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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기사
판결요지
판례해설
판례평석
판결전문
민사일반
'사정변경의 원칙' 적용론
[사실관계] 원고들은 2015년 8월 26일 해외이주 알선업체인 피고와 미국 비숙련 취업이민을 위한 이민알선업무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계약은 계약서 작성일부터 원고들의 이민비자 취득일까지 유효하고, 국외알선 수수료는 미화 3만 달러로 하되, 계약 시, 노동허가 취득 시, 이민허가 취득 시로 나누어 미화 1만 달러씩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당시 업무 관행상 통상 2년 정도면 비자발급 절차가 마무리되었는데, 이러한 점은 계약 당시부터 당사자들이 잘 이해하고 있었다. 원고들은 2016년 5월 미국 이민국의 이민허가를 받고, 국외알선 수수료를 모두 지급하였다. 그런데 기존에는 이민허가를 받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민비자가 발급되었으나, 주한 미국대사관이 갑자기 비숙련 취입이민 신청에 대해 추가 행정검토(AP) 및 이민국 이송(TP) 결정을 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원고들의 비자발급도 중단되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나 비자발급 절차 재개 여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원고들은 2017년 12월 1일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해지 등을 주장하며 피고에 대하여 이미 지급한 수수료의 반환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의 해지를 인정하였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결정으로 당초 예상했던 기간보다 훨씬 장기간 비자발급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중단된 상태가 지속되어 원고들이 언제 비자를 발급받을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므로,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았던 원고들의 비자발급 여부에 관하여 계약 체결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변경이 생겼고, 이러한 상황에서 원고들에게 최종적인 결정을 기다려서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단하였다. [평석] 1. 사정변경의 원칙의 의미 이른바 '사정변경의 원칙'은 계약의 성립 당시에 있었던 환경 또는 그 행위를 하게 된 기초가 되는 사정이 그 후 현저하게 변경되어 당초 정해진 계약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강제하는 것이 신의칙과 공평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당사자가 그 법률행위의 효과를 신의, 공평에 맞도록 변경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계약준수의 원칙(pacta sunt servanda)에 대한 예외라고 일컬어진다. 대상판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근 대법원은 구체적인 사안에서 이 원칙을 정면으로 적용하여 계약의 해지를 인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제 사정변경의 원칙에 대한 고민은 그 이론적인 규명을 넘어, 구체적인 사안에서 그 적용을 고려할 수 있는지, 실제 계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등의 실질적으로 논의로 이어져야 하는 시점이다. 근래에 전염병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회 상황이나 기술이 예측할 수 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 원칙은 향후 더욱 중요하게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2. 인접 개념과의 경계 사정변경의 원칙은 신의칙의 파생 원칙이므로, 민법의 규정과 계약법의 원칙들에 비해 보충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 우선 사정의 변경으로 이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면,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될 국면이 아니다. 사정변경의 원칙은 계약의 이행이 여전히 가능한 것을 전제로, 그 내용대로 이행을 강제하는 것이 부당한지를 따져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행불능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는 것이 종국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의미하는데, 법적으로 이행이 가능한지 여부가 언제나 명확한 것은 아니다. 대상판결에서는 1년 반이 넘도록 비자 업무가 중단된 이유나 절차 재개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비자발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평가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비자가 최종적으로 발급되거나 거절되기 전까지는 일시적, 사실적 불능 상태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민국이 재심사를 통해 이민허가를 철회하기 전에 종국적으로 이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계약 체결 이후의 사정변경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계약위험의 분배에 대해 당사자들이 합의하였거나 위험의 인수가 계약에 내재되어 있다면, 사정변경의 원칙이 그에 우선할 수는 없다. 사정변경은 계약의 해석으로는 그 위험에 관한 분배를 정할 수 없는 경우에 비로소 고려되는 것이다. 대상판결에서는 계약에 AP/TP 결정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기존에는 2년 정도면 문제없이 비자가 발급되어 왔다는 점을 당사자들이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AP/TP 결정을 받아 절차가 지연됨으로써 발생하는 위험배분에 대해 묵시적으로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는 통상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사정의 변경으로, 어느 일방이 위험을 인수하였다고 할 수 없다. 3. 적용 요건 대상판결이 언급하는 사정변경의 원칙의 요건은 대체로 ① 현저한 사정변경, ② 예견불가능, ③ 계약유지의 부당성으로 요약된다. 이들 세 가지 요건은 독립적이라기보다 상호 연관성이 있다. 현저한 사정변경의 대상은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은 사정으로, 일방 당사자의 주관적이거나 개인적인 사정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상판결에서 2년 정도면 비자발급 절차가 마무리되는 업무 관행은 당사자들이 계약을 체결하며 전제로 한 사정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이른바 동기의 착오로 보아야 하는지가 문제될 수 있으나, 이 사안은 계약 당시 존재하는 사정에 대한 착오가 아니라 계약성립 이후 객관적인 외부 사정의 변경이 발생하여 당사자들의 기대가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 예견불가능성을 요하는 것은, 당사자가 예상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면 당사자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그에 대비하여 계약을 다른 내용으로 체결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상판결에서는 주한 미국대사관의 업무처리가 변경된 이유나 비자발급이 언제 재개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었으므로, 이는 당사자들이 계약 당시 전혀 예견할 수 없었던 사정이다. 계약을 체결한 시점에 따라 비자업무의 중단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으나, 적어도 당사자들의 계약 체결 시점에서는 예견가능성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부당성에 대해 판례는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이는 사정변경의 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계약의 구속력을 고집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는 경우를 등가관계의 파괴나 계약목적의 달성 불가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므로, 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의 부당성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상판결에서 계약 내용대로라면 원고의 권리구제 방안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비자발급을 기다렸다가 종국적으로 이민비자 취득이 불가능해지면 기납입 수수료의 80%를 환불받는 것이었다. 종국적으로 비자발급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면, 계약의 목적달성이 어렵거나 그로 인한 이익이 상당히 반감될 것이다. 따라서 계약 내용을 강제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4. 인정 효과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변경으로 인해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부당하다면 계약을 해제·해지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지금까지 사정변경의 효과에 관한 논의는 실제 사안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다소 원론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경향이 있는데, 이는 최근까지도 법원이 이 원칙을 인정하는 것에 매우 소극적이었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는 것에 그칠 뿐, 구체적으로 계약관계가 어떻게 정리되는지를 검토한 예는 많지 않다. 대상판결은 계속적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인바, 원고의 수수료 지급에 비해 피고의 급부 이행이 완결되지 않았으므로 원고들이 지급을 완결한 수수료의 일부를 원상회복하여야 한다. 법원은 계약에서 이민허가가 나지 않으면 수수료의 80%를 환불하도록 규정한 것에 비추어 원고들이 기지급한 3만 달러의 80%에 해당하는 금액을 반환하도록 하였다. 피고가 급부를 이행하기 위해 실제로 지출한 비용이 아니라 그 가치에 대한 당사자들의 평가를 반영한 것은 타당하다. 대상판결에서 쟁점이 된 것은 아니지만, 학설은 대체로 사정변경의 효과로서 계약의 해제·해지 외에 계약의 수정을 인정한다.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전부 해소하는 것 외에 유연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수정권의 행사 요건, 절차나 방식, 해제권과의 관계 등 세부적인 검토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이 글에서 이를 모두 다루기는 어려우나, 계약 내용의 수정에는 당사자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하고 법원의 자의적인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자 한다. 향후 판례가 축적되고 이를 토대로 한 연구가 계속되어, 사정변경의 원칙이 일반 원칙으로서의 유연성은 유지하되, 그 요건과 효과는 더욱 구체화되어 실효성 있는 규범으로 자리하기를 기대한다. 장보은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취업이민
국외알선수수료
사정변경
장보은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2022-02-14
노동·근로
민사일반
무기계약 전환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차별금지 원칙
Ⅰ. 사실관계 피고는 방송사업 및 문화서비스업, 광고사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이고, 원고들은 각각 피고 회사에 기간제근로자로 입사하여, 그때부터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계약을 갱신하면서 계속 피고 회사에서 근로자로 재직하였다. 원고들은 '기간제 및 단기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이라 한다)'에 따라 이 법 시행 이후 2년을 초과하게 된 날에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이하 '무기계약직'이라 한다)로 각각 전환되었다. 피고는 원고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매 1~2년마다 원고들과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원고들에게 기본급과 상여금을 지급하였는데, 그 액수는 피고 소속 정규직으로서의 일반직 및 기능직 직원들(이하 '정규직 직원들'이라 한다)에 대한 기본급 및 상여금의 80% 수준이었다. 한편, 피고는 직무수당, 면허수당, 물가수당, 주택수당, 식대 등의 수당을 정규직 직원들이나 원고들에게 동일한 액수와 방식으로 지급하였다. 다만, 정규직 직원들에게 매월 지급한 근속수당은 원고들에게 지급하지 않았고, 정규직 직원들에게는 자가운전 보조금으로 월 30만 원씩 지급하였으나 원고들에게는 월 20만 원씩 지급하였다. 그밖에 원고들의 피고 회사에서의 호봉은 2012년 5월을 기준으로 그 이후 원고들에 대한 호봉 정기승급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고들은 피고가 원고들의 무기계약직 전환 후부터 원고들에 대하여 피고의 '취업규칙'을 적용하여 정규직 직원들과 같은 임금을 지급하여야 하는데도, 원고들을 기간제근로자와 같이 취급하여 위와 같이 처우한 것은 위법한 차별행위로서 기간제법 제8조 또는 근로기준법 제6조의 규정에 반하여 무효라고 주장한다. 원심(대전고법 2015. 11. 26. 선고 2014나11589 판결)은 피고의 취업규칙 제2조(직원의 정의) 및 직제규정 제3조(직원)의 문언, 피고가 위와 같은 규정을 마련한 취지나 관행적 의미, 피고 소속 전체 근로자의 공통적인 의사 등을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들과 체결한 '고용계약서'는 원고들처럼 기간제에서 전환된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에 대하여 직접 적용되는 근로조건에 관한 준칙인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이후 원고들에게 근속수당을 미지급한 것과 자가운전 보조금의 일부를 미지급한 것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였다. Ⅱ. 대법원 판결의 내용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에 따라 무기계약으로 전환된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는,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 내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가 있을 경우 달리 정함이 없는 한 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구체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은 사용자가 기간제근로자를 2년을 초과하여 사용한 경우의 효과에 관하여 그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것만이 무효로 된다거나, 또는 근로계약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존 근로조건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식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② 기간제법 제8조 제1항의 규정 취지와 공평의 관념 등을 함께 고려하면,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의 근로조건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종 또는 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보다 불리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해석된다. ③ 기간제법의 목적, 관련 규정 체계와 취지, 제정 경위 등을 종합하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같은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이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이 사건에서 피고는 기간제법 시행 이후부터 원심 변론종결일에 이르기까지 원고들과 같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정하는 취업규칙을 별도로 마련한 바 없다. 한편, 원고들과 동일한 부서에서 같은 직책을 담당하며 근로를 제공하는 정규직 근로자와 비교하면, 업무 내용과 범위, 업무의 질이나 양 등 제반 측면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앞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되는 원고들에게는 동일한 부서 내에서 같은 직책을 담당하며 동종 근로를 제공하는 정규직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한 근로조건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Ⅲ.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은 기간제 근로계약의 남용을 억제하고 해당 기간제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사용자가 객관적 사유없이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한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에 대하여 기간의 정함 부분을 무효로 하여 무기계약직 전환이라는 효과를 부여하였다. 다만, 이 규정이 무기계약직 전환 후의 근로조건까지 기존 정규직 근로자와 동일화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법률에 의하여 고용형태뿐만 아니라 근로조건의 내용까지 강제로 정하는 것은 당사자의 계약자유 원칙을 중대하게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기계약직 전환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사용자와 그에 관한 별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즉, 정규직 취업규칙의 적용범위에 무기계약직 전환 근로자를 포함하거나 그 적용에 관한 당사자의 개별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피고는 정규직 취업규칙을 무기계약직에게 적용한 바가 없고, 원고들과 고용계약서를 작성하여 근로조건을 결정하였을 뿐이다. 무기계약직 전환 근로자에 대하여 별도의 취업규칙을 두고 있지 않는 경우에는 대법원 판결처럼 곧바로 정규직 직원의 취업규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종전 기간제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 중 기간의 정함을 제외한 나머지 근로조건, 즉 임금, 근로시간, 복무규율, 복리후생 등은 계속해서 그대로 적용된다(독일과 일본의 통설). 기간제근로자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더라도 그것이 법률상 당연히 피고의 정규직 직원으로 그 지위가 변경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에 관한 새로운 근로계약의 체결이 있어야 한다. 취업규칙은 반드시 사업 또는 사업장의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의 사업에서도 직군·직종별, 고용형태별로 복수의 취업규칙이 병존할 수 있다. 또한 명칭에 관계없이 전체 또는 특정 근로자집단에 적용될 근로조건에 관한 준칙을 정한 것이라면 일응 취업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공통적으로 작성되어 특정 근로자집단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표준근로계약서도 취업규칙으로 인정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피고는 원고들의 무기계약직 전환 이후에도 1~2년마다 작성된 '고용계약서'에 따라 해당 근로자를 처우하였는데, 이 계약서에는 근무 부서 및 업무 내용, 임금·수당 등 급여, 원고들의 의무, 근무시간 및 휴게시간, 휴일 및 휴가, 복리후생 등의 근로조건이 포함되어 있고, 이러한 급여의 기본적인 항목과 구성, 복무규율 등의 근로조건은 모든 '고용계약서'마다 동일한 내용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이 사건 '고용계약서'는 일종의 표준계약서이며 해당 근로자집단의 근로조건에 관한 준칙으로서 일률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므로 취업규칙으로 인정될 수 있다. 한편, 대법원은 기간제근로자에 대한 차별금지 원칙을 정한 기간제법 제8조 제1항이 무기계약직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취지로 설시하고 있다. 하지만 기간제법은 차별적 처우 금지 및 그 시정절차의 주체가 기간제근로자임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무시하고 동 규정을 무기계약직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은 법률을 거스른 해석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이와 달리 이 사건 원심판결은 무기계약직을 사업장내에서 근로자 자신의 의사나 능력발휘에 의해서는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분류라고 보고 이를 균등처우원칙을 정한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으나, 이 견해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사회적 신분'이란 장기간 점유되어 개인적 노력으로는 회피할 수 없을 정도로 고정화된 개인적 속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당사자의 사적자치(계약)에 의하여 형성된 고용상 지위에 대해서까지 사회적 신분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무기계약직에 대한 차별금지 또는 균등대우 원칙을 정한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헌법의 평등원칙과 민법상 신의칙에 기하여 노동법의 일반원칙으로서 균형처우 원칙을 도출할 수 있다. 즉, 사용자는 업무내용이나 임금·수당 등 근로조건을 정함에 있어서 공정한 재량권행사의 원칙에 따라 무기계약직의 근로조건을 다른 근로자집단의 그것과 비교해서 공정하게 처우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만약 사용자가 무기계약직과 같은 특정 근로자집단의 근로조건을 다른 근로자집단에 비하여 불리하게 정할 경우에는 그와 같은 차이가 어느 정도 합리적 사유에 의하여 정당화되어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구체적인 임금액 등 당사자 간의 개별 합의로 정하는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일반 균형처우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 박지순 교수 (고려대 로스쿨)
임금
기간제법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근로자
박지순 교수 (고려대 로스쿨)
2022-01-03
민사일반
증권발행시장에서의 전문가책임
[사안의 개요] 1. XX이쿼티는 M&A를 목적으로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된 회사로, 2009년 11월 상장회사인 주식회사 씨모텍의 최대주주로부터 지분과 경영권을 300억원에 매수하였다. XX이쿼티는 인수자금 대부분을 차입금으로 조달하였으나 자본금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공시하였다. XX이쿼티가 씨모텍의 이사회를 장악한 다음 씨모텍은 바로 약 300억원을 유상증자하였고, 다시 유상증자를 계획하여 2011년 1월 약 286억원을 유상증자하였다. 2차 유상증자 직후 씨모텍은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매매거래가 정지되고 상장폐지되었다. 그 과정에서 XX이쿼티의 실제 사주들이 1차 및 2차 유상증자 대금을 포함, 씨모텍의 자산에 대해 거액의 횡령, 배임행위를 하였음이 밝혀졌다. 씨모텍은 기업회생을 신청하였으나 결국 청산되었다. 2. 2차 유상증자 당시 D증권은 증권인수인으로서 증권신고서에 인수인 의견을 작성하였는데, 씨모텍의 최대주주 변경에 따른 경영불안 리스크를 언급하면서 특히 XX이쿼티의 인수자금 조달에 대하여 "전체 300억원에 대해서 30억원 자기자본과 270억원 외부차입금으로 조달하였음. 외부조달자금 270억원은 220억원이 자본금으로 전환되었고, 나머지 50억원에 대해서도 자본금으로 전환할 예정임"이라고 기재하였다. 그런데 XX이쿼티는 외부차입금이 전혀 자본금으로 전환되지 않은 상태였다. 금융감독원은 D증권에 대하여 기업실사과정에서 최대주주의 차입금의 자본금 전환여부를 등기부등본 등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관련자의 보고만 믿고 인수인 의견란에 사실과 다르게 기재하였다는 이유로 기관주의 및 과태료 5000만원을 부과하였다. 또한 증권선물위원회는 D증권에 대하여 과징금 4억여원을 부과하였다. [소송의 경과] 1. 2차 유상증자에 참여하였다가 손해를 본 186명은 2011년 10월 D증권을 상대로 증권관련 집단소송을 제기하였다. 집단소송에 대한 법원 허가를 거쳐 본안판결이 2020년 2월 27일 대법원에서 확정되었고, 2021년 5월 분배절차가 종료되었다. 2. 법원은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최대주주인 XX이쿼티의 자본금 전환 여부는 투자자들의 투자판단에 영향을 주는 중요사항에 해당한다고 보고, D증권이 법인등기부등본을 확인하지도 아니한 것은 증권인수인으로서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고 하여 D증권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한편, 집단소송으로 청구할 수 있는 총원의 범위는 2차 유상증자에 참여해 씨모텍 주식을 취득하여 매매거래정지일까지 계속 보유한 자로 한정하였다. 손해액은 발행가액(2390원)과 청산금(약 6원)의 차액을 총원의 보유주식수에 곱한 145억원이며, 법원은 손해분담의 공평을 이유로 D증권의 손해배상책임을 총 손해의 10%로 제한하였다. [평석] 1. 사안은 증권사기에 대하여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담당한 증권회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증권관련 집단소송으로, 실제 위법행위자들의 책임재산이 부족하여 인수인인 증권사에게 책임을 물었다. 거의 10년의 소송 끝에, 법원은 인수인 증권사가 책임이 있다고 하였으나, 286억원 유상증자에 9000여명이 참여한 증권사기에 대하여 인정된 손해액수는 145억원에 불과하고 증권사는 그 중 10%만 책임을 지게 되었다. 2. 이론적으로는 주식발행시장에서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모두 공시되면 투자자들이 이를 읽고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하여 증권사기꾼이나 경제성 없는 회사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투자자들은 스스로 판단을 하지 않고 증권시장의 여러 전문가들에게 기댄다. 재무정보에 대하여는 회계법인의 감사의견을, 공모주식의 가치와 위험에 대하여는 인수증권사의 의견을, 채무증권의 상환가능성은 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를, 구조화증권의 구조는 법무법인의 법률의견서를 믿고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가들이 발행시장의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수행하여 증권사기꾼의 시장진입을 사전에 걸러낼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반면, 문지기 역할을 제대로 못한 전문가들에게 지나치게 엄중한 책임을 물으면 전문가의 활동비용을 증가시켜 자본시장을 위축시키게 된다. 대상판결이 D증권에게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책임액수를 손해의 10%로 한정한 것은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고려한 것이다. 3. 대상판결은 손해배상액의 제한요소로 다음을 들었다. ① 손해의 상당 부분은 XX이쿼티 측의 씨모텍 자산에 대한 대규모 횡령, 배임행위로 인한 것이다. ② D증권이 XX이쿼티 측의 횡령, 배임행위에 관여하거나 알고도 방치한 것은 아니다. D증권이 기업실사 과정에서 주의를 소홀히 한 잘못이 있어도 손해 전부를 배상케 하는 것은 공평에 반한다. ③ D증권은 증권인수업무의 대가로 수수료 약 4억8000만원을 받기로 했고 씨모텍이 회생절차에 들어가 이 중 약 1억원만을 받았으며, 이 금액을 초과하는 과태료 및 과징금을 냈다. 그런데 D증권의 인수인으로서의 문지기책임은 이 사건 유상증자와 같은 증권사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실사를 철저히 하는 것이고 단순히 '인수인의 의견'에 잘못 기재한 책임만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는 90%의 책임을 면할 정도는 아니다. 증권사들이 사용하는 인수계약서에는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경우 책임을 발행인에게 전가하는 면책약정(indemnification)을 두는데, 상대적 이익비율(발행인의 공모금액과 인수증권사의 수수료수익의 비율)에 따라 책임을 분담하기로 하거나, 인수증권사는 수수료 금액을 한도로 책임을 진다고 정하기도 한다. 미국 SEC와 법원은 이러한 면책약정은 문지기책임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공서에 반하여 무효라고 본다. 이 점에서 책임감경이유로 D증권의 수수료 수익을 언급한 것은 아쉽다. 또한 D증권의 잘못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것을 감경사유로 인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4. 법원은 다양한 사건에서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증권소송이나 금융투자상품소송에서는 피해자에게 전혀 과실이 없는데도 또는 위반자의 행위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약한 사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책임 원칙'의 논리로 투자 액수가 크거나 투자대상이 복잡할수록, 위험한 투자대상에 투자할수록 책임제한비율이 커지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피고가 그러한 위험한 투자대상에 투자하도록 원고들을 위법하게 유인한 행위자 아닌가? 자기책임 원칙은 투자자가 애초에 인수하려고 한 위험을 넘어서까지 손해배상을 해 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 인수한다고 인식한 위험의 범위에 대해 피고가 사기를 친 경우에 적용될 것은 아니다. 또한, 증권의 유통구조상 다액의 피해에 불구하고 극히 일부 피해자들만 소를 제기하므로, 지나친 책임제한은 시장참여자들에게 위법행위를 해도 제한된 책임만 진다는 잘못된 인식을 준다. 전문가들에게 적극적으로 문지기 역할을 장려하려면 오히려 징벌적 손해배상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5.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원고들에게는 과실이나 손해방지가 가능한 지위가 전혀 인정되지 않는데도 손해액의 90%를 부담시켰다. 고의의 위법행위자가 별도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D증권에게 손해 전체를 배상하라는 것은 일견 형평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D증권이 부담하지 아니하는 손해는 위법행위자가 아니라 결국 피해자들이 고스란히 부담하는 결과에 비추어 볼 때, D증권의 입장이 아니라 전체의 맥락에서 형평에 대해 고민하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6. 마지막으로, 동일한 주식을 유통시장에서 취득한 자는 자본시장법의 특칙과 집단소송을 이용할 수 없어 배상을 받는 데에 한계가 있다. 사안에서 집단소송의 총원을 2차 유상증자 참여자 중 거래정지일까지 주식을 보유한 자로 한정하였는데, 거래정지일 이전에 주식을 처분한 자는 손해가 없으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러면 이 주식에 대한 손해는 누가 구할 수 있는가? 법원은 자본시장법 제125조의 특칙을 발행시장 취득자에게 한정하므로(대법원 2015. 12. 23. 선고 2013다88447판결 등) 전득자는 민법 제750조로 손해배상을 구해야 하는데, 유통시장 취득의 경우 증권신고서를 믿고 거래한 것이 아니어서 인과관계가 부정된다. 그러나 상장법인이 추가로 유상증자를 하는 경우 추가 유상증자분이 상장되면 기존 주식과 구분되지 않고 동일한 가격에 거래되므로, 추가 유상증자를 위한 증권신고서의 부실기재 내용은 해당 종목의 시장가격에 완전히 반영된다. 부실기재 발각 전 부양된 주가에 주식을 취득한 자들은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되는 투자자의 지위를 취득한 자로 볼 수도 있다. 전득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지 아니하면 위법은 있는데 아무도 배상을 못받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김연미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자본시장법
집단소송
주가조작
씨모텍
증권거래
김연미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2021-12-23
형사일반
공동 거주자 1인의 승낙을 얻어 주거에 들어간 행위가 다른 공동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 주거침입죄의 성립 여부
Ⅰ. 들어가며 불륜(혼외 성관계)의 목적으로 일방 배우자의 승낙을 받아 그 집에 들어간 경우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에 대해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종래 대법원 견해를 변경, 주거침입죄 성립을 부정하였다. 다수의견은 전체 판결문 90여 페이지 중 단 3페이지에 불과한 다소 기이한 판결이다. 그 결론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으며, 오히려 문제되는 구체적 사례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상세한 논증은 '공판알리미' 9월호(대구지검)에 실린 '공동 거주자 1인의 승낙을 얻어 주거에 들어간 행위가 다른 공동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 주거침입죄의 성부'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Ⅱ. 대법원 판결의 요지 피해자의 처(妻) A와 내연관계에 있는 남성 피고인이 불륜 목적으로 피해자의 집에 (A가 문을 열어 주어) 3회에 걸쳐 들어간 사안에서 다수의견은 ①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은 '사실상의 평온', ② '침입'은 '사실상의 평온을 해치는 행위 태양'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③ 공동 거주자는 상호간 법익이 일정 부분 제약될 수밖에 없음을 용인한 것이므로, 공동 거주자의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 방법'에 따라 들어갔다면 다른 거주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한다는 사정만으로는 사실상의 평온을 깨뜨린 것으로 볼 수는 없어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김재형 대법관의 별개의견은 보호법익을 주거권으로 보고, 침입은 주거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들어가는 것으로 보면서도 일방 공동 거주자의 승낙을 다른 공동 거주자가 용인하여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안철상 대법관은 외부인의 출입을 반대하는 공동 거주자가 그 주거 내에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다른 공동 거주자의 승낙을 용인하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같은 결론이다). 반면, 이기택·이동원 대법관의 반대의견은 종래 대법원 판례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공동거주자 중 한 사람의 승낙이 있더라도 다른 거주자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경우 그 거주자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해치는 결과가 되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 Ⅲ. 평석 1. 일방 배우자의 불륜을 위한 외부인의 출입은 다른 일방 배우자의 추정적 의사가 아닌, 명시적·묵시적 의사에 반하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거주자의 명시적·묵시적 의사에 반하는 경우에만 주거침입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일방 배우자의 불륜을 대비하여, 예컨대, 미리 '관계자 외(外) 출입금지'처럼 표시를 하거나, 배우자에게 (불륜을 예상하고) 사전에 '불륜 상대를 집에 들이지 말라'고 명시토록 요구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 하겠다. 2. 불륜을 위해 주거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로 다른 일방 배우자의 '주거의 사실상의 평온'은 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불륜을 위해 외부인이 들어와 거실, 주방, 욕실은 물론 내밀한 공간인 침실에 이르기까지 누빈(?) 사실을 알았다면 통상적인 출입 방법이라 하여 그 주거의 평온이 유지된 것인지 의문이다. 사실상의 평온은 현실적 평온뿐만 아니라 잠재적 평온(기대되는 사실상의 평온, 안철상 대법관 표현으로는 심리적 평온)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거주자 현존 여부 불문 그의 평온은 침해될 수 있고, 따라서 빈 집에 '평온하게' 들어가는 것도 주거침입이 됨을 설명할 수 있다. 3. '침입'의 의미는 거주자의 의사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다수의견은 거주자의 의사에는 반하지만 평온하게 들어간 경우 주거침입죄 성립을 부정하게 되는데, ① 평소 자유롭게 드나들던 사람이라도 집주인은 언제든 그 출입을 허락하지 않을 자유가 있고, ② 외부인이 (특히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들어오는 것까지 수인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③ 빈 집에 통상적인 방법으로 평온하게 들어가는 경우에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점에서 '침입'은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여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사실상의 평온을 침해하는 태양'으로 침입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일반인은 물론, 법조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개념은 지나치게 불명확하다. '침입' 여부는 거주자의 의사에 따라야 하고, 그것이 사회통념상 사실상의 평온을 깨뜨렸는지 여부는 법률적·규범적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공동 거주자의 일상생활의 경험칙상 사회상규의 범위 내라면 다른 공동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주거침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부부 일방이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을 집에 초대하는 것이나, 처(妻)가 부부간 불화 중 시댁 식구들의 출입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시댁 식구들이 남편 허락을 받아 집에 들어가는 것 등은 사실상의 평온을 깨뜨린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4. 범죄 목적 또는 그에 준하는 가벌성 있는 행위에 대한 처벌 공백이 생긴다. 목적이 불순하면 대체로 거주자의 의사에 반한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해석이며, 그 의사에 반한 침입은 대체로 주거의 사실상의 평온을 해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범죄의 목적으로 타인의 주거 등에 들어가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종래 통설과 판례, 일본 판례). 다수의견에 따르면, 범죄 목적 침입 시 목적된 범죄를 실행하지 못한 경우 주거침입으로도 처벌할 수 없게 되어 처벌의 공백이 발생한다. 범죄는 아니라도 공동 거주자의 명백한 의사에 반하여 들어가 사실상 평온을 깨뜨릴 수 있는 경우도 가벌성이 있다(일본 판례도 주거침입죄 성립을 인정). 예컨대, ① 불륜의 증거를 잡으려고 타인의 주거에 들어간 경우(판례상 인정되었음). ② 룸메이트를 왕따시키려고 다른 일방 룸메이트의 동의를 얻어 집안에 들어가 몰카를 설치한 경우, ② 학생이 교사의 승낙을 얻어 교무실에 들어와 시험문제 답을 모두 암기하여 돌아가 암기한 내용으로 시험을 치른 경우 등도 가벌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5. 주거침입죄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된다고 볼 수 없다. 범죄 목적 또는 거주자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경우를 침입의 기준으로 삼더라도 이에 대한 입증책임이 검사에게 있고, 그것이 규범적으로 사회통념상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 국민의 기준에서) 사실상 평온을 침해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통계상 2019년 한해 전체 범죄 발생 건수는 176만7684건임에 반해 주거침입 범죄 발생 건수는 1만7181건(0.97%)에 불과(이 중 공동거주자 일방의 승낙만을 받고 다른 일방의 의사에 반하여 침입한 사례는 더욱 소수일 것이다)하다. 과연, 가벌성의 범위가 부당하게 확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6. 공동 거주자의 법익 보호 비교형량에 실패하였다. 공동 거주자 일방의 권리가 제한될 수 있음을 용인하거나, 어느 일방의 권리가 우선할 수 없다는 논리는 통상적인 공동생활에 적용되는 것일 뿐이다. 사회통념상 허용된 범위를 넘는 경우에까지 적용된다고 보면 이는 수인한계를 넘는 것이다. 특히 부부 사이는 배우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자의적으로 주거 내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으며, 특히 가정 내 주거의 평온을 명백히 해친다고 볼 만한 경우까지 부부 일방이 용인하여야 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별개의견은 남편 허락으로 집에 들어온 친구를 처(妻)의 의사에 반한다고 하여 처벌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하나, 종래 대법원도 이러한 경우까지 처벌하는 취지가 아닐 뿐만 아니라, 불륜을 목적으로 집에 들어온 외부인을 용인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오히려 상식에 맞지 않는다). 불륜을 저지르면서 그 와중에 상대방의 집까지 들어오는 극소수의 사람과 하루하루를 가정에 충실하면서 생활하는 대다수의 사람들 중 누구를 더 보호해야 하는가? 의문의 아닐 수 없다. 7. 사회통념,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 국민의 법감정에 반하는 해석이다. 일반인들에게 "누가 당신 배우자랑 바람을 피우려고 집에 들어왔다면 나쁜 짓이긴 해도 그것이 당신 주거의 사실상의 평온을 해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한다면 이를 수긍할 일반 국민들이 과연 있을까? 필자도 이 사건과 같은 상황을 실제로 직접 경험한다면 "내 사실상의 평온은 그대로 유지된 것이니, 주거침입 고소는 어렵고, 손해배상이나 위자료나 많이 받으면 되겠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8. 퇴거불응죄와의 관계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다수의견(또는 별개의견)은 일방의 승낙이 있으면 현존하는 다른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주거침입을 부정하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에 따르면, 주거 내 현존하는 거주자가 명시적으로 퇴거를 요구한 경우 그 거주자의 사실상 평온은 이미 깨어진 상황임에도 불구, 이에 불응하더라도 퇴거불응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Ⅳ. 맺으며 다수의견은 이 판결로 인하여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의문들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며, 어느 범위에서 종전 판례가 변경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아 향후 혼란이 예상될 뿐이다. 처벌 범위를 오히려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가벌성 있는 행위조차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러한 행위로 처벌받는 사람이 극소수임에도,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예전에는 주거침입으로 처벌되지 않기 위해 그나마 은밀하게 자행되었지만)로 적발된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이제는 당당하게 이를 저지르게 하면서까지 지금도 가정을 지키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의 사실상의 평온'을 깨뜨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결론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이 사건 주임검사가 되었을 때 "대법원 판례가 있으니 기소할 수 없다"면서 과감히 불기소결정서를 쓸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다. 백승주 부장검사 (대구지검 공판제1부)
주거침입
주거침입죄
내연녀
불륜남
유부녀
백승주 부장검사 (대구지검 공판제1부)
2021-10-21
국가배상
'보안업무규정(대통령령)'에 의한 신원조사는 위법
1. 사실관계 및 대상판결 가. 원고는 영국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여권발급신청을 하였다가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로부터 신원조사 회보가 늦어져 출국할 수 없었음을 이유로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원고는 해외여행자에 대한 신원조사를 규정한 보안업무규정 제31조 제2항 제3호는 모법인 안기부법에 근거가 없거나 그 위임범위를 일탈하였으므로 위 규정을 근거로 신원조사를 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하였으나, 서울지방법원은 1997년 5월 9일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고(96가합60720), 서울고등법원은 1998년 2월 5일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97나23480). 나. 대법원은 2000년 12월 8일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는데(98다12041 판결, 이하 '대상판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구 안기부법(1999년 1월 21일 개정되기 전의 것) 제3조 제1항 제1호, 제2항, 구 보안업무규정(1999년 12월 7일 대통령령 제1660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1조 제1항, 제2항 제3호 등에 의하면, 해외여행자에 대한 신원조회(신원조사의 오기로 보인다) 업무는 구 안기부가 법률에 근거하여 담당하던 고유업무의 하나로서 구 보안업무규정 제31조 제1항이 모법의 근거가 없다거나 그 위임의 범위를 일탈하였다고 볼 수 없다. 2. 관련 법리 가. 헌법 제14조는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거주·이전의 자유에는 국내에서의 거주·이전의 자유 이외에 해외여행의 자유가 포함된다(대법원 2008. 1. 24. 선고 2007두10846 판결). 나.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등을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고(헌법 제37조, 법률유보원칙),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헌법 제75조, 포괄위임금지원칙). 법률의 시행령은 모법인 법률에 의하여 위임받은 사항이나 법률이 규정한 범위 내에서 법률을 현실적으로 집행하는 데 필요한 세부적인 사항만을 규정할 수 있을 뿐, 법률에 의한 위임이 없는 한 법률에 규정되지 아니한 새로운 내용을 규정할 수는 없다. 법률의 위임 없이 법률이 정하지 아니한 내용을 규정한 시행령 조항은 그 자체로 무효이며, 이와 같이 무효인 시행령 조항에 기초한 행정처분은 그 법적 근거를 상실하여 위법하다(대법원 전원합의체 2020. 9. 3. 선고 2016두32992, 대법원 전원합의체 2015. 8. 20. 선고 2012두23808 등). 3. 구 안기부법 등의 내용 및 관련 비판 가. 대상판결에서 언급한 구 안기부법과 구 보안업무규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 위 가.의 규정에서 보듯이 구 보안업무규정은 신원조사에 관하여 규정하였으나, 구 안기부법은 신원조사에 관하여 전혀 규정하지 않았고 대통령령에의 위임규정도 두지 않았다. 이것은 법률인 국정원직원법(제8조의2)에서 국정원직원에 대한 신원조사를 규정하고 절차 등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는 것과 명확히 구별된다. 다. 대상판결과 달리, 다수의 견해는 보안업무규정의 신원조사 규정이 모법의 근거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① 국회입법조사처는 현행 법률체계를 살펴보면, (공무원 임용예정자에 대한) 신원조사제도를 명시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으며, 신원조사제도의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회를 통과한 법률에 정하여야 하는데 행정규칙에서 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상 기본권제한의 법률유보원칙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이슈와 논점, 2015년 8월 7일). ② 국가인권위원회는 대상판결을 언급하고도, 국가정보원법은 신원조사 제도에 대한 명시적 위임 근거를 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보안업무규정'에 따른 신원조사 제도 개선 권고, 2018년 12월 27일). ③ 송준종 변호사는 대상판결을 언급하고도, 신원조사는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였다(국가인권위회, '신원조사제도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청문회' 자료집, 2005년 1월 18일 27면). 4. 보안업무규정에 의한 신원조사는 위법 가.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신원조사를 받아야 하고 받지 않으면 해외여행을 할 수 없으므로, 신원조사는 해외여행의 자유를 제한한다. 나. 해외여행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구 보안업무규정에 의한 신원조사에 관하여는 구 안기부법에 신원조사에 관한 근거 규정도 없고, 대통령령에의 위임규정도 없다. 다. 따라서 법률의 위임 없이 법률이 정하지 아니한 신원조사를 규정한 구 보안업무규정의 신원조사 규정은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어 그 자체로 무효이며, 무효인 보안업무규정에 기초한 신원조사는 그 법적근거를 상실하여 위법하다. 5.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가. 대상판결에는 위 1. 나.와 같이 판시한 근거 내지 이유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마치, 음주를 하고(법률에 위임 규정을 두고) 운전을 해야(대통령령에 규정해야) 음주운전이 되는데(위법하지 않은데), 음주를 하지 않았음에도(법률에 위임 규정이 없음에도) 운전을 하였으므로(대통령령에 규정하였으므로) 음주운전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것과 유사하며, 납득하기 어렵다. 위 4.에서 본 바와 같이 구 보안업무규정에 의한 신원조사는 위법이므로, 대상판결은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를 인용하였어야 할 것이다. 나. 대상판결은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등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동안 학문적 비판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필자도 열람·복사 청구를 하여 대상판결을 입수하였다). 대상판결은 보안업무규정에 의한 신원조사의 법률적 근거 유무에 관한 유일한 판결로 보이고 선례적 가치가 충분하므로 마땅히 공개되어야 한다. 다. 국정원은 대상판결을 보안업무규정에 의한 신원조사가 법률적 근거가 있다는 점에 대한 근거로 계속 이용하고 있다. 국가인권위회의 위 청문회(2005년 1월 18일)에서, 국정원은 대상판결을 신원조사의 법적근거로 주장하였다(위 청문회 자료집, 3면). 2020년 12월 31일 보안업무규정이 개정되었다(대통령령 제31354호). 개정 과정에서 국정원의 입법예고에 대해,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보안업무규정의 신원조사 규정은 위법이므로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미반영으로 회신하면서 국정원의 신원조사 업무는 대상판결 등을 통해 합법적인 업무로 인정받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라. 대한민국 모든 판사들은 임용되기 직전에 신원진술서를 작성·제출하여 국정원의 신원조사를 받아야 한다. 이 신원진술서를 토대로 존안자료가 작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1997년 3월 17일 기사의 '공무원은 임용 순간부터 존안자료 기록이 시작된다'는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 그리고 이와 같이 작성·업데이트된 존안자료가 이후 판사를 포함한 공무원들에게 국정원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위 한겨레 기사의 "안기부 전직 실장급 간부는 '존안자료야말로 안기부가 가진 힘의 실질적 원천이다'고 말한다"는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 결국 국정원이 영향력을 행사하여 대상판결을 비공개로 함으로써 학문적 비판은 피하면서, 신원조사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을 받을 때는 대상판결을 국정원에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 대상판결은 그보다 약 20년과 15년 이후에 선고된 위 2016두32992, 2012두23808 전원합의체판결 등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변경(폐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2016두32992 판결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이 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고 이를 시행령에 위임하는 명문의 규정도 두고 있지 않음에도, 법외노조 통보를 규정한 노동조합법 시행령이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어 그 자체로 무효라고 판시하였고, 2012두23808 판결도 유사하다. 6. 결어 '보안업무규정(대통령령)'에 의한 신원조사는 위법하다. 대상판결은 더 이상 원용되지 않아야 하며, 공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무효인 보안업무규정의 신원조사규정을 즉시 삭제해야 한다. 엄기섭 변호사 (법무법인 동인)
여권
신원조사
출국
국가배상
엄기섭 변호사 (법무법인 동인)
2021-10-14
민사일반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의 소송요건
I. 사건의 개요 및 경과 소외 1은 2010년 8월 15일 건국훈장 4등급 애국장 포상대상자로 결정되었다. 소외 1의 자녀로는 장남 소외 4, 장녀 소외 2, 차녀 소외 5가 있었다. 장남 소외 4와 그의 배우자 및 자녀들, 차녀 소외 5와 그의 배우자는 위 포상대상자 결정일 이전에 모두 사망하였고, 소외 5의 자녀로는 소외 6이 유일하게 생존해 있었다. 원고는 소외 4의 손자이자 소외 1의 증손자이다. 소외 6은 2010년 8월 30일 광주지방보훈청장에게 소외 1의 손자로서 구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2012. 2. 17. 법률 제1133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이라고 한다)에 따른 독립유공자 유족 등록신청을 하였다. 광주지방보훈청장은 2011년 11월 24일 소외 6을 독립유공자 선순위 유족으로 등록하는 결정을 하였다. 한편 소외 3은 2011년 11월 25일 광주지방보훈청장에게 자신이 소외 1의 장녀 소외 2의 자녀로서 소외 1의 손자녀 중 선순위자라고 주장하면서 독립유공자 유족등록신청을 하였으나, 광주지방보훈청장은 2011년 11월 30일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소외 3은 광주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독립유공자등록거부취소의 소를 제기하여 전부 승소판결을 받았다. 위 판결은 이후 항소 및 상고를 거쳐 그대로 확정되었다. 원고는 검사를 상대로 소외 1과 소외 2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제1심법원은 소외 1과 소외 2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은 원고에게 당사자적격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원고의 소를 각하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내용 대상판결에서는 원고가 소외 1과 친족관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 되었다. 다수의견은 종전의 판례와 달리, 민법 제777조 소정의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법률상 이해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별개의견은 판례 변경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다수의견과 같이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의 원고적격을 엄격하게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Ⅲ. 분석 및 검토 1. 판례 변경의 배경 민법 제865조는 '다른 사유를 원인으로 하는 친생관계존부확인의 소'라는 표제 아래, 제1항에서 "제845조, 제846조, 제848조, 제850조, 제851조, 제862조와 제863조의 규정에 의하여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자는 다른 사유를 원인으로 하여 친생자관계존부의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제865조가 인용하고 있는 민법의 조문들은 대부분 친자관계의 당사자 또는 그의 직계존속·직계비속에 대하여 원고적격을 인정한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제3자가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게 되는 경우는 제862조의 '이해관계인'이 유일하다. 이해관계인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친자관계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친생자관계에 관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지거나 넓어질 수 있다. 종전의 판례는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의 원고적격을 판단할 때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달리 취급하여 왔다. 제777조 소정의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는 그와 같은 신분관계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소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하여, 소송요건의 문턱을 낮추어놓았다(대법원 1981. 10. 13. 선고 80므6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8. 10. 20. 선고 97므1585 판결). 반면 그러한 친족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하여는 친생자관계 존부의 확정판결에 의해 특정한 권리를 얻거나 특정한 의무를 면하게 되는 등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어야만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하여, 소송요건의 문턱을 높여놓았다(대법원 1976. 7. 27. 선고 76므3 판결; 대법원 1990. 7. 13. 선고 90므88 판결). 제777조에서 정한 친족이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었던 구 인사소송법이 폐지된 뒤에도 위와 같은 판례의 태도는 유지되었다(대법원 2004. 2. 12. 선고 2003므2503 판결).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제777조 소정의 친족이 그와 같은 신분관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본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였다. 이 점에 관하여는 별개의견도 견해를 같이하였다. 이러한 대상판결의 결론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종전 대법원 판례의 근거가 되었던 구 인사소송법 제35조 및 제26조는 폐지되었고, 그밖에 제777조 소정의 친족을 달리 취급할 근거는 희박하기 때문이다. 2.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에 관한 '이해관계'의 내용과 정도 이 사건의 원고는, 소외 1과 소외 2 사이의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게 되면 자신이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에 따른 독립유공자의 유족으로 등록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여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원고의 기대와 달리, 위와 같은 확인을 받더라도 원고는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등록될 수 없었다.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에서 요구되는 이해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아가 이 사건의 원고에게 그러한 이해관계가 인정될 수 있는지를 두고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다수의견은 제865조의 이해관계인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친생자관계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판결이 확정됨으로써 일정한 권리를 얻거나 의무를 면하는 등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원고는 소외 1과 소외 2 사이의 친생자관계에 관하여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별개의견은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 판결을 통해 잘못된 가족관계등록부의 기재를 바로잡아야 할 법률상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이 있어야' 이해관계인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별개의견은 원고적격을 판단하는 단계에서 원고가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에 따라 독립유공자의 유족으로 등록될 수 있는지를 엄격하게 심리할 것은 아니고, 판결 결과에 따라 독립유공자 유족 등록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면 이해관계인으로서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추상적인 법리 차원에서 보면, 다수의견이 말하는 '법률상 이해관계'와 별개의견이 말하는 '법률상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 사이에 큰 차이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판단 기준을 실제로 적용하는 국면에서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은 큰 차이를 보였다. 다수의견은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의 결과에 따라 원고의 법적 지위가 달라질 수 있는 정도의 확실하고 중대한 이해관계를 요구하였다. 반면 별개의견은 소송의 결과가 원고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연성 내지 가능성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보았다. 필자는 다수의견이 별개의견보다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확인의 이익의 일반 이론에 비추어, 이해관계인은 사실상의 이해관계 혹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지는 사람이라고 해석하여야 한다. 또한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의 심리가 친자관계 당사자에게 미칠 수 있는 불이익한 영향을 고려하면, 이해관계의 의미를 더욱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별개의견이 제시한 판단 기준에 따르면,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에서 확인의 이익 요건이 소송요건으로서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에서는 해당 친생자관계의 존부에 관하여 친자관계의 당사자 사이, 혹은 그 소송의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있을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이에 더하여 별개의견과 같이 그 소송의 결과가 원고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다소 불확실한 개연성만으로 확인의 이익을 긍정하게 되면, 확인의 이익이 없어 소가 각하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입해 보면, 다수의견의 타당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사건에서 소외 2가 소외 1의 친생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더라도, 그 결과 원고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거의 없다. 어차피 원고는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등록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소외 1과 소외 2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는다고 하여, 원고가 부양의무를 면하게 된다거나 상속관계에서 유리하게 된다는 등의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친자관계의 당사자인 소외 1과 소외 2는 이미 사망하였고, 원고는 소외 1의 증손자에 불과하다. 소외 1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바로잡고자 하는 원고의 희망이 '법률상 이해관계' 혹은 '법률상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에 이른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원고에게 이해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소를 각하한 다수의견의 결론에 찬성한다. 이소은 임상교수(서울대 로스쿨)
친족관계
친생자관계존부확인소송
민법
친생자관계
이소은 임상교수(서울대 로스쿨)
2021-09-23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계약의 해약으로 지급받은 선박선수금이자가 외국법인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는지 여부
I. 대상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의 요지와 처분의 경위 국내조선사들은 2007년 5월경부터 2011년 1월경까지 외국선주사들로부터 총 12척의 선박건조를 도급받는 계약(이하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는데, 위 계약에는 외국선주사들은 선박건조 완료 전에 국내조선사들에게 선박대금 일부를 선수금으로 지급하고, 국내조선사들은 자신들의 사유로 계약이 종료되면 외국선주사들에게 선수금 및 그에 대한 연 6~7%의 이자를 환급하여야 하며, 그 경우 쌍방의 상대방에 대한 모든 의무 및 책임이 면제되고 준거법은 영국법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원고는 국내금융기관으로서 2007년 7월경부터 2011년 3월경까지 위 국내조선사들의 외국선주사들에 대한 선수금 및 그 이자의 지급채무를 보증하였다(이하 '이 사건 보증계약'이라고 한다). 그 후 외국선주사들은 국내조선사들의 선박인도 등이 지연되자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을 해제하였고, 원고는 2009년 6월경부터 2011년 7월경까지 외국선주사들에게 국내조선사들이 수령한 선수금과 그 이자(이하 '쟁점 선수금' 및 '쟁점 선수금이자'라고 한다)를 지급하였다. 피고는 쟁점 선수금이자가 구 법인세법(2011년 12월 31일 법률 제1112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93조 제10호 (나)목 및 구 법인세법 시행령(2010년 12월 30일 대통령령 제22577호로 개정된 것) 제132조 제10항 등(이하 '쟁점 조항'이라고 한다)이 규정하는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는데도 원고가 그에 대한 원천징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고에게 2009 내지 2011 사업연도 원천징수법인세 및 이에 대한 가산세를 징수·부과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쟁점 조항이 국내원천 기타소득으로 규정하는 '재산권에 관한 계약의 위약 또는 해약으로 인하여 지급받는 손해배상으로서 그 명목 여하에 불구하고 본래의 계약내용이 되는 지급자체에 대한 손해를 넘어 배상받는 금전 또는 기타 물품의 가액'에 관하여 재산권에 관한 계약의 위약 또는 해약으로 인하여 지급받는 위약금과 배상금이 계약상대방의 채무불이행 등으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의 실제 감소액에 대한 배상으로서 순자산의 증가가 없는 경우에는 '본래의 계약내용이 되는 지급자체에 대한 손해'에 해당하여 이를 기타소득으로 볼 수 없지만, 이를 초과하여 위약금과 배상금을 지급받았다면 이는 손해의 전보를 넘어 새로운 수입이나 소득을 발생시키므로 국내원천 기타소득으로서 과세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다음, 쟁점 선수금이자는 외국선주사들이 선수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통상 부담하게 되는 금융비용과 계약체결 과정에서 지출하게 된 비용 등에 대한 전보로서 지급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선박대금 선지급에 따라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의 합리적인 범위 내에 있으므로 쟁점 선수금이자는 외국선주사들이 실제로 입은 손해를 회복시키는 손해배상금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평석 1. 문제의 소재와 이 사건 쟁점 전세계소득에 대해 납세의무를 부담하는 내국법인과 달리 외국법인은 법인세법에서 규정하는 국내원천소득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납세의무를 부담한다. 구 법인세법 제93조는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의 종류를 열거하고 있는데, 그 중 쟁점 조항은 재산권에 관한 계약의 위약 또는 해약으로 인하여 지급받는 손해배상으로서 본래의 계약내용이 되는 지급 자체에 대한 손해를 넘어 배상받는 금전을 국내원천 기타소득으로 규정하고 있다. 쟁점 선수금이자는 선박건조계약에 따라 수령한 선수금을 반환하는 경우에 가산하여 지급되는 금액으로서 쟁점 선수금이자가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하여 그 소득의 지급자인 원고가 원천징수의무를 부담하게 되므로 쟁점 선수금이자가 쟁점 조항의 외국법인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쟁점이 된다. 2. 선박건조계약과 선수금이자의 성격 선박건조에는 장기간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통상 선주사는 선박의 자산가치 등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여 조선사에게 선수금을 지급하는데, 선박건조 과정에서 일정한 문제가 생기면 조선사는 선수금을 반환하여야 한다. 선수금반환의무는 조선사의 요청을 받은 금융기관이 외국선주사와 선박선수금환급보증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담보된다. 조선사와 금융기관은 선수금 반환시에 선수금이자를 가산하여 지급한다. 선수금이자는 선주사가 선수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선박금융비용 등과 연계되어 변동이율 등에 따라 산정된다. 선수금과 선수금이자가 반환되면 선박건조계약상 당사자들은 모두 면책된다. 3.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의 의미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재산권에 관한 계약의 위약 또는 해약으로 지급받는 손해배상금이어야 한다는 '해약배상 요건' 및 본래의 계약내용이 되는 지급 자체에 대한 손해를 넘어 배상받는 금전이어야 한다는 '초과배상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대법원은 외국법인이 고등훈련기 양산참여권의 포기대가로 금전을 받은 사안에서, 위 금전은 해약배상 요건을 충족하고 외국법인 장차 양산사업에 참여하였을 경우 얻은 기대이익에 대한 배상금이므로 초과배상 요건도 해당하여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7두19447 판결).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은 소득세법에서 기타소득으로 규정하는 위약금, 배상금과 거의 동일하게 정의되어 있다(소득세법 시행령 제41조 제8항). 헌법재판소는 위 초과배상에 관하여 계약상대방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의 실제 감소액(적극적 손해)을 넘는 것, 즉 채무가 이행되었더라면 얻었을 재산의 증가액(소극적 손해)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헌법재판소 2010. 2. 25. 선고 2008헌바79 전원재판부 결정). 대법원은 이행지체로 인한 변제기 이후의 지연손해금은 기타소득에 해당하지만(대법원 1997. 3. 28. 선고 95누7406 판결) 법정해제나 약정해제권의 행사에 따른 민법 제548조 제2항의 법정이자는 기타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고(대법원 2014. 12. 11.자 2014두41145 판결), 매매계약의 합의해제에 따라 기지급 금액을 넘는 금원을 지급받는 사안에서는 구체적 내용에 따라 현실적 손해 보전의 경우인지를 따져 기타소득 해당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10두11979 판결, 대법원 2018. 5. 30. 선고 2018두33470 판결). 대법원은 초과배상 요건에 관하여 일의적 잣대를 택하지 않고 사안에 따라 순자산 증가 여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4. 쟁점 선수금이자가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는지 여부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의 준거법인 영국법에 따르면 쟁점 선수금이자는 영국법상 손해배상예정을 의미하는 Liquidated Damages로서 쟁점 선수금과 그 이자를 환급하는 경우 국내조선사들은 외국선주사들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이 면제되므로 '해약배상'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다툼이 없는 반면 '초과배상' 해당 여부에 대해서는 긍정설과 부정설이 대립하고 있다. 긍정설은 외국선주사들은 선박건조계약의 해제로 인하여 국내조선사들에 지급하였다가 돌려 받지 못한 쟁점 선수금 자체의 적극적 손해는 원고로부터 쟁점 선수금 상당액을 지급받으면서 배상받은 것이지만 쟁점 선수금이자는 외국선주사들이 쟁점 선수금을 다른 곳에 사용하지 못하여 입게 되는 이자 상당액의 소극적 손해를 배상하기 위하여 지급된 것이므로 쟁점 선수금이자는 지급자체에 대한 손해를 넘어서는 금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부정설은 일반적인 선박금융구조에 비추어 쟁점 선수금이자는 외국선주사들이 쟁점 선수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부담하는 금융비용 등을 전보하기 위한 금원으로 실제로 입은 손해는 넘어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발생한 순자산감소를 회복시키는 것이고 가사 쟁점 선수금이자 중 재산상 감소액을 초과하여 손해를 배상하는 금액이 포함되어 있어 이를 기타소득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입증책임은 과세관청이 있으므로 피고가 이를 특정하여 입증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 처분 전부가 위법하다는 것이다. 대상판결의 입장이기도 하다. 5.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대상판결은 선박건조계약의 해제에 따라 원고가 외국선주사들에게 지급한 쟁점 선수금이자가 외국선주사들의 순자산 감소를 회복시키는 손해배상금으로서 초과배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최초의 선례이다. 쟁점 선수금이자의 기타소득 해당 여부를 외국선주사들과 국내조선사들 사이의 거래를 포함하여 선박금융 과정에서 체결되는 모든 거래를 고려하여 원천납세의무자에 해당하는 외국법인의 순자산 증가의 관점에서 쟁점 선수금이자의 성격을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소득과세원칙에 입각하여 국내원천 기타소득의 법리를 발전시켰다고 평가된다. 또한, 절차적 측면에서 쟁점 선수금이자가 외국법인의 순자산을 증가시켰다는 점에 대한 입증책임이 과세관청에 있다고 판단한 부분도 입증책임원칙에 충실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 선박금융의 구조에 비추어 쟁점 선수금이자는 일응 순자산감소에 대한 전보로 파악할 수 있지만 유사사건에서는 순자산감소에 대한 회복여부와 입증의 문제는 구체적 사정을 들여다 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대상판결의 논거와 결론에 동의한다. 백제흠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인세
원천징수
기타소득
외국법인
백제흠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2021-06-28
행정사건
재량통제와 직권탐지주의
Ⅰ. 사건의 개요 원고는 가축분뇨를 저장탱크에 일시 저장한 후에 위탁업체가 이를 수거하는 방식으로 가축분뇨 배출시설 설치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이를 가축분뇨를 해당 시설에서 완전히 분해하여 배출하는 방식의 '액비화 처리시설(이하 '이 사건 시설'이라 한다)'을 설치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원고는 가축분뇨 처리를 위한 이 사건 시설 등 공작물을 추가로 설치하기 위하여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이라 한다) 제56조 제1항에 따라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피고 행정청은 이 사건 시설이 ○○저수지와 인접하여 수질오염의 우려가 있고 인근 주민들에게 악취 등 피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이유로 원고의 개발행위허가 신청을 거부(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하였다. 이에 대해 원고는 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원심은 이 사건 처분에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하였다(광주고법 2020. 9. 25. 선고 2019누12288 판결).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를 원심법원에 환송하였다. Ⅱ. 판결 요지 '환경오염 발생 우려'와 같이 장래에 발생할 불확실한 상황과 파급효과에 대한 예측이 필요한 요건에 관한 행정청의 재량적 판단은 그 내용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여하였다거나 상반되는 이익이나 가치를 대비해 볼 때 형평이나 비례의 원칙에 뚜렷하게 배치되는 등의 사정이 없는 한 폭넓게 존중하여야 한다. 그리고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였다는 사정은 그 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자가 주장·증명하여야 한다. Ⅲ. 평석 1. 문제의 소재 대상판결은 재량통제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주고 있다. 대법원은 법률의 구성요건에 규정된 불확정개념을 근거로 재량행위를 판단하고 있으며,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대한 증명책임을 원고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환경이익의 중요성을 고려한 판단은 이해되지만, 이 사건의 핵심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있다. 선행판례도 대체로 같은 입장이다(대법원 2019. 12. 24. 선고 2019두45579 판결; 대법원 2017. 3. 15. 선고 2016두55490 판결 등).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재량행위의 특성과 환경이익의 우월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허가신청의 거부에 대한 권리구제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2. 개발행위허가의 법적 성질과 재량행위의 논증방식 대상판결은 국토계획법상 개발행위허가를 '재량행위'로 보고 있다. 그 논거로 허가기준 및 금지요건이 불확정개념으로 규정된 부분이 많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개발행위는 건축물의 건축 또는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등이 대부분이다. 국토계획법 제58조는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행정청은 상대방의 신청이 이러한 기준에 적합한지를 심사하여 개발행위허가를 발급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소위 '요건재량설'을 따른 인상을 주고 있지만, 이러한 논거는 적절하지 않다. 국토계획법상 개발행위허가는 사회적으로 유해한 행위를 억제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예외적으로 면제하는 '예외적 승인(Ausnahmebewilligung)'에 해당한다(상론은 졸저, 한국행정법론, 법문사, 2020, 120면 참조). 예외적 승인은 재량행위에 해당한다. 예컨대 개발제한구역 내의 개발행위허가가 여기에 해당한다(대법원 2004. 3. 25. 선고 2003두12837 판결). 판례는 이를 '예외적 허가'라고 부르고 있다. 재량행위와 재량하자에 관한 이론은 오래전에 한국행정법에 도입되었으나,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자유재량과 기속재량의 구분은 19세기 독일의 고전학파 이론에서 연유하고 있다(Otto Mayer, Deutsches Verwaltungsrecht, Bd. I, 3. Aufl., S. 99 f.). 이러한 이론은 일본을 거쳐 도입된 것인데, 이를 한국 행정법의 고유한 이론으로 보는 것은 오해이다. 판례는 다행히 '재량행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 '기속재량'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독일에서는 '결정재량'과 '선택재량'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Maurer/Waldhoff, Allgemeines Verwaltungsrecht, 19. Aufl., § 7 Rn. 7). 판례 중에는 '선택재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경우도 있다(대법원 2015. 11. 19. 선고 2015두295 전원합의체 판결). 이러한 용어 사용이 독일 학설의 입장을 반영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판례에서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재량 구분을 도입하는 것은 재량통제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법리를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3. 재량하자의 판단과 직권탐지주의의 적용 대법원은 재량하자에 관한 치밀한 논증을 하지 않고 있다.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대한 증명책임을 원고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타당한가? 행정소송법 제26조는 직권심리주의(직권증거조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즉 "법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직권으로 증거조사를 할 수 있고, 당사자가 주장하지 아니한 사실에 대하여도 판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두고 대법원 판례의 주류는 대체로 변론주의의 예외로 이해하고 있다(대법원 1988. 4. 27. 선고 87누1182 판결; 대법원 2000. 3. 23. 선고 98두2768 판결 등). 그러나 일부 판례는 행정소송상 '직권탐지주의'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적도 있다(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두18035 판결). 행정소송은 민사소송과 달리 권리구제의 기능뿐만 아니라 행정의 적법성 통제의 기능을 수행한다(행정소송법 제1조 참조). 법원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관한 판단에 직권탐지주의를 적용하여 해당 처분의 위법 여부를 적극적으로 심사하여야 한다. 이는 변론주의가 적용되는 민사소송과 구별되는 점이다. 행정소송에서 당사자의 주장이나 사실 등에 의존하지 않고 직권탐지주의를 인정하는 것은 판결의 정당성 확보라는 공익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심은 원고가 가축분뇨 정화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원고의 신청을 거부하는 것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러한 거부처분이 수질오염 방지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도 유효·적절한 수단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피고는 이 사건 시설이 인근 마을의 농업용수 취수원과 관광자원 등으로 활용되는 ○○저수지와 불과 24m로 인접해 있으며, 시설이 노후되거나 시설 관리자가 무단방류하는 경우에는 회복하기 어려운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거부처분을 하였다. 대상판결은 개발행위허가 또는 그 거부에 대해 재량행위를 인정하는 법적 근거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법원은 해당 처분이 어떠한 재량하자에 해당하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판례는 대체로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하는지를 포괄적으로 심사하고 있다. 원고가 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거부처분의 재량권 일탈·남용을 주장하였다면, 법원은 원고가 주장하지 아니한 사실이라도 이에 대해 직권으로 증거조사를 해야 한다. 피고 행정청의 주장에 비추어 재량권의 행사는 존재하며, 재량권의 유월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재량권의 '남용(Mißbrauch)'이다. 재량권의 남용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재량의 수권 목적이 중요하다. 법률이 수권한 재량규정의 취지나 목적에 위배되게 재량권이 행사되었는지를 심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근거 법령에서 재량의 수권 목적을 검토해야 한다. 대상판례는 그러한 논증을 하지 않고 환경이익의 우월이나 재량의 성격 등을 포괄적인 근거로 삼아 원심을 파기하였다. 이 사건의 처분은 예컨대 국토계획법 제58조 제1항 제4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하천·호소·습지의 배수 등 주변환경이나 경관과 조화를 이룰 것"이라는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심사해야 한다. 이 사건의 시설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원심은 이 사건 시설이 기존의 수거 방식보다 환경상 위해 우려가 적다고 판단하였다. 액비화 처리 시설은 가축분뇨를 퇴비나 액비 등으로 자원화하고 자연순환농업을 활성화하여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이다. 이러한 시설이 주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기존 방식보다 환경상 위해를 더 크게 주는지는 구체적으로 검토되지 않았다. 대상판결은 이 부분에 대한 논증도 충분히 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시설의 입지나 무단방류의 가능성만을 고려하고 있을 뿐이다. 요컨대 대상판결은 개발행위허가의 성질을 먼저 규명하고 재량행위를 논증하여야 하며,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대한 심사를 원고의 증명책임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직권탐지주의를 적용하여 그 위법성을 적극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향후 재량행위에 대한 사법심사에 발상(發想)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남철 교수(숙명여대 법학부)
가축분뇨
저수지
악취
수질오염
환경오염
정남철 교수(숙명여대 법학부)
2021-05-27
민사일반
후순위저당권자는 소멸시효 원용할 수 없는가?
[사실관계]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이번 평석이 필요한 한도에서 간추리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A는 B에 대한 대여금채권의 담보로 B 소유의 부동산에 가등기를 경료받고, 나아가 이 거래에 적용이 있는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이 요구하는 청산금의 지급 없이 위 가등기에 기하여 본등기를 경료하였다. 그 후 원고가 채무자 B와의 대위변제약정에 기하여 위 차용금을 변제하였다. 그럼에도 A는 B와의 합의 아래 C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고, 피고는 C로부터 근저당권을 설정받았다. 피고의 근저당권에 기하여 행하여진 경매절차에서 피고에게 일정액을 배당하는 배당표가 작성되었으나, 원고가 이에 배당이의를 함으로써 이 사건 소송에 이르렀다. 원고 청구를 일부 인용한 원심판결에 대하여 쌍방이 상고하였다. 피고의 상고이유는 원고의 B에 대한 채권은 시효소멸하였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부분 주장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시요지]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 이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시효로 채무가 소멸되는 결과 직접적인 이익을 받는 사람에 한정된다. 후순위담보권자는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이 소멸하면 담보권의 순위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피담보채권에 대한 배당액이 증가할 수 있지만, 이러한 배당액 증가에 대한 기대는 담보권의 순위 상승에 따른 반사적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에 관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판례공보 2021년 상권, 673면). [평석] 1. 이 사건에서 원고는 B와의 약정에 기하여 B의 채무금을 변제함으로써 변제자대위에 기하여 담보가등기권을 당연히 취득하였다(변제자대위 및 그로 인하여 원고가 취득하는 채권의 범위에 관한 판시가 원고 상고이유에 대한 주요 부분을 이룬다). 그리하여 애초 그보다 늦게 설정된 피고의 근저당권은 원고의 권리에 열후하는 말하자면 제2순위의 담보권이 된다. 그 경우에 선순위인 담보가등기권의 피담보채권에 관하여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주장을 위와 같이 후순위담보권을 가지는 피고가 할 수 있는가? 즉 피고는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에 관하여 시효원용권을 가지는가? 2. 종전에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우리 판례는 절대적 소멸설을 취한다고 이해되어 왔다(최근에도 송덕수, 민법총칙, 제4판(2018), 505면은 "판례는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의 어느 시점부터 대법원은 시효원용권자의 범위를 획정하는 작업을 정면으로 수행하여, 시효소멸을 소송상 주장하였음에도 그에게 시효원용권을 부정하여 시효소멸의 주장을 배척하는 구체적인 재판례를 축적하여 갔다. 이로써 판례는 상대적 소멸설로 입장을 전환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에는 그것이 과연 "종전에 대법원에서 판시한 법률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하는 데 필요한 절차(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 단서 제3호), 즉 전원합의체의 판단을 거쳤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이 점에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3.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상대적 소멸설의 입장을 전제로 하더라도, 후순위담보권자는 이에 해당하여 시효원용권을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하에서는 저당권을 염두에 두고 논의하기로 한다. (1) 선순위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소멸시효 등을 이유로 소멸하는 경우에 그 저당권의 당연 소멸로 후순위저당권의 순위가 상승하는 것은 후순위저당권자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향유하는, 그리하여 어떻게 보더라도 현실인 이익이다. 그 경우 후순위저당권자는 그러한 순위의 상승을 단순히 기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의문이 없는 저당권에 관한 법리, 즉 '순위상승의 원칙'(우선 곽윤직·김재형, 물권법, 제8판[전면개정] 보정판(2015), 453면 참조)의 적용에 의하여 발생하는 그야말로 법적인 이익인 것이다. 이것을 '반사적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법논의에서 극력 피하여야 할 언어의 오용이 아닐까? 만일 그것이 단순한 기대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예를 들어 저당권이 설정된 목적물의 제3취득자가 그 피담보채권의 시효소멸로 누리게 되는 저당권의 당연 소멸, 그리하여 이러한 법적 부담으로부터의 해방도 역시 '단순한 기대'에 그친다고 말하여야 할 것이다. 제3취득자도 역시 통상적으로는 저당권 등의 존재를 알면서(적어도 등기부를 통하여 알 수 있었으면서) 이를 물적으로 인수하는 것으로 하여 목적물을 취득하였을 것임에도 그 후 위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그러한 '반사적 이익'을 얻는 것에 불과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대법원 1995. 7. 11. 선고 95다12446판결(공보 2761면)은 이 사건에서와 같이 가등기담보권이 설정되어 있던 사안에서 제3취득자의 시효원용권을 긍정한다. 시효이익 포기의 상대효를 다루는 근자의 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5다200227판결(공보 하, 976면)도 제3취득자의 시효원용권을 당연한 전제로 하여 논의를 전개한다. (2) 시효원용권 인정 여부의 법문제에 대하여 우리 판례는 일본의 그것에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판시는 최고재 1999(平成 11). 10. 21. 판결(민집 53-7, 1190)의 태도와 일치하고, 그 이유 설시도 위 일본 판결("선순위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소멸하면 후순위저당권의 순위가 상승하고 이로써 피담보채권에 대한 배당액의 증가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배당액 증가에 대한 기대는 저당권의 순위 상승에 의하여 초래되는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로부터 그대로 따왔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에는 제2차 대전 이전, 특히 1920년대 말까지의 엄격한 해석을 1945년부터의 최고재가 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애초 대심원의 판례상 시효원용권이 모두 부정되었던 물상보증인, 담보부동산의 제3취득자 및 사해행위의 수익자 등에 대하여 모두 1960년대 중반부터 하나씩 긍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시효원용권자 여하에 관한 판례의 흐름은 위와 같이 일찍부터 채택되어온 [직접성] 공식의 실질적 해체의 역사이다. 그 공식은 그 기원(起源)에 있어서는 일정한 자를 제외한다는 의미를 가졌었으나, 현재는 전에 부정되었던 자 전부에 시효원용권이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판례의 변경은 다른 법문제에서는 별로 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金山直樹, 時效における理論と解釋(2009), 319면 이하). 이러한 입장 전환을 선도한 것은 다름아닌 일본 법학자 와가쓰마 사카에(我妻榮)인데, 그 주장의 요지는 "시효의 원용이 시효로 인한 권리의 득상이라는 일반적 법률효과와 개인의 의사 사이의 조화를 도모하는 제도라고 한다면, 이들 관계자 각자에게 원용의 자유를 인정하고 시효의 효과를 상대적·개별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 그 목적에 적합하다"고 전제한 다음, "시효에 의하여 직접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면하는 자 외에도 이 권리 또는 의무에 기하여 다시 권리를 얻거나 의무를 면하는 자도 포함한다고 봄이 옳다"는 것이다(新訂 民法總則(1965), 445면 이하. 이는 "抵當不動産の第三取得者の時效援用權"이라는 1936년 논문으로 소급될 수 있다). 위와 같은 흐름을 반영하여 후순위저당권에 대하여도 이를 긍정하는 학설이 유력하였다(川島武宜, 幾代通 등). 그럼에도 최고재의 위 1999년 판결은 이를 부정한 것인데, 이에 대하여는 학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예를 들면 金山直樹, 前揭書, 320면 이하[처음 발표는 2000년]. 위 판결에 대한 평석의 목록은 森田宏樹, "時效の援用權者", 民法判例百選 제1권, 제8판(2018), 86면 이하를 보라). 한편 일본은 2017년의 민법개정(시행은 금년 4월부터)으로 시효의 원용에 관한 제145조에서 시효원용권자를 "당사자(소멸시효에 있어서는 보증인, 물상보증인, 제3취득자 기타 및 권리의 소멸에 관하여 정당한 이익을 가지는 자)"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개정 전과 같이 그 구체적인 범위를 해석에 맡기는 취지라고 한다. 4. 후순위담보권자에게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의 시효원용권을 부정한 것은 종전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판단으로서 하급심이나 거래실무 등에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러한 입장에는 쉽사리 찬성할 수 없다. 애초 시효소멸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받는지, 간접적으로만 미치는지의 구분 자체가 그야말로 형식적 기준이므로(법논의에서 드물지 않은 그 가장이유(假裝理由, Scheinbegrundung)!), 그 적용은 가급적 피하여야 할 것이다. 양창수 한양대 석좌교수(전 대법관)
소멸시효
근저당권
후순위저당권
양창수 한양대 석좌교수(전 대법관)
2021-05-03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소프트웨어 도입대가의 구별기준
I. 서론 대상판결에서는 '내국법인이 외국법인으로부터 수입하는 소프트웨어 대가의 법적성격'이 무엇인지 문제되었다. 이는 최근 납세자와 과세관청 간 다툼이 첨예하게 발생하는 쟁점이다. 대법원은 2000. 1. 21. 선고 97누11065 판결 등을 통해 그 판단기준을 제시한 바 있는데, 대상판결은 그 판단기준을 적용한 최근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Ⅱ. 대상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 원고는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인 미국 PTC 그룹의 자회사로서 PTC와 소프트웨어 배급계약을 체결한 다음 PTC에 PTC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이하 '쟁점 소프트웨어'라 한다)의 국내 판매 및 유지보수 용역 수입에 대하여 소프트웨어 도입대가 및 라이선스 수수료 명목으로 지급하였다(이하 '쟁점 지급금'이라 한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원고는 쟁점 지급금이 범용화된 것으로서 불특정 다수인에게 판매되는 '상품'의 수입대가라고 주장하였다. 이 경우 PTC의 사업소득이 되어 PTC의 고정사업장이 없는 국내에서는 과세권이 없게 된다. 반면 피고는 소프트웨어에 포함된 '노하우'에 대한 도입대가로 보고 원고에게 원천징수세액 및 그 가산세를 부과하는 과세처분을 하였다. 이 경우 PTC의 국내원천 사용료소득이 되므로 국내에서 15%의 세율로 원천징수 되기 때문이다. 제1심 판결은 쟁점 소프트웨어 도입이 노하우를 도입한 것이므로 피고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보았다. 대상판결은 제1심판결의 결론을 정당한 것으로 수긍하였다. Ⅲ. 평석 1. 소프트웨어 도입대가의 소득 구분 기준 가. 관련 법리 법인세법 제93조 제8호 나목에서는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으로 '산업상·상업상·과학상의 지식·경험에 관한 정보 또는 노하우'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통상 '노하우'라 일컫는 발명, 기술, 제조방법, 경영방법 등에 관한 비공개 기술정보를 사용하는 대가를 말하므로 내국법인이 외국법인으로부터 도입한 소프트웨어의 기능과 도입 가격, 특약 내용 기타 제반 사정에 비추어 그 소프트웨어의 도입이 단순히 상품을 수입한 것이 아니라 노하우 또는 그 기술을 도입한 것이라면 그 도입대가는 그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인 사용료소득에 해당하여 법인세법 제98조에 정한 원천징수의무자인 내국법인에 대하여 법인세를 징수할 수 있다(대법원 97누11065 판결 등). 나. 구체적인 판단기준 1) 핵심적 판단기준 가장 핵심적인 판단기준으로서 소프트웨어에 노하우가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도입자가 노하우를 '전수'받아 사용하여야 한다(조인호, 대법원판례해설 제34호, 594쪽 참조). 사용료소득은 '노하우 전수에 대한 대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선 해당 소프트웨어에 노하우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노하우란 '공개되지 아니한 고도의 기술적 정보'를 의미하므로 다른 업체가 통상적으로 보유하는 전문적 지식, 특별한 기능 정도에 불과한 경우에는 사용료소득이 아니다(대법원 1986. 10. 28. 선고 86누212 판결 등). 소프트웨어에 노하우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위해서는 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국내 기술수준으로는 불가능한지 여부가 '일응'의 기준이 되지만 그러한 이유만으로 노하우 전수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고도의 기술로써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라 하더라도 수입하는 자가 '상품'으로 사용하는 데 그친다면 노하우의 전수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소프트웨어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것이나 제작자의 노하우가 반영되어 있게 마련이므로 단순히 제품을 정하여진 용법에 따라 '사용'하였다는 이유만으로는 노하우를 '전수'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앞의 판례해설 594, 595쪽 참조). 따라서 완성된 소프트웨어를 공개된 기능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상품의 수입'으로 보아야 하고 소프트웨어 제작기법 또는 일반에 공개되어 있지 않은 산업상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노하우의 전수'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내도입자가 공급자와 판매대리점 계약을 체결하여 공개된 기능 그대로의 소프트웨어를 수입하여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에게 판매한 정도에 그친 경우에는 노하우의 전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대법원 1997. 12. 23. 선고 97누2986 판결 참조). 판매대리점은 수입된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역할만을 수행하므로 그 과정에서 비공개 기술정보 등 노하우가 전수되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비공개원시코드 자체의 이전이 이루어져 해당 소프트웨어의 제작기법이 전수되는 경우에는 노하우 전수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특정 고객의 특수한 요구에 맞게 소프트웨어를 개작하여 수입하는 경우 노하우 전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노하우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채 개별적으로 전수되었을 가능성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수입대가가 사용료소득에 해당한다고 보아 과세하려면 과세관청으로서는 먼저 해당 소프트웨어에 '어떤 노하우가 포함되어 있는지'를 밝히고 그 노하우가 수입자에게 '전수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2) 부수적 고려사항 소프트웨어 대가가 고가라는 이유만으로 노하우 도입의 근거로 볼 것은 아니다(앞의 판례해설, 595쪽). 소프트웨어가 단순 상품으로 거래되는 경우에도 고가인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밀준수의무 존재만으로는 노하우 전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대법원 97누2986 판결 참조). 소프트웨어 제품 거래계약에 비밀준수의무 등을 포함시키는 이유는 노하우 도입과 무관하게 불법복제 또는 역전환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공급자 입장에서 구매자의 권리를 제한하는데 그 취지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앞의 판례해설, 595, 596쪽). 교육, 유지보수, 컨설팅 용역이 제공되었다는 사정 역시 소프트웨어를 상품으로서 수입하는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으므로 노하우 도입의 독자적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교육 용역은 사용방법이 복잡한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도 고객의 필요에 따라 제공될 수 있다. 유지보수 용역 또한 소프트웨어에 대한 업데이트, 패치, 오류시정 등을 위한 목적에서 제공되는 것이므로 상품으로 수입되는 경우에도 제공될 수 있다. 컨설팅 용역은 고객의 컴퓨터 환경을 점검하여 필요한 환경설정 등을 해주는 것으로서 소프트웨어에 내장된 기능을 활용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는 상품 수입 시에도 가능하다. 2.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대상판결은 ① 노하우 전수에 관한 입증이 영업비밀에 해당하여 어렵다는 이유로 '어떤 노하우 도입이 있었는지'에 관한 입증책임을 전도하고 ② 상품 수입 시에도 나타날 수 있는 부수적·지엽적 사정들만을 이유로 노하우 도입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타당한지 의문이 있다. 대상판결은 과세관청의 입증책임과 관련하여 "쟁점 소프트웨어의 도입이 단순한 상품의 수입과는 구별되는 노하우 또는 그 기술의 도입에 해당한다는 점을 주장·증명하면 충분하고 해당 노하우 또는 기술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주장·증명하여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그와 같이 노하우 또는 기술의 구체적인 내용은 일반적으로 영업비밀로 분류되어 과세관청이 이를 정확히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과세관청은 각 소프트웨어별로 어떠한 노하우가 '포함'되어 '전수'되었는지 여부를 입증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이다. 만약 이러한 입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상품 수입시에도 나타나는 사정들만 존재한다면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한 과세관청을 패소시켜야 하고 영업비밀에 해당하여 밝히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그 입증책임을 면책시켜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또한, 대법원 판례법리에서 과세관청에게 입증을 요구하는 '노하우의 포함 및 전수'는 결코 납세자의 영업비밀까지 침해하라는 것이 아니다. 과세관청으로서는 지사와 본사 사이에서 '어떠한 노하우가 전수'되었는지 입증하면 충분하고 이는 영업비밀과 무관하다. 뿐만 아니라 대상판결이 노하우 도입으로 본 논거를 살펴보면 모두 상품 수입 시에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거나 판단 근거가 불분명해 보인다. 대상판결이 주된 근거로 든 국내에서의 개발·공급이 힘들다는 사정, 교육·유지보수·컨설팅 용역이 제공된 사정, 비밀유지약정이 존재하는 사정 등은 노하우 도입 시에만 나타나는 사정이 아니고 상품 수입 시에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사정에 해당한다. 오히려 쟁점 소프트웨어는 사전 제한 없이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상대로 공개된 기능 그대로 판매된 것으로 보이는데 사용료소득의 개념에 해당하는 산업상 노하우에 관한 '비공개' 기술정보가 전수되었다고 볼 수 없다. Ⅳ. 결론 최근 해당 쟁점과 관련한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동일한 쟁점임에도 사실관계 또는 어떤 판단기준에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그 판단이 엇갈리는 사례들이 병존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대법원의 판시법리가 워낙 간략한 탓에 기인한 것으로서 구체적인 판단기준들을 중심으로 한 대법원의 새로운 법리(세부법리) 판시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임한솔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법인세
노하우
사용료소득
임한솔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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