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화장품들의 원료와 성분이 담긴 종합 데이터는 정보공개 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 원료와 성분이 개별제품에 모두 표기돼 이미 공개가 돼 있더라도 이를 모두 모아놓으면 빅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어 제조업체 등의 영업상 비밀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김정중 부장판사)는 대한화장품협회와 화장품업체 18곳(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케이씨엘)이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결정 취소소송(2016구합81826)에서 "화장품별 원료·성분 데이터를 김모씨에게 공개하도록 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최근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공개를 청구한 정보는 약 18만여 품목에 달하는 화장품의 품목별 원료 등을 내용으로 하는 엑셀 파일 형태의 매우 방대한 양의 자료"라며 "이 정보는 과거의 정보까지 망라해 횡단면 정보(한 시점에서 여러 대상을 관찰한 데이터)와 종단면 정보(여러 대상을 시간에 따라 측정한 데이터)가 결합한 이른바 패널 데이터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각 회사가 화장품에 사용하는 원료나 그 원료를 배합하는 경향, 특정 원료의 대체 관계 등은 생산기술의 하나로서 각 회사가 상당한 노력과 자금을 투자해 얻은 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화장품별 원료 및 성분 데이터 정보는 법인 등의 경영상,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되면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정보가 공개되면) 시간에 따라 측정하는 시계열 분석을 통해 특정 화장품 제조판매업자의 원료 사용 추이를 파악할 수 있고, 특정 원료의 대체관계를 알 수도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해당 정보는 수많은 '전 성분 정보'를 데이터로 처리해 모아놓은 이른바 '빅데이터'로 다양한 활용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개별 화장품 포장에 기재·표시되는 것에 불과한 '전 성분 정보'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지니는 별개의 정보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지난해 9월 화장품 수출의 행정적 어려움을 해소하고 동남아시아 소비자들에게 한국 화장품의 안전성을 알리겠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화장품 원료 및 성분 데이터'에 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김씨가 공개를 요구한 정보는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되면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한다"며 거부했다. 이에 김씨는 이의신청을 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처 정보공개심의회는 "이들 정보는 이미 시중에 유통 중인 화장품에 기재돼 있는 '전 성분 정보'로 공개돼 있는 정보로서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정보공개를 의결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 같은 결정 내용을 한국화장품협회와 화장품 업체들에게 통보하자 협회와 업체들은 반발해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