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운용조건 및 방법을 지정하는 '특정금전신탁'을 운용하는 은행이 고객과 상의 없이 편입자산을 운용, 손실을 냈더라도 신탁의 실질적인 목적이 '신탁편입 대상회사에 대한 고객회사의 여신 제공'이라면 은행의 책임은 제한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이진성 부장판사)는 교보생명이 우리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2003나47340)에서 지난달 27일 "우리은행은 교보생명이 입게된 손해 가운데 60%인 4억3천9백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가 원고로부터 신탁받은 편입자산 중 보증어음을 진로식품의 무보증 어음으로 교체할 당시 무보증 어음의 만기상환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며 "피고는 특정금전신탁계약상 신탁재산의 적절한 관리의무를 위반해 신탁재산을 감소하게 한 만큼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가 진로식품에 여신을 제공하기로 약속하고 진로식품의 회사채가 포함된 자금으로 피고와 특정금전신탁 계약을 체결한 것이 인정된다"며 "원고가 보험가입대가로 여신제공을 금지하는 보험법 관련 조항 때문에 피고를 통한 '우회대출'의 방법으로 신탁계약을 택했던 점 등을 감안할 때 피고의 책임 비율을 60%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
교보생명은 우리은행이 지난 96년부터 특정금전신탁계약에 따라 신탁재산을 운용하면서 진로식품이 경영상태의 악화로 정상적인 채무변제능력이 불가능함이 예상됨에도 신탁재산 중 금융기관이 보증해 회수가 확실한 보증어음을 처분하고 진로의 1백억원 무보증 어음으로 교체, 결국 29억1천여만원 상당의 손해를 입혔다며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