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律新聞
2529호
법률신문사
例文解釋과 約款의 規制에 관한 法律
裵炳日
嶺南大學校 法學博士
============ 14면 ============
1. 事實의 槪要
피고는 소외 A회사에게 돼지를 외상으로 공급하고자 하였는 바, 피고는 A회사에게 장차 부담하게 될 외상대금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담보물을 요청하였다. A회사의 대표이사인 소외 B는 원고의 소유인 임야(이하 「이 사건 부동산」)를 장래 발생할 돼지 외상대금채무의 담보로 제공하기로 하고,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채무자를 A회사, 근저당권자를 피고로 하는 근저당권 및 지상권설정계약을 1991년 9월 19일 원고를 대리하여 피고와의 사이에 체결하고 같은 해 9월 26일 등기를 경료하였다. 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는 피담보채무를 A회사가 피고에 대하여 현재 및 장래에 부담하는 어음할인·증서대출·당좌대출·매출채권거래·기타의 여신거래로 말미암은 채무와 보증채무어음 또는 수표상의 채무 및 그 부대채무로 기재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피고에 대하여 돼지를 공급하여 줄 의사가 없음에도 기망하여 사기에 의하여 근저당권 및 지상권설정계약을 체결하였으므로 이를 취소하고 그 말소등기절차의 이행을 주장하였다.
제1심은 B가 대표이사를 한 소외 C회사와의 사이에 1991년 1월 5일 축산물 출하공급계약을 체결하고 1991년 1월 19일부터 1991년 10월 25일까지 돼지를 공급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제2심은 원고는 주위적 청구로서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근저당권 및 지상권설정계약은 공서양속에 반하여 무효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피고의 기망 혹은 피고와 B가 통모한 행위로서 취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아니하였고, 예비적 청구로서 주장한 사실에 대하여 법원은 A가 피고에 대하여 부담하는 모든 채무를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C회사의 피고에 대한 외상대금채무를 인수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원고는 근저당권 및 지상권설정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따라서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피고가 상고한 사건을 기각하였다.
2. 大法院의 判決要旨
근저당권설정계약서는 처분문서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계약문언대로 해석하여야 함이 원칙이나, 근저당권설정계약서가 금융기관 등에서 일률적으로 一般去來 約款의 형태로 不動文字로 인쇄해 두고 사용하는 계약서인 경우에 그 계약 조항에 피담보채무의 범위를 그 근저당권설정으로 공급받는 계속적인 물품공급거래로 인한 대금채무 외에 기존의 채무나 장래에 부담하게 될 다른 원인에 의한 모든 채무도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것으로 기재하였다고 하여도, 당사자의 의사는 당해 물품 공급거래로 인한 대금 채무만을 그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로 약정한 취지라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인 때에는 위 계약서의 비담보채무에 관한 포괄적 기재는 不動文字로 인쇄된 一般去來約款의 例文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 그 구속력을 배제하는 것이 타당하다.
3. 判例評釋
1) 例文解釋의 意義
부동산의 임대차나 전세, 금전소비대차, 위임 등의 계약에 관하여는 일반적으로 관용되는 서식이 있고, 이러한 계약서에는 일방 당사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이 인쇄, 삽입되어 있는 수가 많다. 대법원 판례는 그러한 조항들은 이른바 例文(단순한 예로서 늘어놓은 문언)에 지나지 않으며, 당사자가 이에 구속당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그러한 문언을 무효로 하고 있다.
이러한 例文解釋의 법리는 일본의 판례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의 판례는 예컨대 가옥 소실의 경우에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다는 보증금 조항과 같은 것은 하나의 例文이고 당사자가 진실로 이와 같은 특약을 할 의사로 기재한 것은 아니므로 당사자를 구속하지 아니한다고 한 후 이를 적용하여 왔다(일본 대심원 1921년 5월 3일). 우리 대법원도 무허가 건물과 그 부지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용한 不動文字로 인쇄된 조항을 例文으로 본 사례(대판 1979년 11월 27일 79다1141) 이후 꾸준히 이러한 例文解釋이라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근저당권설정계약서상의 피담보채권의 범위에 관한 기재에 관하여 例文이라고 본 사례는 매우 많고, 본 사례도 역시 그러하다.
2) 例文解釋의 종류
例文解釋은 부동산의 매매계약서, 근저당권설정계약서, 근보증계약서에 관한 것(권오승, 이른바 例文 해석의 문제점, 민사판례연구 1백 55면)으로 나눌 수 있고, 또한 當該不當條項이 表意者나 작성자가 의도한대로 해석하면 전후가 모순되거나 기타 채증법칙에 위배되는 사항이 있는 사안, 당해조항이 명명백백하여 전후 모순이나 채증법칙 위반이 있을 수 없는 사안,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사안(이영준, 물권법, 3백 19면) 등으로 나눌 수도 있다.
3) 例文解釋의 문제점
먼저 무엇이 例文이고 例文일 경우, 그 효력이 어떠한지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없다. 둘째 당해조항이 不動文字로 인쇄되었기 때문에 例文이라는 것인지, 내용이 不當하기 때문에 例文이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세째 例文解釋이라고 할 경우 그 해석이라는 것이 과연 법률행위의 해석이냐, 아니면 법률행위 내용의 수정인지 문제가 된다. 먼저 전자의 見解로는 例文解釋은 한 당사자에게 불리한 조항을 수정하지 않더라도 구체적인 사정 및 信義誠實의 원칙에 따라 그 당사자의 현실적 의사를 기준으로 하는 법률행위의 해석이라고 하는 見解가 있다(엄동섭, 법률행위의 해석에 관한 연구, 박사논문 2백75면). 이에 대하여 例文解釋은 解釋이라는 명칭하에 법률행위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해석 그 자체는 아니다라는 見解가 다수를 차지한다(고상룡, 민법총칙, 4백 26면). 네째 하나의 계약서 속에 포함된 여러 문언 중에서 특정한 문언을 골라서 효력을 부인하는 이론적 근거에 대하여 법원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다섯째 約款에 포함되어 있는 문언들 중에서 구속력이 있는 문언과 구속력이 없는 문언, 즉 例文을 구별하는 기준을 법원은 당사자의 의사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당사자의 의사와 계약서의 문언이 동일하면 구속력이 있고, 다르면 구속력이 없는 例文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條理나 信義誠實의 原則과 같은 기준을 원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된다. 마지막으로 例文인 경우에는 그것이 계약내용으로 되지 않는 것인지, 계약내용이 되지만 무효라는 것인지 아니면 타당한 범위 내에서 約款취지가 수정된다는 것인지 불명하다.
4) 例文解釋에 관한 見解
例文解釋에 대하여는 적극설과 소극설이 있다. 먼저 적극설로서는 信義誠實의 원칙에 의한 해석이라는 見解(곽윤직, 김용한, 고상룡)가 있다. 이 見解는 例文解釋을 信義誠實의 원칙에 의한 법률행위 해석의 전형적인 예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 경우 例文解釋은 조리해석으로 본다. 이 見解는 例文解釋에 관하여 특히 유의할 것은, 법적 안정성과의 조화상 그것은 남용하여서는 아니되고 매우 신중하여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例文解釋이라는 이름 밑에 문언을 정면으로 무시하기보다는 신의칙을 적용하여 법률행위의 문언을 수정하는 것이 보다 더 설득력을 갖고 타당하다고 한다.
다음으로 소극설이 있는데 이런 見解가 점차 세를 얻어가고 있다. 먼저 個別約定 우선의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不當約款을 통제할 수 있다는 見解(손지열)가 있다. 이 見解는 個別約定 存否의 판단에 있어서는 거래에 임하는 당사자의 실제 의사가 중요한 것이며, 內容不知 중에 서명 날인된 約款으로 된 약정서의 내용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例文解釋이라는 방법에 의하여 不當約款에 대하여 숨은 내용 통제를 할 것이 아니라 불공평 또는 不當한 約款과는 다른 당사자의 합의를 추단할 수 있으므로 個別約定을 우선시킴으로써 例文解釋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둘째 嚴格解釋의 原則과 公開된 內容統制理論에 의해 규율할 수 있다는 見解(이영준)가 있다.
엄격해석의 원칙은 의사표시는 표의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하여야 한다는 원칙이고, 公開된 내용통제이론은 不當조항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무효가 되어 그 적용이 배제된다는 이론이다.
이 見解는 例文解釋에 의하여 不當約款을 무시하거나 수정하는 것은 이론상 곤란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률행위의 해석은 법률행위의 내용이 명료하지 않은 경우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이지 계약내용이 명료한 경우에는 그 조항이 아무리 당사자 일방에게 불리하더라도 해석이라는 이름하에 그 조항을 무시하거나 수정할 수는 없는 것이며, 신의칙도 명료한 조항의 내용을 수정하여 다른 내용으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근거로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법질서는 원칙적으로 법관에게 일정한 요건하에 의사표시의 효력을 전부 또는 일부 부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을 뿐 그 의사표시가 不當하다고 하여 그 의사표시를 수정할 수 있는 능력가지는 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판례가 사정 변경의 원칙을 일반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 見解에 의하면 해석에 의해서는 約款 내용을 수정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판례가 例文解釋이라는 독특한 해석원칙에 의해서 계약내용을 수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例文解釋 이론에 의하여 규율되던 분야는 엄격 해석의 원칙과 공개된 내용통제이론에 의해서 규율함이 타당하다고 한다.
셋째 約款規制法에 의한 통제를 주장하는 見解(김상용)가 있다. 約款은 그것이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되기 전에는 例文이지만, 이미 합의에 의하여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되면 계약의 내용이 되므로 편입 후에도 約款을 例文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그리고 普通去來約款에 대한 해석 원칙과 내용 통제를 위한 約款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約款規制法)이 제정·시행되고 있으므로 例文解釋에 의하여 不當約款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約款規制法에 의한 통제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約款과 다른 당사자간의 합의를 추단할 수 있을 때에는 個別約定 優先의 원칙에 의해서 約款의 不當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고, 個別約定 優先의 원칙을 적용하기 어려운 不當約款은 約款規制法 제6조 및 제16조의 규정에 의해서 不當한 約款 내용을 일부 무효화하고, 나머지 부분의 約款사항의 유효성을 인정함으로써 例文解釋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굳이 例文解釋이라는 約款解釋方法에 의하지 않더라도 不當한 約款에 대해서는 約款規制法에 의해서 내용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錯誤論에 의한 통제를 주장하는 見解(송덕수)가 있다. 例文解釋은 구체적인 경우의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타당할지 모르나, 법적 안정성과의 조화를 생각할 때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단순한 例文이라고 할 수 있는 경우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러한 경우가 있다고 하여도 例文이라는 이유로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해석원칙에 따른 해석의 결과로서 효력이 부인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법률행위의 내용이 사회질서에 반하거나 暴利行爲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民法 제103조나 제104조에 의하여 법률행위가 무효로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 의미가 당사자 일방이 생각한 의미와 다른 때에는 일정한 요건하에 착오를 이유로 하여 취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질서에는 반하지 않고 단순히 信義誠實에 반하는 것만으로 의사표시의 효력을 부인할 것인가에 관하여는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명문규정이 없는 한, 우리 민법상 법률행위 조항의 효력은 강행법규 또는 사회질서에 반하는 경우에만 부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 선다면 단순히 信義誠實에만 반하는 경우에는 錯誤制度로서만 구제될 수 있다고 하겠다. 다만 例文解釋이 문제되는 것은 대부분 普通去來約款이나 서식의 경우이므로, 서식계약에도 約款規制法의 유추적용을 인정한다면, 이 법에 의하여 계약의 일부조항이 무효로 될 수도 있다고 한다.
5) 結 論
例文解釋은 約款規制法이 제정되기 전의 하나의 편법으로 이용된 理論이므로 이를 마땅히 廢棄해야 하고 不當한 約款은 約款規制法에 의하여 통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본 사례에서도 例文解釋이라는 우회적인 방법에 의하여 근저당권설정계약서상의 피담보채무의 범위에 관한 조항을 A회사와 피고 사이에 체결한 돼지출하계약에 따라 장차 부담하게 될 돼지 외상대금채무에 한정한 것이라고 할 것이 아니고, 約款規制法 제6조 제1항에 의하여 信義誠實의 原則에 반하여 공정을 잃은 조항으로서 무효라고 판시하는 것이 훨씬 간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