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당한 신용카드의 비밀번호 유출경위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주장만으로는 본인의 무과실을 입증할 수 없으므로 카드사는 피해보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조모(33)씨는 지난 2005년10월 퇴근길에 친구 김모씨와 만나 10시가 다 될 때까지 술을 마시고 또다른 친구 손모씨의 집으로 가던 중 지갑을 도둑맞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몰랐던 조씨는 손씨 집에서 그대로 쓰러져 잤다. 조씨의 핸드폰에 신용카드 사용내역 SMS가 자꾸 들어오자, 친구 손씨는 자정이 넘어 또다른 친구로부터 알아낸 조씨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 카드거래를 정지시켰다. 그러나 그 사이 7회에 걸쳐 현금서비스로 200만원이 인출되고, K은행 장안동지점에서 8차례에 걸쳐 500여만원이 인출되는 등 모두 700여만원의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조씨는 K은행을 상대로 피해금액을 돌려달라는 강제집행신청을 냈고, 은행은 '비밀번호유출로 인한 부정사용이 있을 때 모든 책임은 고객이 진다'고 규정한 카드약관을 들어 "강제집행을 불허해 달라"며 청구이의소송을 냈다.
1심은 "피고가 범인의 사진을 보고도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고, 비밀번호도 군대식별번호로 지정해 지갑 내에 있는 어떤 정보로도 비밀번호를 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밀번호를 고의 또는 과실로 유출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은행책임을 60%로 보고 42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범인이 비밀번호를 단 1회의 오류도 없이 한번에 입력해 현금서비스로 돈을 인출했고, 피고가 만취상태에서 무의식중에 비밀번호를 알려줬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며 1심을 깨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K은행이 조씨를 상대로 낸 청구이의소송 상고심(☞2009다31970)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지난 15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회원약관규정에 따르면 회원은 신용카드의 이용·관리 및 비밀번호의 관리에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할 의무가 있다"며 "신용카드를 분실·도난당해 제3자가 부정사용한 경우 회원이 책임이 면하기 위해서는 회원에게 신용카드의 분실·도난 및 비밀번호 누설에 있어 아무런 과실이 없어야 하며 그 입증책임은 회원에게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조씨가 주장하는 사실관계라면 비밀번호가 누설된 경위가 밝혀지지 않은데 불과할 뿐 신용카드 이용·관리 및 비밀번호유출에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음이 증명됐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