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이 신기술 인증제품을 구매해야 하는 법령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신기술 인증제품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지를 두고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고 있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산업기술혁신 촉진법과 시행령은 '공공기관은 구매하고자 하는 품목에 인증신제품이 있는 경우에는 해당 품목의 구매액 중 100분의 20 이상을 인증신제품으로 구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고법 민사24부(재판장 김상준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도로반사체 고정장치 제조사 ㈜길라씨엔아이가 국가와 경기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항소심(2012나101277)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공기관의 구매의무에 관한 규정은 공공기관에 공법상 구매의무를 부담시켰을 뿐, 신제품 인증을 받은 국민 개인으로 하여금 공공기관에 대해 구매의무 이행을 요청하거나 구매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고 해석할만한 근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법령의 취지가)산업기술혁신을 촉진해 산업경쟁력을 제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경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전체적이 공공 일반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을 뿐, 직접 국민 개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도로안전시설물 등을 제조하는 ㈜길라씨엔아이는 도로반사체 고정장치를 개발해 2003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신기술 인증제품으로 지정받았다. 회사는 2011년 경기도건설본부에 신제품을 건설공사에 반영하고 구매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하자 같은 해 4월 소송을 냈다.
반면 부산고법 창원원외재판부(재판장 진성철 부장판사)는 최근 알루미늄 펜스 제조사 ㈜스탈휀스개발이 경상북도와 포항시 등 6개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항소심(2011나3001)에서 "2억35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산업기술혁신 촉진법은 산업기술혁신을 통해 국민경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제조업자가 가지는 인증신제품 판매촉진이라는 개별적인 사적 이익도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다"며 "법령에 따라 구매액 중 20%를 인증신제품으로 구매해야 할 법령상 의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회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지방자치단체는 사업시행에 예산상 제약을 받는 데다가, 신제품을 구매하면서 경제성도 고려할 수밖에 없어 지자체의 책임을 20%로 한정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