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엘 l Return To The Forest
logo
2024년 6월 25일(화)
지면보기
구독
My Lawtimes
한국법조인대관
판결 큐레이션
매일 쏟아지는 판결정보, 법률신문이 엄선된 양질의 정보를 골라 드립니다.
전체
%ED%95%99%EC%88%A0%EB%85%BC%EB%AC%B8
검색한 결과
72
판결기사
판결요지
판례해설
판례평석
판결전문
Qiu Tam소송 -미국소송사례탐방-
작년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우리나라의 부패지수가 세계 40위로서 OECD 국가중 최하위라고 발표했다. 핀란드가 1위, 미국은 16위, 일본은 20위, 우리와 정서적으로 비슷한 이태리는 31위를 차지했다. 의리를 중시하는 우리지만 투명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Qui Tam소송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Qui Tam소송은 미 정부에 허위 또는 기타 위법한 방법으로 손해를 끼친 사실을 폭로하는 양심선언자(whistle-blower)가 법무성과 공동 또는 독자적으로 제기하는 소송이다. Qui Tam소송에서 승소하면 양심선언자는 법무성과 공동 소송수행의 경우에는 판결이냐 화해냐에 따라 승소액의 15 내지 25%, 독자소송수행의 경우에는 25 내지 30%의 보상을 받게 된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여태까지 63억8500만 달러가 회수되고 이중 총 9억878만 달러가 양심선언자에게 지급되었다. Qui Tam 이란 “qui tam pro domino rege quam pro sic ipso in hoc parte sequitur” (이 사안에 관하여 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소를 제기하는 자)를 줄인 말이다. Qui Tam 소송은 링컨대통령의 업적중 하나다. 링컨대통령은 당시 군납계약자들의 군수물품 제작과 납품가격 책정에 사기가 있음이 드러나 1863년 부당청구금지법(False Claims Act)을 제정하였다. 그후 1986년 포상액의 상향조정, 변호사비용의 패소피고부담, 주정부에 대한 위법청구포함, 미필적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부당청구도 포함시키는 대폭개정을 했다. Qui Tam소송은 군납, 의료보험, 정부지원연구사업, 불법환경투기 등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Qui Tam소송의 최근 사례로 2002년 6월 3일 화해로 종결된 Eckerd Corporation 사건이 있다. (United States and State of Florida, ex rel. Louis H. Mueller v. Eckerd Corporation, Case No. 8:95-CV-2030-T-17EAJ). 약국 체인인 Eckerd Corporation은 재고불충분으로 처방전의 일부밖에 조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처방전 전부를 조제한 것처럼 건강보험료를 부당 과다 청구한 것이 문제되었던 사건이다. 이 체인의 전직 약사였던 Mueller가 미정부를 대신하여 Eckerd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고, Eckerd사는 미정부에 대하여 부당청구금 5,866,751.70불을 지불하는 것에 합의했고, Mueller는 880,012.76불을 지급받았다. 1994년에는 유타대학과 캘리포니아 대학 정부지원 연구에서 국립보건연구원(NIH)에 허위연구결과를 보고한 데 대하여 각기 95만불과 16만5천불을 지급하기로 합의하였다. 1996년 M/G Transport Services Inc. 사는 테네시밸리에 석탄을 바지선으로 수송하면서 기름 및 쓰레기를 하천에 방류하였음이 드러나 460만불에 화해했고, 140만불이 양심선언자에게 지급되었다. 1995년 Rubbermaid가 총무처에 납품하면서 대정부 할인율이 일반 상거래 할인율에 비해 높은 점을 계약 협상시 알리지 않은 점이 밝혀져 88만7천불에 화해했다. 또한 1996년 Philips가 노동위원회 등에 사무용품 판매계약 체결당시 미국내 공장폐쇄에 관한 내용을 숨긴 사실이 드러나 백만불에 합의했고, 2000년 Toshiba는 결함있는 노트북컴퓨터 납품이 드러나 335만불에 합의했다. 2001년 제정된 우리의 부패방지법은 보상심의위원회가 2억원의 한도에서 보상금액을 결정하도록 하고, 공직자의 경우에는 감액 또는 아예 지급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금액과 지급여부가 위원회 재량에 좌우되어 투명성 제고에 목적을 두는 법이 오히려 불투명하다는 아이러니를 빚고 있다. 앞으로 우리도 양심선언자로 하여금 직접 소송의 원고가 되게 하고 보상금도 투명하게 결정되는 Qui Tam소송을 도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03-05-01
채권자대위에 의한 처분금지효가 제3채무자가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하는 것에도
Ⅰ. 事實關係 대법원판결로부터 알 수 있는 사실관계를 이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간단하게 보면 다음과 같다. 원고가 1987년 8월에 甲에게 이 사건 부동산을 매도하였는데, 甲은 대금을 다 지급하기 전에 이를 피고에게 매도하였다. 피고는 1989년 1월에 갑에 대하여, 그리고 甲을 대위해서 원고에 대하여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을 제기하였었다. 이 소송은 대법원이 두 차례나 파기환송되는 곡절을 겪으면서, 1998년 10월에야 상고기각으로 종결되었다(원고에 대한 대위청구부분에 대하여는 “원고는 甲으로부터 매매잔금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甲에게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는 내용의 판결이 확정되었다). 그런데 그 소송이 마지막으로 대법원에 계속 중이던 1997년 7월에, 즉 사실심에서의 변론종결 후에, 원고는 甲에게 기간을 지정하면서 잔금의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이 도과하면 매매계약은 해제된다는 내용의 서면을 보냈다. 甲이 그 기간을 도과하자 피고는 동년 8월에 甲에게 매매계약이 해제되었다는 뜻의 서면을 다시 보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사건명이 「채무부존재확인」인 점 등으로 미루어 보면, 원고가 위와 같이 甲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적법하게 해제하였으므로 피고가 前訴에서 대위행사하였던 甲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은 이제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할 것을 청구한 것으로 추측된다. 원심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그 이유는 요컨대 원고가 대위채권자인 피고를 관여시킴이 없이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이를 피고에게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는데, 그 이유는 원심판결에서과 같이 신의칙 위반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Ⅱ. 判決趣旨 “채권자가 채권자대위권에 기하여 채무자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경우에 그 사실을 채무자에게 통지하였거나 채무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때에는 채무자가 그 권리를 처분하여도 이로써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하는 것인데… 원고가 피고의 채권자대위권 행사에 의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종전 소송의 재파기환송 후 그 청구를 인용한 항소심판결에 대하여 상고를 제기하여 그 사건이 상고심에 계속되어 있던 중에, 채무자인 甲에게 반대의무의 이행을 최고하였으나 甲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원고로 하여금 甲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한 것 역시 채무자인 甲이 원고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처분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이를 채권자인 피고에게 대항할 수 없고, 그 결과 제3채무자인 원고 또한 그 계약해제로써 피고에게 대항할 수 없다” Ⅲ. 評釋 1. 序 민법 제405조 제2항은 채권자대위의 목적인 채무자의 권리를 채무자가 처분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대상판결은, 피대위권리가 매매계약에 기하여 발생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인 경우에 그 상대방(즉 매도인. 이하 피대위권리의 상대방을 제3채무자라고 부르기로 한다)이 채무자(즉 매수인)의 매매대금지급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催告要件을 준수하여 당해 契約을 解除하는 것도 위와 같이 제한되는 「처분」에 해당됨을 정면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見解에는 찬성할 수 없다. 여기서는 이 구체적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가, 가령 원고의 주장이 원심판단과 같이 신의칙에 위반되는가는 검토하지 아니하고, 단지 이 추상적 견해 그 자체의 當否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 역시 여러 관점에서 행하여질 수 있겠지만, 민법 제405조 제2항의 연혁이나 입법례에 비추어 본 문제점, 그 규정에 대한 입법론적 비판 등에 관하여는 지면관계로 생략하기로 한다. 또한 對象判決이 그 효력을 제한하고 있는 언필칭 「처분」이 있은 것은 채권자대위소송의 사실심변론종결 후이다. 그리하여 대상판결은 채권자대위로 인한 채무자의 처분제한은 언제까지 그 효력이 미치는가 하는 문제도 제기한다. 그것은 채권자가 채무자의 권리를 대위행사하고 있는 동안에 한정되는가? 아니면 만일 채권자대위소송이 제기되었다면, 그 事實審의 변론이 종결된 후에도, 나아가 그 소송이 모두 종결된 후에도, 채무자는 여전히 자신의 권리를 처분하지 못하는가? 그러나 이 점 대하여도 역시 논하지 않기로 한다. 2. 다른 處分制限制度와의 均衡 (1) 아마도 채권에 대한 처분제한의 전형적인 사유는 채권의 押留 또는 假押留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大判 82.10.16, 82다카508(集 30-3, 179) 이래 근자의 大判 2001.6.1, 98다17930(공보 2001하, 1482)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판례는 일관하여 채권압류의 처분금지효는 그 채권의 발생원인인 법률관계에 대한 채무자의 처분까지도 구속하는 효력은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법원실무제요, 민사집행[Ⅲ], 305면:[Ⅳ], 208면도 참조). 그리하여 大判 2000.4.11, 99다51685(공보 2000하, 1177)은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가압류나 압류가 행하여지면 제3채무자로서는 채무자에게 등기이전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되고, 그와 같은 행위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할 것이나, 가압류나 압류에 의하여 그 채권의 발생원인인 법률관계에 대한 채무자와 제3채무자의 처분까지도 구속되는 것은 아니므로 기본적 계약관계인 매매계약 자체를 해제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만일 對象判決과 같이 채권자대위권이 행사된 경우에 제3채무자가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적법하게 해제한 것을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채권자가 집행권원에 기하여 正式의 강제집행절차를 통하여 채무자의 채권을 압류하는 것보다도 더욱 강력한 효력을 채권자대위에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과연 누가 이것을 타당한 처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2) 특히 채권압류의 경우에 제3채무자가 채무자에게 자신의 채무를 이행할 수 없고 채무자가 이를 수령할 수 없음은 물론이며(民執 제227조 제1항 등 참조), 이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 압류된 경우라고 하여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채권자대위에서는 제3채무자가 채무자에게 채무를 변제할 수 있으며 채무자는 이를 유효하게 수령할 수 있다고 한다(우선 民法注解[IX], 795면(金能煥 집필) 참조). 특히 大判 91.4.12, 90다9407(공보 1991, 1366)은, 對象判決의 사안에서와 같이 부동산이 甲으로부터 乙, 乙로부터 丙으로 전전 매도된 후에 丙이 乙의 甲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대위행사한 후에 乙이 丙으로부터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받은 事案에 대하여, 타당하게도 “채무자의 변제수령은 처분행위라 할 수 없고, 같은 이치에서 채무자가 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는 것 역시 처분행위라고 할 수 없으므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대위행사 후에도 채무자는 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처럼 채권자대위에서는 일반적으로 채권압류에서보다 채무자가 행할 수 있는 「處分」의 범위가 넓은 것이다(물론 변제의 수령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처분이라고 할 수 없으나, 이로 인하여 채권이 소멸된다는 점에서 이 맥락에서는 통 상 처분에 준하여 처리된다). 그런데 하필 피대위채권의 발생원인이 되는 기본적 계약관계의 해제에 관하여 채무자의 「처분」을 더욱 제한하여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3. 債權者代位에서 第3債務者의 地位 원래 채권자대위권의 목적이 된 권리의 상대방, 가령 피대위권리가 채권이면 그 상대방이 되는 제3 채무자는 채권자대위권이 행사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법적 지위에 기본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채권자는 단지 채무자에 대위해서 채무자의 채권을 행사하는 것뿐이므로, 제3채무자로서는 채무자 자신이 그의 채권을 행사하는 경우에 비교해서 불이익한 지위에 놓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채권의 귀속 자체가 변경되는 債權讓渡(즉 처분의 「제한」을 문제삼기 전에 이미 채권, 나아가 그 처분권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이전되는 제도)에 있어서도 채무자는 양도통지의 도달시까지 양도인에 대하여 생긴 사유를 양수인에게 대항할 수 있다(민법 제451조 제2항). 그리하여 양도통지가 있은 후 양도인이 채무자에 대한 계약상 반대채무를 불이행함으로써 채무자가 피양도채권의 발생원인이 되는 계약을 해제한 경우(예를 들어 매도인이 매매대금채권을 양도하였는데 그 후 그가 자신의 소유권이전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 매수인이 매매계약을 해제한 경우)에는 채무자가 그 해제를 양수인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일치하여 해석되고 있다(우선 民法注解[X], 592면(李尙勳 집필) 참조. 일본의 학설로, 我妻榮, 525면; 奧田昌道, 442면; 林良平 등(補訂版), 503면 등 참조). 그렇다면 권리의 귀속 자체에 아무런 변경이 없는 채권자대위권의 경우에 제3채무자는 대위채권자에의 대항사유라는 점에서 채권양도의 경우 이상으로, 아니면 적어도 동등하게 보호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4. 合意解除와 法定解除를 구별할 必要 (1) 對象判決에 대하여는 혹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할는지 모른다. 즉 大判 93.4.27, 92다44350(공보 1993, 1551)(이 사건의 제1차 환송판결이다); 大判 96.4.12, 95다54167(공보 1996상, 1516) 등 종전의 재판례는 채권자대위에서의 채무자의 처분제한이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대위행사의 목적이 된 권리의 발생원인이 되는 계약을 당사자 간의 합의로 해제하는 것에도 미친다는 태도를 취하여 왔다. 대상판결은 그 취지를 법정해제의 경우에 연장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먼저 종전 재판례의 태도가 타당한지가 문제이다. 그것은 일단 앞의 2.(1)에서 본 채권압류의 효력이 기본적 법률관계에 미치지 않는다는 판례의 태도와 수미일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필자는 채권압류의 경우에도 合意解除(약정해제권이 행사된 경우가 아니라, 解除契約이 체결된 경우를 말한다)에 대하여는 채권압류의 처분금지효가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해제계약에 동의하는 채무자의 의사표시에는 채권압류로저지하려는 「채권 자체의 처분」이 성질상 당연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이에 대하여는 梁彰洙, “債權假押留 후 債務者와 第3債務者 간의 契約關係消滅에 관한 合意의 效力”, 同, 民法硏究, 제5권, 429면 이하=저스티스, 31권 2호, 122면 이하 참조). (2) 그러나 채무불이행책임의 한 내용으로서의 법정해제의 경우는 달리 보아야 한다. 물론 해제계약이 채무자의 채무불이행문제를 처리하는 일환으로 행하여진 경우는 별론으로 하고(그러한 의미에서 최근의 大判 2001.6.1, 98다17930(공보 2001하, 1482)가 채권가압류의 처분제한효가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채권의 소멸만을 목적으로 계약관계를 합의해제한다는 등의 특별한 경우”에는 합의해제에도 미친다는 뜻으로 종전에 없는 판시를 한 것은, 새로운 법전개의 端緖라는 면에서 흥미롭다), 법정해제와 해제계약은 혹 그 법률효과에서는 서로 유사할지 모르나(그래도 판례는 해제로 인한 금전반환의무에 관한 민법 제548조 제2항이 해제계약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성립원인이나 법적 성질에 있어서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특히 채권자대위나 채권압류의 효력으로서의 「처분제한」에서와 같이 집행채권자 또는 대위채권자의 권리만족 내지 실행확보의 이익을 도모할 필요와 채무자의 자유를 보호·신장할 원래적 필요의 조화가 문제되는 국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거칠게 말하면, 법정해제는 채무자의 객관적 채무불이행에 대한 제3채무자의 정당한 법적 대응이고, 해제계약은 채무자의 의사행위를 하나의 요소로 하여 채권관계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3) 이와 관련하여 對象判決은 “채무자 甲이 제3채무자인 피고의 매매대금 이행최고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피고로 하여금 해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채무자의 피대위채권에 대한 「처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는 어떠한 의미에서도 處分이라는 법개념의 부당한 확장일 뿐만 아니라, 앞의 2.(2)에서 본 대로 채권소멸을 가져오는 변제의 수령도 여기서의 處分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법원이 이제 와서 돌연 이러한 무리를 하여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5. 實際的 問題 對象判決과 같은 입장은 실제적으로도 부당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 이 사건에서와 같이 채무자가 매매대금을 지급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제3채무자가 매매계약상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동안에는, 제3채무자로서는 채무자의 매매대금 지급과 相換으로만 소유권이전등기를 할 것을 대위채권자에 대하여 주장할 수 있다. 그리하여 前訴에서의 확정판결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한 내용의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더라도, 제3채무자로서는 어쨌거나 그 후 매매대금을 지급받기까지는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기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그 확정판결 후에도 채무자가 종내 매매대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해 보자. 그러면 제3채무자로서는 그 때 이행최고를 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음은 물론일 것이다. 만일 그가 이 권리를 행사한다면, 그는 확정판결의 집행력을 배제하기 위하여 “변론이 종결된 뒤”에 생긴 그 사유를 주장하여 채권자를 상대로 請求異議의 訴(民執 제44조)를 제기하여야 할 것이다. 제3채무자에게 이와 같이 迂遠한 방도를 취하게 강요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차피 채무자가 그의 채무를 불이행하고 있는 이상에는, 채권자가 채무자를 대위하여 제3채무자를 상대로 제기한 소유권이전등기소송에서 제3채무자로 하여금 원래대로 해제를 허용하고 이로써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을 간명하게 처리하는 길이다. 6. 結論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對象判決의 판결취지는, 채권자대위에서의 제3채무자의 법적 지위의 파악이라는 점에서도, 다른 처분제한의 경우나 기타의 제도와의 균형이라는 점에서도, 「처분」이라는 법개념의 왜곡이라는 점에서도, 실제적 문제해결의 타당성이라는 점에서도 찬성할 수 없다. 혹 문제의 근원은 채권자대위에서 채무자의 처분제한을 별다른 제한 없이 인정하는 듯이 표현되어 있는 민법 제405조 제2항의 문언 자체에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에 대하여는 별도의 論考에서 다루기로 한다.
2003-04-07
支出費用의 賠償과 債權者의 損害輕減義務
[사실관계] 원고(건설회사)는 피고(사찰)가 1988년5월17일 소외인 A에게 사건 토지를 임대보증금 3,000만원, 임대기간 19년으로 정하여 임대하여 A가 위 토지를 사용하고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피고 사찰 주변이 국민관광단지로 지정되자 그 일대에 스포츠타운 및 오피스텔을 건축하고자 피고에게 요청하여 사건 토지를 임대하게 되었다. 피고는 선행 임차인인 A를 상대로 사건 토지의 인도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1992년6월25일 패소한 후 원고는 그와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1992년12월10일경 당초 의도했던 대로 사건 토지 위에 스포츠타운 등을 건축하기 위한 공사에 착수하여 대지조성 및 지하굴토작업을 상당부분 진행하였다. 그런데 피고는 1992년11월9일 A에게 사건 토지를 3억5,000만원에 매도하였고 결국 1994년10월18일 A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여 주었다. 원고는 A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된 이후 이를 알면서도 스포츠타운 등의 공사를 계속하다가 A로부터 토지인도 및 시설물 철거를 요구받게 되어 결국 1995년4월25일경 공사를 중단하였다. 이에 원고는 피고에게 임대차계약의 존속을 믿고 임차대지상에 스포츠타운 등 시설공사를 위하여 지출한 공사비용 전액에 대하여 배상책임을 묻는다. 원심은 원고의 청구를 인정하였다. [대법원의 판단] 1.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하여: 원고가 피고의 채무불이행으로 입게 된 손해는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존속을 믿고 임차대지상에 스포츠타운 등 시설공사를 위하여 지출한 공사비용 상당액이다. 2. 과실상계에 대하여 : 원고는 피고로부터 이 사건 토지를 임차하더라도 이행불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음에도 손해가 발생되지 않거나 발생되더라도 최소한에 그치도록 필요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포츠타운 등 공사를 위한 비용을 지출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원고에게도 피고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의 발생 내지 확대에 관하여 과실이 있다고 할 것이고, 이와 같은 과실이 인정되는 이상 법원으로서는 직권으로 손해배상의 책임 및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 이를 참작하여야 한다. [評釋] I. 債務不履行의 可能性과 信賴投資의 賠償문제 사안에서 원고는 피고의 계약이행 즉 임대차의 목적토지를 지장없이 사용·수익케 할 것으로 믿고 계약의 진행중에 목적토지에 대해 비용을 투자하였다. 이러한 투자비용 이른바 ‘신뢰투자’는 손해배상의 범위에 들어가는가가 문제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해제와 아울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그 계약이행으로 인하여 채권자가 얻을 이익 즉 이행이익의 배상을 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에 갈음하여 그 계약이 이행되리라고 믿고 채권자가 지출한 비용 즉 신뢰이익의 배상을 구할 수도 있다’(大判 2002년6월11일, 2002다2539)며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진행중인 계약관계에서 채무불이행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채권자의 신뢰투자는 보호되는가? 참고로 개정독일민법은 채무자의 이행을 신뢰하여 지출한 채권자의 지출비용의 배상을 인정하는 규정(동법 제284조)을 신설하였는데 요건으로 비용지출의 ‘정당성’(Billigkeit)을 요구하고 있다. 정당성이 인정되는 기준은 채권자가 비용지출시 채무자가 급부를 이행하리라는데 대해 의심을 할 만한 사정이 있었는가이다. 예컨대 채무자의 이행의 곤란성이 예견된다거나 계약의 유효성이 다투어지고 있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채권자에게 문제들이 해결될때까지 비용의 지출을 중단할 것이 요구된다고 한다. 대상판결에서는 ‘이행불능이 될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라고 표현하여 이행불능의 가능성을 예견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채권자의 지출은 배상범위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경우 채권자의 지출에는 정당성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사안에서 도출해낼 수 있는 법리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이행을 신뢰하여 지출한 신뢰투자에 대하여는 비용의 지출시에 채권자가 채무불이행이 일어날 가능성을 알지 못한 경우에 한하여 배상범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래 판례가 해온 채권자의 지출이 ‘통상적인 지출비용의 범위내에 속하는가’ 라는 지출비용의 통상성의 판단에 있어 하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II. 債權者의 損害輕減義務의 법리 사안에서 대법원은 원고를 ‘손해가 발생되지 않거나 발생되더라도 최소한에 그치도록 필요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용을 지출했으며 이는 원고에게도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의 발생 내지 확대에 관하여 과실이 있다고 비난하고 이를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하는데 마땅히 참작하여야 할 것이라고 설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채권자는 일반적으로 채무자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를 회피하거나 경감할 조치를 취할 의무를 지는가가 이론적으로 문제될 수 있다. 비교법적으로도 이러한 채권자의 손해경감의무는 영미법에서는 이른바 손해경감(mitigation)의 법리로 발전하였으며 유엔매매법(제77조)이나 최근의 유럽계약법(Art. 9:505)등에서 규정되어 있고 독일민법도 채권자의 손해경감의무(Schadensminderungspflicht)를 정하고 있다(동법 제254조 제2항). 이미 우리 판례도 다양한 유형에서 채권자에게 채무자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의 확대를 방지할 의무를 채권자에게 부과하고 있으며 이를 다하지 못한 경우 채무자의 손해배상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예컨대 매도인이나 수급인이 하자있는 물건이나 완성물을 인도한 경우에 매수인이나 도급인이 하자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하자를 보수하고 그 비용을 청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하자가 확산된 경우 등에 매수인의 이러한 과실을 참작하여 손해배상범위를 제한한 다수의 사례들이 있다(大判 1993년11월23일, 92다38980, 大判 1990년3월9일, 88다카31886). 또는 도급인이 수급인의 공사중단시 즉시 해제하고 제3자와의 잔여공사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가능함에도 이를 지체한 경우에 지체기간에 상응하여 지체상금을 인정하지 않기도 하였다(大判 1999년10월12일, 99다14846 등). 또는 채무자의 불이행시에 채권자는 잔여재료나 유휴노동력을 적절히 처분 또는 활용하여 손해를 줄여야 하며 채권자가 태만이나 과실로 인하여 얻지 못한 소득은 손해액을 산정함에 있어 공제되어야 한다고 하였다(大判 2002년5월10일, 2000다37296). 사안에서도 법원은 채권자에게 손해의 확대에 대하여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감액하여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는데, 이를 위해 기존의 판례들과 같이 과실상계의 법리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의 확대에 기여한 채권자의 행태를 일괄하여 채권자의 과실로서 파악하는 것은 이에 관한 실제적인 법리의 발전을 저해하는 면이 있다. 첫째로 채권자의 손해경감은 이미 발생한 불이행에 대해 그로 인한 손해를 감소시키는 합리적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데 비해, 과실상계의 법리는 채무불이행의 발생 자체에 채권자의 부주의가 기여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이미 발생한 손해의 확대에 관하여는 채권자의 과실의 법리보다는 손해배상의 범위의 제한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사안처럼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이 문제되는 경우에 채권자의 행위에 대한 판단으로 나아가게 되면 채권자의 과실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더욱 부적절해진다. 행위주체에게 어떠한 행위의무가 부과되지 않고 단지 자신에게 돌아올 손익을 계산하여 손해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리를 과실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오히려 흐리기 쉽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과실상계의 법리를 제한없이 계약상의 채무불이행의 경우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한 경우가 많다. 채무불이행의 경우에 과실상계이론을 적용하여 법원이 적절하게 채무자의 손해배상액을 감액하는 것은 법원에게 계약당사자간에 합의된 위험의 분배를 변경하는 권한을 허용하고 계약책임의 예측가능성을 해하는 면이 있다. 계약상의 채무의 이행여부의 판단은 원칙적으로 결과의 달성여부 또는 계약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채무자가 다하였는지 등 채무자의 행태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할 것인데, 채권자측의 행태를 이와 동가치의 의미를 갖는 과실로서 파악하여 법원이 그것을 불이행책임의 여부와 금액을 정하는데 채무자의 항변도 필요없이 임의로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은 계약책임에 있어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민법상 채권자의 손해경감의무의 법리를 인정한다면 이는 어디에 근거지울수 있는 것인가가 문제된다. 그것은 제393조의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하는 또 하나의 기준으로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즉 통설은 제393조를 상당인과관계설에 입각하여 해석하면서 인과관계의 상당성의 판단기준으로서 개연성 이외에 규범목적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수용함으로써 상당성의 내용을 풍성하게 할 것을 제안한다(이은영, 채권총론 289면). 바로 이러한 상당성의 내용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로서 채권자에게 손해를 경감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 요구될 수 있었는가 즉 손해의 회피가능성이 또 하나의 요소로서 추가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한 판례에서 ‘원고가 주장하는 영업손실 상당의 손해는 원고가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아니한 탓에 발생한 것으로도 볼 수 있어 피고의 채무불이행과 상당인과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大判 2002년5월24일, 2000다42540)고 한 것은 흥미롭다. 결국 채무불이행에 있어 과실상계가 적용되는 경우는 불이행 자체의 발생에 대하여 채권자가 공동의 원인제공자인 경우에 한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채무불이행의 발생후에 채권자가 불이행의 결과를 악화시키거나 또는 손해를 경감시킬 수 있는 적극·소극의 합리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는 이를 ‘회피할 수 있었던 손해’로 보아 인과관계의 상당성이 부인되어 제393조 상의 손해배상의 범위안에 들지 않는다고 구성하는 것이 좀 더 명쾌한 이론구성이 되었을 것이다.
2002-12-23
대법원 판결과 동일한 취지의 해석을 전제로 한 한정위헌결정이 가능한지 여부
1. 글머리에 헌법재판소는 2002. 7. 18.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의 위헌여부에 관한 2002헌바57 헌법소원사건에서 한정위헌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 주문은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은 퇴직 후의 사유를 적용하여 공무원연금법상의 급여를 제한하는 범위내에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인데, 위 결정이 갖는 특징은 대법원 2002. 5. 31. 선고 2000두4514 판결에서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의 의미에 관하여 같은 취지의 해석이 이미 내려진 상태에서 한정위헌결정을 하였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위 판결에서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에서 제1항의 규정과 달리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라든가 ‘재직중의 사유로’라는 표현을 빠뜨리고 있다고 하여도 이는 제1항의 기본 규정에서 말하는 위 요건을 당연히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새겨야 할 것이므로, 같은 법 제64조 제3항은 공무원이 재직중 그에 열거된 죄를 범하고 그로 인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확정된 경우에 한하여 퇴직급여를 지급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으로서 퇴직 후 그와 같은 죄를 범한 경우에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확정된다 하더라도 이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지금까지 한정위헌결정을 하더라도 대상 법률조항의 해석에 대한 대법원의 선례가 있는 경우, 그 해석을 전제로 판단하였고 대법원이 이미 내린 해석과 같은 취지를 나타내는 한정위헌결정을 한 적은 없다(대법원의 해석을 전제로 합헌이라고 한 예는 헌법재판소 1995. 5. 25. 91헌바20 결정, 2001. 1. 18. 99헌바63 결정, 2001. 12. 20. 2001헌가6 결정 등, 대법원의 해석을 전제로 그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하여 한정위헌결정을 한 예는 1994. 12. 29. 93헌바21 결정). 한정위헌이라는 결정형식의 인정 여부에 대한 논란이 없지는 않지만, 이 글에서는 대법원 판례와 동일한 취지의 한정위헌결정이 가능한지 여부에 관하여만 검토하기로 한다. 2. 관련 법률조항 공무원연금법 제64조 ①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퇴직급여 및 퇴직수당의 일부를 감액하여 지급한다. 이 경우 퇴직급여액은 이미 납부한 기여금의 총액에 민법의 규정에 의한 이자를 가산한 금액이하로 감액할 수 없다. 1. 재직중의 사유로 금고이상의 형을 받은 때 2. 탄핵 또는 징계에 의하여 파면된 때 ② (생략) ③ 형법 제2편 제1장(내란의 죄), 제2장(외환의 죄), 군형법 제2편 제1장(반란의 죄), 제2장(이적의 죄), 국가보안법(제10조를 제외한다)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금고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에는 이미 납부한 기여금의 총액에 민법의 규정에 의한 이자를 가산한 금액을 반환하되 급여는 지급하지 아니한다. 3. 사건의 경과 헌법소원 청구인은 공무원으로 재직하였다가 퇴직하여 퇴직연금과 퇴직수당을 지급받았는데, 퇴직후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되자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청구인에 대하여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과 동법 제31조 제1항 제2호를 적용하여 기지급된 퇴직급여금에서 청구인에게 반환할 기여금(청구인으로부터 납부받은 기여금 및 이에 대한 민법 소정의 이율에 의한 이자)을 공제한 금원을 납부(반납)하라는 처분을 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서울행정법원에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퇴직급여환수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청구기각되었고,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여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에 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였으나 서울고등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하여 헌법소원을 청구하였다. 한편, 서울고등법원은 당해사건에 대한 청구인의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청구인이 상고를 하지 않아 그 판결은 확정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퇴직 후의 사유를 적용하여 공무원연금법상의 급여를 제한하는 범위내에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 4. 검토 (1)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의 원칙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의 원칙이란 어느 법률규정이 한편에서는 위헌적인 해석이 가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합헌적인 해석이 가능한 경우에 그 법률규정을 위헌적인 상태대로 해석·적용하여서는 아니되고 합헌적이고 헌법합치적으로 해석하여야 하며, 이를 위헌이라고 판단하여서도 아니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는 모든 법률해석·적용자가 따라야 할 일반원칙으로서, 대법원은 “어떤 법률이 한 가지 해석방법에 의하면 헌법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다른 해석방법에 의하면 헌법에 합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때에는 헌법에 합치하는 해석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고(대법원 1992. 5. 8.자 91부8 결정), 헌법재판소도 “법률의 개념이 다의적이고 그 어의의 테두리 안에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때 통일적인 법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헌법에 합치되는 해석, 즉 합헌적인 해석을 택하여야 하며, 이에 의하여 위헌적인 결과가 될 해석을 배제하면서 합헌적이고 긍정적인 면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일반원칙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헌법재판소 1991. 4. 1. 89헌마160 결정 등).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 퇴직 후의 사유를 적용하여 공무원연금법상의 급여를 제한하는 범위내에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함으로써, 대법원이 퇴직 후 소정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동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과 실질적으로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이 대법원이 어떤 법률규정에 대하여 헌법합치적 해석원칙에 따라 합헌적 해석을 하였음에도 헌법재판소가 그와 다른 해석, 즉 헌법불합치적 해석을 전제로 당해 법률규정에 대하여 한정위헌결정을 하는 것은, 합헌적 해석이 가능한 경우 위헌이라고 판단하여서는 아니된다는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된다. 위와 같은 한정위헌결정은 당해 법률규정에 대한 헌법합치적인 해석이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하고 합헌적 해석을 강조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어서 헌법합치적 해석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헌법재판소는 한정위헌결정을 위헌결정의 일종으로 보고 있으므로 이러한 입장에 서는 한 위와 같은 반론은 타당하지 않다. 대법원의 합헌적 해석과 같은 취지를 나타내는 한정위헌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견해를 취하면, 법원 또는 행정기관이 합헌적으로 해석·적용을 하고 있는 법률규정에 대하여도 그와 다른 해석을 전제로 하여 한정위헌결정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고, 이는 합헌적인 해석·적용을 통하여 위헌의 소지가 제거된 법률조항에 대하여도 위헌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부당하다. 이 사건에서는 당해사건의 1심, 2심에서 모두 위헌적인 해석을 하였고, 그후 대법원이 다른 사건에서 동일 쟁점에 관하여 헌법합치적 해석을 한 것이어서 해당 법률규정에 대한 헌법합치적 해석이 확립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대법원의 해석과 동일한 취지의 한정위헌결정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법령의 해석통일을 위한 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법원의 합헌적 해석을 최종적이고 확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단지 하급심의 잘못된 헌법판단을 바로잡기 위하여 한정위헌결정을 하는 것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또다른 문제점들을 야기하게 되므로 위와 같은 주장을 수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2) 이 사건 한정위헌결정이 야기하는 문제점 ① 헌법재판소의 기능변화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한, 위 조항에는 아무런 위헌적 요소가 없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합헌선언을 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함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굳이 한정위헌결정을 한 이유는, 당해사건이 이미 확정된 상태여서 합헌결정을 하면 청구인이 구제받을 길이 없게 되자 한정위헌결정을 함으로써 재심을 통한 구제의 길을 열어주려 한 것으로 추측된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른 헌법소원(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은 위헌법률을 심사하게 되는 계기만 다를 뿐 위헌법률심판과 동일한 성질의 것이고, 위헌법률심판이나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의 본래의 목적은 모두 위헌법률을 제거하는 규범통제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 하급심의 해석에 따라 권리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당사자를 구제하기 위하여 대법원의 합헌적 해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정위헌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이 구체적 권리구제를 위하여 기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위헌법률심사를 통하여 규범통제의 기능을 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구체적 권리구제기관으로 변화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② 한정위헌결정으로 인한 혼란과 갈등 대법원은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한정위헌결정이 선고되었다고 하여 재심사유가 존재하는 것으로도 보지 않는다(대법원 2001. 4. 27. 선고 95재다14 판결). 확정된 당해사건의 결과를 번복하기 위하여서는 재심을 통할 수밖에 없는데, 구체적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이 한정위헌결정을 재심사유로 보지 않는 상태에서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결정을 내리는 것은 당사자에게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국민들에게 혼란을 야기시키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양 기관 사이에서 갈등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이 사건 한정위헌결정은 실질적으로 특정 하급심에 의한 법률해석의 잘못을 지적하고 청구인의 권리가 보호되었어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헌법재판소가 이렇게 개별적인 재판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한 한정위헌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는 반면 그밖의 여러 측면에서 부정적인 효과를 낳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생각된다. ③ 심급제도에 대한 혼란 대법원에 의한 합헌적 해석의 선례가 있음에도 하급심에서 그 해석을 달리하여 위헌적 해석·적용을 한 경우에,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선례와 동일한 취지의 한정위헌결정을 할 수 있다고 보면, 당사자는 불복에 의하여 교정을 받을 수 있는 하급심의 법률판단에 대하여 상소에 의하지 아니하고 막바로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되어 헌법재판이 통상의 소송절차(상소절차)를 대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이는 헌법재판의 본질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이 사건과 같이 하급심 판결 당시 대법원의 선례가 없던 경우에는 당사자가 통상의 불복절차를 회피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떠한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 판단은 규범적 판단으로서, 당사자의 의도나 당해사건의 확정여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는 없으므로, 헌법소원 결정 시점에서 대법원의 합헌적 선례가 있다면 이를 전제로 위헌 여부에 대한 논리적·규범적인 판단을 하여야 할 것이지 구체적 사건에서의 당사자의 구제 여부를 먼저 생각할 것은 아니다. 이 사건 결정의 논리를 그대로 연장하면, 당사자는 법률해석이 쟁점이 된 사건에서 위헌제청신청을 하고 그것이 기각되면 1심만을 마친 다음 (심지어 그 해석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 있는 경우에도) 상소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1심판결을 확정시킨 후 막바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게 될 것인데, 이는 현행 심급제도에 상당한 혼란을 초래하고 나아가서는 우리나라의 사법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는 결과가 될 것이다. ④ 재판소원 금지규정의 잠탈 헌법재판소가 행하는 법률에 대한 규범통제란 일차적으로 입법자에 대한 통제를 의미하는 것인데, 대법원에서 대상 법률에 대한 헌법합치적 해석을 하고 헌법재판소도 그러한 해석을 받아들이는 입장임에도, 그와 다른 입장에 선 하급심 법원의 해석이 잘못이라고 다투면서 그러한 해석에 의하는 한 동 법률조항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헌법소원을 받아들이는 것은 재판에 대한 불복과 다름없고, 이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금지규정을 피하여 우회적으로 특정 재판의 당부를 다투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가 될 것이다. 이 사건에서 당해사건에 대한 하급심 판결 당시 대법원의 선례가 없었지만, 합헌적 법률해석이 가능한 것이었으므로 청구인은 상고를 통하여 구제를 받았어야 하고,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더라도 그와 별도로 불복절차를 밟아 해석을 통한 구제의 길을 열어 놓았어야만 했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하고 있는 독일에서도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원칙적으로 최종심까지 불복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고, 그러한 불복절차를 거치지 않음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불이익은 당사자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 있는바(BVerfGE 63, 45), 이 사건에서도 상소를 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불이익은 청구인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 맺음말 어떠한 법률에 대한 헌법합치적 해석이 가능하다면, 그러한 합헌적 해석을 전제로 당해 법률이 합헌임을 선언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이러한 기본원칙을 무너뜨리면 합헌적 법률에 대한 위헌선언(일부 위헌선언도 포함)도 가능한 것이 되어 법률에 대한 합헌판단과 위헌판단의 경계가 불명확해지고 헌법재판권과 일반재판권을 준별한 우리의 사법체계에도 혼란을 가져오게 된다. 물론 당해사건에서의 하급심이 합헌적 법률해석을 하지 않음으로써 당사자의 보호에 미흡하였던 것이 사실이고, 하급심에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헌법합치적 관점에서 사건을 처리하여야 한다는 반성의 계기가 되어야 겠지만, 하급심의 위와 같은 잘못은 대법원에 의하여 교정되어야 할 것이므로 이러한 기회를 놓친 당사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고, 헌법재판소가 이를 바로 잡기 위하여 헌법재판의 기본틀에 어긋나는 한정위헌결정을 내릴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2002-08-26
법령의 효력정지를 명하는 가처분
헌법재판소는 2002. 4. 25.에 선고한 2002헌사129 결정에서 軍行刑法施行令 제43조 제2항 본문 중 前段 부분의 효력을 일반적으로 정지하는 가처분결정을 하면서,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에 따라 준용되는 행정소송법 제23조 제2항의 執行停止規定과 민사소송법 제714조의 假處分規定에 의하면, 법령의 위헌확인을 청구하는 헌법소원심판에서의 가처분은 위헌이라고 다투어지는 법령의 효력을 그대로 유지시킬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가처분에 의하여 임시로 그 법령의 효력을 정지시키지 아니하면 안될 필요가 있을 때에 허용된다”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은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가처분이 가능한가 하는 헌법소송법 문제 외에도, 우리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구제절차를 담당하는 권한이 헌법재판소와 일반법원간에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1. 事件의 槪要 이 사건 신청인들은 차기전투기 사업(F-X 사업) 시험평가단 부단장에 근무하다가 군사기밀누설 등의 혐의로 특수전사령부 유치장에 구속된 조아무개 공군대령과 그의 부인 문아무개씨이다. 신청인들은 군인의 신분이거나 군형법의 적용을 받는 미결수용자의 면회 횟수를 주 2회로 제한하는 군행형법시행령 제43조 제2항 본문 중 전단부분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데 이어, 이 규정의 효력을 本案事件의 결정 선고시까지 임시로 정지할 것을 구하는 假處分申請을 하였고, 헌법재판소가 이를 認容한 것이다. 심판의 대상이 된 군행형법시행령 제43조 제2항의 全文은 다음과 같다. “미결수용자의 면회횟수는 매주 2회로 하되, 참모총장은 미결수용자의 접견교통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횟수를 증가시킬 수 있다. 다만, 변호인과의 면회는 그 횟수를 제한하지 아니한다” 2. 憲法裁判所法上 假處分條項의 類推適用 우리 헌법 제111조 제1항은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을 관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법은 이 모든 심판절차에 적용되는 가처분에 관한 일반조항을 두지 않고 정당해산심판과 권한쟁의심판에 대해서만 假處分規定(제57조 및 제65조)을 두고, 헌법소원심판에는 가처분에 관한 규정이 없다. 한편 법원의 제청에 의한 위헌법률심판의 경우에는 裁判停止規定(제42조), 탄핵심판의 경우에는 權限行使停止規定(제50조)을 두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2000. 4. 18. 제기된 舊 司法試驗令(2001. 3. 31. 대통령령 제17181호로 폐지된 것) 제4조 제3항 본문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2000헌마262)을 본안으로 한 가처분신청사건(2000헌사471)에서, 2000. 12. 8.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헌법소원심판절차에 있어서도 가처분의 필요성은 있을 수 있고, 달리 가처분을 허용하지 아니할 상당한 이유를 찾아볼 수 없으므로 가처분이 허용된다”고 판시하면서 위 사법시험령 조항의 효력을 본안의 終局決定 선고시까지 정지하는 가처분결정을 하였고, 이번에 또다시 군행형법시행령 조항에 대하여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결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위 결정들은 법률에 명문의 규정이 없는 가처분을 헌법소원에 유추적용할 수 있는 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서 論理的 飛躍이 있다고 생각된다. 제도신설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모든 문제점을 검토한 후 최종적으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立法者가 수행하여야 할 역할이다.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률에 없는 가처분을 하는 것은 재판기관의 권한을 초월한 것이다. ‘필요’하고 굳이 ‘부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法官에 의한 法創造 또는 法獲得의 근거로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3. 行政訴訟法 및 民事訴訟法 規定의 準用 이 사건 결정에서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 준용한다고 한 행정소송법 제23조 제2항은 행정소송의 대상인 行政處分의 執行停止에 관한 규정이고, 민사소송법 제714조는 係爭物에 관한 가처분과 臨時의 地位를 정하는 가처분에 관한 규정이다. 이 조항들은 원래 당해 사건 당사자의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 법원이 임시구제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에 불과하고, 법령의 일반적 효력정지까지 예상하고 있는 규정은 아니다. 당해 사건의 당사자를 구제하기 위한 가처분규정을 근거로 법령의 효력을 정지시킴으로써 당사자가 아닌 일반인에게까지 효력을 미치게 하는 것은 위 법률들에 규정된 假處分制度의 原趣旨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번 결정은 행정소송법의 집행정지규정이나 민사소송법의 가처분규정에는 없는 내용(법령에 대한 효력정지)을 준용한다고 한 결과가 되어, 헌법재판소가 법률상 근거 없는 헌법소원심판에서의 법령의 효력정지 가처분제도를 창설하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만에 하나 이러한 法創造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려면, 이것이 명백한 立法의 不備이고, 통상의 입법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재판기관이 이를 보완하지 않으면 제도 본래의 目的을 도저히 달성할 수 없거나 제도의 實效性을 보장할 수 없는 등의 모순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4. 違憲決定 效力의 先取效果 우리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에 의하면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 또는 법률조항은 원칙적으로 그 결정이 있는 날로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위헌법률의 효력을 제정 당시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장래에 향하여 효력을 상실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헌법적합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입법자가 결정할 입법정책의 문제라고 할 것인데, 우리 입법자는 후자의 입법정책을 채택한 것으로서 이는 헌법에 합치한다(헌법재판소 1993. 5. 13. 선고 92헌가10 결정).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위헌결정시부터 장래를 향하여만 법률의 효력을 상실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규범통제제도 하에서 헌법재판소가 법률의 위헌여부에 대한 종국결정을 하기 전에 가처분으로 당해 법률의 시행 또는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獨逸의 경우에는 위헌결정에 一般的 遡及效가 인정되므로 위헌결정 전에 기존의 법상태에 관하여도 헌법재판소가 미리 관여할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독일연방헌법재판소법의 가처분규정(제32조, 제93조의d 제2항)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절차에서 종국결정 전에 법률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을 하더라도 제도모순의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는다. 한편 우리 나라와 같이 법령의 위헌결정에 將來效만 인정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에서는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절차에서 가처분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며, 헌법재판소는 법령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VfSlg 13706, 1994). 우리 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위헌결정의 소급효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위와 같은 가처분을 허용한다면 법률의 효력상실이라는 위헌결정의 효력을 가처분이라는 별도의 제도로 선취하는 결과가 될 것인데, 이는 우리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과 조화될 수 없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의 장래무효원칙에 대하여 법원의 판례로 비교적 광범위한 예외가 인정되고 있으므로 법률의 위헌결정 전에 효력을 정지하더라도 제도상 모순이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의 효력은 위헌제청을 한 당해 사건, 위헌결정이 있기 전에 이와 동종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여부심판제청을 하였거나 법원에 위헌여부심판제청신청을 한 경우의 당해 사건과 따로 위헌제청신청은 하지 아니하였지만 당해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이 재판의 전제가 되어 법원에 계속중인 사건뿐만 아니라 위헌결정 이후에 위와 같은 이유로 제소된 일반 사건에도 미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1993. 1. 15. 선고 91누5747 판결, 2000. 2. 25. 선고 99다54332 판결 등). 그러나 이 판례를 법률의 위헌결정에 대하여 일반적인 소급효를 인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 스스로 “법적 안정성의 유지나 당사자의 신뢰보호를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 위헌결정의 소급효를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법치주의의 원칙상 요청되는 바”라고 한다(1994. 10. 25. 선고 93다42740 판결). 헌법재판소도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구체적 타당성의 요청이 현저한 반면에 소급효를 인정하여도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없고 나아가 구법에 의하여 형성된 기득권자의 이득이 해쳐질 사안이 아닌 경우로서 소급효의 부인이 오히려 정의와 평등 등 헌법적 이념에 심히 배치되는 때에도 소급효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위 92헌가10 결정). 요컨대 위헌결정의 소급효가 인정되는 범위는 具體的 規範統制의 實效性 보장을 위하여 이미 제소된 사건에 이를 인정할 필요가 있거나, 아직 제소기간이 渡過하지 않은 사건 중에서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구체적 타당성의 요청이 현저한 경우에 예외적·부분적으로 인정되는 것으로서 가처분에 의한 법령효력정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법률의 효력정지제도를 위헌결정의 장래효 원칙에 대한 하나의 예외적 제도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점은 근본적으로 입법정책의 문제라고 할 것이며, 입법자의 명시적 수권 없이 법률의 위헌결정 전에 그 효력을 정지시키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5. 憲法訴願의 補充性(前審節次 履行要件) 우리 헌법재판소법은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전에 다른 법률의 구제절차를 모두 거치도록 하는 보충성의 원칙(또는 전심절차 이행요건)을 규정하고 있다(제68조 제1항 단서). 獨逸에서 보충성원칙은 헌법재판소의 업무부담경감과, 기초사실 및 일반법원의 법률적 견해의 전달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기능은 법원이 충분한 심리를 하고 법원의 재판에 대하여 널리 헌법소원이 행해지는 것이 전제된다. 그러나 우리 헌법소원제도는 독일의 제도와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제도적 의의와 기능도 전혀 다르다.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우리 법제(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본문)하에서 보충성원칙의 실제적인 의의는 원칙적으로 법원의 재판관할권에 속하는 사항을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심판관할권에서 배제하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헌법소원의 보충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법원의 不適法却下 판례가 確立된 事案만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것이므로 헌법소원이 空洞化할 우려가 있다. 그 반면에 보충성원칙의 예외인정범위가 바로 헌법소원의 심판범위를 확보하는 기능, 즉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배분하는 기능을 하므로 예외인정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령 자체에 의한 기본권침해가 문제될 때에는 일반법원에 법령 자체의 효력을 직접 다투는 것을 訴訟物로 하여 제소하여 구제를 구할 수 있는 절차가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단서 소정의 구제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 헌법소원을 내야 하는 제약이 따르지 않는 이른바 보충성의 예외적인 경우”라고 일관하여 판시하고 있다(88헌마1 결정 이래 확립된 판례). 그러나 법령의 위헌성을 직접 소송물로 하여 일반법원에 제소할 길이 없다는 것이 법원에 의한 권리구제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데 주의하여야 한다. 침해의 직접성이란 법령의 “집행행위가 없어도 직접 침해될 수 있는 경우”를 뜻하는 것이지, 당해 법령의 “집행행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직접성이 있는 법령에 대하여 기본권을 침해당한 국민은, 보충성원칙의 예외가 인정된다면 바로 그 법령조항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도 있고, 집행행위를 기다리거나 집행행위를 촉구한 후에 그 집행행위에 대하여 구제절차를 밟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게 된다. 나아가 독일의 최근 판례와 같이 헌법소원의 보충성원칙을 단순히 전심절차 이행요건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기본권침해를 저지하기 위하여 청구인에게 허용되어 있는 모든 가능한 방법들을 전부 시도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BVerfGE 74, 102(113) 및 기타 다수의 판결), 구제절차란 법원에 의한 권리구제이면 되지 공권력 행사를 소송물로 하여 다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요컨대 법원에 의한 권리구제를 반드시 거치도록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직접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허용할 것인가(보충성원칙의 예외 인정) 여부의 궁극적 기준은 구체적 사건의 본질이 憲法解釋에 가까운가 아니면 事實認定 및 法律解釋에 가까운가 그리고 어느 재판기관이 이를 담당하는 것이 憲法政策上 바람직한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6. 結 論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법령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가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그 법령의 적용이 문제된 재판이 사실상 전부 정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행정부도 그 법령에 따른 행정처분을 전혀 할 수 없게 될 것이므로 재판업무와 행정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어차피 위헌으로 결정될 법령이라면 위와 같이 법정책적·법이론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효력정지의 가처분을 선고하지 말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위헌결정을 하는 편이 법적 안정성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舊 司法試驗令 사건의 경우, 본안결정을 기다리면 한번의 응시기회를 상실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나, 긴급한 구제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본안사건을 신속하게 심리하였으면 되었을 것이다. 2000. 4. 18. 제기된 본안사건은 젖혀두고, 2000.12.8.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는 결정을 하면서 2001년 실시될 사법시험 제1차 시험 응시기회를 논하는 것은 너무나 옹색한 논리이다. 구 사법시험령 조항에 대한 일반적 효력정지가처분 후 오랜 기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위헌여부에 관한 본안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규범통제제도의 정상적 운영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사건 심판대상인 군행형법시행령 제43조 제2항 본문 중 전단부분은 “미결수용자의 면회횟수는 매주 2회로 하되”라고 규정하여 일견 별도의 집행행위 없이도 기본권을 직접 침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항 본문 중 후단부분은 “참모총장은 미결수용자의 접견교통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횟수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여 면회 횟수에 대한 행정청의 재량여지를 인정한다. 조문 전체의 취지로 볼 때 면회 횟수를 주 2회만으로 직접 제한하는 것이 입법자의 의도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헌법소원 본안사건은 침해의 직접성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却下되어야 마땅하다. 설령 군행형법시행령 제43조 제2항 본문 중 전단부분이 직접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인정하여도,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인(헌법소원 본안사건의 청구인)들이 먼저 면회를 신청한 후 면회거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이 절차에서 위 군행형법시행령 조항의 위헌·위법 여부가 재판의 전제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법원이 헌법 제107조 제2항에 따라 이를 심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헌법소원 본안사건의 본질은 청구인들의 접견교통권 보장 필요성과 군행형상의 제한필요성을 개별·구체적으로 비교형량하는 데 있으므로, 이와 같이 個別·具體的인 利益의 比較衡量이 관건인 사건에서의 권리구제는 법원이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보충성원칙의 예외를 인정할 때에는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機能分擔을 고려하여야 하므로, 이 사건 헌법소원은 법원의 권리구제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제기한 것으로서 不適法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건에서 법령의 효력을 일반적으로 정지하는 가처분까지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법령의 효력정지를 명하는 가처분신청을 인용할 만한 사건이 못된다. 이 사건 헌법재판소 결정은 무리한 준용이론을 전개하면서 사실상 입법을 하고 있고, 법원의 관할권과 중첩되는 문제도 야기하였다. 국가권력에 의한 개인의 권리침해를 구제하여야 할 기본적 권한과 책임은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나누어서 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헌법소원심판에 있어서 가처분제도를 도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 입법정책판단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헌법소원사건에서도 가처분이 필요한 경우가 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으나, 이 제도를 채택하면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특히 법령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제도는 그 파장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신중히 검토하여 입법자가 그 채택 여부를 결정하여야 할 사항이다. 가처분에 의하여 법령의 효력을 일반적으로 정지시키는 것은 법적 안정성에 반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처분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 있는지 재판경험에 비추어 충분히 검토하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또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충분히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2002-06-06
판례변경과 형법 제1조 제1항
Ⅰ. 대상판결요지 “운전면허증은 운전면허를 받은 사람이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하여 자동차의 운전이 허락된 사람임을 증명하는 공문서로서, 운전면허증에 표시된 사람이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라는 ‘자격증명’과 이를 지니고 있으면서 내보이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동일인증명’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운전면허증을 제시한 행위에 있어 동일인증명의 측면은 도외시하고, 그 사용목적이 자격증명으로만 한정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합리성이 없다. 인감증명법,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등 여러 법령에 의한 신분확인절차에서도 운전면허증은 신분증명서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으며, 주민등록법 자체도 주민등록증이 원칙적인 신분증명서이지만, 다른 문서의 신분증명서로서의 기능을 예상하고 있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 운전면허증을 발급 받을 수 있는 연령의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고, 특히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비율이 훨씬 더 이를 앞지르고 있으며, 금융기관과의 거래에 있어서도 운전면허증에 의한 실명확인이 인정되고 있는 등 현실적으로 운전면허증은 주민등록증과 대등한 신분증명서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제3자로부터 신분확인을 위하여 신분증명서의 제시를 요구받고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제시한 행위는 그 사용목적에 따른 행사로서 공문서부정행사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와 다르게 판시하였던 종전의 판결들(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도1237 판결 등)은 이 판결의 의견과 어긋나는 범위 내에서 이를 변경한다” Ⅱ. 문제점 이 판결에서는 제3자로부터 신분확인을 위하여 신분증명서의 제시를 요구받고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제시한 행위는 그 사용목적에 따른 행사로서 공문서부정행사죄에 해당한다고 보면서 다른 취지의 종전판례를 변경하고 있다. 형법 제1조 제1항에서는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行爲時의 法律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위시법주의 즉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이 규정의 적용범위가 문언상의 ‘법률’에 국한되는 것인지, 아니면 ‘판례’도 유추해석에 의해 그 적용범위 안에 들어가는지의 문제에 대해 최근 논의가 있다. 형식적 관점에서 보면 헌법 제13조 제1항과 형법 제1조 제1항이 ‘법률’만을 금지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판례변경은 이 원칙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보면 판례변경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새로운 입법이 소급적용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위 대상판결에서는 종전판례를 변경하면서 그 소급효를 인정하여 바로 당해 사건에 대하여 변경된 입장에 따른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 문제가 갖는 의미를 검토해보도록 한다. 이 판결에서 운전면허증제시행위를 공문서부정행사죄의 행위인 ‘행사’에 포함시켜 해석한 점은 평석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Ⅲ. 각 견해의 검토 본 논점에 관하여 근래 학계에서 개진되고 있는 각 견해를 간략히 정리·검토하기로 한다. (1) 소급효긍정설 이 설은 변경된 판례의 소급효를 긍정하는 입장으로서, 판례는 구체적 사건에 대한 법적 판단에 지나지 않으며 일반적 구속력을 갖는 법률과 구별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 입장에서는 헌법 제13조 제1항이 금지하고 있는 것은 ‘법률의 입법’에 소급효를 부여하는 것이며, ‘법률의 적용’에 불과한 판례에는 소급효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본다. 우리 대법원판례의 입장이다. 위 대상판결도 같은 입장이지만, 직접 이 문제에 관하여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대립되었던 대법원 1999. 7. 15. 선고, 95도2870 판결의 다수의견에서는 “형사처벌의 근거가 되는 것은 법률이지 판례가 아니고, 판례의 변경은 그 법률조항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아니하여 이로써 위 법률조항 자체가 변경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행위 당시의 판례에 의하면 처벌대상이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던 행위를 판례의 변경에 따라 확인된 내용의 위 법률조항에 근거하여 처벌한다고 하여 그것이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2) 금지착오원용설 금지착오원용설은 판례변경으로 인하여 새롭게 형사처벌을 받거나 또는 가중된 처벌을 받게 될 피고인을 구제하기 위하여 금지착오의 법리를 援用하자는 주장이다. 이 설에서는 피고인이 변경 전의 판례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리라고 신뢰한 것은 형법 제16조가 요구하고 있는 ‘정당한 이유’에 해당한다고 본다. 하지만 금지착오이론은, 법원이 당해 사건에 관하여 종전의 판례를 변경하는지의 여부와는 관계 없이, 행위자의 종전판례에 대한 신뢰에 대하여 제16조의 적용이 가능한지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이므로, 이 판례변경의 문제와는 기본적으로 무관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판례변경의 문제는 행위자가 종전판례의 내용에 관하여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와는 관계 없는 것이며, 이 설은 판례변경의 소급효인정 여부의 문제에 관한 입장을 직접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 견해를 취하는 입장은 결국은 소급효인정설에 토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소급효부정설 이 설에서는 판례의 종래 일관된 태도에 의하여 범죄성립이 지속적으로 부정되어 오던 행위나 또는 경한 처벌에 그치던 행위에 대해서는 변경된 판례에 소급효를 부여해서는 아니된다고 주장한다. 일관된 판례는 그 자체로서 法律的 屬性을 갖는 것으로서, 이미 국민들 사이에 사실상 구속력 있는 법규범으로 인식되고 있으므로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국민들의 이러한 신뢰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설의 가장 큰 난점은 실정법적 근거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설을 취하는 견해 중에는 판례를 변경하여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될 때에는 그 판례의 효력은 당해 사건에 대해서는 미치지 않고, 그 후의 사건에 대해서만 적용되도록 하고 당해 사건의 피고인에게는 종전판례에 따라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현행법 하에서는 불가능한 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판결은 이미 그 자체로서 이유에 모순이 있는 위법한 판결이 되는 것이며, 장래의 사건에 대해서만 변경된 취지를 적용한다는 점도 事件性을 전제로 하는 司法의 본질에 반하는 생각이라고 본다. 그런 방향으로의 법개정도 바람직하지 못하며, 그런 類의 입법은 오히려 판례를 통한 법발전에 장애가 될 소지가 크다고 하겠다. 판례변경의 동기를 분류하여, 법원의 법적 견해의 변경으로 인하여 판례가 변경된 경우에는 소급효를 부정하고, 객관적 법상황의 변경에 기하여 판례가 변경된 경우에는 소급효를 긍정하자는 절충적 견해도 있으나, 두가지 동기의 구분기준이 애매하고 또 소급효부정설에 대한 비판이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대법원 1999. 7. 15. 선고, 95도2870 판결의 소수의견에서는 형사법에서 국민에게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는 헌법의 정신, 실제의 법률생활에 있어서는 특히 최고법원판례의 경우 사실상 구속력을 가지고 국민에 대하여 그 행동의 지침을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당해 사건을 최종적인 판단에 의하여 해결하는 기능 뿐 만 아니라 법령해석의 통일이라는 제도적 기능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는 점, 법원의 일관된 법해석은 국민의 법의식상 사실상 구속력이 있는 법률해석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소급효를 부정하고 있다. Ⅳ. 평석 판례변경의 소급효를 부정하는 견해의 주된 근거는 국민의 법생활에 있어서의 신뢰와 예측가능성을 보호하자는 데 있다. 하지만 ‘판례‘에 있어선 ‘법률’의 경우에 비해서 신뢰와 예측가능성의 보호의 필요성이 훨씬 적다고 생각한다. 우리 法院組織法 제7조 제1항 제3호에서는 대법원에서 ‘종전에 대법원에서 판시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部가 아니라 全員合議體에서 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은 단순히 대법원의 부와 전원합의체의 관할을 분배하는 의미를 갖는데 그치는 것은 아니고, 본 판례변경의 주제와 관련하여 본다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의 심판이라는 신중한 절차를 거치면 종전의 판례의 입장을 변경하여 바로 당해 사건에 적용할 수 있다는 즉 새 판례의 소급효를 인정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 실정법에 판례변경의 소급효를 인정하는 명문의 규정이 있는 이상, 형법 제1조 제1항에 의하여 신법의 소급효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법률변경’의 경우에 비한다면 판례변경에 있어선 국민의 신뢰보호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피고인에게 불리한 판례변경은 상소나 비상상고의 사유가 되지도 못하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법원이 형벌불소급의 원칙의 적용을 피하기 위하여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판례를 변경함으로써 법률개정의 효과를 도모하는 경우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이 논제와 관련하여 궁극적으로 검토하여야 할 점은 해당 판례에서 죄형법정주의 등 헌법상의 원리나 책임주의에 부합하게끔 법을 정당하게 해석하였는지 아니면 그러한 원리에 어긋나게 부당한 해석을 하였는지의 문제가 될 것이다.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하급심의 판례변경에 있어선 상소에 의해서, 대법원의 판례변경에 있어선 비상상고의 절차에 의해서 구제를 받을 수 있을 뿐이며, 소급효금지의 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형벌불소급의 원칙은 1차적으로는 입법자의 정치적·자의적 입법활동을 규제하자는 취지를 갖는 것이므로, 그 원칙을 법관의 합리적·양심적 재판활동에 대해서까지 적용한다는 것은 무리한 논리이다. 특히 종전판례가 명백히 잘못된 내용인 경우에는 그것을 올바르게 변경하여 당해 사건에 적용하는 것이 법원의 임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 제3호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형법 제1조 제1항의 규정도 그러하지만, 법관에 의한 정당한 법형성과 법발전을 뒷받침해주는 의미를 갖는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판례변경의 소급효를 인정하여 변경된 판례를 당해 사건에 대하여 바로 적용하고 있는 위 대상판결의 判旨는 타당하다고 볼 것이다.
2002-01-10
허위의 친생자 출생신고에 의하여 입양의효력이 발생한 경우 양자의 인지청구 허용여부
I. 들어가는 말 최근에 나온 대법원 판결(2000. 1. 28. 선고 99므1817 판결, 이하 대상판결이라 한다)은 허위의 친생자 출생신고에 의해서 양자로 된 자에게 생부에 대한 인지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그 이론적 근거로서 ‘親生子의 추정이 미치지 않는 子’의 법리를 원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양친자관계가 성립되어 있는 경우에도 양자의 인지청구를 허용하기 위하여 ‘親生子의 추정이 미치지 않는 子’의 법리를 적용한다는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양친자 사이에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전제한다면 양자가 생부를 상대로 인지청구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상의 이해관계인도 또한 언제든지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생부도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고 子를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대상판결이 다루고 있는 사실관계에 ‘親生子의 추정이 미치지 않는 子’의 법리가 과연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오늘날까지 형성·확립된 학설과 판례에 의하면 ‘親生子의 추정이 미치지 않는 子’의 법리는 동거의 결여로 인하여 妻가 夫의 子를 포태할 수 없는 사정이 외관상 명백한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다. 즉 이 법리는 혼인상태가 법률상 유지되고 있는 동안에 妻가 子를 포태하여 출산한 경우를 전제로 하여 성립·발전되어 왔다. 그런데 이러한 법리가 입양에 의해서 양친자관계가 성립한 경우에도 여과 없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는 검토를 요하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문제 제기를 중심으로 하여 대상판결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 II. 사실관계와 판결요지 원고 甲은 사실혼관계에 있던 피고 乙(生父)과 丙(生母)사이에서 포태되어 1960년 8월 3일(음력)에 출생하였는데, 갑이 출생할 무렵에는 乙과 丙의 사실혼관계는 이미 해소된 상태였다. 甲은 태어난 지 약 한 달만에 丁(養母)과 戊(養父)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이 부부는 갑을 입양할 때에 입양신고를 하는 대신, 마치 甲이 자신들 사이에서 출생한 것처럼 허위의 친생자 출생신고를 하였다. 그 후 甲은 丁과 戊를 친부모로 알고 성장하였는데, 군대에서 제대한 후 養母인 丁으로부터 자신이 양자라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甲은 그 후 乙의 처남댁 등에게 문의한 결과, 자신의 생부가 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乙을 상대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원심법원은 원고 甲이 피고 乙과 丙 사이에서 태어난 子임을 인정하고, 원고의 인지청구를 인용하였다. 대법원 역시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그대로 인정하였으며, 이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하였다. “민법 제844조의 친생추정을 받는 자는 친생부인의 소에 의하여 그 친생추정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인지청구를 할 수 없으나, 호적상의 부모의 혼인중의 자로 등재되어 있는 자라 하더라도 그의 생부모가 호적상의 부모와 다른 사실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는 그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봄이 상당하고(대법원 1992. 7. 24. 선고 91므566 판결, 1988. 5. 10. 선고 88므85 판결, 1983. 7. 12. 선고 82므5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따라서 그와 같은 경우에는 곧바로 생부모를 상대로 인지청구를 할 수 있으므로, 같은 취지의 원심판결도 정당하고 거기에 법리오해의 위법도 없다.” 즉 대법원은 원심판결과 마찬가지로 원고의 인지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하였던 것이다. III. 평석 사실관계에 나타난 바와 같이 丁과 戊 부부는 甲을 입양하면서 입양신고를 하는 대신 친생자로 출생신고를 하였다. 현재의 학설과 판례는 입양의 방편으로 행하여지는 이와 같은 허위의 친생자 출생신고에 입양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즉 당사자 사이에 양친자관계를 창설하려는 의사의 합치가 있고, 그밖에 입양의 실질적 요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경우에는 입양신고 대신 친생자 출생신고를 한 경우에도 입양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대상판결에서도 법원은 원고 甲이 1960년 8월 3일(음력) 피고 乙과 丙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960년 9월경 丁, 戊 부부에게 入養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허위의 친생자 출생신고에 의해서 성립된 양친자관계라고 해도 그 효력면에 있어서는 입양신고에 의한 경우와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양자는 양친의 혼인중의 출생자인 신분을 취득하게 되며, 양친자관계는 파양에 의해서 해소될 때까지 지속된다. 허위의 친생자 출생신고에 의하여 양친자관계가 성립한 경우에는 罷養의 사유가 없는 한, 설령 친생부모라 하더라도 자신의 친생자를 인지할 목적으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대상판결에서 법원이 취한 태도(“호적상의 부모의 혼인중의 자로 등재되어 있는 자라 하더라도 그의 생부모가 호적상의 부모와 다른 사실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는 그 친생추정이 미치지 아니한다”)에 따르면 이런 경우에 이와 정반대의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허위의 친생자 출생신고에 의해서 양자로 된 자는 현재 “호적상의 부모의 혼인중의 자로 등재되어” 있다해도, 그의 생부모가 호적상의 부모(즉 양친)와 다르다는 사실만 객관적으로 입증되면, ‘親生子의 추정이 미치지 않는 子’로 되므로,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예를 들면 생부)은 누구나 제척기간의 적용도 받지 않고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이와 같은 결론은 법원이 1977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입양의 방편으로 행해진 허위의 친생자 출생신고의 효력과 관련하여 일관되게 유지해 왔던 태도와 전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양자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곧바로 생부를 상대로 인지청구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며, 또한 가족정책적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가? 이러한 이론이 제한 없이 적용되는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결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대상판결의 법리가 제한 없이 적용될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입양가정의 평화가 심각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 입양을 원하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양자를 법적으로나 실제상으로 자신의 친생자와 같이 키우기를 원한다. 혈통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양자의 장래나 주위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입양신고를 하는 대신 친생자로 출생신고를 하는 관행이 보편화된 것은 전적으로 이러한 사정에 기인한다. 따라서 입양가정에서 자라나는 양자의 대부분은 자신의 입양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양친을 친부모로 믿고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세월이 흘러 양자가 상당히 성장하였을 때, 생부(또는 생모)가 갑자기 출현하여 子를 인지할 목적으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한다면, 입양가정의 평화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소송의 전과정을 통해서 양자의 복리(특히 정서상의 복리)는 심각하게 침해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이러한 청구가 인용되는 경우 양자는 물론 양친을 비롯한 養家의 친족들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청구가 인용된 후 친생부모가 子를 인지하게 되면, 子의 입장에서는 혈연으로 이어진 친생부모를 찾은 결과가 되지만, 이와 같은 법이론이 도대체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위와 같은 경우 양친과 양자 사이에 사실상의 친자관계가 성립되어 있다면, 이러한 실질적인 관계는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실질적 관계의 보호는 양자의 복리와 입양가정의 평화라는 법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그 어떤 다른 법익(예를 들면 혈연의 진실에 입각한 친생부모의 인지권)도 이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보호해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실질적인 양친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예를 들어 양친이 양자의 양육의무를 방기하거나 학대하는 경우 등), 친생부모(子가 15세 미만인 경우 대낙권자로서) 또는 양자 자신이(子가 15세 이상인 경우 동의권자의 동의를 얻어서) 罷養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며, 파양 이후에 인지를 통해서 친생자관계를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러한 경우에는 굳이 친생부모에게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아도 파양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양자 자신이 친생부모를 상대로 하여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서 양부모가 유아를 입양하여 성년자가 될 때까지실제로 양육하였고, 그 결과 이들 사이에 실질적인 친자관계가 성립되어 있는 경우, 양자가 친생부모의 존재를 알게 되어 인지청구를 한다고 가정해 본다. 인지청구가 인용된다고 해도, 양친자관계가 법적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되지만(현행 민법상의 양자제도에 의하면 양자는 입양후에도 친생부모와의 친족관계를 유지한다. 즉 입양에 의해서 양자와 양친 사이에는 새롭게 친자관계가 발생하게 되지만, 이로 인해서 친생부모와의 친자관계가 소멸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현행 양자법의 구조에 비추어 볼 때 입양신고에 갈음하는 허위의 친생자 출생신고에 의하여 양자로 된 자가 자신의 친생부모에 대하여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하고, 그 청구가 인용되어 친생자관계가 발생한다고 해도 이미 성립되어 있는 양친자관계는 그대로 존속한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양친의 의사에 반하는 인지청구는 결국 그 때까지 성립·유지되어온 양친자관계를 심하게 훼손시킬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도 “호적상의 부모의 혼인중의 자로 등재되어 있는 자라 하더라도 그의 생부모가 호적상의 부모와 다른 사실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는 그 친생추정이 미치지 아니한다”는 이론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子의 인지청구권을 제한 없이 인정하는 결과로 되어, 결국 오랜 기간의 가족공동생활을 통해서 형성된 실질적인 양친자관계가 보호될 수 없다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한편 굳이 대상판결의 법리를 따르지 않더라도 양자가 자신의 친생부모를 알게 된 경우에는 양친자관계를 해소하지 않은 채 인지청구를 할 수 있다는 해석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행 민법상 양친자관계와 친생친자관계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므로, 양자가 양친자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친생부모를 상대로 인지청구를 하여, 친생자관계를 발생시킨다고 해도 법체계상 모순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판례에 따르면 입양신고에 갈음하는 허위의 친생자 출생신고에 대해서는 입양의 효력이 인정되고, 이렇게 성립된 양친자관계에 대해서는 파양의 사유가 없는 한 친생부모라 할지라도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없다. 친생부모가 子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청구를 거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제까지의 판례는 이런 경우에 친생부모의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청구를 허용한 적이 없다. 즉 허위의 친생자 출생신고에 의해서 자신의 子가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있는 경우, 친생부모는 子를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일관된 태도였다(인지를 위해서는 사전에 파양의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런데 똑같은 경우에 양자는 친생부모를 상대로 곧바로 인지청구를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친생부모의 인지권을 부정하는 판례의 태도와 모순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모순을 피하려면 위와 같은 경우에 차별 없이 적용되는 기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입양신고에 갈음하는 허위의 친생자 출생신고가 있은 경우에는 양친자 사이에 실질적인 친자관계가 성립되어 유지되고 있는가를 조사한 후, 이 사실이 인정된다면 친생부모와 양자 모두에게 인지권(또는 인지청구권)을 부정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실질적인 친자관계의 보호에 우선적인 가치를 둔다면, 이러한 해석론이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견해를 따른다면 양자가 곧바로 친생부모를 상대로 인지청구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양친자 사이에 실질적인 친자관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한하여, 먼저 파양을 통해서 양친자관계를 해소한 후에 인지청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양친의 동의가 있는 때에는 예외적으로 양자에게 인지청구를 인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양친이 양자의 구체적 사정(경제적 빈곤 등)을 이해하여 인지청구에 동의한 경우라면, 인지청구에 의해서 입양가정의 평화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한편 대상판결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이러한 사안에 ‘親生子의 추정이 미치지 않는 子’에 관한 법리를 적용했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학설과 판례에 의하면 ‘親生子의 추정이 미치지 않는 子’의 법리는 同棲의 결여로 인하여 妻가 夫의 子를 포태할 수 없는 사정이 외관상 명백한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다. 즉 이 법리는 혼인상태가 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중에 妻가 포태, 출산한 子에 대해서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 법원은 위의 해석론이 성립된 배경에 대한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입양에 의해서 양친자관계가 성립된 경우에까지 이 법리의 적용범위를 확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법원의 시도는 그 동안 학설과 판례를 통하여 형성된 해석론의 적용범위를 완전히 넘어서는 것이다.
2000-10-30
보험약관설명의무의 범위 및 무면허운전
【사 실】 소외 홍인의는 1997.3.3 피고회사와의 사이에 자신이 이 사건 화물자동차를 구입하여 피고회사 명의로 등록하고 피고회사의 업무수행을 위한 廢엔진오일 운반용 차량으로 제공하되, 운전사의 고용 및 급여의 지급, 보험계약의 체결, 차량관리 등에 관한 일체의 사항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피고회사는 홍인의에게 이 사건 화물자동차의 운송물량에 따른 운송비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차량운용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홍인의는 피고회사명의로 1997.4.14 피고회사를 기명피보험자로 하여 원고와 이 사건 화물자동차에 관하여 업무용자동차종합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원고회사 소속 보험모집인 소외 정창화가 보험계약자인 피고에게 보험계약의 성질에 대하여 정확히 설명하지 아니하고 이 사건 피보험자동차를 제1종 보통면허로 운전할 수 있는 것처럼 고지하였으며, 원고회사 울산지점의 영업소장이나 울산지점 심사담당자조차도 그렇게 알고 이 사건 보험계약을 정당한 보험계약으로 인정하는 등의 잘못을 범하였다. 홍인의가 고용한 운전사 정명화가 제1종 보통면허를 가지고 피보험자동차인 이 사건 화물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본건 사고를 내었다. 원고인 보험회사가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을 근거로 보험금지급채무의 부존재에 관한 확인청구의 소를 제기한데 대하여, 피고는 1. 보험모집인 정창화 및 원고회사 울산지점의 영업소장이나 울산지점 심사담당자가 잘못을 범하였다는 이유로 원고회사에게 신의칙상 또는 보험계약상 손해배상책임이 있고, 2. 정창화의 잘못된 고지로 인하여 피고회사가 이 사건 피보험자동차를 제1종 보통운전면허 소지자가 운전하는 것이 무면허운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으므로 이 사건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이 신의성실의 원칙 및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6조 제1항, 제2항, 제7조 제2호, 제3호의 규정에 위반되어 무효가 되며, 3. 본건 무면허운전은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승낙이 없으므로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이 적용될 수 없다고 항변하였다. 【판 지】 1. 상법 제638조의3 제1항 및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3조의 규정에 의하여 보험자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에 보험계약자에게 보험약관에 기재되어 있는 보험상품의 내용, 보험료율의 체계, 보험청약서상 기재 사항의 변동 및 보험자의 면책사유 등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한 명시·설명의무를 지고 있다고 할 것이어서, 만일 보험자가 이러한 보험약관의 명시·설명의무에 위반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한 때에는 그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면허를 가지고 피보험자동차를 운전하여야 무면허운전이 되지 않는지는 보험자의 약관설명의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2. 자동차종합보험 보통약관상의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은 사고 발생의 원인이 무면허운전에 있음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 사고 발생시에 무면허운전중이었다는 법규위반 상황을 중시하여 이를 보험자의 보험 대상에서 제외하는 사유로 규정한 것으로서, 운전자가 그 무면허운전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면책약관상의 무면허운전에 해당된다. 3. 자동차보험에 있어서 피보험자의 명시적·묵시적 승인하에서 피보험자동차의 운전자가 무면허운전을 하였을 때 생긴 사고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은 무면허운전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지배 또는 관리가능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는 것으로서,…무면허운전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묵시적 승인하에 이루어졌는지 여부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와 무면허운전자의 관계, 평소 차량의 운전 및 관리 상황, 당해 무면허운전이 가능하게 된 경위와 그 운행 목적, 평소 무면허운전자의 운전에 관하여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취해 온 태도 등의 제반 사정을 함께 참작하여 인정하여야 한다. 기명피보험자의 승낙을 받아 자동차를 사용하거나 운전하는 자로서 보험계약상 피보험자로 취급되는 자(이른바 승낙피보험자)의 승인만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묵시적인 승인이 있다고 할 수 없어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회사 명의로 차량을 등록하고 보험계약을 체결한 후 그 업무수행을 위해 차량을 제공하되 운전사의 고용 및 급여 지급 등 일체의 사항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을 지기로 약정한 자동차 소유자의 승낙 하에 그 피용자가 무면허로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경우,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해 설】 서론 : 본 판결에는 피보험자의 승낙과 무면허운전 면책약관의 관계에 관하여 대체로 3가지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아래에 판시의 순서에 따라 설명하기로 한다. 1. 보험약관명시설명의무의 범위 보험자는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한 명시·설명의무를 지고 있다(상법 제638조의3,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보험자가 이러한 보험약관의 명시·설명의무에 위반하여 체결한 보험계약도 약관을 보험단체의 법규범으로 보아 유효하다는 주장도 있다(법규범설). 상법 제638조의3 제2항이 이 위반에 대하여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계약이 성립한 날부터 1월내에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게 하는데 그친 것도 이러한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3조는 약관 일반에 관한 규정인데 대하여 상법 제638조의3은 보험계약의 약관에 관한 특별법이라고 보는 것이 법체계상 온당하므로 이 견해도 현행법의 해석으로서 논리에는 맞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약관을 규제하여 특히 보호해야할 보험계약자에게 너무 불리하다. 그래서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3조에 기하여 이에 위반한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정된 판례이다(대법원 1998.6.23.선고 98다14191판결 ; 대법원 1998.11.27.선고 98다32564판결 ; 대법원 1999.3.9.선고 98다43342, 43359판결 참조). 그러나 본 판결이 어떤 면허를 가지고 피보험자동차를 운전하여야 무면허운전이 되지 않는지는 보험자의 약관설명의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점에는 의문이 있다. 이 판결의 태도에는 상술한 법규범설의 영향이 엿보인다. 이 판시에 따르면 어떤 것이 보험자의 약관명시 설명의무의 범위에 포함될까. 무면허운전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약관의 명시는 될 수 있더라도 약관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은 될 수 없다. 약관의 명시 설명의무는 약관이 당사자간의 계약내용이므로 이 계약에 의해서 어떤 권리의무가 발생하는지를 당사자가 알고 동의하도록 하기 위해서 보험자에게 부담시킨 것이다. 그런데 보험자측의 보험모집인과 보험자의 울산지점의 영업소장이나 울산지점 심사담당자조차도 그 내용을 잘못 알고 있었다. 보험자측 스스로도 알지 못한 내용을 보험계약자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계약에 당사자가 내용을 알고 합의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무면허운전에 대한 처벌은 법률의 규정(도로교통법 제109조)에 의한 것이지만 이로 인하여 보험자가 면책되는 것은 당사자가 합의한 보험계약의 조항에 따른 것이다. “보통보험약관이 계약당사자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그 자체가 법규범 또는 법규범적 성질을 가진 약관이기 때문이 아니라 보험계약당사자사이에서 계약내용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하였기 때문”이라는 대법원의 지론(대판 1985.11.26, 84다카2543 ; 동 1986.11.26, 84다카122 ; 동 1989.11.14, 88다카29177 등 다수)에 따른다면, 이러한 약관은 보험계약의 일부로서 당사자를 구속할 수 없을 것이다. 대판 1992.7.28, 91다5624는 은행거래약관을 “설명하여 주지 아니하였다 하여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으나, 이 판결을 수긍한다고 하더라도 약관을 작성한 사업자측도 그 내용을 잘못 이해한 본 판결의 사안과는 역시 다른 경우이었다. 2. 무면허운전의 인식 이 면책약관이 유효하다고 전제한다면, 운전자가 그 무면허운전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면책약관상의 무면허운전에 해당된다는 것도 대법원의 판례에 따른 것이다(대법원 1991.12.24.선고 90다카23899전원합의체판결 ; 대법원 1993.3.9.선고 92다38928판결 ; 대법원 1997.9.12.선고 97다19298판결 ; 대법원 1998.3.27.선고 97다6308 판결 참조). 그러나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은 사고 발생의 원인이 무면허운전에 있음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 사고 발생 시에 무면허운전 중이었다는 법규위반상황을 중시하여 이를 보험자의 보험 대상에서 제외하는 사유로 규정한 것”이라는 설명은 부당하다.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이 사고발생의 원인이 무면허운전에 있음을 이유로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원인에 의한 보험사고의 위험을 보험에 의한 보호에서 배제하였다면 보험자는 그 사고로 인한 손해를 보상해줄 의무가 없다. 대판 1993.11.23, 93다41549에 의하면,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차량의 관리자 내지 운전자의 사용자로서 그에게 요구되는 통상의 주의의무를 다하였음에도 운전자의 무면허사실을 알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면책약관은 적용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의견은 보험자의 면책을 피보험자에 대한 제재로 보는 태도로서 무면허운전을 보험금지급의무에서 제외한 보험자측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 사법이론과 조화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보험자는 보험계약자에게 제재를 가할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3. 승낙피보험자의 승낙에 의한 무면허운전 무면허운전 면책조항을 아무런 제한 없이 적용한다면 무단운전자가 무면허운전을 한 경우에 자동차보유자는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면서도 자기의 지배관리가 미치지 못하는 무단운전자의 운전면허소지의 여부에 따라 보험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어 피보험자에게 너무 가혹하여 불합리하므로 피보험자의 명시적 묵시적 승인 하에 피보험자동차의 운전자가 무면허운전을 한 경우에 한하여 적용하며, 기명피보험자의 직접적인 승낙이 없고 이로부터 운전승낙을 받은 승낙피보험자의 승인만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묵시적인 승인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설시도 대법원의 판례에 따른 것이다. 대판 1993.12.21, 91다36420와 1994.1.25, 93다37991에 의하면, “승낙피보험자는 원칙적으로 보험계약자나 기명피보험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제3자로 하여금 당해 자동차를 사용, 운전하게 승인할 권한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래도 양승규 교수는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례“라고 비판한다(보험법 제3판, 412면 주19). 그러나 이 판례는 그후에도 이어졌다(대법원 1994.5.24.선고 94다11019판결 ; 대법원1995.9.15.선고 94다17888판결 ; 대법원 1996.2.23.선고 95다49776 ; 대법원 1996.10.20.선고 96다29847판결 ; 대법원 1997.6.10.선고 97다6827 ; 대법원 2000.2.25.선고 99다40548판결 참조). 그러나 본 판결의 사안에서는 기명피보험자인 피고회사가 홍인의에게 운전자의 고용을 인정한 이상 운전자에 대한 운전승인권도 부여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판 1993.1.19, 92다32111에서도 “기명피보험자와 자동차를 빌리는 사람과의 사이에 밀접한 인간관계나 특별한 거래관계가 있어 전대를 제한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추인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전대의 추정적 승낙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 다만 이 판결에서는, 무면허운전면책약관이 적용되는가의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기명피보험자의 간접적 승인을 받은 자의 사고에 대하여도 보험자는 보상의무가 있는지가 문제였다. 그런데 위의 대판 2000.2.25, 99다40548에서는 무면허운전면책조항에 관하여 “기명피보험자인 이글렌터카의 영업소장인 김태영은 자동차종합보험약관상 피보험자동차를 운행한 자격이 없는 만 21세 미만자인 김승우 또는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는 최보국을 임차인으로 하여 이 사건 자동차를 대여하고 21세 미만자인 김승우에게 이 사건 차량을 현실적으로 인도해 주었다는 것이므로, 이는 김태영이 그 대여 당시 21세 미만의 자가 김승우 또는 최보국으로부터 지시 또는 승낙을 받아 이 사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을 승인할 의사가 있었음을 추단할 수 있는 직접적 또는 간접적 표현이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이웅의 이 사건 자동차의 운전은 승낙피보험자의 승인만이 아니라 기명피보험자의 묵시적 승인도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위의 97다6827판결에서는 “지입차주의 승낙 아래 무면허로 화물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경우에는 무면허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는데, 사고를 낸 무면허운전자가 지입차주의 우발적 승인을 받고 운전한 자가 아니고 이 화물자동차를 상시 운전하는 자였다면 기명피보험자인 지입회사의 양해가 있었다고 보아 면책조항의 적용을 인정한 판지는 타당하다. 그리고 홍인의가 실질적으로 본건 화물자동차의 차주이고 피보험자임을 기준으로 하면 그가 고용한 운전자 정명화는 승낙피보험자가 될 것이다. 반대로 형식을 기준으로 피고회사가 차주이고 피보험자라고 한다면 피고회사소유의 본건 화물자동차를 상시로 운전하는 정명화는 적어도 그의 묵시적 승낙을 받은 승낙피보험자가 될 것이다. 본 판결도 제시하고 있는 묵시적 승인 하에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여러 기준들에 의하더라도 최소한 회사의 묵시적 승낙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 아닐까. 결어 : 본 판결은 보험자의 약관명시 설명의무 위반을 부당하게 부인하고 나서, 그 결과를 승낙피보험자의 개념에 의하여 무리하게 시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론에는 찬성하지만 이 결론은 2중의 이론상 오류에 의하여 도달한 것이다.
2000-09-04
수취인·발행일 기재 없는 어음의 효력
1. 사실관계 청구인 K는 J1이 발행한 액면금 1,500만원, 지급일 1995.10.10. 지급지 서울, 지급장소 한일은행 퇴계로지점, 발행지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1가 69, 발행일란 및 수취인란이 각 백지로된 약속어음 1매를 J2로부터 지급거절증서작성의무가 면제된 채로 배서양도받았다. K는 이 약속어음의 최종소지인으로서 지급기일에 지급제시하였으나 지급거절당하자 약속어음의 발행인인 J1과 배서인인 J2를 상대로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 약속어음금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96가단 11576). 이에 대해 배서인인 J2는 이 약속어음이 필요적 기재사항인 발행일란과 수취인란이 백지인 채 지급제시되어 무효이므로 약속어음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항변을 하였다. 이에 K는 같은 법원에 약속어음의 효력요건을 규정하고 있는 어음법 제76조 제1항 전문, 제75조 제5호 및 제75조 제6호중 ‘발행일’부분이, 발행일과 수취인 기재가 누락된 어음소지인의 배서인에 대한 소구권을 상실하게 하는 것은 과잉입법으로서 위헌이라고 주장하여, 이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97카기157)을 하였으나, 동법원이 이를 1997.6.11. 기각하자 1997.6.30. 그 기각결정정본을 송달받고 1997.7.7. 위 어음법규정들이 헌법 제23조 제1항의 재산권보장과 헌법 제37조 제2항 및 헌법 제103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쟁 점 어음법 제75조 제5호에서 “지급을 받을 자 또는 지급을 받을 자를 지시할 자의 명칭”(수취인)을, 그리고 제75조 제6호에서 “발행일”을 각각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하고 제76조 제1항에서 이를 기재하지 않은 증권은 약속어음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실제의 어음거래에 있어서는 발행일 및 수취인이 기재되지 아니한 어음도 어음요건을 갖춘 완전한 어음과 마찬가지로 당사자간에 발행되어 널리 유통되고 있으며, 어음교환소와 은행 등을 통한 결제과정에서도 발행일 및 수취인의 기재가 없다는 이유로 지급거절됨이 없이 발행일 및 수취인이 기재된 어음과 마찬가지로 지급·결제되고 있다.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부도가 되어 법률상의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어음소지인이 어음상의 권리를 행사하려면 적법한 지급제시를 하여야 하며(어음법 제38조 제1항, 제77조 제1항 제3호), 적법한 지급제시는 원칙으로 제시기간내에 완성된 어음을 제시하는 것이고, 완성된 어음이란 어음요건으로 규정되어 있는 어음의 필요적 기재사항을 흠결없이 모두 갖춘 자를 말한다. 그 중 하나라도 흠결하면 완성된 어음이 아니며, 그런 어음을 제시하는 것은 적법한 제시가 아니다. 특히 배서인에 대해 소구책임을 묻기 위하여는 만기일 또는 만기일에 이은 2거래일 이내에 적법한 지급제시를 하여야 한다(어음법 제53조 제1항, 제38조 제1항). 그런데 이 기간은 매우 짧아서 수취인 및 발행일이 흠결된 어음이 부도처리되어 반환된 경우에는 이미 이 기간을 경과한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사건의 법률상의 쟁점은 실제에는 약속어음소지인이 수취인이나 발행일의 기재가 흠결된 어음을 지급제시할 경우 배서인에 대한 소구권이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이다. 3. 외국의 입법례 제네바에서 체결한 1930년의 어음법통일조약의 내용에 따라 제정된 통일법계어음법들에서는 발행일 및 수취인은 어음의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규정되어 있다. 미국법은 발행일을 어음의 필요적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미국통일상법전 제3장 제114조 제1항). 미국법은 종전에는 수취인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하여 그 기재가 없는 증권은 흠결증권으로 하여 증권상의 권리가 상실되는 것으로 하였으나, 1994년 법개정을 하여 수취인을 임의적 기재사항으로 하여 그 기재가 누락된 경우에는 소지인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미국통일상법전 제3장 제109조(a)(2)항). 영국법은 발행일을 임의적 기재요건으로 규정(영국환어음법 제3조(4)(a)항)하고 있는 반면에 수취인은 필요적 기재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영국환어음법 제6조(1)항). 그 밖에 198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국제환어음, 국제약속어음에 관한 UN협약’안에서는 발행일은 필요적 기재요건으로 규정하였으나, 수취인은 임의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하였다. 4. 헌법재판소의 판단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구체적으로 형성함에 있어서 입법자는 일반적으로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을 가진다. 그렇지만 입법형성권을 통하여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여서는 아니되고 사회적 기속성을 함께 고려하여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하는 등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입법자가 어음법을 입법하고 이 사건의 법률조항들을 형성함에 있어서 수취인과 발행일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한 입법목적과 의미는 다음과 같다. (가) 입법자는 어음제도를 형성함에 있어 어음면상에 기재할 어음요건들을 특히 엄격하고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거래의 안전과 원활한 유통을 보장해야 하며, 이러한 입법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취인과 발행일 역시 다른 어음요건과 함께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하여 어음관계를 명확히 하고자 한 것이다. 국제간의 어음거래의 편의를 위하여 독일 등 국가와 보조를 맞추어 제네바 통일조약의 내용들을 수용하여 수취인과 발행일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하였다. (나) 발행일은 발행일자후 정기출급어음의 만기를 정하는 표준이 되고(어음법 제36조, 제77조 제1항 제2호), 원칙으로 일람출급어음의 지급을 위한 제시기간을 정하는 표준이 된다(어음법 제34조 제1항). (다) 수취인을 기재하지 아니한 어음은 ‘소지인출급식 어음’이 되어 수표와 다를 바 없게 된다. 입법자가 입법목적에 비추어 어음관계자의 이해와 공익적 필요 등을 비교형량하고 조정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서 발행일과 수취인을 어음의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함과 동시에 그 기재를 흠결하는 경우 어음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더라도 그것은 입법형성권의 범위내이지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문제된 법률조항들은 헌법 제23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 그 밖에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기본권제한의 한계를 정한 헌법 제37조 제2항에도 위반되지 않는다. 어음제도나 이 사건 법률조항들을 포함한 어음법은 사유재산권을 부인한 것이 아니며, 헌법 제23조 제1항 제2문에 의거 어음상의 권리의 득실·변경·행사 등에 관한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서 정하여 형성한 것이다. 그결과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서 규정한 수취인과 발행일의 기재를 누락하여 소지인이 어음요건흠결로 배서인에 대한 소구권을 상실한다하더라도 이는 기본권의 제한을 정한 규정이라 할 수 없다. 5. 평 석 종래 대법원은 어음요건으로서의 발행지(대법원 전원합의체 1998.4.23. 선고, 95다36466판결)(이 판결에 대하여 반대하는 평석으로는 이기수, 어음요건으로서의 발행지, 법률신문 1998년 5월 18일, 14쪽; 최기원, 발행지기재의 흠결과 어음의 효력, 법률신문 1998년 6월 1일, 14, 15쪽이 있고, 찬성하는 평석으로는 정찬형, 발행지의 기재없는 약속어음의 지급제시의 효력, 법률신문 1998년 5월 11일(제2692호), 14, 15면이 있다) 및 발행지기재 없는 수표의 효력(대법원 전원합의체 1999.8.19. 선고, 99다23383 판결)에 대한 판결에서 어음과 수표에서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될 것이 분명한 경우에는 발행지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도 어음·수표로서의 효력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여 그 이전의 판단을 번복한 바가 있다. 어음은 엄격한 요식증권으로서 법에서 규정하는 요건을 다 구비하여야 하고 그 요건가운데 일부라도 흠결되면 특히 법에서 구제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한 증권으로서 효력이 없다(이기수, 어음법·수표법학, 제4판, 1998, 95쪽 아래). 그런데 어음(수표)요건으로서 발행지와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수취인(수표의 경우에는 수취인의 기재는 필요적 사항이 아니다), 발행일을 차별취급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례는 특히 환영하여야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어음법·수표법은 제네바 어음법통일조약, 수표법통일조약에 근거하여 제정되었고 어음은 엄격한 요식성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실정법의 오해에서 비롯된 일부 실무계에서의 관행을 고려하여 법을 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이 법률의 명문규정에 반하는 판결을 선고한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이나 국민의 법준수의식 등에 비추어 문제가 심각하다. 종래 발행일, 수취인(발행지도 마찬가지이다) 미기재의 어음·수표(수표에서 수취인의 기재는 예외)에 대하여 일부 지급이 이루어졌던 것은 은행실무가들의 법의 규정의 취지의 무지로 요건흠결의 증권에 대하여 지급을 하였던 것이고 그것은 결코 현행법하에서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의 대법원판례는 그러한 잘못된 법위반행위를 도와주는 격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발행일과 수취인에 대하여 어음의 엄격한 요식성을 들어 그 기재없는 어음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취지의 결정을 함으로써 헌법재판소가 대법원보다는 한 수 위임을 보여준 것이라 평가하면서 크게 환영한다. 종래 우리의 법제도의 정비·운용의 실상을 보면 입법부는 지키기 어려운 법을 치밀한 준비없이 제정하는 경우가 있었고 또 법을 집행하는 기관인 행정기관이나 사법부가 위법을 초래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특히 사법부의 최고의 위치에 있는 대법원이 실정법을 저버리고 판례의 법형성(Rechtsfortbildung)의 한계를 일탈하는 판단을 내렸었는데 이번에 헌법재판소는 그래도 명백한 실정법을 준수하는 쪽으로 판단을 하여 많은 지지를 보낸다.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는 정확한 실태조사를 토대로 한 법개정을 통하여 합리적인 내용의 법률규정을 마련하고 그를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관건이다. 이 때에도 우리의 어음법·수표법이 서 있는 토양 내지 뿌리의 인식과 제외국 가운데 특히 그러한 같은 토양위에 서 있는 국가들의 논의 및 법개정과 보조를 맞추는 쪽으로 가야한다는 점을 망각하여서는 안된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현단계에서는 발행지, 수취인(수표의 경우 예외), 발행일은 명백한 어음요건으로서 이를 기재하지 않은 채 지급제시한 경우는 소구요건을 흠결하여 배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결국 어음·수표의 엄격한 요식성, 우리법의 성립토양, 근대국가의 삼권분립의 원리 및 국민의 실정법파악과 그의 준수의식 등에 비추어 이번의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바이다.
2000-03-20
발행지의 기재없는 약속어음의 지급제시의 효력
【事實關係】 주식회사 A는 1993. 7. 15. 발행지 및 발행인의 주소 (발행인의 명칭에 부가한 지)를 기재하지 않고 약속어음 5매 액면 합계 금220,000,000원을 B에게 발행하고, B는 이를 Y (피고) 에게 배서.양도하였는데, Y는 그 중 4매를 C (원심공동피고)에게, 나머지 1매를 X에게 각 배서.양도하였고, 위 C는 다시 위 4매의 어음을 X에게 배서.양도하여 X가 위 각 어음의 최종소지인이 되었다. X는 발행지 기재를 보충하지 아니한 채 1993. 10. 30 지급장소에 지급제시하였으나 무거래를 이유로 지급 거절되어 Y에게 소구권을 행사하였다. 그런데 Y는 X가 (지급제시기간 내에) 위 각 어음의 발행지를 보충하지 아니한 채 지급제시하였으므로 그 지급제시는 부적법하여 배서인인 Y에 대한 소구권을 상실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심은 『약속어음의 발행지 기재가 없더라도 어음면의 기재에 의하여 국내에서 발행 유통되는 어음임이 명백히 인정되는 경우에는 어음면의 기재에 의하여 발행지를 추단할 수 있는 사정이 엿보이는 한 발행지의 기재가 있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그런데 이 사건 각 어음의 우측 상단에 「부산」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또한 위 각 어음의 지급지가 양산군이고 그 지급장소도 주식회사 부산은행 양산지점인 점, 위 각 어음의 발행지가 국내회사인 주식회사 A인 점 등에 비추어보면 위 각 어음은 발행지의 기재가 있는 것으로 못 볼 바 없다고 할 것이므로, 비록 위 각 어음의 발행지란이 백지인 채로 지급제시되었다 하더라도 그 지급제시는 적법하고, 따라서 X의 Y에 대한 이 사건 소구권 행사 역시 적법한 지급제시에 의한 것으로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Y가 상고한 것이다. 【大法院判決 (전원합의체판결) 의 要旨】 어음법은 발행지를 어음요건의 하나로 규정하고 (어 1조 7호, 75조 6호), 발행지를 기재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어음은 효력이 없으나, 다만 발행인의 명칭에 부기한 지가 있는 때에는 그 곳을 발행지로 보며 (어 2조 1항.4항, 76조 1항.4항), 지급지의 기재가 없는 때에는 발행지를 지급지로 본다 (어 2조 3항, 76조 3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어음의 발행지란 실제로 발행행위를 한 장소가 아니라 어음상의 효과를 발생시킬 것을 의욕하는 장소를 말하는 것으로서, 어음의 발행지에 관련된 어음법 제37조, 제77조 1항 2호, 제41조 4항, 제77조 1항 3호, 제76조 3항 등과 섭외사법의 관련 규정들을 살펴보면, 어음에 있어서 발행지의 기재는 발행지와 지급지가 국토를 달리하거나 歲曆을 달리하는 어음 기타 국제어음에 있어서는 어음행위의 중요한 해석 기준이 되는 것이지만,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되는 이른바 국내어음에 있어서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국내어음이란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되는 어음을 말하는 것이므로 국내어음인지 여부는 어음면상의 발행지와 지급지가 국내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지만, 어음면상에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어음면에 기재된 지급지와 지급장소, 발행인과 수취인, 지급할 어음금액을 표시하는 화폐, 어음문구를 표기한 문자, 어음교환소의 명칭 등에 의하여 그 어음이 국내에서 어음상의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하여 발행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에는 발행지를 백지로 한 것인지 여부에 불구하고 국내어음으로 추단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일반의 어음거래에 있어서 발행지가 기재되지 아니한 국내어음도 어음요건을 갖춘 완전한 어음과 마찬가지로 당사자간에 발행.양도 등의 유통이 널리 이루어지고 있으며, 어음교환소와 은행 등을 통한 결제과정에서도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는 이유로 지급거절됨이 없이 발행지가 기재된 어음과 마찬가지로 취급되고 있음은 관행에 이른 정도이고, 나아가 이러한 점에 비추어보아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의 유통에 관여한 당사자들은 완전한 어음에 의한 것과 같은 유효한 어음행위를 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음면의 기재 자체로 보아 국내어음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있어서는 발행지의 기재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고,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도 완전한 어음과 마찬가지로 유통 결제되고 있는 거래의 실정 등에 비추어, 그 어음면상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이를 무효의 어음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와 일부 다른 견해를 취한 대법원 1967.9.5.선고 67다1471판결, 1976.11.23.선고 76다214판결, 1979.8.14.선고 79다1189판결, 1985.8.13.선고 85다카123판결, 1988.8.9.선고 86다카1858판결, 1991.4.23.선고 90다카7958판결, 1992.10.27선고 91다24724판결, 1995.9.15.선고 95다23071판결 및 이와 같은 취지의 종래의 대법원 판결들은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이 사건의 경우를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이 사건 각 약속어음은 국내금융기관인 부산은행이 교부한 용지에 의하여 작성된 것으로, 지급지는 양산군, 지급장소는 부산은행 양산지점으로 되어 있으며, 어음문구 등 어음면상의 문자가 국한문 혼용으로 표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어음 표면 우측 상단에 어음용지를 교부한 은행 점포를 관할하는 어음교환소명으로 「부산」이라 기재되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각 약속어음은 국내에서 발행되고 지급되는 국내어음임이 명백하고, 따라서 그 어음면상 발행지의 기재가 없다고하여 이를 무효의 어음으로 볼 수 없다고 할 것이므로, 위 각 어음에 대한 지급제시가 비록 발행지의 기재없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이는 적법하게 지급제시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원심의 판단은 위에서 설시한 법리와는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의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나, 이 사건 각 약속어음의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상태로 한 지급제시가 적법하다고 본 결론에 있어서는 정당하다. 따라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는 받아들일 수 없다. 위와 같은 대법원판결의 다수의견에 대하여 다시 세 분의 대법관의 보충의견이 있고,발행지의 보충이 없는 어음의 지급제시는 적법한 지급제시가 아니고 또한 이 어음의 표면 우측 상단의 「부산」이라는 표시는 어음교환소명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발행지의 기재로 볼 수 없어 원심판결은 파기되어야 하고 상고이유의 주장은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취지의 여섯 분의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있다. 【평 석】1. 序 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의하여 위와 같이 변경된 大法院判決은 필자가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주장하여 왔던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전폭적으로 찬성하는 바이다 (拙稿, 『어음.手票要件으로서의 「發行地」의 再檢討, 「民事判例硏究(VII)」, 143∼148면; 同, 『發行地의 記載가 欠缺된 어음』,「法律新聞」, 제2070호 (1991.10.21), 15면; 拙著, 「事例硏究 어음.手票法」, 法文社, 1987, 217∼220면; 同, 「第2改訂版 어음.手票法 講義」, 弘文社, 320면 外). 이와 같이 변경된 판결에 의하여 앞으로 많은 선량한 어음소지인 (어음상의 권리자)이 보호받고 어음의 엄격한 要式證券性을 악용하거나 또는 자기의 어음채무를 면탈하는 구실로 삼는 어음채무자를 규제할 수 있게 되어 한없이 기쁘게 생각하면서, 이러한 大法院判決이 이제야 나오게 된 것에 대하여 만시지탄의 감을 금할 수 없다. 위의 大法院判決에 대한 원심은 본건 어음의 표면 우측 상단에 어음용지를 교부한 은행 점포를 관할하는 어음교환소명으로 기재된 「부산」을 발행지로 보아 X의 본건 어음의 지급제시는 적법하다고 판시하였는데, 이와 같이 어음면상의 다른 기재에서 억지로 발행지를 의제하는 것도 무리라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이러한 기재를 발행지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大法院判決의 多數意見과 少數意見은 모두 타당하다고 본다. 그런데 多數意見은 위의 기재를 발행지로 볼 수 없어 발행지가 없는 어음이라도 국내어음인 경우에는 有效어음으로 본 것이고 少數意見은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이 白紙어음으로 추정되는 경우에도 이의 보충이 없는 지급제시는 적법한 지급제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본건 大法院判決에서 多數意見에 대한 세 분의 대법관의 보충의견은 필자가 그동안 주장하여 왔던 이유와 대부분 일치하므로 다시 多數意見이 타당한 이유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少數意見에 대하여 필자가 견해를 달리하는 내용을 간단하게 추가하고자 한다. 2. 少數意見에 대한 평석 (1) 少數意見은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법규가 있고 그 의미내용 역시 명확하여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여야 한다는 정의의 요청 또는 합헌적인 해석의 요청에 의하여 그 법규의 적용범위를 예외적으로 제한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설사 명문의 규정이 거래의 관행과 조화되지 아니하는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법원은 모름지기 국회의 입법작용에 의한 개정을 기다려야 할 것이지 명문의 규정의 적용범위를 무리하게 벗어나거나 제한하는 해석을 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법원은 문제가 있고 또한 실제 생활과 괴리되어 계속적.반복적으로 선량한 어음소지인에게 피해를 주고 오히려 어음채무자에게 어음채무를 면탈하는 구실만을 주는 조항을 法條文에만 얽매이고 또 이를 文理解釋하여 부당한 결론을 내는 것은 너무나 소극적이고 사회정의에 반하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또 多數意見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사회현실에 맞고 또 당사자간의 본래의 의사에도 맞는 해석이며, 이것이 法的 安定性을 해하거나 또는 社會秩序에 반하는 해석도 아니라고 본다. (2) 少數意見은 다수의견이 입법정책상의 문제 또는 사실인정의 문제를 법률해석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 어음법이 1995년12월6일 법 제5009호로 개정되어 어음요건에서 종전의 「기명날인」에서 「기명날인 또는 서명」으로 바꾼 바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당시 발행지의 요건에 대하여 이를 존치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충분히 검토를 하였고 또 이를 제외할만한 사회 경제적 여건의 변화나 국내.외 상거래관행이 있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존치시킨 것인지는 매우 의문이다. 즉 그 당시 법개정의 과정에서 이에 관한 충분한 논의 및 관련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빠짐없이 수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필자도 그와 같이 어음법이 변경된 사실을 신문을 보고 알게 되었다). 또한 국내어음의 발행지가 외국환관리법상 당국의 허가 등 일정한 제한 하에서 외국에 수출하는 경우 등에 의미가 있다는 것은, 거의 발생하지도 않는 극히 예외적인 현상을 국내에서만 유통된 사실이 명백한 국내어음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외국에 수출되는 국내어음이 발행지가 기재되어야 하는 점 때문에 당사자간에 발행지를 거의 의식하지 않고 국내에서만 유통되고 또 그 어음이 국내(한국)에서 발행된 것이 당사자간에 자명한데 그 어음상에 「한국」이라고 기재되지 않았다고하여 위의 외국에 수출되는 어음과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요컨대 법원이 거래관행과 당사자의 의사에 맞게 법률을 해석하는 것을 가지고 형식논리를 내세워 입법정책의 문제라거나 사실인정의 문제로 돌려 소극적으로 해석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결하는 해석을 하는 것은 국민의 사법부의 신뢰를 손상시키는 원인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3) 少數意見은 다수의견이 우리 어음법의 운용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손상시키고, 어음이 국제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경제실정에도 맞지 아니한다고 한다. 우리 어음법이 제네바통일법계에 속하는 입법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그것이 국제조약이나 국제법은 결코 아니다. 제네바통일조약 제1부속서 (어음법안) 및 제2부속서 (유보조항)를 참고하여 제정한 국내법이다. 따라서 이를 우리 실정과 관행에 맞게 입법하거나 해석하는 것이 국제적 신뢰를 손상시킨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의 관행을 이해하고자 하고 또한 당사자간의 의사에 합치하는 해석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외국인들에게는 신뢰감을 주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점은 미국에서 통일상법전 (Uniform Commercial Code)이 각 주에서 채택될 때 그대로 채택되기도 하나 변경되어 채택될 수도 있고 또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점과도 유사하다고 본다. 또한 다수의견은 국내에서만 유통되는 국내어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국제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경제실정에도 맞지 아니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만일 우리나라가 1988년에 제정된 「국제환어음.국제약속어음에 관한 유엔협약」을 비준하고 또한 同협약이 발효하게 되면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어음에도 同협약이 적용되어, 국내에서 유통되는 어음에는 현행 어음법이 적용될 것이고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어음에는 위 협약이 적용되어 어음법이 二元化가 될 것이다. (4) 少數意見은 다수의견이 어음의 절대적 요식증권성을 무시한 견해이며 또한 지금까지 일관되게 발행지의 기재를 어음요건으로 하는 대법원의 견해를 특별한 상황의 변화도 없이 갑자기 성문법주의 법체제하에서 어음요건에 관한 명문규정을 정면으로 거슬리는 결론을 끌어 내려는 것으로 부당하다고 한다. 그런데 어음.수표에서 발행지에 대한 요건에 대하여는 발행지의 존재 의의와 관련하여 (국내에서만 유통되는 어음.수표의 경우) 많은 의문이 제기되어 왔고 (鄭熙喆, 「商法學(下), 博英社, 1990, 141면; 鄭東潤, 「어음.手票法(四訂版)」, 法文社, 1996, 378∼379면)」, 발행지의 기재가 없는 어음을 有效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필자외에도 있었다 (梁承圭, 「商法事例硏究 (增補版)」, 三英社, 1983, 239∼240면; 金敎昌, 「發行地의 기재없는 어음」, 「司法行政」, 1986. 7, 22면 이하; 朴鍾衍, 『發行地.受取人 등의 기재가 누락된 경우 약속어음.수표所持者의 救濟方法』, 「法律新聞」, 제2061호 (1991년9월26일) . 제2062호 (1991년9월19일)). 우리 大法院에서도 발행지의 기재없는 手票에 대하여 전원합의체판결에서 종래의 판례를 변경하여 부정수표단속법상의 수표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大判 1983년5월10일, 83도340〕. 이와 같이 국내에서만 유통되는 어음.수표요건으로 존치시킬 필요가 있는가에 대하여 學說.判例에서는 과거부터 많은 고심을 한 것이 역력한데, 이를 절대적 요식증권성에만 얽매여 불합리한 결과의 판결만을 반복할 것인가는 극히 의문이다. 이번 大法院의 多數意見과 같이 불합리한 성문법의 강행규정을 시정하는 판결을 내고 이러한 判決의 반복에 의하여 하나의 (商)慣習法이 형성되면 이는 (商)慣習法의 變更的 效力에 의한 成文法의 변경의 면에서도 수긍될 수 있다고 본다. 3.結 語 위에서 본 바와 같이 少數意見은 너무나 法條文의 文理解釋에 집착한 해석이며 또한 현실을 너무나 무시한 소극적 해석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多數意見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이러한 大法院의 多數意見에 따른 변경된 判例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국내어음의 경우 이제는 어음소지인이 發行地를 보충하지 않고 약속어음의 발행인 (주채무자)에게 지급제시하여도 발행인은 어음요건흠결을 이유로 지급거절을 할 수 없고, 어음소지인이 지급제시기간내에 발행지를 보충하지 않고 지급제시한 경우에도 이는 적법한 지급제시가 되어 所求權이 保全된다고 본다. 그러나 어음소지인은 發行地를 보충하여 지급제시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이러한 大法院의 變更判例는 약속어음의 발행지에 관한 것이나, 換어음 및 手票의 발행지에 관하여도 동일하게 해석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98-05-11
1
2
3
4
5
bannerbanner
주목 받은 판결큐레이션
1
[판결] ‘미르의 전설’ 게임 로열티 소송…대법 “준거법은 중국법” 파기환송
판결기사
2024-06-06 09:30
태그 클라우드
공직선거법명예훼손공정거래손해배상중국업무상재해횡령조세부동산노동
현행 연명의료중단제도의 개선 방향
성중탁 교수 (경북대 로스쿨)
footer-logo
1950년 창간 법조 유일의 정론지
논단·칼럼
지면보기
굿모닝LAW747
LawTop
법신서점
footer-logo
법인명
(주)법률신문사
대표
이수형
사업자등록번호
214-81-99775
등록번호
서울 아00027
등록연월일
2005년 8월 24일
제호
법률신문
발행인
이수형
편집인
차병직 , 이수형
편집국장
신동진
발행소(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396, 14층
발행일자
1999년 12월 1일
전화번호
02-3472-0601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순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김순신
인터넷 법률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인터넷 법률신문은 인터넷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