실효된 처분의 있어서 소의 이익을 인정하는데 상당히 인색할 수 밖에 없다. 판례는 인·허가처분의 취소나 철회에 대하여 취소소송을 제기한 경우에 당해 처분의 존속기간이 도과된 경우에는 일관되게 소의 이익을 부인하여 왔다(大判 2001. 2.23, 200두9472 ; 1995. 7.11, 95누4568 ; 1993. 7.27, 93누3899 ; 1991. 7.23, 90누6651). 또한 행정처분이 그 집행에 의하여 또는 공사 등의 완료로 인하여 그 목적으로 달성한 경우에는 처분의 취소를 구할 소의 이익이 소멸된다는 것이 일관된 판례의 입장이다(大判 2007. 4.26, 2006두18409 ; 1996. 11.29, 96누9768 ; 1994. 1.14, 93누20481). 그리고 판례는 일련의 절차에 따라 선행처분과 후행처분이 행하여지는 경우에 선행처분이 실효하는 경우, 또는 두개의 행위가 결합하여 법률효과가 완성되는 경우에는 그 선행처분의 취소를 구할 소의 이익은 소멸한다는 입장을 취하여 왔다(大判 1999. 10.8, 99두6873; 1999. 10.8, 97누12105). 대법원은 자격정지처분의 취소청구에 있어서 그 정지기간이 경과된 이상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할 이익이 없고 설사 그 처분으로 인하여 명예, 신용 등의 인격적 이익이 침해되어 그 침해상태가 자격정지기간 경과 후까지 잔존하더라도 이와 같은 불이익은 동 처분의 직접적인 효과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소의 이익을 부정하였다(大判 1978. 5.8, 78누72). 5. 판례의 변화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 판례의 태도는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대법원은 제재적 처분기준이 시행규칙으로 규정된 경우, 그 기준은 행정규칙의 성격을 갖는다는 이유로 제재적 취소소송에 제기된 이후에 제재처분의 기간이 경과되어 처분의 효력이 소멸된 경우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일관되게 판시하여왔으나(大判 1988. 3.29, 87누1230 ; 1986. 7.8, 86누281 ; 1995. 10.17, 94누14148), 2006. 6.22. 선고 2003두1684 전원합의체판결에서는 제재적 처분의 기준의 법적 성질이 법규명령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담당공무원은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으므로 그 처분의 존재로 인하여 장래에 받을 불이익, 즉 후행처분의 위험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법률상 이익을 인정하여 종전의 판례를 변경하였다. 한편 대법원은 종래 학교법인의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에서 이사의 임기가 만료된 경우에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는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판시하여 왔다(大判 1995. 3.10, 94누8914 ; 1997. 4.25, 96누9171 ; 1999. 6.11, 96누10614 ; 2003. 3.14, 2002두 10568 ; 2003. 10.24. 2003두5877). 또한 학교법인의 이사에 대한 취임승인이 취소되고 임시이사가 선임된 경우 그 임시이사의 재직기간이 지나 다시 임시이사가 선임되었다면 당초의 임시이사 선임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법률상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판시하였다(大判 2002. 11.26, 2001두2874). 그러나 위 대법원 2007. 7.19. 선고 2006두19297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제소당시에는 권리보호의 이익을 갖추었는데 제소후 취소대상 행정처분이 기간의 경과 등으로 그 효과가 소멸한 때, 동일한 소송당사자 사이에 동일한 처분이 반복될 위험성이 있어 행정처분의 위법성 확인 내지 불분명한 법률문제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리고 선행처분과 후행처분이 단계적인 일련의 절차로 연속하여 행하여져 후행처분이 선행처분의 적법함을 전제로 이루어짐에 따라 선행처분의 하자가 후행처분에 승계된다고 볼 수 있어 이미 소를 제기하여 다투고 있는 선행처분의 위법성을 확인하여 줄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는 행정의 적법성 확보와 그에 대한 사법통제, 국민의 권리구제의 확대 등의 측면에서 여전히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 고 판시하면서 취소소송의 제기후에 임기가 만료된 사립학교임원의 소의 이익을 인정하였다. 이와 같은 판례의 태도는 행정소송법 제12조 후단의 “법률상 이익”의 개념을 전단의 “법률상 이익”의 개념과 동일하게 보아왔던 종전의 입장과 현저한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하겠다. 특히 위 전원합의체판결은 행정소송법 제12조 후단의 법률상 이익의 개념을 독일 행정법원법 제113조 제1항 제4호의 계속확인소송의 위법확인의 정당한 이익의 개념에 상당히 접근시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판례의 변화는 행정소송법 제12조 후단의 소송의 성격과 법률상 이익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정향점을 마련하고 있다. 6. 결어 생각건대 근래의 유력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鄭夏重, 行政法槪論, 739면 ; 洪準亨, 行政救濟法 374면), 행정소송법 제12조 후단의 성격은 취소소송의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위법확인소송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비록 행정소송법 제12조 제2문은 처분 등의 취소로 인하여 회복될 수 있는 법률상 이익이 있는 경우에는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당해 처분은 이미 효력이 소멸되어 취소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인용판결을 받는다고 하여도 실질적으로는 당해 처분의 위법성의 확인판단을 받는 것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행정소송법 제12조 제2문에 의한 소송은 독일행정소송법 제113조 제1항 제4문에서 규정한 계속확인소송의 성격과 유사한 소송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제12조 제1문의 소송과 제12조 제2문의 소송은 그 목적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제12조 제2문의 법률상 이익은 독일행정소송법 제113조 제1항 제4문과 같이 “위법확인의 정당한 이익”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에는 법으로 보호하는 이익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은 물론 정신적 이익(ideele)을 포함하여 모든 법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포함한다고 할 것이다. 법률상 이익을 이와 같이 전향적으로 해석할 경우에 지금까지 소의 이익이 부정되어 각하판결을 받았던 대부분의 경우는 위법확인의 정당한 이익이 인정되어 본안판단을 받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허가처분의 위법한 취소나 철회에 대하여 취소소송을 제기한 경우에 당해 처분의 존속기간이 도과된 경우에도 당해 처분의 위법확인의 판결은 원고에게 소송비용의 부담을 면하게 할 뿐 아니라, 판결의 기판력은 이후에 있을 국가배상청구소송에 있어서 원고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정당한 이익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또한 실효된 처분의 차별적인 효과에 의하여 명예나 신용이 훼손된 경우에도 위법확인의 정당한 이익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즉시강제의 경우에도 반복되는 위험의 방지를 위하여 소의 이익이 인정될 것이다. 종래의 판례의 소극적인 입장은 행정소송법 제12조 후단이 전단과 동일하게 “법률상 이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서 주로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번 국회에 제출되었던 행정소송법개정안 역시 현행법과 동일한 규정을 두고 있는바, 이에 대한 재고가 요구된다. 취소소송의 판결부분에 “ 처분 등의 효과가 기간의 경과, 처분 등의 집행 그 밖의 사유로 인하여 소멸된 뒤에서, 법원은 원고의 정당한 이익이 있는 한 원고의 신청에 따라 당해 처분이 위법하였음을 선고한다”라는 조문을 설치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개선방안이 될 것이다.
2008-10-09
형사소송법 105조의 해석론
Ⅰ.쟁점의 이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지상토론의 쟁점을 간략히 소개한다. 상소 후에 소송기록이 상소법원에 도달하지 않고 원심법원에 있는 경우에 원심법원의 권한범위에 관하여 형소법(이하 ‘법’이라 한다) 105조는 “구속기간의 갱신, 구속의 취소, 보석, 구속의 집행정지와 그 정지의 취소에 대한 결정은 원심법원이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규칙(이하 ‘규칙’이라 한다) 57조 1항은 “피고인의 구속, 구속기간 갱신, 구속취소, 보석, 보석의 취소, 구속집행 정지와 그 정지의 취소의 결정은 원심법원이 이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칙은 위 법률과 달리 원심법원의 권한으로 ‘구속’과 ‘보석취소’를 인정하고 있는데 위 규칙의 법률저촉 여부가 쟁점이다. 사건의 경과를 간략히 보면, 창원지방법원 제1심이 피고인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한 후 피고인 항소 중 피고인을 구속하자 같은 법원 제2심은 위 법 105조에 따라 ‘원심법원은 피고인 구속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구속취소 결정을 하였는데, 대법원은 위 규칙 57조는 위 법 105조에 저촉되지 않고, 원심법원에 구속권한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환송 결정을 했다. 필자는 위 대법원결정을 비판하는 판례평석을 발표하고(부산대학교 법학연구소 간행 ‘법학연구’ 2007.8.호) 이를 법률신문(9월20일자 15면)에 기고하였고, 이에 대하여 이균용 부장판사가 비평(10월 15일자 15면)을 제기하였다. Ⅱ.비평을 환영하며 이균용 부장판사의 비평(이하 ‘비평문’이라고 한다)으로 견해가 다른 지점이 발견되고 깊은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바람직한 과정으로 생각하며 진심으로 환영한다. 애초 위 대법원결정은 ‘원심법원이 구속권한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결정이유를 설시한 것이 없었다. 법률과 규칙의 문언이 명백히 달라 문제된 상황에서 ‘권한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이유 설시는 매우 불충분한 것이었다. 법률이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대법원규칙으로 ‘필요성’만을 이유로 권한을 부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평문은 ‘원심법원에 구속권한을 부여할 필요성’의 논리 외에 형사소송법에 대한 법체계적 해석론을 제시하면서 대법원규칙이 정당함을 주장하였다. 이 비평문의 논리가 대법원규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논리일 것으로 짐작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논리는 성립할 수 없음을 이 반론문으로 분명히 하고자 한다. Ⅲ. 비평문의 요지 비평문은 訴訟係屬의 논리(소송기록이 상소법원에 도달하기까지는 여전히 원심법원에 소송계속이 존재한다는 논리. 상소제기로 인한 移審의 효력에 관하여 소송기록송부기준설 외에 상소제기기준설이 있지만 비평문의 논리가 단순하게 성립될 수 있도록 前說에 따라 소송기록 송부시까지는 원심법원에 소송계속이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논하기로 한다)와 법70조(수소법원의 구속권한)에 기반하고 있다. 비평문에 따르면, 원심법원은 상소 중의 피고인신병에 관한 결정 권한 중, 법105조 상의 권한은 105조에 의하여 행사할 수 있고, 피고인 구속은 아직 원심법원에 소송계속 중이므로 법70조의 수소법원의 구속에 관한 일반규정에 따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상소중의 피고인 구속은 원심법원의 권한이지만 법70조에 수소법원의 일반적 권한으로 명시되어 있으므로 법105조에 명시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Ⅳ. 비평문은 법체계적 해석을 제시하였으나 피고인신병 결정 권한에 관한 주요법규를 간과하였다. 비평문과 같은 법규해석은 불가능하다. 비평문은 법92조(구속기간과 갱신), 93조(구속의 취소), 95조와 96조(각 보석), 101조(구속의 집행정지), 102조(보석 또는 구속의 집행정지의 취소)의 존재를 간과하고 있다. 구속기간갱신, 구속취소, 보석, 구속집행정지, 구속집행정지의 취소도 수소법원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지만 상소 중의 경우에 대하여는 105조에 특별히 명시하고 있다. 법 제9장(피고인의 소환, 구속)의 전체 조문을 읽어보자. 여기에는 피고인 신병에 관한 수소법원의 모든 권한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면서 맨 뒤 105조에서 상소 중 피고인 신병 결정 권한에 대하여는 위 권한들 중 일부(구속기간의 갱신, 구속의 취소, 보석, 구속집행정지와 구속집행정지의 취소에 대한 결정)만을 명시하여 인정하고 있다. ‘구속취소’와 ‘보석’을 원심법원의 권한으로 인정하면서도 동전의 양면과 같은 ‘구속’과 ‘보석취소’는 명백히 빼고 있다. 법 105조는 상소 중이라는 형사소송절차상의 특수상황에 적용되는 고유한 의미를 담은 조문인 것이다. 비평문처럼 소송계속 논리로 수소법원의 권한을 다 설명할 수 있다면 105조는 불필요한 규정이 되어버린다. 이런 문제점에 대하여 비평문은 105조의 입법취지에 대하여, “법105조가 구속 자체를 규정하지 않은 것은 이것(소송계속이라고 이해된다 - 필자 주)을 전제로 한 것이고, 다만 구속에 관한 사후적 내지 파생적 결정을 할 법원에 관하여 의문을 해소하는 의미에서 이를 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고 있다. 이런 논리를 펴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의문을 해소하기 위하여 법률로 분명히 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구속에 관한 사후적, 파생적 결정’이 아니라 오히려 피고인에게 가장 불이익한 조치인 ‘구속’이나 ‘보석취소’의 경우가 아니던가. 대법원규칙에 상위법의 근거를 부여하기 위하여 상위법(법률)의 해석을 억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규칙이 상위법에 부합하도록 해야지 상위법을 대법원규칙에 부합하도록 해석해서야 되겠는가. 법 제9장 전체 속에서 105조의 의미는 쉽게, 간명하게 읽힌다.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법원으로서는 법률을 그대로 존중하여 운영하거나 법률이 현실에 맞지 않으면 개정노력을 해야 한다. 또 법률 규정은 있는 그대로 읽어야지 그 의미를 의도적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비평문은 “법 105조와 규칙 57조는 모두 당연한 것을 규정한 주의적 확인규정 내지 예시규정에 해당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법 조항 자체에 고유의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정도이지 당연한 사항을 주의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당연한 사항에 대한 주의적 규정이라는 해석이야말로 ‘입법자의 의사를 근거 없이 추단’하는 것이 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런 의미의 입법은 예외적이기 때문이다. Ⅴ.비평문이 移審의 효력으로 해석하는 점에 대하여 비평문은 이심의 효력발생시기에 관한 유력한 견해인 소송기록송부시설에 따르면 원심법원이 수소법원으로서 구속 등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역시 소송계속의 논리이다. 이 논리의 문제점은 위에서 밝혔다. 법 105조가 상소 중이라는 특수상황에 적용되는 고유한 의미를 담은 조문이라면 이심의 효력에 관한 견해대립을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비평문은 필자의 평석을 오해한 부분이 있어 잠시 바로잡는다. 즉, “차정인 교수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논거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상소제기에 따라 소송이 상소심에 이심한다… 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필자는 이심의 효력발생 시기에 관한 학계의 기존 논의를 판례평석의 논거로 삼지 않았다. “판결이 선고되면, 다른 법률규정이 없으면 원심법원의 권한이 종료하는, 원칙적 모습대로 운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요지를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하여는 필자의 논문 ‘상소기간 중 또는 상소 중 원심법원의 피고인 구속’(법학연구, 부산대학교 법학연구소, 2007.8.) 중 Ⅵ.상소기간 중인 경우와 상소 중인 경우의 차이 여부 항에서 자세히 쓴 바 있다. 실제 형사소송법 규정을 보더라도 판결 선고 후에는 사건의 본안이나 구속 등 피고인의 신병에 관한 수소법원의 권한은 아무 것도 없다. 제 105조의 예외만 있을 뿐이다. Ⅵ. 비평문이 말하는 ‘구속의 필요성’과 법률주의 비평문은 원심법원이 구속 권한을 행사할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구속의 필요성’ 논리는 법률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 헌법 12조 1항은 체포·구속 등 강제처분과 처벌·보안처분 등의 ‘법률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법률에 의하여야한다”는 말은 형식적 의미의 법률 이외에 대법원규칙 등으로 정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의미를 담고 있다. 비평문이, 필자가 법률주의를 문제 삼는 데 대하여 ‘일반론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거나, 대법원결정이 ‘사실관계의 이치에 맞으므로’ 타당한 결론이라고 하거나, 법105조의 의미를 애써 축소해석 하면서까지 법문에 없는 ‘구속’과 ‘보석취소’를 원심법원의 권한으로 인정하는 것을 보면서 헌법이 정한 법률주의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Ⅶ. 맺음말 법105조가 판결 선고를 마친 원심법원에 피고인신병에 관한 다른 결정 권한은 명시적으로 부여하면서도 ‘구속’과 ‘보석취소’의 권한은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언 상, 법체계상 분명하다고 본다. 비평문처럼 “법105조에서 구속이라는 가장 중요한 처분이 빠져 있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입법자가 사례로서 매우 적다고 예상하여 굳이 확인 규정을 둘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105조를 주의적 확인규정 내지 예시규정으로 그 의미를 축소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국민의 권리장전인 제정형사소송법은 1953년 효당 엄상섭 선생 등이 높은 학문적 기량과 인권의식, 어머니의 손길과 같은 섬세함으로 설계하고 다듬었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할 필요가 있다(신동운, ‘제정형사소송법의 성립경위’, 형사법연구, 2004 겨울호에서 인용).
2007-11-08
채석허가에 따른 적지복구상의 산림소유자의 법적 지위
Ⅰ. 事實關係 (산림소유자인) 원고는 1986. 10.경 인천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산 468, 418, 418-2, 416 임야(이하 ‘이 사건 임야’라 한다)에 대한 채석허가명의자인 소외 김용으로부터 채석허가명의를 양도받은 후, 수 차례 연장허가를 받아 채석을 하여 오던 중, 1994. 8. 2. 채석허가 명의를 소외 창석개발주식회사로 변경하여 동 회사로 하여금 토석을 채취하게 하였다. 그 후, 원고는 위 창석개발주식회사의 채석허가기간이 만료되자 1997. 2. 18. 피고(강화군수)로부터 이 사건 임야에 대하여 토석채취 및 반출기간을 1997. 2. 18.부터 1998. 2. 28.까지로 하는 채석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원고는 1997. 2. 24. 소외 주식회사 서경산업과 이 사건 임야에 대하여 채석허가명의를 변경하여 주기로 하는 내용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소외 효신개발주식회사와 이 사건 임야에 대한 전대계약이 체결됨에 따라, 위 채석허가권을 효신개발에게 양도하였다. 해서 채석수허가자 명의가 효신개발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그 후 이사건 임야에 인접한 인천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산 467-1 임야의 소유자인 소외 김평겸이 피고에게 위 채석허가지의 토석채취 작업으로 인하여 위 인하리 산 467-1 임야에 소재한 분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민원을 제기함에 따라, 피고는 1997. 7. 18. 효신개발에 대하여 부분적지복구를 명하였으나, 효신개발이 이를 계속 지연하던 중 이 사건 임야에 대한 채석허가기간이 만료되었다. 위 채석허가기간이 만료될 경우 효신개발은 복구설계서를 제출하여 피고의 승인을 받은 다음 적지복구공사를 시행하여야 하나 이를 이행하지 아니함에 따라 피고는 1998. 10. 28. 복구설계서를 작성하여 효신개발에 대하여 적지복구를 명하였다. 그러나 효신개발이 다시 이를 이행하지 아니함에 따라 피고는 1999. 3. 10. 위 채석허가자 명의변경신청 당시 효신개발이 예치하여 두었던 적지복구비 금 215,326,000원을 한국보증보험주식회사로부터 인출한 다음 효신개발이 지정하는 자로 하여금 적지복구를 대행하게 하기 위하여 효신개발에 사업시행자지정을 통보하였다. 그러자, 효신개발은 서경산업에 적지복구시행자의 지정을 위임하였고, 서경산업은 1999. 5. 17. 피고에게 소외 태궁임업주식회사를 적지복구시행자로 지정하여 보고하였다. 그에 따라 피고는 위 태궁임업에게 적지복구명령을 하면서 적지복구설계서의 제출을 명하자, 태궁임업은 복구설계서를 제출하여 피고로부터 승인을 받은 다음 위 설계서에 따라 복구공사를 시행하였다. 그 후, 피고는 적지복구공사가 완료된 후 1999. 12. 17. 태궁임업으로부터 하자보증서 및 이행각서를 제출받은 후 적지복구준공통보를 하였다. 그 후, 원고는 2002. 5.경 위 태궁임업이 제출한 복구설계서는 당초 효신개발이 적지복구명령을 받은 부분을 포함하지 않았음에도 피고에 의하여 승인을 받았고, 복구설계서에 따른 시공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복구준공통보가 되었다며 피고에게 위 태궁임업에 대한 복구설계서의 승인 및 복구준공통보(이하 ‘복구준공통보등’이라 한다)를 취소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피고는 2002. 5. 24. 이를 거부하는 내용의 회신을 하였다. Ⅱ. 判決要旨 국민의 적극적 행위신청에 대한 행정청의 거부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하기 위하여는 국민이 행정청에 대하여 그 행위발동을 요구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신청권이 있어야 한다. 산림법령에는 채석허가처분을 한 처분청이 산림을 복구한 자에 대하여 복구설계서승인 및 복구준공통보를 한 경우 그 취소신청과 관련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원래 행정처분을 한 처분청은 그 처분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더라도 스스로 이를 직권으로 취소할 수 있지만, 그와 같이 직권취소를 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 이해관계인에게 처분청에 대하여 그 취소를 요구할 신청권이 부여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처분청이 위와 같이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신청권이 없이 한 이해관계인의 복구준공통보 등의 취소신청을 거부하더라도, 그 거부행위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되지 않는다. Ⅲ. 問題의 提起 사안에서 원고가 ‘복구준공통보등’에 대해 직접적인 취소소송을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 그것에 대한 직권취소를 구한 다음 그 거부를 소송대상으로 삼았다. 즉, 기본적으로 3극관계를 바탕으로 원고가 행정청으로 하여금 제3자(여기선 태궁임업)에 대해 일종의 행정개입(‘복구준공통보등’에 대한 직권취소)을 구한 것이다. 그 결과 사안에서 관건은 거부처분의 성립여부이다. 여기서 판례는 대법원 1984.10.23. 선고 84누227판결 이래 확고한 거부처분의 인정공식(신청대상행위의 처분성+대상행위에 관한 신청권의 존재)에 의거하여 논증을 한 즉, 신청권의 결여로 거부처분의 존재를 부인한다. 사실 법원은 거부처분취소소송에서 대상적격성의 물음과 원고적격성의 물음을 混入시켜 그 자체론 후자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리고 부작위위법확인소송의 경우에도 양자의 물음을 구분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연계시켜 논증하고 있다(참조: 대법원 2000. 2. 25. 선고 99두11455 판결 등). 거부처분을 신청권의 존재에 연계시킨 데 대해선, 행정법문헌상 심대한 비판이 가해진다. 그런 문제인식에서 대법원이 마련한 행정소송법개정안에선 나름의 개선방안이 강구되었다. 즉, 거부처분 및 부작위와 관련해서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신청권’에로의 연계를 애써 단절하기 위해서, 거부행위를 단순한 ‘신청의 거부’에 초점을 맞추며(동개정안 제4조 제3호), 부작위의 개념정의에서도 “처분을 하여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삭제하였다(동개정안 제2조 제1항 제2호). 요컨대 신청권의 존재를 거부처분인정에 연계하든 전적으로 원고적격의 물음으로 보든, 여기서의 관건은 신청권의 존부 여부이다. 왜냐하면 거부처분의 위법성을 다툴 수 있는 자격을 판단함에 있어선 당연히 그 신청의 자격을 논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Ⅳ. 原告의 申請權의 存否에 관한 檢討 대상판결의 1심인 인천지방법원 2003.2.11. 선고 2002구합2448 판결은, “산림법의 입법목적이나 형질변경된 산림의 복구에 관한 제반규정에 비추어 볼 때, 채석허가를 받고자 하는 자에 대하여 복구비용을 예치하게 하고, 채석허가에 따라 형질변경된 산림에 대하여 채석허가자나 그 대행자로 하여금 복구설계서를 제출하게 하여 이를 승인하고, 복구준공검사를 하는 것은 채석허가에 따른 산림의 형질변경으로 인해 우려되는 낙석이나 토사유출 등 재해위험을 방지하고, 자연경관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일 뿐 산림의 소유자의 생명, 신체상의 위해나 재산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규정은 아니라고 할 것이므로, 가사 복구설계서나 복구준공에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산림의 소유자가 그 복구설계서의 승인이나 복구준공통보의 취소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법규상 또는 조리상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고, 이를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03.12.4. 선고 2003누4609 판결)과 대상판결이 그대로 따랐다. 산림복구에 관한 제반규정이 산림소유자와 같은 사인의 이익을 위한 보호규범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보호규범성의 부인을 바탕으로 신청권의 결여를 논증하였다. 이는 두 가지 측면(보호규범론과 행정개입청구권)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전자와 관련해선, 이들 복구관련 규정 자체의 사익보호성여부의 물음과는 별도로, 산림소유자가 과연 그 보호범주에 들어가는지 여부가 검토되어야 한다. 채석허가는 자연생태계의 현상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문언상의 표현(허가)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예외적 승인에 가깝다. 그것의 금지지향적인 성격을 감안한 즉, 국토나 자연보전과 같은 공익은 물론 주민의 주거나 환경상의 이익과 같은 사익을 뒤로 물릴 수 있는 상황만이 그것의 발급을 정당화시킨다. 따라서 그 요건에서 주민의견의 수렴절차를 두고 있듯이(구 산림법 제90조의2 제6항 제3호), 채석허가는 물론 복구와 관련한 제 규정이 전적으로 공익만을 보호한다는 것은 용인되기 어렵다. 즉, 인근 주민으로선 아무런 문제없이 채석허가는 물론 ‘복구준공통보등’을 다툴 수 있다(판례는 환경과 관련한 행정법규에 대해서 광범한 사익보호성을 인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법원 2001. 7. 27. 선고 99두2970 판결 등). 문제는 산림소유자가 복구관련 규정이 보호하는 인적 범주에 포함되는지 여부이다. 산림소유자가 채석허가명의자이자 적지복구책임자인 경우는 당연히 논외이지만, 채석허가의 양도에 따라 양자간에 분리가 일어난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구 산림법시행규칙 제95조 제1항 제3호나 현행 산지관리법시행규칙 제24조 제1항 제3호는 공히 채석허가의 신청에 “산림의 소유권 또는 사용·수익권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1부”를 요구한다. 따라서 채석허가는 기본적으로 산림의 소유권에서 비롯되지만, 동시에 허가명의변경을 통한 양도가 허용된다. 이런 법체계에서 산림소유자로선 형질변경된 산림의 복구와 관련해선 당연히 직접적 이해를 갖는다. 즉, 복구관련 규정이 보호하는 인적 범주에 산림소유자도 포함된다. 다만 신의·성실의 원칙상 산림소유자의 경우엔 인근주민보다 권리남용의 비난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 가령 모순된 행위를 한다거나(禁反言의 원칙). 보호규범의 위반이 전체적으로 미미한 정도라서 보호할 만한 그 어떤 이익도 없음이 명백한 경우( “생트집금지”(Schikaneverbot))가 그에 해당한다(상세는 졸고, 建築法上의 鎭壓的 介入手段을 통한 隣人保護에 관한 小考, 공법연구 제29집 제3호 2001.5, 361면 이하). 행정개입청구권과 관련해선 우선 개입수권의 근거가 문제되지만, 개입의 방식이 행정행위의 취소인 경우에는 그렇지 아니 하다. 왜냐하면 위법한 행정행위를 취소함에 있어서 특별한 근거가 요구되진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물음은 行政行爲의 廢止(취소·철회)에 따른 (광의의) 재심사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 行政行爲의 廢止와 그에 따른 재심사는 원칙적으로 행정청의 재량에 속하며, 불가쟁력의 발생과도 무관하다. 오늘날 독일의 다수 경향은 주관적 공권과 그것의 요건에 관한 논의에 바탕을 두고서 (원고적격의 물음을 위한 단초로서의 의미만을 지닌) 무하자재량행사청구권의 성립을 당연히 인정하되, 주관적 공권상의 관련성을 그 요건으로 든다(Vgl. Kopp/Ramsauer, VwVfG, 8. Aufl., 2003, §48 Rn.51). 그들로선 재심사의무와 재심사청구권을 발생시키는 ‘재량영으로의 축소’가 어떤 경우에 성립하는지 여부가 주된 관심사다. 그리하여 선행 행정행위의 위법성만으론 취소·철회의무를 성립시키는 데 충분치 않고, 당초 결정의 유지가 전적으로 수인할 수 없는 경우에 그것이 인정되었다(BVerwG NVwZ1985, 265). 이와는 달리 우리의 경우엔 취소에 관한 신청권의 부재를 이유로 초입단계에서 이미 논의가 원천봉쇄되어 버린다. 신청권에 대해 실질적 권리(청구권)인양 과잉의미를 부여하면서, 상대방 등에게 (토지형질변경행위허가의) 철회·변경을 요구할 신청권이 없다고 판시한 대법원 1997.9.12. 선고 96누6219 판결도 이를 웅변한다. 명문상으로도 그 같은 신청권이 존재할 가능성이란 殆無하다. Ⅴ. 맺으면서-拔本的 自己否定을 기다리며- 일찍이 필자는 새만금판결(大法院 2006.3.16. 2006두330판결, 서울고법 2005.12.21. 2005누4412판결, 서울행법 2005.2.4. 2001구합33563판결)을 두고서, 행정개입청구권의 법리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개입수권규정에 대한 접근에서 결과적으로 기왕의 입장(대법원 1997. 9. 12. 선고 96누6219 판결; 1999. 12. 7. 선고 97누17568判決)에서 벗어났다고 호평하였다. 아울러 行政介入請求權과 行政行爲의 再審의 法理에 관한 단초가 제공되는 모멘텀이 마련됨으로써, 행정법이론의 패러다임에 결정적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 예측하였다(상세는 졸고,「行政介入請求權의 認定과 관련한 法的 問題點에 관한 小考」, 저스티스 제86호, 2005.8., 216면 이하;「새만금간척사업判決의 問題點에 관한 小考」, 법률신문 제3338호, 2005.2.14.; ‘새만금판결’의 행정법적 의의에 관한 소고, 법률신문 제3456호, 2006.5.18.). 그러나 行政行爲의 再審 및 行政介入請求權의 法理를 원천 부정하는 셈인 96누6219 판결과 97누17568 판결을 적시하여 참조한 대상판결은, 이런 기대를 부질없게 만든다. 심지어 새만금판결조차도 법원의 용기있는 자기부정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일회적인 자기일탈의 소산으로 여겨진다. 이런 난맥의 초기조건은, 바로 거부처분 및 부작위를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의 원고적격의 문제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음에 있다. 설령 의무이행소송을 도입하더라도, 신청권에 관한 기왕의 이해가 拔本的으로 바뀌지 않고선, 그것을 통한 권리보호의 효과는 별반 크지 않다. 왜냐하면 어제의 법원이, 오늘의 법원일 뿐만 아니라, 내일의 법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능성이론, 수범자이론, 보호규범이론에 관한 전향적이고 세심한 고찰을 바탕으로 한, 원고적격에 관한 새로운 이해가 절실하다.
2007-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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