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은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다만 법원은 군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로 유족이 입은 고통에 대한 위자료만 인정했다.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강민구 부장판사)는 22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항소심(2010나30166)에서 "유족에게 3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판결전문).
유족은 "사망 현장에 출혈 흔적과 사체의 파편이 없었다"며 허 일병이 총상을 입고 살해당하자, 군이 사건 은폐를 위해 시신을 다른 장소로 옮기고 자살한 것으로 위장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허 일병의 사체 주변에 출혈 양이 많지 않고 사체의 골편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흉부에 먼저 두 군데 총창을 입어 부검 당시 흉강 내에 상당량의 혈액이 고여 있어 두부의 출혈량이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사체 이동 시 나타날 수 있는 끌린 흔적이 없고 비교적 단정한 복장 상태로 발견된 점 등 허 일병이 첫 총상 후 이동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외부와 엄격히 격리된 군대 내 사고에 대해 군 수사기관의 실체적 진실 규명 의무는 일반 수사기관보다 더 높아 피해자의 유족들에게는 철저한 조사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며 "타살이 아닌지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음에도 군 수사기관이 이를 밝히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자살로 결론지어, 부실 수사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983년 입대해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다음 해 4월 2일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의 총상을 입고 사망한 채 발견됐다. 당시 육군은 허 일병의 "중대장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등 심한 강박감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의 선임 중사가 허 일병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우발적으로 허 일병을 쏴 살해하자 사건 은폐를 위해 허 일병을 옮겨 총상을 입히고 살해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같은 해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허 일병 사건은 자살로, 2004년 의문사위는 타살로 재발표했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4월 "11억5000만원을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1심은 허 일병이 타살됐다고 판단해 "유족에게 9억2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