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돼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았다면 국가를 상대로 별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2항은 신청인이 보상금 지급 결정에 동의한 경우, 민주화운동으로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해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한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화해가 성립하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어서 이후에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김우종 전 경희대 교수, 소설가 이호철씨, 고 장병희 국민대 교수의 유족 등 문인간첩단 사건 피해자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2012다204365)에서 22일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사람들이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기로 합의한 것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을 갖는다"며 "보상금을 받은 이후에 민주화운동 관련 소송의 재심절차에 의해 무죄판결이 확정됐다고 해도 국가를 상대로 다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상훈·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소영 대법관은 "재심 절차에 따라 무죄판결이 확정돼 명예가 회복됐는데도 (민주화운동 보상금 외에) 그에 따른 피해보상을 하지 않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김 전 교수 등은 1974년 1월 7일 문인 61명이 발표한 개헌 지지 성명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국군보안사령부에 의해 영장 없이 연행됐다. 이들은 불법 구금 상태에서 고문을 당해 간첩 혐의를 허위 자백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모두 징역 1년~1년6월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문인 간첩단 사건'으로 알려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5월 이 사건을 정부가 조작한 공안사건이라고 결정했다. 김 전 교수 등은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선고받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김 전 교수와 이씨에게 각 4억원, 정 교수의 유족에게 4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불복한 국가는 항소심에서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았기 때문에 배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은 "손실보전을 뜻하는 '보상'과 국가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배상'은 다르다"며 "국가는 김 전 교수에게 1억6600여만원, 이씨에게 2억원, 정 교수의 유족에게 6억4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