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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인정여부
Ⅰ. 서 이혼법에서의 대변혁이 온 것일까? 이혼법에서는 이혼원인과 관련하여 도의관념을 강조하는 유책주의와 부부간 자유의사를 강조하는 파탄주의의 대립이 있다. 유책주의란 이혼원인을 한정하고 피고의 유책성이 존재해야만 이혼을 인정하는 것이고, 파탄주의는 파탄이라는 객관적인 사실만 존재하면 유책성을 따지지 않고 이혼을 인정하는 입법태도이다. 현행 민법은 유책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규정(민법 제840조 제1호~제5호)과 함께 파탄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규정(동조 제6호)을 가미함으로써 해석상 명확하지 않은 입장이어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가능한지에 대해 그 동안 적극설, 소극설, 제한적 적극설의 대립이 있어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그동안 유책주의에 기초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부정하고 다만 특별한 경우에만 인정함으로써 원칙적으로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종래에 예외적으로 인정하던 경우보다 광범위하게 허용하면서 파탄주의적 경향을 보인 듯한 판결을 연이어 내고 있어 그 의미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이하에서는 그런 판결의 의미와 그 타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II. 대법원 2010.6.24. 선고 2010므1256 판결 1. 사실관계 원고와 피고는 1959.4.9. 혼인신고를 마치고 동거를 하다가 원고는 1964년 고향인 경북에 있는 원고 집에 처를 남겨 두고 혼자 서울로 올라가 일을 하였는데, 그 무렵부터 피고와 별거하면서 소외인과 동거하기 시작하여 그 사이에 3자녀를 두었다. 피고는 경북에 있는 원고 집에서 시아버지를 부양하였고, 현재까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원고와 피고는 별거하면서 원고가 소외인과 사실혼관계를 형성하였고, 별거상태가 46년간 지속되어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해소되자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이혼청구를 하였던 사안이다. 2. 하급심 판단 (대구지방법원 2010.2.10. 선고 2009르873 판결) "원고는 처인 피고를 두고 다른 여자와 동거해 세 자녀를 출산하는 등 혼인관계 파탄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였고, 경북에 있는 원고 집에 머물면서 홀로 시아버지를 부양한 피고에 대하여 남편으로서 최소한의 부양의무도 이행하지 않았으면서도 피고가 자녀를 출산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이혼을 원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은 원고에게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피고가 실제로는 혼인을 계속할 의사 없이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도 찾아보기 어려우므로 유책배우자인 원고의 이 사건 이혼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여 원고의 이혼청구를 기각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2010.6.24. 선고 2010므1256 판결) "원·피고의 혼인관계는 약46년간 장기간의 별거와 원고와 소외인 사이의 사실혼관계 형성 등으로 인하여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해소되고 원고와 피고 각자 독립적인 생활관계가 고착화되기에 이른 점, 원고와 피고 사이의 부부공동생활 관계의 해소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원고의 유책성도 세월의 경과에 따라 상당 정도 약화되고 원고가 처한 상황에 비추어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법적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현 상황에 이르러 원고와 피고의 이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파탄에 이르게 된 데 대한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의 법적·사회적 의의는 현저히 감쇄되었다고 보이는 점, 원고와의 이혼을 거절하는 피고의 혼인계속의사는 이혼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반드시 참작하여야 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원고와 피고가 처한 현 상황에 비추어 이는 혼인의 실체를 상실한 외형상의 법률혼관계만을 계속 유지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보이고, 피고의 혼인계속의사에 따라 현재와 같은 파탄 상황을 유지하게 되면, 특히 원고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계속 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참작하여 보면, 원고와 피고의 혼인은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할 것이며, 혼인제도가 추구하는 목적과 민법의 지도이념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혼인관계의 파탄에 대한 원고의 유책성이 반드시 원고의 이혼청구를 배척하지 않으면 아니 될 정도로 여전히 남아 있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민법 제840조 제6호 소정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는 이혼원인이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Ⅲ. 관련 판례 검토 1. 대법원 2009.12.24. 선고 2009므2130 판결 원고와 피고는 약 11년간 서로 떨어져 각자의 주거지에서 별개로 생활을 영위하여 왔는데, 위 기간 동안 피고는 수차례 원고를 찾아왔으며, 사건본인들도 원고를 기다려 왔다. 원고는 소외인을 만나 현재까지 동거하면서 소외인과 사이에서 자녀를 출산하였다. 한편, 피고는 자신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미성년 자녀를 양육한 사안에서 "원고와 피고의 혼인은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고,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혼인제도가 추구하는 목적과 민법의 지도이념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춰보더라도 혼인관계의 파탄에 대한 원고의 유책성이 반드시 원고의 이혼청구를 배척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으므로 민법 제840조6호의 이혼원인이 존재 한다"고 판단했다. 즉 장기간 별거로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황에서 가정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여 획기적인 판례로 주목된 바 있다. 2. 최근 하급심 판결 경향 분석 가. 이혼청구를 부정한 경우 하급심에서의 이혼청구를 기각한 사례들을 분석하면 피고는 적극적으로 이혼을 반대하면서 혼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사례가 많았다. 별거기간이 비교적 짧고 원고의 유책성이 입증된 경우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남편이 이혼을 원하면서 일방적으로 외국으로 건너가 별거를 하면서 이혼청구를 한 사건에서 부인이 한국에서 자녀들을 잘 양육하면서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한 사건에서도 제1심에서는 이혼청구가 인용되었지만 상급심에서 원고의 이혼청구를 기각시킨 사례도 있었다. 5년간 부부관계 단절의 원인이 성격차이라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판결(서울가정법원, 2010.4.23.선고), 부부사이에 7년 이상 성관계 없었더라도 상대방에게 문제해결의지가 있는 경우 이혼청구를 기각한 판결(서울가정법원 2009.4.17. 선고) 등도 그러하다. 나. 이혼청구를 인용한 경우 혼인기간이 짧고 자녀가 없는 경우, 별거기간이 길고 당사자 사이에 혼인을 지속하려는 의지가 약한 경우, 자녀가 성년이 된 경우 등에는 비교적 이혼청구가 인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1) 아내가 7년 이상 식물인간 상태에 있고, 장인, 장모도 이혼에 동의하고 있는 점을 참작하여 이혼청구를 인용한 사례(서울가정법원, 2009드단93582) "피고가 7년이 넘도록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있고 피고 부모도 원고와 피고의 이혼에 동의하고 있어,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 보이는바, 이는 민법 제840조 제6호의 이혼사유에 해당한다"고 하여 이혼청구를 인용하였다. (2) 광주고등법원 2009.6.5. 선고 2008르242 "원·피고의 별거기간은 11년 이상으로 장기간인 점, 원고가 새로이 출산한 신생아는 원고의 보살핌이 필수불가결한 점, 이 사건 이혼청구를 기각할 경우 이러한 현재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크고 이보다는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를 적절한 방식으로 정리하고 신생아의 치료, 양육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 사건본인들을 만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그들과 면접, 교섭을 하면서 경제적 능력이 허용하는 대로 양육비를 부담하는 등 모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사건본인들의 복지와 이익에 도움이 되는 점 등 이 사건에 나타난 제반사정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와 피고의 이혼으로 인하여 피고나 사건본인들이 정신적·사회적·경제적으로 심히 가혹한 상태에 처하게 되는 등 이혼청구를 인용하는 것이 현저하게 사회정의에 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따라서 원고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 판결은 대법원 2009.12.24. 선고 2009므2130 판결의 원심으로서, 정면으로 파탄주의에 입각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한 것으로 평가한다. Ⅳ. 판례평석 1. 머리말 대법원은 그동안 유책주의에 입각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기각하면서 예외적으로 ①상대 배우자도 혼인계속의 의사가 없으면서 오기나 보복적 감정으로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 ②부부쌍방에게 파탄의 책임이 있는 경우 ③혼인 파탄 이후에 원고에게 유책행위가 존재하는 경우 등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해왔다(99므1213, 2004므1033 등). 그러나 혼인파탄의 원인은 사실상 부부 일방의 책임으로 발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파탄에 이른 원인 또한 다양해서 배우자 가운데 과연 누가 이혼원인의 제공자인지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어 파탄주의적 사고를 도입해야 하지 않겠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2. 학계 반응 최근의 두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학계는 "대상판결이 명확히 파탄주의를 취한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파탄주의적 사고를 강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이경희 한남대 교수), "유책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판결이자 파탄주의로도 볼 수 있는 판단이라며 상대배우자에게 혼인계속의 의사가 있음에도 이를 인용했고, 혼인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점을 판단근거로 든 점 등은 파탄주의로 해석할 수 있다"(이화숙 연세대 교수)며 법원이 사회상의 변화를 받아들여 파탄주의에 근접한 판결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법률신문 2010.1.7자 기사 참고).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대해서도 '원칙적 부정, 예외적 허용'이라는 기존의 판례에서 "원칙적 인정, 예외적 이혼유보"로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하고 있다(이희배 명예교수, 법률신문, 2010. 3. 8자 참고). 3. 사견 (1) 최근 대법원 판결을 놓고 대법원이 기존의 유책주의를 포기하고 파탄주의를 채택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대법원은 과거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배제하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그 예외를 조금씩 인정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대법원 판결들은 기본적으로 유책주의적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파탄주의 이혼법을 지향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 파탄주의적 판례를 낸 것으로 볼 것이지, 전면적으로 파탄주의로 선회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아닌 점에서도 그러하다. 독일과 같이 명시적으로 파탄주의에 충실한 이혼규정['부부가 3년 이상 별거한 경우에는 그 원인에 관계없이 혼인이 파탄된 것으로 보아서 이혼을 허용한다'(독일민법 제1565조, 제1566조 참조)]이 없는 현행법 하에서는 파탄주의적 사고의 결론을 도출할 사례들의 필요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파탄주의가 당사자들의 자유에는 부합하지만, 현실적으로 무책배우자의 보호문제, 처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힌 상황에서는 축출이혼 방지 등을 위해 유책주의적 사고도 필요한 만큼 대법원은 유책주의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그 필요성에 따른 파탄주의적 사고를 확대해 나감으로써 이혼과 관련한 당사자의 권리, 의무를 충실히 보호하고자 하는 이상을 실현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볼 것이다. 대상 대법원 판결은 "혼인관계의 파탄에 대한 원고의 유책성이 반드시 원고의 이혼청구를 배척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으므로 민법 제840조6호의 이혼원인이 존재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바, 결국 이 사건을 제 6호의 이혼사유를 넓게 해석하여 이혼청구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Ⅴ. 결어 결론적으로 대상 판결들이 파탄주의를 명시적으로 채택하였다고 보기보다는 구체적인 사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와 파탄주의를 유연하게 채택하였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혼청구에 대해서 이혼여부를 일률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법원이 이혼청구를 인정할 것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 유책주의에 견지에서 민법 제840조의 이혼사유가 명확히 규정되어 법적안정성을 갖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제6호 기타사유 해석에 대해 법원마다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유책주의의 법적 안정성의 장점은 희석되고 있다. 특히 유책주의에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주장하고 입증하는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치열한 감정대립으로 불필요한 소모전이 되어 당사자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세계의 이혼법은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가고 있는 추세이다. 미국의 대부분의 주,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여러 선진국이 파탄주의를 채택하거나 파탄주의 요소를 병행하고 있는 점은 우리에게 참고할 만하다. 혼인을 유지할 것인지, 혼인을 해소할 것인지는 결국 각 경우의 당사자와 자녀들의 고통과 피해를 고려하여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파탄주의를 도입하더라도 무제한적인 파탄주의보다는 유책주의와 병행하거나, '이혼으로 인하여 경제적 파멸이나 정신적 고통이 충격이 될 정도라면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가혹조항을 둔다면 파탄주의 폐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이혼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는 구체적인 사건마다 개별적인 이혼원인에 파탄주의를 병행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0-09-20
대법원의 애매한 행정행위의 附款觀
Ⅰ. 사실관계 (1) 원고(한국도로공사)는 고속국도법 제6조, 제8조, 제10조 및 도로법 제50조의 각 규정에 따라 고속국도와 그 접도구역의 관리 및 유지를 담당하는 관리청이고, 피고(주식회사 대한송유관공사)는 송유관의 건설, 유지보수, 관리, 운영 및 송유관과 관련된 제반사업의 영위 등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회사이다. (2) 피고는 고속국도법과 도로법에서 정하고 있는 도로부지와 접도구역에 송유관을 매설하기 위하여 1991. 10.8. 원고와 그 매설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였는데, 그 협약 중 송유관 시설의 이설 및 그 비용부담에 관한 내용은 '고속국도의 유지관리 및 도로확장 등의 사유로 도로부지 및 접도구역에 매설한 송유시설의 전부 또는 일부의 이설이 불가피할 경우에는 원고는 피고에게 송유관시설의 이전을 요구할 수 있고 그로 인하여 발생되는 이설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로 되어 있었다. (3) 원고는 1992. 5.18. 피고에게 "도로점용 및 접도구역 내 공작물 설치허가"를 하였는데, 그 허가조건 중의 하나로 피고가 이 사건 협약을 위반하였을 때에는 원고가 임의로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을 부가하였다. (4) 그런데 원고가 1997년 초경 경부고속도로 청원-증약 사이 구간의 도로를 확장하는 공사를 계획하게 되어 그 구간의 도로 및 접도구역에 매설되어 있던 송유관의 이설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이에 원고는 1997. 4. 4. 피고에게 "송유시설 이설비용 부담주체 등에 관한 업무협의 요청"을 보내면서 위 구간의 도로부지 및 접도구역 내에 매설되어 있는 송유관을 이 사건 협약의 내용에 따라 피고의 비용으로 이설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위 요청서를 받은 피고는 1997. 4.29. 원고에게 "송유시설 이설비용 부담 주체 등에 관한 의견 회신"을 보내면서 '이 사건 협약에 따라 도로부지 및 접도구역 내의 송유관 이설 비용은 피고가 부담하고, 도시계획구간 등 기타지역 내의 송유관 이설비용은 원고가 부담하여야 할 것'이라고 답신하였다. Ⅱ. 대법원 판결요지 (1) 수익적 행정처분에 있어서는 법령에 특별한 근거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부관으로서 부담을 붙일 수 있고, 그와 같은 부담은 행정청이 행정처분을 하면서 일방적으로 부가할 수도 있지만 부담을 부가하기 이전에 상대방과 협의하여 부담의 내용을 협약의 형식으로 미리 정한 다음 행정처분을 하면서 이를 부가할 수도 있다. (2) 행정청이 수익적 행정처분을 하면서 부가한 부담의 위법 여부는 처분 당시 법령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부담이 처분 당시 법령을 기준으로 적법하다면 처분 후 부담의 전제가 된 주된 행정처분의 근거 법령이 개정됨으로써 행정청이 더 이상 부관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하더라도 곧바로 위법하게 되거나 그 효력이 소멸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행정처분의 상대방이 수익적 행정처분을 얻기 위하여 행정청과 사이에 행정처분에 부가할 부담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행정청이 수익적 행정처분을 하면서 협약상의 의무를 부담으로 부가하였으나 부담의 전제가 된 주된 행정처분의 근거 법령이 개정됨으로써 행정청이 더 이상 부관을 붙일 수 없게 된 경우에도 곧바로 협약의 효력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3) 부당결부금지의 원칙이란 행정주체가 행정작용을 함에 있어서 상대방에게 이와 실질적인 관련이 없는 의무를 부과하거나 그 이행을 강제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4) 고속국도 관리청이 고속도로 부지와 접도구역에 송유관 매설을 허가하면서 상대방과 체결한 협약에 따라 송유관 시설을 이전하게 될 경우 그 비용을 상대방에게 부담하도록 하였고, 그 후 도로법 시행규칙이 개정되어 접도구역에는 관리청의 허가 없이도 송유관을 매설할 수 있게 된 사안에서 위 협약이 효력을 상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 협약에 포함된 부관이 부당결부금지의 원칙에도 반하지 않는다. Ⅲ. 평석 1. 이 사건 판례의 특이성 위에 소개한 대상판결의 '판결요지'만 읽어보면, 이 사건 판례가 행정소송(항고소송)에 관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 사건의 판례번호(2005다65500) 및 [제1심 판결 중 "금 522,378,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판결 확정일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초과하여 지급을 명한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위 취소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원심판결(서울고법 2005. 10.19, 2003나26121)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이 사건은 본래 원고와 피고간의 민사사건인 점이 특이하다. 2. 부관과 법률유보와의 관계 등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수익적 행정처분에 있어서는 법령에 특별한 근거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부관으로서 부담을 붙일 수 있고…]라고 판시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이론적·법규적 근거는 특별히 제시하지 아니한 채 같은 취지의 판례만 여러 개 소개하고 있는데(대상판결 판결의 원문 참조), 그 중에는 [개발행위의 허가는 상대방에게 수익적인 것이 틀림이 없으므로 그 법률적 성질은 재량행위 내지 자유재량행위에 속하는 것이고, 이러한 재량행위에 있어서는 관계 법령에 명시적인 금지규정이 없는 한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조건이나 기한, 부담 등의 부관을 붙일 수 있고]라고 판시한 판례(대판 2004. 3.25, 2003두12837)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대법원은 아직도 "재량행위 또는 자유재량행위에는 부관을 붙일 수 있고, 기속행위 또는 기속재량행위에는 부관을 붙일 수 없다"라고 하는 식의 과거의 학설 내지 판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와 같은 '낡은 부관관' 내지 법률유보(Vorbehalt des Gesetzes)론은 오늘날 더 이상 비판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입장임을 밝혀 놓는 바이다(상세는, 김남진·김연태, 行政法Ⅰ, 제14판, 2010, 251면 등 참조). 3. 협의에 의한 행정작용(부관) 이 사건 판례의 긍정적인 점은 대법원이 [부담은 행정청이 행정처분을 하면서 일방적으로 부가할 수도 있지만 부담을 부가하기 이전에 상대방과 협의하여 부담의 내용을 협약의 형식으로 미리 정한 다음 행정처분을 하면서 이를 부가할 수도 있다]라고 판시한 점이다. 과거에는 판례가 부관은 행정청의 일방적 행위에 의해서만 부가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비판의 대상이 된 바 있다(이에 관하여는, 김남진, 교섭·합의에 의한 부관의 효력, 법률신문 1995. 11. 13호; 同人, 交涉·合意에 의한 附款의 效力, 行政判例硏究 Ⅱ, 1996, 107면 이하 참조). 실제로, 현실에 있어서는, 부관이 행정청과 상대방(허가의 신청자 등)과의 협의·협상(비공식 행정작용)을 통해, 혹은 정식의 계약을 통해 정해지는 예가 많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이러한 점에 관하여는 김남진·김연태, 전게서 244면 등 참조). 4. 李光潤 교수의 견해에 대한 의문 한편, 이광윤 교수는 최근 이 사건 판례(2005다65500)를 2009년의 행정법 분야의 중요 판례로서 소개·논평하는 가운데 [상대방과 협의하여 부담의 내용을 협약의 형식으로 미리 정하였다면 이러한 부담은 행정처분이 아니라 공법상의 계약이 아닌지 의심되며, 부담이 독립하여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 된다면 이것은 부관이 아니라 원처분에 밀접히 관련된 처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부담을 계속해서 부관으로 보면서도 독립된 행정처분으로 보는 것은 상호 논리가 상충되며, 협약의 형식으로 정하여진 것은 공법상의 계약으로 보는 것이 보다 사실에 부합하는 법형식으로 볼 수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이광윤 교수의 견해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는 바이다.
2010-06-14
토지임차인이 지출한 토지조성공사비용의 매입세액 공제여부
1. 사실관계 원고는 전주시 소유의 토지를 임차하여 골프장으로 조성한 후 20년간 사용 후 전주시에 기부채납하는 내용의 공유재산대부계약을 체결하였다. 원고는 골프장을 조성하면서 토지조성공사비용(토목공사, 정지작업, 토사매입, 폐기물처리, 교통영향평가, 코스설계, 도시계획변경 등)을 지출하였다. 원고는 조성공사비용에 대한 매입세액을 매출세액에서 공제되는 매입세액으로 신고하였다. 이에 대하여 해당 세무서는 위 조성공사비용은 토지관련 조성비용으로 매입세액 불공제대상이라는 이유로 위 매입세액을 매출세액에서 공제하지 아니하기로 하여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원고가 1심에서 승소하였으나, 2심에서 패소하였고 대법원에서 원심판결이 파기되었다. 2. 판결요지 부가가치세법의 규정과 입법 연혁, 토지관련 매입세액을 불공제하는 취지는 토지가 부가가치세법상 면세재화이어서 그 자체의 공급에 대해서는 매출세액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그에 관련된 매입세액도 공제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데 있고, 일반적으로 토지의 조성 등을 위한 자본적 지출은 당해 토지의 양도시 양도차익을 산정함에 있어 그 취득가액에 가산하는 방법으로 회수되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토지의 조성 등을 위한 자본적 지출'은 토지 소유자인 사업자가 당해 토지의 조성 등을 위하여 한 자본적 지출을 의미한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당해 토지의 소유자 아닌 자가 토지의 조성 등을 위한 자본적 지출의 성격을 갖는 비용을 지출한 경우 그에 관련된 매입세액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입세액 불공제대상인 토지관련 매입세액에 해당하지 않는다. 3. 쟁점과 관련 법령 이 사건의 쟁점은 부가가치세법령상 '토지의 조성 등을 위한 자본적 지출'의 의미와 해당 지출자가 토지소유자인지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지 여부이다. 부가가치세법 제17조(납부세액) 제1항은 '사업자가 납부해야 할 부가가치세액은 자기가 공급한 재화 또는 용역에 대한 세액(매출세액)에서 자기의 사업을 위하여 사용되었거나 사용될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 또는 수입에 대한 세액(매입세액)을 공제한 금액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 제4호는 위 제1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매출세액에서 공제하지 아니하는 매입세액의 하나로 대통령령이 정하는 토지관련 매입세액을 규정한다. 동법시행령 제60조 제6항은 '법 제17조 제2항 제4호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토지관련 매입세액"이라 함은 토지의 조성 등을 위한 자본적 지출에 관련된 매입세액으로서, 토지의 취득 및 형질변경, 공장부지 및 택지의 조성 등에 관한 관련된 매입세액(제1호), 건축물이 있는 토지를 취득하여 그 건축물을 철거하고 토지만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철거한 건축물의 취득 및 철거비용에 관련된 매입세액(제2호), 토지의 가치를 현실적으로 증가시켜 토지의 취득원가를 구성하는 비용에 관련된 매입세액(제3호)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4. 평석 가. 부가가치세 제도와 매입세액 공제 부가가치세 과세방법으로 전단계 세액공제법을 채택하여 매출세액에서 매입세액을 공제하여 납부세액을 계산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매출세액에서 공제가 부인되는 매입세액은 1) 의무를 태만하였거나 불이행함으로 인하여 공제하지 아니하는 매입세액(법 제17조 제1항 제1호, 제1호의 2), 2)거래의 성질에 따라 공제하지 아니하는 매입세액(제2호; 사업과 직접 관련 없는 지출에 대한 매입세액, 제3호 : 비영업용 소형승용차의 구입과 유지에 관한 매입세액, 제3호의 2 : 접대비 등의 지출에 관련된 매입세액, 제4호 : 면세사업에 관련된 매입세액 및 토지관련매입세액)으로 구분된다. 그 중 이 사건에서 문제된 것은 토지관련 매입세액이다. 나. 법령 및 판례의 변천 토지조성비용에 대한 매입세액 공제여부가 다투어진 사건이 다수 있다. 주로 대규모 조성사업이 행해지는 골프장 부지와 관련하여 발생하였다. 당초 법(1993. 12.31. 개정 전)에서는 면세되는 재화나 용역을 공급하는 사업에 관련된 매입세액만 불공제 대상으로 규정하였는데, 실무상 임대에 공하는 매입인지 토지원가에 공하는 매입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발생함에 따라 시행령만 개정(1993. 12.31.)하여 '토지의 조성 등을 위한 자본적 지출'에 관련된 매입세액을 불공제한다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신설된 조항의 취지에 대하여 대법원(94누1449 전원합의체 판결)은 토지의 조성 등에 따른 거래행위가 부가가치세 납부의무가 면제되는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경우에 한하여 그 토지의 조성 등을 위한 자본적 지출에 관련된 매입세액을 매출세액에서 공제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규정한 것으로 보았다. 위 판결의 다수의견은 사업관련성이 인정되는 매입세액은 위 규정에서 열거하고 있는 것 외에는 법 제17조 제1항에 따라 모두 공제되어야 하며, 지금까지 매입세액을 공제해 주던 과세관청이 갑자기 시행령만을 개정하여 이를 공제하지 않을 수 있도록 용인하는 것은 조세법률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골프장 부지조성을 위한 용역의 대가를 매입세액으로 사업자의 매출세액에서 공제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 이후 정부는 법령의 개정을 통해 토지에 대한 자본적 지출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과세관청과 납세자간 마찰 소지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편 국세심판원은 과세관청이 토지관련 매입세액으로 불공제한 과세처분에 대해 건물 또는 구축물 등 감가상각자산으로 분류되는 비용에 관련된 매입세액은 토지관련 매입세액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복하여 결정하였다. 결국 구체화된 법령을 반대해석하면 토지와 관련된 매입세액이라 할지라도 그 지출에 의하여 조성된 것이 감가상각의 대상이 되는 건물, 구축물 등일 경우에는 매입세액 공제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현행법 하에서도 골프장 부지 조성을 위한 토지관련 매입세액의 공제가 가능한지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자신 소유의 토지에 조성된 골프코스 관련 비용은 매입세액불공제라는 판례(2004두13844)가 있으나 이는 소유토지에 대한 것이다. 입법개정경위를 보면, 불공제되는 매입세액의 범위를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2001 간추린 개정세법 참조). 다. 관련 법령의 검토 세법에서 자본적 지출을 언급하는 있는 경우로는 국세기본법(제43조의 2 제3항), 법인세법(시행령 제31조 제2항), 소득세법(제97조 제1항 제2호), 상속세및증여세법(시행령 제31조의 9 제7항 4호) 등이 있는데, 모두 "소유한 자산"을 전제로 자본적 지출이라는 용어 정의를 하고 있다. 위 법인세법 시행령은 "자본적 지출이라 함은 법인이 소유하는 감가상각자산의 내용연수를 연장시키거나 당해 자산의 가치를 현실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하여 지출한 수선비"라 한다. 세법이외의 법령도 소유자의 자산을 전제로 한다. 예컨대 지방공기업법시행령 제22조 등이다. 기업회계기준(제45조, 기업회계기준서 제5호 유형자산)도 원칙적으로 자신의 소유재산을 전제로 자본적 지출을 정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세법해석의 관점에서 위 법령상 '자본적 지출'은 당해 토지의 소유자 내지 취득자를 전제로 해야 하고, 비용을 지출한 자가 임차인인 경우에는 애당초 자본적 지출에 해당할 수 없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박민, 세법해석의 한계, 조세법연구 2009). 라. 대립되는 견해 (1) 토지소유자의 매입세액만 불공제된다는 견해 토지관련 매입세액을 공제하지 않는 입법취지는 토지는 부가세가 면제되는 재화이고, 토지의 조성을 위한 자본적 지출은 세무회계상 토지의 취득원가에 산입되어야 하는 것으로 당해 토지의 취득원가에 산입되었다가 당해 토지의 양도시 양도차익을 산정함에 있어서 취득가액에 산입하는 방법으로 회수되고 있으므로 토지에 대한 면세제도의 기본법리상 토지의 조성 등을 위한 자본적 지출에 관련된 매입세액은 마땅히 이를 매입세액으로 공제하여서는 아니된다. 따라서 이 규정은 토지의 양도차익을 수익하는 당해 토지 소유자에만 적용된다는 견해로 이 사건의 1심 법원의 입장이다. 따라서 자기의 사업을 위하여 사용된 어떠한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이 타인 소유 토지의 가치를 현실적으로 증가시키게 된다 하더라도 그 토지의 소유자가 아닌 자에게는 매입세액으로 공제하지 아니하는 토지관련 매입세액이라 할 수 없고 매입세액으로 공제되어야 한다. 기업회계나 법인세법에서 타인의 토지에 대한 자본적 지출에 대하여 이를 토지원가를 구성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있으므로 소유 여부에 따라 구분되어야 한다는 견해(강인 외, 부가가치세 실무, 삼일인포마인)가 있다. (2) 소유자와 임차인의 구분없이 모두 불공제된다는 견해 토지관련 매입세액이 불공제 매입세액으로 처리되는 이유는 토지가 면세재화이기 때문이어서 토지의 거래에 매출세액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출세액이 발생하지 아니함에도 매입세액을 공제한다면 매입거래와 관련한 부가가치세의 부과가 무의미해진다는 이유로, 매입세액이 '토지의 조성 등을 위한 자본적 지출'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사업자가 토지소유자인지를 불문하고 면세제도의 기본원리상 매출세액에서 공제해서는 아니된다는 견해이며, 이 사건 항소심의 입장이다. (3) 부가가치가 동일하면 동일한 부가가치세가 부과되어야 한다는 견해 최근 이 판결에 대한 평석자(조성훈, 법률신문 2010. 3.1.자)의 견해인데,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토지소유자가 사업을 하는 경우와 그 토지를 임차하여 사업을 하는 경우에 부가가치세 납부액이 달라지는 것은 잘못이라는 견해이다. 즉 부가가치가 동일하면 동일한 부가가치세가 부과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위 견해는 부가가치세 원리에 비추어 받아들이기 어렵다. 부가가치세법은 과세대상, 납세의무자 등을 정한 다음에 과세거래에 대한 규정을 둠과 동시에 영세율과 면세에 대한 규정도 두고 있다. 영세율과 면세는 정책적인 이유에서 대상을 정하는 것이며, 부가가치가 없거나 다르기 때문은 아니다. 한편 납부세액을 산정함에 있어서는 전단계 세액공제방법에 따라 매출세액에서 매입세액을 공제하는 방법을 택하되 정책적인 이유에서 일정한 매입세액은 공제하지 아니한다. 이건에서 문제된 토지관련 매입세액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법원리에 의하면, 부가가치세의 산정은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산정되는 것이며, 그 결과 최종적으로 동일한 부가가치가 생산되는 경우라도 거래 당사자, 거래 시기, 거래 방법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위 평석자는 대법원 판결이 양도차익이라는 개념을 등장시켜 잘못 판단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는 판결을 오해한 것이다. 대법원은 토지관련 매입세액이 불공제되는 취지는 토지가 면세재화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매입세액은 불공제라는 설명을 하면서, 시행령을 해석함에 있어 '토지의 조성 등을 위한 자본적 지출'이라는 개념은 문언상 토지소유자에게만 적용된다고 판단하였을 뿐이다. 설명과정에서 양도차익이 언급된 것은 이렇게 해석하더라도 토지소유자는 토지를 양도할 때 양도차익을 계산함에 있어 '토지의 조성 등을 위한 자본적 지출'은 취득가액에 가산하는 방법으로 회수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도 부당하지 않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만일 소유자에 대한 구분이 없다면, 오히려 부가가치세가 중복과세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즉, 임차인의 조성공사비 매입세액불공제로서 한번 과세되고, 반환시 토지소유자의 (토지조성분만큼의 증가분에 대한 )매입세액불공제로서 실질상 과세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부가가치세제와 무관한 양도차익을 이유로 매입세액 공제여부를 판단한 것은 아님에도 평석자는 이 점을 오해함으로써 부가가치세 면세의 취지에 따른 토지소유자와 임차인의 부가가치세법상 지위를 혼동하였다. (4) 필자의 견해 면세재화로서 토지의 공급을 둘러싼 거래는 원칙적으로 공급하는 자나 공급받는 자 모두 부가가치세 부담이 없어야 한다. 토지의 매출거래가 면세거래로 매출세액이 부과되지 아니하므로 그와 관련된 매입세액도 공제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토지라도 형질의 변경이나 구조물의 설치로 이용도를 높일 수 있다. 한편 부가가치세법은 토지를 매매한 경우와 임대한 경우를 달리 취급하는 경우가 있는바, 법 제12조 제1항 제12호에서 정하는 주택과 이에 부수되는 토지의 임대용역을 제외한 토지의 임대용역은 과세대상이 된다. 우리나라 부가가치세법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토지가 면세거래(토지의 양도) 또는 과세거래(토지의 임대등 과세사업에 활용)로 이용되는 경우가 있음을 전제로 토지관련 매입세액의 불공제여부에 혼선이 있었다. 부가가치세법령을 합리적으로 해석해 보면, 시행령 제60조 제6항의 취지는 토지관련 비용을 지출하였는데, 그 비용이 면세공급의 대상인 토지의 원가를 구성하는 경우(취득원가 및 자본적 지출)에는 그 토지관련 비용은 면세공급 관련 매입세액으로 공제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소유토지와 임차토지간에는 법률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구분하여 볼 근거와 필요가 있다. 결국 토지를 소유한 자가 골프장을 건설하는 경우에는 그 지출이 '자본적 지출'에 해당하여 불공제가 타당하지만, 토지를 임차하고 골프장을 건설하여 과세사업을 영위하는 자의 경우에는 토지 자체가 보유자산이 아니므로 자본적 지출이 아니고, 따라서 단순히 토지에 대한 지출이라는 사유만으로 이를 자본적 지출로 보아 매입세액을 불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토지의 보유여부에 따라 경제효과가 달라진다는 비판이 있으나, 세법에서 최종 결과가 동일하더라도 당사자가 선택한 법률행위의 형태에 따라 세 부담이 달라지는 경우는 허용되고 있으며 현행 소득세법상으로도 토지를 소유한 경우와 임차한 경우에 부동산임대소득 인정에 차이가 있는 등 세법상 소유와 임차는 구분되고 있는 점을 보면, 항상 소유와 임차가 경제적으로 동일하게 취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 헌법상으로도 절대적 평등이 아니라 상대적 평등을 인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 비판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5. 결론 대상 판결의 결론에 찬동한다. 토지를 부가가치세법상 면세재화로 하는 취지, 토지 관련 매입세액을 불공제하는 취지, 소유토지와 임차토지는 법률적 성질이 다른 점, 문언의 의미상 '자본적 지출'의 의미가 소유를 전제로 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토지의 조성 등을 위한 자본적 지출'은 토지 소유자인지 여부에 따라 결론을 달리하는 것이 타당하다.
2010-03-22
국제물품매매협약 다룬 최초 우리 판결의 항소심판결
Ⅰ. 사안의 개요 중국 회사인 매도인(원고)과 한국 회사인 매수인(피고)은 2005. 6.11.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오리털을 공급하기로 하는 계약(‘이 사건 계약’)을 체결했다. 피고는 제3자에게 오리털을 전매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원고도 계약 체결시 그 사실을 알았다. 원고는 일정 기간에 걸쳐 피고에게 오리털을 공급했으나 그 중 일부는 선박운항회사의 실수로 환적되지 않아 싱가포르항에 묶이고 도착 예정일이 지나도록 공급되지 않았다. 이를 이유로 피고는 이 사건 계약을 해제하고 대금의 지급을 거부했다. 원고는 미지급대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고, 피고는 ① 원고가 일부 공급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사건 계약을 해제했다고 주장하면서, ② 소송 중에 가사 원고의 미지급대금채권이 있더라도 피고가 원고에 대해 가지는 계약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기하여 상계한다는 항변을 제출했다. 위 판결은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Ⅱ. 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UN협약(CISG)(이하 ‘협약’)이 발효했으므로 이 사건 계약에는 협약이 적용된다고 보았다. 대상판결은, 원고가 이 사건 계약에 따라 수차례에 걸쳐 피고에게 물품을 공급했으므로 피고는 미지급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나 원고는 물품 일부의 공급을 지연했으므로 피고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 피고의 상계항변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피고에게 잔액과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했다. 대상판결은 지연손해금의 이율의 준거법을 중국법이라고 보아 상계적상일 익일부터 판결 선고일까지는 연 5.22%, 그 익일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11.52%의 비율을 적용했다. 대상판결은 상계의 준거법을 중국법이라고 보고 合同法상 상계에 해당하는 抵銷(저소)의 법리에 따라 피고의 상계항변을 받아들였다. 한편 계약 해제에 관하여는, 대상판결은 원고가 미얀마 양곤에서 공급하기로 한 오리털이 환적되지 않아 싱가포르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를 양곤으로 운송해 달라는 피고의 요구에 응하지 아니한 것과 그 후 원고가 2005. 9.29. 작성된 구매계약서에 따른 오리털을 공급하지 아니한 것은, 모두 본질적 계약위반임과 아울러 장래의 분할부분에 대한 본질적 계약위반의 발생을 추단하는 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보아 당해 분할인도부분과 장래 분할인도부분은 해제되었다고 보았다. 이 결론은, 원고의 일부 오리털에 관한 납기부준수만으로 본질적 계약위반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1심판결과 정반대이다. Ⅲ. 연구 1. 문제의 제기 1980년 국제연합에서 채택된 협약은 2005. 3.1.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발효되었다. 대상판결의 1심판결, 즉 서울동부지법 2007. 11.16. 선고 2006가합6384 판결(이하 ‘1심판결’)은 필자가 아는 한 협약을 본격적으로 적용한 최초의 우리 판결이었다. 그 밖에도 2008년에 하급심 판결이 모두 4개가 선고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1심판결에 대해 간단한 평석을 발표했는데(법률신문 제3754호(2009. 6.15. 15면) 대상판결은 필자가 지적한 논점 전부에 대해 견해를 표명하고 보다 충실히 판단했다. 필자의 평석에 관심을 보여준 담당재판부에 경의를 표하면서 대상판결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한다. 2. 계약의 해제 이 사건 계약은 여러 차례에 걸쳐 물품을 인도할 의무를 부과하므로 이는 협약(제73조)이 말하는 ‘분할인도계약(instalment contracts)’인데, 원고는 그 중 일부에 대해서만 이행지체에 빠졌으므로 피고의 계약해제는 협약(제73조 제1항)이 규정하는 분할인도부분의 계약해제이다. 필자는 1심판결이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은 점을 비판했는데 대상판결은 이를 정면으로 인정했다. 나아가 1심판결은 협약상 부가기간의 설정에 의한 계약해제가 가능함을 언급하면서도 이 사건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에 대해 필자는 원고가 인도기일을 맞출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오리털의 재생산과 항공편에 의한 인도 및 도착지의 변경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불응했다면 피고의 부가기간 설정과 원고의 이행거절이 있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사실관계를 좀더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상판결은 원고가 양곤에서 공급하기로 한 오리털이 환적되지 않아 싱가포르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를 양곤으로 운송해 달라는 피고의 요구에 불응한 것과 그 후 원고가 2005. 9.29. 작성된 구매계약서에 따른 오리털을 공급하지 아니한 것은, 모두 본질적 계약위반임과 아울러 장래의 분할부분에 대한 본질적 계약위반의 발생을 추단하는 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보아 당해 분할인도부분과 장래 분할인도부분이 해제되었다고 보았다. 이는 대체로 사실인정의 문제이나 문제된 분할인도부분에 관한 원고의 지체를 이유로 본질적 계약위반을 인정한 것은 의문이다. 다만 피고의 부가기간 설정과 원고의 불이행이 있었다고 본다면 계약의 해제를 인정한 결론은 정당화될 수 있다. 3. 상계 1심판결은 피고의 손해배상채권과 원고의 미지급대금채권은 피고의 상계에 의하여 대등액 범위에서 소멸했다고 보았다. 원고와 피고의 채권은 모두 이 사건 계약으로부터 발생했는데, 협약은 상계를 규율하지 않으므로 상계의 준거법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1심판결이 상계의 준거법을 한국법으로 보았다면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우리 국제사법(제26조)에 따르면 이 사건 계약의 보충적 준거법은 중국법일 개연성이 크므로 상계적상의 존부는 중국법에 의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대상판결은 이 지적을 받아들여 이 사건 계약의 준거법은 국제사법 제26조에 의하여 중국법이므로 상계의 준거법도 중국법이라고 보고 중국 합동법(合同法)상 상계에 해당하는 ‘抵銷’의 법리에 따라 피고의 손해배상채권과 원고의 대금채권은 상계적상에 있었으므로 원고의 채권은 상계적상일에 소급하여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필자는 1심판결에 대해 협약상(또는 중국법상) 피고의 손해배상채권의 통화가 미달러화인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종통화간에도 피고의 대용급부청구권이 인정되어 상계적상이 인정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대상판결이 이 점을 판단하지 않은 점은 유감이다. 4. 외화채권과 채권자의 대용급부청구권 원고의 대금채권은 미달러화채권인데 원고는 원화지급을 청구했다. 1심판결은 민법 제378조의 해석상 채권자인 원고가 대용급부청구권을 가진다고 보아 원화지급을 명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① 협약의 해석상 채권자가 대용급부청구권을 가지는지, ② 만일 부정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법 제378조가 이 사건 계약에 적용되는 근거를 밝혔어야 한다는 점과 그 맥락에서 의무이행지도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상판결은 대용급부는 채무의 내용의 구체적인 이행방법에 관한 것이고 환산의 시기 및 환산율은 채무의 실질적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의 대금채권이 실제로 이행되는 장소 혹은 그 이행을 구하는 소가 제기된 장소인 한국 법이 준거법이라 보고 대용급부청구권을 긍정했다. 대상판결이 논거를 제시한 점은 높이 평가하나, 우선 환산의 기준시기 및 환율은 채무의 실질적 내용에 영향을 미치고(1심은 미화 1달러 당 916.6원으로, 항소심은 1236.7원으로 각 환산했다), 국제사법상 채무이행의 방법에 대해 이행지법을 적용할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민법 제378조의 ‘이행지’는 법률(또는 계약)상 이행지인지, 사실상 이행지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우리 법원이 지급을 명하면 이행지가 한국이 되는지 나아가 한국에서 제소되었다는 이유로 한국법을 적용할 근거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5. 손해배상의 범위 협약(제74조)에 따르면 손해배상액은 이익의 상실을 포함하여 위반의 결과 상대방이 입은 손실과 동등한 금액이나, 그 범위는 위반 당사자의 예견가능성에 의하여 제한된다. 대상판결은 협약 제74조와 제75조를 기초로 ① 피고가 다른 곳에서 대체물품을 구하느라 지급한 대금과 이 사건 계약상 대금의 차액, ② 대체물품의 항공운송비용, ③ 피고가 전매수인에게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 중 일부의 합계를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했다. 이는 1심판결과 같다. 대상판결은 1심판결과 달리 이 사건 계약의 해제를 긍정하였으므로 협약 제74조를 적용한 것은 자연스럽다. 6. 지연손해금의 비율 1심판결은 피고에게 판결 선고일까지는 상법 소정의 연 6%, 그 익일부터 완제시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특례법’) 소정의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했다. 필자는 그에 대해 첫째, 연 6%의 지급을 명한 것은 우리 상법을 적용한 것으로 짐작되나 협약이 적용되고 보충적으로 중국법이 적용될 개연성이 큰 이 사건에서 상법을 적용할 근거가 없고 둘째, 연 20%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한 것도 지연손해금은 준거법에 따라 판단할 사항이라고 보는 대법원판례에 위반됨을 지적했다. 대상판결은 원고의 대금채권에 관한 지연손해금의 준거법은 중국법이라고 판단하고 중국의 합동법(제207조), 민사소송법(제229조), 중국 최고인민법원의 ‘중국 민사소송법의 적용에 관한 약간의 문제점에 관한 의견’(제293 및 제294) 등을 적용하여 상계적상일의 다음날부터 판결 선고일까지는 중국인민은행의 금융기관대출 최고이율인 연 5.22%, 그 익일부터 완제일까지는 그 기간에 대한 위와 같은 최고이율인 연 5.76%의 2배인 연 11.52%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대상판결의 설시는 필자의 지적을 전면 반영한 것이다. 7. 맺음말 대상판결이 1심판결에 대하여 필자가 제기한 거의 모든 논점에 대해 판단하고 설시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다만 중국법상 피고의 손해배상채권의 통화와 중국법상 채권자가 대용급부청구권을 가지는지를 판단하지 않은 점은 아쉽고, 이 사건에서 본질적 계약위반을 인정한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원고의 대용급부청구권을 긍정한 논거는 설득력이 약하다. 지난 8월1일자로 협약은 일본에서도 발효되었으므로 이제 한중, 한일 및 중일기업간에도 협약이 적용되는 사안이 증가할 것이다. 상계의 준거법, 대용급부(청구)권, 지연손해금의 준거법과 특례법의 적용 여부는 협약의 주요 쟁점은 아니지만 협약이 적용되는 사건, 나아가 채권의 준거법이 외국법인 사건에서 통상 제기되는 기초적 쟁점인데 앞으로 법원이 그에 대해 만연히 한국법을 적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사건처럼 우리 법원이 중국법을 적용할 사건이 점증하고 있으므로 중국법에 대한 연구역량을 제고할 제도적 대책이 필요하다. 물론 필요시 한중민사사법공조조약(제26조)에 의한 법정보공조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09-09-28
용도폐지공공시설의 무상양도신청의 거부에 관한 소고
Ⅰ. 事案의 槪要 피고가 2002년 11월5일 원고들에게 주택건설사업계획에 대한 사업계획승인을 하면서 다음을 포함한 54개 항목의 승인조건을 부가하였다: 사업계획부지 내에 포함된 도로는 행정재산 용도폐지 후 사업주체가 착공 전까지 매매계약을 체결할 것(제16항), 사업부지에 포함되어 있는 국·공유지는 착공신고 전까지 소유권을 확보할 것(제32항). 그런데 원고들은 사업부지 내 국공유지를 매수하여 착공신고 전까지 매수하여 소유권을 확보하라는 이들 승인조건과 관련하여 2003년 7월24일 피고에게 사업시행지에 속해 있는 피고 소유의 별지목록 기재 각 토지를 무상으로 양도하여 달라는 신청(이하 ‘이 사건 신청’이라 한다)을 하였다. 이에 피고는 2003년 8월25일 원고들에게 용도폐지 토지의 무상양도 여부는 피고의 재량인 점, 사업부지 내 국·공유지의 유상으로 매수한다는 이 사건 승인조건을 수용할 것을 전제로 사업계획승인을 신청하여 이에 따라 이 사건 승인조건이 부가된 점, 관내 다른 사업장과의 형평성 및 유사 민원의 재발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무상양도를 거부함과 아울러 기존의 이 사건 승인조건대로 사업부지 내 국·공유지를 조속히 매입하라고 통지하였다. Ⅱ. 判決의 要旨 행정청이 국민의 신청에 대하여 한 거부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 되려면 행정청의 행위를 요구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신청권이 국민에게 있어야 하고, 이러한 신청권의 근거 없이 한 국민의 신청을 행정청이 받아들이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거부로 인하여 신청인의 권리나 법적 이익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 할 수 없다(대법원 1984. 10.23. 선고 84누227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제소기간이 이미 도과하여 불가쟁력이 생긴 행정처분에 대하여는 개별 법규에서 그 변경을 요구할 신청권을 규정하고 있거나 관계 법령의 해석상 그러한 신청권이 인정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민에게 그 행정처분의 변경을 구할 신청권이 있다 할 수 없다. Ⅲ. 問題의 提起 해당 조건(제16·32항)을 부담으로 인식한 대상판결과 그 원심(서울고법 2005. 8.18. 선고 2004누22154 판결)은 ‘이 사건 신청’을 주택건설사업계획승인조건의 변경요청으로 받아들여, 일단 부담의 사후변경의 차원에서 접근을 하였다. 그리하여 대상판결과 그 원심은 (부담의)독립된 행정처분의 인정에서 비롯된 불가쟁력의 발생을 연계시켜, 행정행위의 재심(폐지)가능성의 물음과 관련해서 소극적 입장을 천명하고, 사안에서 거부처분의 성립을 부인하였다. 반면 1심(서울행정법원 2004. 10.12. 선고 2003구합35625 판결)은 전혀 다른 논증을 통해 거부처분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사안을 부관(부담) 및 그것의 변경과는 유리된 차원에서 접근하여 不可爭力의 측면을 분명히 배제하였으며, 구 주택건설촉진법 제33조 제8항의 준용규정에 따른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 제65조 제2항의 공공시설의 무상귀속의 위헌적 요소를 결정적인 착안점으로 삼았다. 이하에선 양자의 구분된 접근방식에서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Ⅳ. 사안상의 該當條件의 法的 性質 여기서 당초의 사업계획승인조건(제16·32항)이 과연 사업계획승인처분의 효력발생과 무관한 의미를 가지는 부관 즉, 부담인지 의문이 든다. 주택건설사업계획승인처분을 통해 사업계획의 적합성을 확인받고 합법적으로 건설시공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건축허가마냥 주택건설허가인 셈이다. 그리하여 건축허가와 마찬가지로 주택건설허가 역시 그 허가권자로선 해당 사업부지 전체에 관한 權原을 가져야 한다. 만약 사업부지의 일부라도 권원이 없다면 허가적격성이 결여된다. 나아가 사안처럼 그 사업부지 내에 도로에 제공된 토지(공물)가 존재할 때, 그 토지가 공용폐지가 되지 않는 한, 설령 아파트가 완성된다 하더라도 아파트의 소유관계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허가적격성의 차원에서 보면, 해당 승인조건은 건설허가로서의 승인처분이 형성효(건설시공)를 의문없이 갖게 하는 계기가 된다. 요컨대 여기서의 승인처분조건은 본체인 행정행위를 보충하는 의미의 부담은 아니며, 본체인 행정행위의 효력을 좌우하는 의미의 조건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조건의 양태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승인처분이 건설허가로서 형성효과를 지니며 조건이행의 시점이 공사착공 전까지인 점에서 사안의 조건은 정지조건이라 하겠다(반면 부담으로 보는 견해로 盧坰泌, 불가쟁력이 발생한 행정처분의 변경을 구할 조리상 신청권이 인정되는지 여부, 대법원판례해설 제68호, 2007. 12., 418면). 이처럼 정지조건의 차원에서 출발하면 ‘이 사건 신청’을 승인조건에 바로 연계시키지 않고 별 어려움 없이 그 취지-대상토지의 무상양도요청-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 사건 신청’은 승인조건을 나름대로 이행하기 위한 또는 착공 전에 사업부지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하여 승인조건을 사실상 실효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강구된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신청’을 승인처분의 일부(부관)의 변경을 구하는 것으로 볼 순 있겠지만(이를 2심은 명백히 부정한다), 독립된 부담으로서의 승인처분조건의 변경요청으로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Ⅴ. 독립된 無償讓渡申請의 차원에서의 접근  원고는 국토계획법 제65조 제2항 후단부분을 착안점으로 삼아 무상양도를 신청하였다. 기왕의 거부처분인정공식(행정행위의 신청+신청권의 존재)에 의하면, 대상행위의 처분성, 그에 관한 신청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1심은 전자의 물음과 관련해서, 용도폐지된 행정재산(일반재산: 잡종재산)의 양도나 매각이 원칙적으론 私法行爲이지만, “행정청이 공권력의 주체라는 우월한 지위에서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일정한 요건을 갖춘 특정한 상대방에게 경제적 합리성을 갖는 통상적인 가격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나 무상으로 국·공유재산을 양도할 수 있는 내용의 재량권을 가진 경우”, 그에 따른 현저히 낮은 가격이나 무상으로 양도하는 행위는 행정처분이 된다고 판시하였다. 매우 의미로운 논증이긴 하지만(이런 논증에 호감을 표한 문헌으로 崔桂暎, 용도폐지된 공공시설에 대한 무상양도신청거부의 처분성, 행정법연구 제14호, 2005. 10., 429면 이하), 결정적으로 대부국유임야대부·무상양여 및 그 거부와 폐천부지양여의 처분성을 부인하는 대법원 1983. 8.23. 선고 83누239 판결과 1985. 3.26. 선고 84누736 판결을 넘어서긴 어렵다. 생각건대 일반재산(잡종재산)의 양여에 관한 기왕의 논증을 벗어나기 위해선, 오히려 “「국유재산법」과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도 불구하고”라는 국토계획법 제65조 제2항 후단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私法的 관점을 수정하는 착안점으로 삼고 아울러 공법귀속의 문제에서 實體的 相關關係理論을 적용하면, 동규정상의 무상양도를 공법적으로 접근하는 데 크게 어렵지 않다. 요컨대 여기서의 무상양도결정은 私法的 효과(소유권의 무상이전)를 발생시키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이런 單獨的 私權形成的 行政行爲의 또 다른 예가 금융감독위원회의 계약이전결정이다. 대법원 2002. 4.12.선고 2001다38807 판결 참조). 그리고 대법원 1983. 8.23. 선고 83누239 판결 등의 사안은 공공시설의 무상귀속과는 무관하다. 私的 사업자로선, 유상양도를 설정한 사업계획승인조건의 부가에 즈음하여 무상양도의 가능성을 나름대로 모색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미 대법원 1998. 11.24. 선고 97다47651 판결은, 국토계획법 제65조 제2항 후단부분에 상응하였던 구 도시계획법 제83조 제2항 후단부분에 대해서, “문언에 반하여 ‘무상으로 양도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기속규정으로 해석할 근거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여기선 국토계획법 제65조 제2항에 관한 섬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전단부분이 신설 공공시설의 무상귀속을 통한 일종의 國庫的 特權(Fiskusprivilegien)을 규정한 것이라면, 후단부분은 그에 대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상양도여부를 전적으로 재량사항으로 보면, 私的 사업자의 지위는 매우 열악한 처지에 놓인다(공공시설 무상귀속의 위헌문제에 관해선, 헌법재판소 2003. 8.21. 선고 2000헌가11, 2001헌가29(병합) 결정 참조). 따라서 용도폐지공공시설의 무상양도를 신설공공시설의 무상귀속에 대한 일종의 제도적 방어기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양자간의 균형추가 신설공공시설의 설치비용범위이다. 이런 식의 접근을 하면 무상양도여부의 재량은 자연스럽게 축소될 수 있으며, 그 귀결은 -1심이 취하였듯이- 거부처분의 인정공식에서 요구하는 신청권의 인정이다(무상양도의무의 성립은 별개이다). 1심 역시 동항의 위헌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무상양도에 관한 조리상의 신청권의 존재를 정당하게 논증하였다(반론, 盧坰泌, 420면). Ⅵ. 負擔의 變更申請의 차원에서의 접근 한편 대상판결과 그 원심은 ‘이 사건 신청’을 기왕의 승인조건(부담)에 연계시켜 부담변경신청으로 접근한다. 그리하여 그것의 거부는 기왕의 부담(행정행위)의 변경신청에 대한 거부인 셈이고, 관건은 不可爭的 행정행위의 변경신청권의 존부이다. 허나 그런 변경신청권을 명시한 예가 없을 뿐더러, 판례상으로도 공사중지명령해제요구권(대법원 1997. 12.26.선고 96누17745판결)과 국토이용계획변경신청권(대법원 2003. 9.23.선고 2001두10936 판결)에서나 예외적으로 인정되었을 뿐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비록 상례적인 탈출구(관계 법령의 해석상 그러한 신청권이 인정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있긴 해도 판례의 기조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 독일 행정절차법 제51조(不可爭的 행정행위의 재심사)와 같은 명문규정이 없는 이상, 독일에서의 광의의 재심사에 착안하여 행정행위의 폐지(취소·철회)의 일반론에 의거하여 접근할 수 있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行政行爲의 廢止와 그에 따른 재심사는 협의의 재심사(행정절차법 제51조)와는 달리 원칙적으로 행정청의 재량에 속하는데, 오늘날 다수 경향은 과거와는 달리 이러한 재심사에 대한 무하자재량행사청구권과 (재량축소의 경우엔) 재심사청구권의 성립을 인정한다. 그리하여 어떠한 경우에 재심사의무와 재심사청구권을 발생시키는 재량영으로의 축소가 성립하는지가 문제된다(이에 관한 상론은 拙著, 행정법기본연구Ⅰ, 2008, 242면 이하 참조). 설령 負擔變更으로 접근한다 하더라도, 1심의 전향적 논의를 최대한 반영하여 不可爭力의 문제를 불식시키려는 시도가 강구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Ⅶ. 맺으면서-行政法發展의 停滯 일찍이 새만금판결(대법원 2006. 3.16. 선고 2006두330전원합의체판결)이 행정개입청구권과 행정행위의 재심사의 법리에서 접근하였지만(이에 관해선 拙著, 87면 이하), 전자의 기조는 이미 대법원 2006. 6.30. 선고 2004두701판결에서(동판결의 문제점에 관한 상세는 拙稿, 채석허가에 따른 적지복구상의 산림소유자의 법적 지위, 법률신문 제 3563호, 2007. 6.18. 참조), 후자의 기조는 대상판결에서 확실히 消失되어 버렸다. 부관의 사후부가에 대해 매우 관대한 입장인 점에서(대법원 1997. 5.30. 선고 97누2627판결), 판례가 부관의 사후변경을 통한 행정행위의 변경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것도 조화되지 않는다. 대법원 1984. 10.23. 선고 84누227판결에서 비롯된 (소송요건의 차원에서의) 신청권에 관한 기왕의 판례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행정법으로선 이론적 停滯를 피할 수 없고 司法으로서도 효과적인 권리보호기능을 다할 수 없다. 과연 언제쯤 행정행위의 폐지를 통한 재심사가 우리 행정법의 학문적 자산이 될 수 있을까?
2009-07-13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4조 제1항의 위헌여부 심사기준
I. 문제제기 지난 2009년 2월26일 헌법재판소는 차의 운전자가 종합보험에 가입한 경우, 일정한 예외사유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면 중과실에 의한 중상해사고에 대하여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하 ‘교특법’) 제4조 제1항에 대하여 과거의 합헌결정을 변경하여 위헌으로 결정하였다(결정문 전문은 법률신문 3726호 2009년 3월 2일자 13면 참조). 과거 첫 번째 결정(헌재 1997. 1.16. 90헌마110)에서는 위헌의견이 5인으로 다수였지만 결론적으로는 합헌결정이 되었기 때문에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지만, 헌법이론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긴 결정이었다. 그 후 종전 판례를 변경하여 이번에 위헌결정이 이루어지자, 무엇이 중과실에 의한 중상해 사고인지에 대하여 명확한 기준을 정립하기 힘들다는 등의 문제점들도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교통안전의식 결여나 인명경시풍조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반기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이번 위헌결정의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헌법적 관점에서 몇가지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이하에서는 쟁점별로 헌법재판소 결정이유의 논거에 있어서 제기되는 헌법적 문제점들을 지적해 보기로 한다. II. 평석 1. 재판절차진술권 침해여부에 대한 심사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교특법 제4조 제1항이 청구인의 재판절차진술권을 과잉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제27조 제5항의 재판절차진술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형사피해자에게 보장되는 권리이다. 즉 입법자에 의해서 비로소 구체화되는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다(헌재 1993. 3.11. 92헌마48, 판례집 5-1. 121, 130). 어떠한 기본권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되는 소위 형성유보가 있는 권리인 경우 그에 대한 형성법률이 그 권리를 침해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무엇을 기준으로 심사할 것인가. 이와 같은 경우에는 그 기본권의 인정여부가 법률의 규정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므로, 만일 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해당 기본권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된 자가 그 기본권을 침해당했는지 여부가 문제된 경우에는 일단 그 개인의 기본권의 침해여부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법률이 그 기본권의 인정여부를 어떠한 근거와 기준으로 하여 유형화하였는지, 그 유형화 자체에 명백한 잘못은 없었는지의 기준에 입각하여 심사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헌법에 의하여 기본권의 구체화 위임을 받은 입법자가 일정한 집단에 대하여 그 기본권의 적용대상에서 제외한 모든 사례에서 과잉금지의 원칙 위반으로 위헌의 결론이 날 수 있으며, 이는 헌법이 기본권의 구체화를 입법자에게 일임한 헌법적 취지에 위반될 수 있다. 그리고 기본권의 구체화와 관련해서는 기본권의 주체, 보호영역, 행사방법 등에 대하여 입법자가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주체, 즉 인적 적용범위와 관련해서는 늘 배제되는 집단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어떠한 한 개인이 적용범위에서 배제된 것 자체만 가지고서 과잉금지위반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보호영역과 관련해서는 입법자가 보호하고자 하는 생활영역의 범위가 명백하게 유명무실하여 거의 실질 내용이 없는 정도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닌 한, 보호영역과 관련하여 쉽게 위헌의 결론을 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행사방법 역시 기본권의 행사를 위한 절차와 방법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많은 비용이 요구되어, 기본권행사가 사실상 차단 내지는 폐쇄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기본권행사방법에 대한 입법자의 결정이 위헌이라고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심사기준을 적용해 본다면, 일부 중과실에 의한 교통사고로 중상해의 피해를 당한 자의 경우 가해운전자에 대하여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없기 때문에 형사재판절차가 개시될 수 없고, 따라서 형사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은 입법자가 교통사고과실범의 처벌기준을 유형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고, 정형화된 공소권면제의 예외사유(10가지)에 의한 교통사고피해자의 경우는 여전히 재판절차진술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하는 점을 고려할 때, 입법자가 명백하게 재판절차진술권이라고 하는 제도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하였거나 형해화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재판절차진술권의 구체화의 책임을 진 입법자가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하여 명백하게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하였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2. 평등권 침해 여부에 대한 심사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결정에서 평등원칙 위반여부의 심사 역시 다른 기본권(재판절차진술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엄격한 심사기준을 택하고 있고, 평등권침해로 결론을 짓고 있다. 필자는 이 경우에 엄격심사기준이 아니라 오히려 완화된 심사기준을 선택했어야 한다고 보며, 이러한 잘못된 적용은 궁극적으로는 제대군인가산점결정 이래 평등원칙 위반여부의 심사기준 적용을 위한 전제를 잘못 정립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헌법재판소는 제대군인가산점 결정에서 헌법이 특별히 평등을 명하는 경우와 차별로 인하여 다른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 초래될 수 있는 경우에는 비례의 원칙에 입각한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 판례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소위 ‘새로운 공식’을 불완전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엄격심사기준의 요건을 매우 불확실하게 하고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제시하고 있는 평등원칙위반여부의 심사에 있어서 엄격심사기준과 완화된 심사기준의 적용을 구별하는 결정적인 표지는 ‘인적 집단에 대한 차별’인가 아니면 ‘사항적 차별’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가령 인종, 피부색, 고향, 언어, 출신 등과 같이 헌법이 특별히 평등취급을 명하고 있는 표지들은 천부적으로 사람이 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그것을 이유로 한 차별은 거의 인간존엄에 대한 침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사유들을 근거로 한 인적 집단에 대한 차별은 금지되고 따라서 엄격심사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사항에 관하여 입법자가 유형화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별의 경우에는 자의금지에 입각한 완화된 심사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새로운 공식의 핵심인데, 우리 헌법재판소는 그 가운데 ‘헌법이 특별히 평등취급을 명하는 경우’라는 요건만을 따왔을 뿐 ‘인적 차별’인지 아니면 ‘사항적 차별’인지의 구분기준은 간과하고 만 것이다. 다음으로 어떠한 차별이든지 다른 기본권에 대한 제한을 수반하지 않는 차별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모든 평등권제한 사례는 동시에 다른 기본권제한을 동반하므로, 결국 그 기본권의 제한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평등위반여부의 심사에 있어서도 엄격심사기준을 사용하여야 한다. 이로 인하여 평등원칙심사의 독자성은 상실될 수 밖에 없고, 그 결론은 다른 기본권의 침해여부의 결론에 좌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돌아와서 살펴보건대, 공소권면제의 예외사유를 입법자가 유형화하여 구분하고 그러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와 해당되는 경우를 구분하여 공소제기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처음부터 인적 집단에 대한 차별이라고 하기 보다는 사항적 차별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차별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입법자에게 넓은 형성의 자유가 인정될 수 있으며, 위헌여부의 심사도 자의금지를 기준으로 한 완화된 심사기준을 택했어야 마땅하다. 또한 재판절차진술권은 전술한 바와 같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그 배제 자체가 곧 생명·신체에 대한 침해 정도의 중대한 법익침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차별로 인하여 중대한 기본권의 제한이 초래된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완화된 심사가 타당하다. 헌법재판소는 생명과 신체라고 하는 법익과 관련된다는 이유로 위와 같은 관점을 간과한 채 곧바로 엄격심사기준을 택한 것으로 보이나, 심사기준을 택함에 있어서는 단순히 법익의 중요성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헌법이 입법자에게 형성권을 부여하였는지 여부, 입법자의 결정으로 인하여 구체적으로 법익이 침해될 수 있는 가능성이나 정도 등을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신중하게 고려하여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이 사건에서는 완화된 심사기준을 택하는 것이 타당했다고 보며, 입법자가 명백히 자의적으로 평등원칙에 위반되는 결정을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3.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여부의 심사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여부와 관련하여 첫 번째 합헌결정에서와 마찬가지로 과소보호금지원칙에 입각한 완화된 심사를 택한 후, 이 사건 법률조항이 기본권보호의무에는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으며, 이러한 심사기준의 적용은 타당했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 쟁점이 바로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여부의 문제였다는 점이다. 이 사건과 같은 교통사고의 경우 국가가 아니라, 가해운전자의 피해자에 대한 생명·신체의 법익침해가 문제되는 것이므로 국가가 이러한 가해자의 침해나 침해의 위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을 것인가의 기본권보호의무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여부에 대하여 가장 중심적으로 심사하고, 나머지 재판절차진술권이나 평등권침해여부는 오히려 부차적으로 다루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사고를 당한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 내지 재판절차진술권의 행사 자체는 자신의 건강회복이나 피해배상에 아무런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아니한 운전자의 중과실에 의한 중상해 사고의 경우, 피해자가 재판절차진술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보험금 등에 의한 피해배상 등을 받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건강회복 등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종합보험가입을 유도하여 가능한 한 교통사고를 민사배상의 문제로 전환하여 피해배상 등을 원활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의 생명이나 건강의 보호를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III. 결론 생명과 신체에 대한 사전적 보호의 문제는 형벌을 통한 일반예방적 효과는 물론이거니와 그 외에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법적·제도적 장치와 도로교통환경의 개선 및 교통안전행정의 강화와 국민계도 등 형벌외적 측면의 많은 가능한 수단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노력들을 국가가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거나 명백하게 불완전·불충분하게 이행했다고 볼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면 헌법재판소 역시 인정하고 있듯이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은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인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여부를 심사함에 있어서도 구체적 청구인의 ‘안타까운’ 사정에만 치중하여 형성유보가 있는 기본권의 특성과 상관 없이 엄격심사기준을 동원하여 재판절차진술권과 평등권침해의 결론에 이를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쟁점인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여부에 대한 결론에 의거하여, 종합적으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합헌으로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였을 것이다. 만일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바와 같이 교특법의 입법목적(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고 국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중과실에 의한 중상해사고 유형을 공소권면제의 예외사유에 추가하는 경우 이러한 입법목적의 실현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 입법자는 교특법 제3조 제2항의 단서에 ‘어린이보호구역 내 주의의무 위반’(2007. 12.21 법률 제8718호 시행일 2009. 12.22)을 추가함으로써 나름대로 입법보완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노력들을 감안하되, 특례규정의 도입과 사고율간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입법자가 객관적이고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관찰하도록 의무를 부과한 후, 그 결과에 따라서 입법적으로 상응하는 보완조치를 하도록 명하는 완곡한 경고결정을 내리는 것도 바람직하였다고 생각된다.
2009-03-26
신용보증기금의 상업어음할인대출 신용보증
Ⅰ. 사실 원고 신용보증기금(X)은 이 사건 신용보증서에 의하여 소외 A주식회사가 금융기관인 원고보조참가인(X’)에게 부담하는 채무에 대하여 신용보증을 하였고, 피고 Y1, Y2는 원고가 원고보조참가인에게 신용보증채무를 이행할 경우 소외 A주식회사가 원고에게 지게 되는 구상금채무에 대하여 연대보증하였는 바, 원고가 발급한 이 사건 신용보증서에는 신용보증 대상이 되는 ‘대출과목’이 ‘할인어음’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한편, ‘본 보증서는 사업자등록증을 교부받은 업체간에 당해 업체의 사업목적에 부합되고 경상적 영업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재화 및 용역거래에 수반하여 발행된 상업어음(세금계산서가 첨부된)의 할인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는 내용의 특약사항이 기재되어 있었다. A의 채무불이행으로 X가 X’에게 보증채무를 이행하고 Y1과 Y2에게 구상하자, Y1과 Y2는 A가 X’로부터 할인받은 어음이 상업어음이 아니었으므로 X는 X’에게 보증채무를 이행할 의무가 없었고 따라서 Y1과 Y2에게 구상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Ⅱ. 판지 1. 처분문서는 그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처분문서에 기재되어 있는 문언의 내용에 따라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있었던 것으로 객관적으로 해석해야 하고, 그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아니하거나 당사자의 일치하는 의사가 없어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그와 같은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대법원 1993. 8.24. 선고 92다47236 판결, 대법원 2007. 7.12. 선고 2007다13640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신용보증서에 의한 신용보증은… 상업어음할인대출을 그 보증 대상으로 하는 것임은 명백하다. 어음의 발행 경위 자체를 따짐이 없이 금융기관이 소정의 조사·확인절차에 의해 상업어음으로 판단하여 실시하는 이른바 ‘상업어음할인대출’이라는 과목의 대출을 가리키는 것인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고, 이는 종국적으로 진정한 상업어음이 아닌 어음을 상업어음할인의 절차에 의해 할인받아 대출이 이루어진 경우의 위험을 금융기관 또는 원고 중 어느 쪽에 귀속시킬 것인가의 중대한 문제로서 신용보증서의 위 기재 내용이 이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처분문서의 해석에 관하여 앞서 설시한 법리에 따라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이 사건 신용보증서를 합리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이를 가려야 할 것이다. 2. 원래 원고는 담보능력이 미약한 기업의 채무를 보증함으로써 기업의 자금융통을 원활히 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하는데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으로서(신용보증기금법 제1조) 그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 대해 일정한 심사를 거쳐 신용보증서를 발급하여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담보능력이 미약한 기업이 대출을 신청한 경우에도 별도의 담보를 요구함이 없이 신용보증서에만 의존하여 그 기업에게 대출을 시행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업의 원활한 자금융통을 지원하는 신용보증을 그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같은 법 제23조). 금융기관이 상당한 주의를 하더라도 그 어음이 상업어음이 아님을 가려내지 못하는 때가 있을 것이고, 만일 금융기관이 필요한 조사·확인조치를 모두 취하였는데도 나중에 그 어음이 상업어음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는 이유로 신용보증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면, 결국 금융기관은 그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신용보증제도를 기피하거나 신용보증서에 부가하여 별도의 담보제공을 요구하게 되어 신용보증제도는 담보능력이 미약한 기업의 자금융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게 될 것이니 이러한 결과는 원고의 설립 취지나 신용보증제도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고는 그 스스로 신용보증을 하고자 하는 기업의 경영상태·사업전망·신용상태 등을 공정·성실하게 조사할 의무가 있고(같은 법 제27조), 기업의 신용도와 보증종류 등을 감안하여 보증금액에 따라 소정의 보증료를 징수하고 있으므로(같은 법 제33조, 같은 법 시행령 제24조의2), 원고가 이러한 절차를 거쳐 신용보증을 한 이상 당해 기업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에 의해 보증금액의 범위 안에서 위험을 인수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 당사자의 의사는 금융기관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여 정상적인 업무처리절차에 의해 상업어음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상업어음할인의 방식으로 실시한 대출에 대하여 신용보증책임을 진다는 취지로 해석함이 합리적이다. 대법원은 최근, 이 사건 상업어음대출에 대한 신용보증과 취지, 내용 및 형식이 거의 동일한 기업구매자금대출에 대한 신용보증의 해석에 관한 일련의 사안에서 금융기관이 기업구매자금대출을 한 후 그 대출한 자금이 기업구매자금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경우에도 그 대출과정에서 통상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면 원고가 보증책임을 부담한다는 취지의 판시를 계속함으로써(대법원 2006. 3.9. 선고 2004다67899 판결, 2006. 3.10. 선고 2005다24349 판결, 2006. 4.27. 선고 2006다8597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은 판단과 궤를 같이 하는 견해를 이미 표명한 바도 있다. Ⅲ. 해설 본 판결 이유에는 논리상의 문제점과 신용보증의 취지에 관한 실질적인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1. 논리상의 문제점 본 판결은 신용보증서의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아니하거나 당사자의 일치하는 의사가 없어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그와 같은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이 사건 신용보증서에 의한 신용보증은… 상업어음할인대출을 그 보증 대상으로 하는 것임은 명백하다”고 하면서도 “어음의 발행 경위 자체를 따짐이 없이 금융기관이 소정의 조사·확인절차에 의해 상업어음으로 판단하여 실시하는 이른바 ‘상업어음할인대출’이라는 과목의 대출을 가리키는 것인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고,… 신용보증서의 위 기재 내용이 이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위와 같은 해석이 필요하다고 전제하였다. 보증 대상이 “명백”하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아니하거나 당사자의 일치하는 의사가 없다고 모순된 전제하에 명백한 보증서 문언과 반대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대출금융기관이 내부적으로 과실 없이 보증서의 명백한 문언과 다른 업무취급을 하였다는 이유로 보증서를 이 업무취급에 따라 해석한다면, 본 사안의 원고나 피고들처럼 다른 관계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손해를 초래할 염려가 있다(김능환·전수안 대법관의 반대의견, 나). 다만, 김능환·전수안 대법관이 위와 같은 법률행위 해석론은 처분문서에는 적용되지 않는 듯이 표현한 것(위의 반대의견, 가)은 의문이다. 이기택 부장판사(서울고법)도 신용보증기금의 특약에 관한 대부분의 판례(대법원 2001. 6.12. 선고 2001다16678 판결 ; 대법원 2001. 5.15. 선고 2000다30035 판결 ; 대법원 2001. 1.19. 선고 99다55489 판결 ; 대법원 1998. 8.21. 선고 97다37821 판결 등)처럼 보증채무 성립 후에 발생하는 대출금융기관의 담보확보의무 위반에서는 귀책사유가 있어야 하지만, 본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하여 변경된 그의 해설 대상판결(대법원 2001. 11.9. 선고 2000다23952 판결)처럼 “신용보증기금이 어음할인대출에 관한 신용보증을 함에 있어서 상업어음의 할인에 대하여 보증책임을 부담한다는 특약”은 주채무의 성립 시에 보증의 대상이 되는지 논하여지고 “따라서 그 범위 밖의 대출채무는 금융기관이 대출 시에 그 범위 안에 속하는지 여부를 확인하였는가에 관계없이 보증계약에서 약정한 주채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금의 보증책임이 부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대법원판례해설 제38호 (2002년), 법원도서관, 193~195면). 2. 실질적인 문제점 본 판결이 “금융기관이 상당한 주의를 하더라도 그 어음이 상업어음이 아님을 가려내지 못하는 때가 있을 것이고, 만일 금융기관이 필요한 조사·확인조치를 모두 취하였는데도 나중에 그 어음이 상업어음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는 이유로 신용보증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면, 결국 금융기관은 그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신용보증제도를 기피하거나 신용보증서에 부가하여 별도의 담보제공을 요구하게 되어 신용보증제도는 담보능력이 미약한 기업의 자금융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게 될 것이니, 이러한 결과는 원고의 설립 취지나 신용보증제도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것은 경청할 만하다. 유중원 교수는 본 판결에 대한 찬성평석에서 위 특약은 신용보증기금이 공공기관으로서 우월한 지위에서 대출금융기관에게 합리적 근거 없이 무과실책임을 부담시키는 부당한 특약이라고 한다(법률신문 제3710호, 2009. 1.1.). 그러나 금융기관이 대출에 있어서 부담하는 위험 중에서 상업어음할인에 대해서만 보증을 하는 것도 전혀 무익하지 않다. 원고가 보증하는 주채무자의 영업상 위험에 비하여 상업어음인지 아닌지 판별의 위험은 적으며, 판결이유도 설시한 바와 같이 “이는 종국적으로 진정한 상업어음이 아닌 어음을 상업어음할인의 절차에 의해 할인받아 대출이 이루어진 경우의 위험을 금융기관 또는 원고 중 어느 쪽에 귀속시킬 것인가의 중대한 문제”인데, 이 판별은 신용보증기금보다는 당해 어음을 할인하는 주채무자의 거래은행에게 더 수월할 것이다. 본 판결은 기업구매자금대출에 대한 신용보증에 관한 판례를 원용하는데 이 경우에도 법이론상은 용도가 기업구매자금인지 아닌지 판별은 주채무자인 구매자의 거래은행이 담당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제도일 것이다. 신용보증기금이 이러한 판별의 위험에 대해서까지 보증을 한다면 보증사고발생의 증가에 대비하여 기본재산 충실화를 위해서 보증료를 높여야 할 것이다. 이 기업구매자금대출에 대한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연쇄도산이 상업어음할인제도에 한 원인이 있다고 판단하여 중소기업의 금융부담도 완화하기 위하여 한국은행이 2000.4.20.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거쳐 도입하기로 하고 2000.5.22.부터 시행한 제도이다(한국은행 보도자료 공보2000-4-13호 참조). 정부의 기업구매자금대출 활성화 조치로서 ① 신용보증 지원 이외에도 ② 세제 및 세정상 지원 ③ 정부물품 구매입찰 시 우대 ④ 불공정 하도급행위에 대한 제재 완화 등이 예정된 반면 상업어음할인은 점차 억제하게 되었다(위 보도자료의 참고2). 그러므로 기업구매자금대출에 대한 신용보증에 있어서는 순수한 법이론에 대하여 정책적 예외를 인정하는 판례는 이해하더라도, 억제의 대상인 상업어음할인에 대한 신용보증에 관하여 전원합의체 판결로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려는 본 판결은 정부정책에도 어긋난다.
2009-02-19
현역복무부적합조사위원회의 법적 성격
Ⅰ. 대상판결 1. 사실관계 원고 A는 제○보병사단 행정보급관 등으로 근무하면서 병사들에 대한 상습적인 언어폭력과 가혹행위 그리고 후임 부사관에게 폭언, 욕설, 인격비하 발언을 함으로써 후임 부사관에게 군무이탈의 원인을 제공한 사실로 정직 3개월(1/3 감액)의 중징계처분을 받았다. 피고(제○보병사단장)는 원고가 군인사법 제37조 제1항 제2호(현역복무에 적합하지 아니한 자), 같은 법 시행령 제49조 제1항 제2호(성격상의 결함으로 현역에 복무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자), 제4호(기타 군 발전에 저해가 되는 능력 또는 도덕상의 결함이 있는 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현역복무부적합자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원회’라 한다) 및 전역심사위원회(이하 ‘심사위원회’라 한다)의 의결을 거쳐 2005. 10.31.자로 전역을 명하는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원고는 육군인사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하였으나, 2006. 5.15. 기각되자 소송을 제기하였다. 2. 판결요지 (1) 1심 및 항소심 조사위원회의 조사는 심사위원회의 심사의 예비절차 또는 전심절차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어서, 조사위원회의 조사와 심사위원회의 심사는 전체로서 현역복무부적합 여부에 따라 전역 여부를 결정하는 하나의 처분의 절차를 구성하는 것이므로 그 절차의 정당성도 처분과정 전부에 대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 조사위원회는 군인사법 시행규칙상 인정되는 기구로서 심사위원회와는 달리 전역처분을 함에 있어 반드시 그 의결을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기구가 아닌 점 등을 고려하면 처분과정을 전체적으로 볼 때 심사위원과 조사위원의 일부 중복이 있다거나 조사위원회에 어떠한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하여 심사위원회마저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2) 대법원 군인사법 제37조 제1항 제2호, 동법 시행령 제49조, 동법 시행규칙 제57조 등 관련 규정에 비추어 볼 때, 현역복무부적합자조사위원회에 회부·조사 등의 절차는 참모총장이 군본부전역심사위원회에 바로 회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현역복무부적합 대상자를 반드시 조사위원회에 회부하여 현역복무에 부적합한지 여부를 조사하고 과반수의 찬성으로 그 의결을 거쳐야 하는 필요적 절차이다. 한편, 조사위원회에서의 조사·의결 등 절차의 성격에 비추어 비록 조사위원의 제척에 관한 육군규정 121(부사관분리규정) 제35조가 조사위원회의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자는 동일인을 심사하기 위한 전역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으로서 제척사유에 해당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 본래 취지는 현역복무부적합자조사위원회의 조사위원이 다시 전역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전역심사위원회 심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조사위원회의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자는 동일인에 대한 전역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고 하여야 한다. Ⅱ. 현역복무부적합전역제도 1. 의의 현역복무부적합전역제도란 능력의 부족으로 당해 계급에 해당하는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자와 같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현역복무에 적합하지 아니하는 자를 전역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현역에서 전역시키는 제도를 말한다(임천영, 「군인사법」, 법률문화원, 2007. 571면). 이 제도는 군인의 직무를 수행할 적격을 갖추지 못한 자를 직무수행에서 배제함으로써 군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인사상의 제도로서 일반 사회질서를 해친 자에 대한 형사적 처벌이나 군 내부에서 군율을 어긴 자에 대한 제재의 성격을 가지는 징계제도와는 그 제도적 취지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대법원 2001.5.29.선고 99두9636판결). 2. 사유 및 절차 군인사법 시행령 제49조 제1항과 동법 시행규칙 제56조에서 그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하여는 아래 논문 참조(임천영, ‘현역복무부적합전역 사유 해당여부’, 법률신문(3259호)). 원에 의하지 아니하는 전역은 전역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법 제37조 제1항) 임용권자가 행하며, 전역심사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법 제38조 제3항). 현역복무에 적합하지 아니한 자에 대한 심사 기타 필요한 사항은 규칙으로 정하도록 위임하였으며(시행령 제49조 제2항), 시행규칙에서는 부적합의 심사절차에 관하여 규정하면서 전역심사위원회의 심사 이전 단계인 부적합자조사위원회의 설치와 구성 및 조사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다(시행규칙 제59조 제1항). 현역복무부적합전역절차는 원칙적으로는 2단계 절차(조사위원회와 전역심사위원회)를 거쳐야 하나 예외적으로 1단계 절차(전역심사위원회)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즉 원칙적으로 ① 소속 지휘관의 조사위원회 설치권자에 대한 보고 → ② 조사위원회에의 회부·조사·의결 및 조사위원회 설치권자에 대한 보고 → ③ 조사위원회 설치권자의 전역심사위원회의 설치권자에 대한 보고 → ④ 전역심사위원회 회부·심사 → ⑤ 임용권자의 전역명령 순으로 진행되나, 예외적으로 제57조 제1호 내지 제5호에 해당하는 자에 대하여는 ① 소속 지휘관의 참모총장에 대한 보고(또는 참모총장의 직권탐지) → ② 참모총장의 군본부전역심사위원회 회부·심사 → ③ 임용권자의 전역명령 순으로 진행된다. Ⅲ. 판결의 쟁점 원고는 육군규정상 조사위원회와 심사위원회는 엄격히 분리되어 있고, 참여 위원의 중복이 허용되지 않는데 원고에 대한 조사위원회 및 심사위원회에 참여한 위원 3명이 중복되었으므로 그 절차에 중대한 위법이 있어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조사위원회 위원과 전역심사위원회 위원이 중복되는 경우 그 절차에 중대한 위법이 있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쟁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사위원회의 법적성격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또한 위원이 중복된 경우 그에 대한 법적 효과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조사위원회의 법적 성격 조사위원회란 장교, 준사관, 부사관에 대한 현역복무 부적합자 기준에의 해당 여부를 조사하기 위하여 설치된 위원회를 말하며, 조사위원회는 심사위원회의 심의에 앞서 우선 조사위원회의 조사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심사위원회의 심의에 보다 신중을 기함과 아울러 심의에 필요한 자료를 충분히 마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조사위원회는 ‘원에 의하지 아니한 전역’ 절차에 있어서 원칙적으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적 기관이다. 즉 군인사법 제37조 제1항 제2호, 동법 시행령 제49조에 의하여 ‘현역복무에 적합하지 아니한 자’의 기준 및 심사 기타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위임을 받은 동법 시행규칙 제57조는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자에 대하여는 조사위원회에 회부하여 제56조에 규정된 부적합자 기준에의 해당 여부를 조사하게 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제2호에서 ‘중징계처분을 받은 자’ 등을, 제5호에서 ‘전역심사위원회 설치권자가 부적합자로 인정하는 자’ 등을 규정하는 등 7가지 사유를 규정하여 원칙적으로 모든 부적합 대상자를 조사위원회에 회부하여 조사를 거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동법 시행규칙 제58조 제1항은 “모든 지휘관은 그 부대의 장교·준사관 및 하사관 중에서 제56조에 해당한다고 인정되는 자 또는 제57조 제1호 내지 제6호에 해당하는 자가 있을 때에는 제59조에 규정된 조사위원회 설치권자에게 보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다만 참모총장의 경우 일정한 자에 대하여 조사위원회에의 회부·조사 등의 절차를 거칠 필요없이 바로 군본부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를 두고 있다(시행규칙 제59조 제2항). 조사위원회는 전역심사위원회의 전 단계에서 현역복무 부적합 여부를 판단하여 전역심사위원회의 전역 여부에 대한 결정을 도와주는 기관으로서, 전역심사위원회는 조사위원회에서 현역복무 부적합자로 의결한 자에 대하여만 전역 여부를 판단한다. 조사위원회의 권한이 ‘제56조에 규정된 현역복무 부적합자 기준에의 해당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사위원회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현역복무 부적합자 기준에의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며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할 자 또는 회부할 자가 아닌 자’를 의결하는 것은 아니다. 2. 중복된 경우의 법적 효과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자가 전역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경우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동법 시행규칙 제66조 제1항에 “조사대상자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조사위원의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라는 규정과, 육군규정 제35조 제6호의 “동일인을 심사하기 위하여 전역심사위원으로 임명된 자는 조사위원 중에서 제척된다”라는 규정만이 있을 뿐이며,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해석으로는 “심사위원과 조사위원의 일부 중복이 있다거나 조사위원회에 어떠한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하여 심사위원회마저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견해와 “조사위원회와 심사위원회의 위원들은 대부분이 중복되어 있어 그 위원회의 의결에 의한 전역처분은 위법하다”라는 견해가 있다. 육군 인사소청심사위원회(01-2 전역처분취소)에서는 “위 규정은 비록 조사위원회를 대상으로 심사대상자와 일정한 이해관계 있는 자의 제척을 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 본래 취지는 조사위원회 위원이 다시 전역심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전역심사위원회 심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견으로는 조사위원회와 심사위원회는 구성 및 임무가 다른 별개의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점, 조사위원으로 참여하여 현역복무 부적합자로 결정한 위원이 심사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예단을 가지고 처리할 수 있다는 점, 육군규정의 심사위원으로 임명된 자에 대하여는 조사위원이 될 수 없도록 규정(이 규정의 취지는 조사위원과 심사위원의 중복을 금지한다는 것이므로,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자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 등을 종합하면 이는 절차상 중대한 위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임천영, 전게서, 597면). Ⅳ. 평석 대법원 판결은 “조사위원회는 임의적인 기관이 아닌 원칙적 필요적 기관이라는 점과 전역심사위원회 심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도 현역복무부적합자조사위원회의 조사위원이 다시 전역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금지한 것으로 해석하여 조사위원회의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자는 동일인에 대한 전역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현역복무부적합자 전역은 원에 의하지 아니하는 전역의 일종이다. 따라서 현역복무부적합자 판정은 그 내용과 절차를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위 대법원 판결이 그 절차를 강조하여 조사위원과 심사위원으로 중복된 경우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은 그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2008-11-03
청산중인 비법인사단의 권리능력
1. 사건의 개요 이 사건은 어느 교단에 소속된 지교회의 교인 중 몇 명이 지교회를 상대로 대표자 甲의 대표자지위부존재확인을 청구한 사건이다. 위 교단은 사단법인이고, 지교회는 비법인 사단이다. 소송 계속 당시 지교회의 교인 수는 10명 미만으로 감소되었고, 지교회는 교회 건물을 처분하고 종교 활동을 중단하고 있는 상태, 즉 해산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지교회의 재산에 관해 지교회를 당사자로 하는 별소가 진행 중에 있었다. 甲은 담임목사 겸 지교회의 대표자인데, 이 사건은 그의 대표자인 지위에 관한 다툼이다. 그는 소속 교단으로부터 파직·출교의 징계처분을 당하여 담임목사의 지위를 잃고 있었다. 원판결은 피고 교회가 해산으로 권리능력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윈고들의 소를 각하했다. 이에 원고들이 상고하자 대법원이 위 판결요지를 내세워 원판결을 파기환송 했다. 2. 해산한 법인, 해산한 비법인사단의 권리능력 법인은 해산하더라도 즉시 모든 권리능력을 잃지 아니하고, 청산 목적의 범위 내로 축소된 채 권리능력을 여전히 유지한다. 축소된 법위 내에서는 여전히 권리주체로서 권리를 가지고 의무를 부담한다는 말이다(민법 제81조). 우리 법제는 집단의 유형을 단체성의 강약을 기준으로 사단법인, 비법인 사단, 조합, 이렇게 세단계로 나누고 있다(민법 제271조 내지 제278조, 대법원 1992.7.10. 선고 92다2391 판결). 이 중 비법인 사단이란 사단법인과 실체는 같고, 형식(허가를 얻지 않고 등기를 갖추지 아니한 것을 말함)만을 달리하는 사단이다. 판결요지는 위 민법의 규정이 비법인 사단에게 준용되어 비법인사단도 해산으로 즉시 모든 권리능력을 잃지 아니하고, 축소된 범위 내에서 여전히 권리주체로서 권리를 가지고 의무를 부담한다는 취지이다(同旨; 대법원 1990.12.7. 선고 90다카25895 판결, 동 2003.11.14. 선고 2001다32687 판결). 실체는 같으므로 당연히 사단법인에 관한 규정이 비법인 사단에 준용되어야 한다. 필자도 판결취지에 찬동한다. 3. 비법인 사단이란 호칭 민법은 법인의 설립에 허가주의를 취하여 형식을 갖춘 사단만이 권리능력을 가지는 사단(사단법인)으로 규정하고 있다(제31조 내지 제33조). 그런 연유로 사단법인과 대비하여 형식을 갖추지 아니한 사단은 비법인 사단이라 호칭하게 되었다(정환담 ‘관습상의 법인격 없는 사단에 관한 고찰’ 民事法學 제6호 43면이하). 비법인 사단이란 국어학상으로는 권리주체가 아닌 사단이란 말이다. 그런데 사회 현상은 비법인 사단을 권리주체로 대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 법제·학설·판례는 일찍부터 국어학성과는 달리 비법인 사단을 사단법인에 준하는 권리주체로 대우하고 있다. 비법인 사단에 민사소송법이 당사자능력을 부여하고(同法 제52조), 부동산등기법이 등기능력을 부여하며(同法 제 30조), 조세법이 납세의무자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국세기본법 제3조). 학설·판례의 소개는 생략한다. 대상판결은 그런 판례를 답습한 것이다. 비법인 사단이 국어학상과 달리 법학상으로는 권리주체인 사단이란 말이다. 법률용어를 모두 국어학상 의미와 일치시키기는 어렵지만, 그렇더라도 가급적 일치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어도 상치하지는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위에서 밝힌 대로 비법인 사단이란 용어는 국어학상 의미와 법학상의 의미가 상치한다. 권리능력 있는 사단을 어떻게 계속 권리능력 없는 사단이라고 부르는가. 이 용어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형식을 갖춘 사단은 정규 또는 등기사단법인, 형식을 갖추지 아니한 사단은 준사단법인 또는 미등기사단이라고 부르기를 필자는 제의한다(졸고 ‘비법인사단인 종중의 총유재산 보존행위’ 법률신문 07.7.12.). 4. 집단의 분류와 재산의 소유 형태 비법인사단과 사단법인은 실체상 같다고 위에서 말했다. 단체성의 강약에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호칭만이 아니라 집단의 유형을 분류함에 있어서도 비법인 사단을 사단법인과 단계를 달리하는 집단으로 분류할 것이 아니라, 같은 단계의 집단으로 분류하여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집단의 유형을 사단법인(등기, 미등기), 조합, 이렇게 두 단계로 분류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분류하여야 비법인 사단에 사단법인에 관한 민법의 규정을 준용하는 근거가 확실하게 된다. 우리 법제는 재산의 소유 형태에 관하여 사단법인은 법인 자체가, 비법인 사단은 구성원의 총유의 형태로(민법 제275조), 조합은 조합원의 합유의 형태로(동 제271조) 각 소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필자는 비법인사단도 권리주체로 대우받고 있으므로 사단 자체가 소유한다고 법률을 개정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개정 전에도 법원이 그렇게 해석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비법인 사단을 권리주체로 대우하는 것과도 일관된다. 아래와 같이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위 민법의 규정은 권리주체로 대우받지 못하는 비법인 사단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조항이지, 권리주체로 대우받는 비법인 사단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조항이 아니므로 권리주체로 대우받는 비법인 사단에게는 위 민법의 규정은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해석하고, 혹시 권리주체로 대우받지 못하는 비법인 사단이 있다면 그런 사단에게만 위 민법의 규정이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마디 첨언한다. 권리주체로 대우받는 비법인 사단에 관하여 재산을 구성원의 총유의 형태로 소유한다는 민법의 규정과 대법원의 판시는 적절하지 못하다. 총유의 형태로 소유한다는 전제아래 대법원은 비법인 사단이 재산에 관한 소를 제기하려면 구성원 총회의 결의를 거쳐 제소하라거나, 아니면 구성원 전원의 명의로 제소하라고 요구한다(대법원 2005.9.15. 선고 2004다44971 전원합의체판결 등). 그런 요구는 비법인사단의 단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요건을 갖추기 어렵다(정정미 ‘촌락공동체의 재산에 관한 소송’ 대전지방법원 실무연구자료 제7권 6면 이하). 비법인사단의 존립마저 힘들게 된다. 비법인사단도 사단법인과 똑같이 사단 자체가 소유하고(김진현 ‘권리능력 없는 사단’ 民事法學 11·12호 509면 이하), 사단의 대표자가 총회의 결의를 거칠 필요없이 제소할 수 있다고 대법원이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2008-08-11
법률상이익·사실상이익 구분의 필요성
Ⅰ. 사실관계 (1) 원고는 2002년 5월1일 피고(군산시장)로부터 군산시 소재 A아파트 정문 옆 점포에서 ‘B마트(이하 ‘원고의 영업소’라 한다)’라는 상호로 담배 일반소매인 지정을 받은 후 같은 장소에서 현재까지 담배소매인 영업을 하고 있다. (2) 한편, 피고 보조참가인(이하 ‘보조참가인’이라 한다)은 2006년 12월8일 피고에게 군산시 소재 A아파트 상가 101호에서 ‘C마트(이하 ‘보조참가인의 영업소’라 한다)’라는 상호로 일반담배소매인 지정신청을 했는데, 피고로부터 담배소매인 지정기준 및 결격 여부의 조사업무를 의뢰받은 한국담배판매인회 군산조합의 조사결과 보조참가인의 영업소와 원고의 영업소 사이의 거리가 77.5m로 측정되자, 피고는 2006년 12월20일 보조참가인을 담배 일반소매인으로 지정하는 이 사건 처분을 했다. Ⅱ. 당사자들의 주장 (1) 원고는 보행자들이 원고의 영업소와 보조참가인의 영업소 사이에 아파트단지 내 도로를 횡단하면 그 최단거리가 약 30m이어서 담배사업법(이하 법이라 한다)이 정한 담배의 일반소매인 지정조건으로 정한 거리제한인 50m에 미달함에도 보조참가인은 피고로부터 소매인지정을 받았는바, 이는 거리제한규정을 둔 취지에 위배되는 것으로 위법하므로, 이 사건 처분은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2) 이에 대하여 피고와 보조참가인은 법 시행규칙 제7조 제1항 [별표2], 도로교통법 제10조 제2항 본문에서 정한 보행자의 통행방법에 따르면 횡단보도가 설치돼 있는 경우에는 보행자들이 횡단보도로 보행을 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아파트단지 내 도로도 도로교통법이 정한 도로에 해당하고 위 도로에는 횡단보도가 설치돼 있으므로 보행자들이 설치된 횡단보도로 통행했을 경우 원고의 영업소와 보조참가인의 영업소 사이의 거리가 77.5m이어서 거리제한규정에 어긋나지 않다고 주장한다. Ⅲ. 원심판결(광주고법 2007. 10. 19, 2007누738)의 요지 (1) 원고는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해 담배 매출액이 감소하는 등 영업상의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므로 원고의 이와 같은 영업상의 침해가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인지에 관해서 보건대 관계법령(담배사업법 시행규칙 별표2 소매인의 지정기준)에 의하면 일반소매인들 사이에서는 일정한 거리 제한을 두고 있고, 구내소매인이 지정된 건축물 등에는 일반소매인을 지정할 수 없으며, 구내소매인의 경우 건축물 또는 시설물의 구조·상주인원 및 이용인원 등을 고려해 동일 시설물 내 2개소 이상의 장소에 구내소매인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으로 지정권자가 담배소매인을 지정함에 있어 일정한 요건에 따라 이를 지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 그러나 이와 같은 제 규정의 취지는 담배 소매인간의 경쟁적인 담배 판매로 인한 각종 폐해 즉 덤핑, 밀수, 청소년 판매 등을 방지하여 담배 판매의 유통질서를 확보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일뿐, 담배소매인들의 독점적이고도 안정적인 이익을 보장해 주려는 데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점(일반적으로 담배의 판매는 다른 영업에 부수해 이루어지고 있고, 원고 또한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담배 구내소매인을 지정함에 있어서는 담배 일반소매인과의 사이에 아무런 거리 제한을 두고 있지 아니한 점 등에 비추어보면,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한 원고의 영업상 피해는 간접적·사실적 피해에 불과할 뿐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침해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3) 따라서 원고는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할 당사자적격이 없다고 할 것이다. Ⅳ. 대법원판결(2007두23811)의 요지 (1) 구 담배사업법(2007. 7. 19. 법률 제851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과 그 시행령 및 시행규칙의 관계규정에 의하면, 담배의 제조 및 판매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담배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국민경제에 이바지하게 하는 데에 담배사업법의 입법목적이 있고, 담배의 제조·수입·판매는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 허가 또는 등록을 한 자만이 할 수 있으며 담배에 관한 광고를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고, 담배의 제조업자 등으로 하여금 공익사업에 참여하게 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으며, 담배소매인과 관련해서는 소정의 기준을 충족하여 사업장 소재지를 관할하는 시장·군수·구청장으로부터 소매인의 지정을 받은 자만이 담배소매업을 영위할 수 있고 소매인으로 지정된 자가 아니면 담배를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없으며 소매인의 담배 판매방법과 판매가격을 제한하면서 각 이에 위반하거나 휴업기간을 초과해 휴업한 소매인을 처벌하고 있다. (2) 또한 시장·군수·구청장은 일정한 경우 소매인에 대하여 영업정지를 명할 수 있거나 청문을 거쳐 소매인지정을 취소하도록 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소매인에게 업무에 관한 보고를 하게 하거나 소속직원으로 하여금 소매인에 대해 관계 장부 또는 서류 등을 확인 또는 열람하게 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는 한편, 소매인의 지정기준으로 같은 일반소매인 사이에서는 그 영업소 간에 군청, 읍·면사무소가 소재하는 리 또는 동지역에서는 50m, 그 외의 지역에서는 100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 위와 같은 규정들을 종합해 보면, 담배 일반소매인의 지정기준으로서 일반소매인의 영업소 간에 일정한 거리제한을 두고 있는 것은 담배유통구조의 확립을 통하여 국민의 건강과 관련되고 국가 등의 주요 세원이 되는 담배산업 전반의 건전한 발전 도모 및 국민경제에의 이바지라는 공익목적을 달성하고자 함과 동시에 일반소매인 간의 과당경쟁으로 인한 불합리한 경영을 방지함으로써 일반소매인의 경영상 이익을 보호하는 데에도 그 목적이 있다고 보이므로, 일반소매인으로 지정돼 영업을 하고 있는 기존업자의 신규 일반소매인에 대한 이익은 단순한 사실상의 반사적 이익이 아니라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라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4) 이와 달리 원심은 원고의 담배판매가 다른 영업에 부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거나, 또는 일반소매인이 아닌 구내소매인을 지정함에 있어 일반소매인과의 사이에 거리 제한을 두고 있지 아니한 점 등을 이유로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한 원고의 영업상 피해가 간접적·사실적 피해에 불과할 뿐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의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소를 각하했으니,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원고 적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고,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는 이유가 있다. Ⅴ. 평 석 (1) 대법원판결의 타당성 담배사업법 제16조에 의거한 ‘신규 담배소매업의 지정’이라는 행정청의 처분에 의해 기존업자(담배소매업자)가 입게 된 영업상 불이익이 ‘법률상 이익’인가 ‘사실상 이익’인가를 가리는 이 사건에서 원심(광주고법)은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한 원고의 영업상 피해는 간접적·사실적 피해에 불과할 뿐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침해됐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말로써 원고의 원고적격을 부인한데 대해, 대법원은 “원고와 피고 보조참가인은 경업자 관계에 있음이 분명하므로, 기존업자인 원고로서는 새로운 경업자인 피고 보조참가인에 대해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의 상대방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할 원고적격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는바, 대법원의 판단이 올바르다고 판단된다. (2) 법률상이익·사실상이익 구별의 필요성 필자가 이 사건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 사건에서의 법원의 판결이 우리나라 실정법에서의 ‘법률상이익(또는 권리)’과 ‘사실상이익(또는 반사적이익)의 구분의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는 데에 있다. 행정소송법(제12조 등)이 ‘법률상이익이 있는 자’에 대해서만 취소소송 등 항고소송의 원고적격을 인정하고 있는 이상 그 ‘법률상이익’과 그에 반대되는 ‘사실상이익’의 구분의 필요성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학설상으로는 그 양자의 구분의 필요성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기에(상세는 「법률상이익과 사실상이익의 구분」, 법률신문 제2813호, 15면 참조) 이 기회에 다시 한번 그 양자의 구분의 필요성을 강조해 두는 바이다. (3) 입법상의 문제 ‘담배소매업자간의 거리제한’이라는 중대하고 본질적인 사항을 근거나마 ‘법률(담배사업법)’이 직접 정하지 아니하고, 부령(담배사업법시행규칙)으로 정하고 있는 점은 재고를 요한다고 생각된다. 다른 한편, -그동안의 여러 차례의 법률개정에도 불구하고- 행정심판법이 행정심판의 청구인적격을 아직도 ‘법률상이익이 있는 자’에 한정하고 있음은 ‘중대한 입법상의 과오’로서 조속히 개정돼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이다(상세는 김남진·김연태, 行政法Ⅰ, 제12판, 606면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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