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예금명의자의 소유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97년 금융실명법 시행 이후에도 출연자와 금융기관 사이에 예금명의인이 아닌 출연자에게 예금반환채권을 귀속시키기로 하는 명시적·묵시적 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출연자를 예금주로 인정하던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어서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지난 19일 이모(48·여)씨가 자신의 계좌가 개설된 J저축은행에 예금지급이 정지되는 사고가 발생하자 "예금의 보험금을 예금명의자인 나에게 달라"며 예금보험공사를 상대로 낸 예금반환 청구소송 상고심(☞2008다45828)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금융실명법에 따라 실명확인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을 체결하고 그 실명확인 사실이 예금계약서 등에 명확히 기재돼 있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그 예금계약서에 예금주로 기재된 예금명의자나 그를 대리한 행위자 및 금융기관의 의사는 예금명의자를 예금계약의 당사자로 보려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경험법칙에 합당하고, 예금계약의 당사자에 관한 법률관계를 명확히 할 수 있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본인인 예금명의자의 의사에 따라 예금명의자의 실명확인절차가 이뤄지고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해 예금계약서를 작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 등을 예금계약의 당사자라고 볼 수 있으려면, 금융기관과 출연자 등과 사이에서 실명확인절차를 거쳐 서면으로 이뤄진 예금명의자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하여 예금명의자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출연자 등과 예금계약을 체결해 출연자 등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돼야 한다"며 "이러한 의사의 합치는 금융실명법에 따라 실명확인절차를 거쳐 작성된 예금계약서 등의 증명력을 번복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명확한 증명력을 가진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에 의하여 매우 엄격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명시적 또는 묵시적 약정에 의하여서도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 등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이 귀속될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한 99다67031 등 대법원판결을 모두 변경했다.
이씨의 남편 김모씨는 지난 2006년 2월 이씨를 대리해 J상호저축은행에서 이씨 명의로 정기예금계좌를 개설하고 4,200만원을 예치했다. 같은 해 9월 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자 예금보험공사가 보험금지급공고를 했다. 이씨는 예보에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으나 실제 예금주가 이씨가 아니라 남편 김씨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소송을 내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