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 등의 기록이 없더라도 과거사 희생자임을 증명하는 당시 이웃들의 진술 등에 신빙성이 있다면 과거사 희생자로 인정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한국전쟁 당시 토벌군에 희생된 경남 산청·거창 민간인 희생 사건의 피해자 조모(당시 3세)군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5다243309)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최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과거사위의 진상규명 결정과 조사보고서는 희생자와 유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에 유력한 증거자료가 되지만 처분 내용이 법률상 '사실의 추정'과 같은 효력을 갖거나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증명력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개별 당사자가 해당 사건의 희생자라는 점을 증거에 따라 확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원심이 과거사위의 결정을 재심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옳지만 재심사를 하더라도 조군이 산청·거창 민간인 희생 사건의 희생자임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어 "원심은 조군에 대해 출생신고나 사망신고가 된 자료가 없고 문중의 족보에도 기록이 없어 희생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출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이웃주민들의 진술을 살펴보면 한국전쟁이 끝난 후 조군의 가족들이 조군의 시신을 수습해 선산에 모셨다는 내용도 있어 조군이 산청·거창 민간인 희생 사건으로 사망했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전쟁 당시 경남 산청 지역에서 살던 조군 가족은 "국군이 마을을 수복하면 인민군 치하에 있던 사람들을 죽인다"는 말을 듣고 지리산으로 피란을 갔다. 숨어 지내던 조군 가족은 1951년 초겨울 무렵 토벌군에게 잡혔고 조군은 어머니와 함께 토벌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과거사위는 경남 거창·산청·함양·고성·사천·거제 지역 주민들이 좌익활동 혐의 등으로 국군과 경찰 등에 의해 적법절차 없이 희생된 사건을 조사한 끝에 2010년 6월 조군 등 105명을 경남 산청·거창 등 민간인 희생 사건 희생자로 인정했다. 이에 조군의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1심은 유족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원고패소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