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이 임직원에게 '신용'만을 믿고 대출한 경우, 그 돈이 일상의 가사에 사용됐더라도, 배우자에게 일상 가사의 대리를 이유로 대납 받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민사항소5부(재판장 이인복·李仁馥 부장판사)는 지난달 27일 (주)서울보증보험이 손모씨(35·여)를 상대로 "남편이 빌린 주택자금 2천5백여만원을 대신 갚으라"며 낸 구상금 청구소송(☞2000나68978)에서 1심 판결을 뒤엎고, "남편의 대출에 일상가사 대리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남편 노모씨가 91년 (주)국민생명보험에 재직할 당시 주택구입자금 명목으로 3천만원을 임직원에 대한 특별 대출 조건으로 빌렸고, 빌린 돈 중 2천5백여만원을 갚지 않아, 원고가 보증계약에 따라 대납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그러나 이 사건 대출이 금융기관이 자사 임직원에 대해 '신용'만을 믿고 부인인 손씨의 자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뤄진 것으로 '일상'의 가사에 관한 법률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원고나 국민생명이 추가 담보를 제공 받거나 보증인을 세울 것을 요구하지 않고, 오로지 노씨가 국민생명의 직원이라는 이유로 대출을 해 준 것은, 노씨 개인의 '신용'만을 기초로 노씨 한사람만을 상대로 거래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보증보험은 99년11월, 노씨가 국민생명으로부터 빌린 주택구입자금을 갚지 못해, 대신 갚았으나 노씨로부터 되돌려 받을 길이 없자, 부인인 손씨에게 "노씨가 빌린 돈은 주택 구입을 위해 사용된 만큼 부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냈었고, 1심 법원은 지난해 10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