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에 대해 '정당한 이유없이' 해고를 한 사용자를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110조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재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全孝淑 재판관)는 부당해고 혐의로 기소된 공중전화기 판매업체 Y사 대표 조모씨가 "근로기준법 제110조의 '정당한 이유'의 뜻이 모호해 죄형법정주의 원칙 등에 위배된다"며 낸 위헌소원사건(2003헌바12)에서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부당해고로부터 근로자의 생존권을 보호할 것을 목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 특별히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110조에 대한 합헌성을 확인한 결정이어서 주목된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비록 법문상으로는 '정당한 이유'라는 일반 추상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동안 충분한 연구와 판례가 축적돼 일반인이라도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해고에 관해 자신의 행위를 경정해 나가기에 충분한 기준이 될 정도의 의미내용을 갖고 있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부당해고 여부를 둘러싼 분쟁이 빈발하고 있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부족해 일단 해고된 근로자는 재취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을 볼 때 부당해고를 근로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회적 해악으로서 처벌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는 현실적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이 사건 법률조항은 평등의 원칙, 비례의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權誠·金京一·李相京 재판관는 반대의견으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정당한 이유없는 해고행위 일반을 널리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잉된 형벌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노동법제상 부당해고의 구제를 위해 일반적인 민사소송과 노동위원회 구제절차도 갖고 있는데 나아가 형사처벌까지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어 대등관계가 유지되어야 할 노사관계에서 사용자를 일방적으로 과잉되게 처벌, 해고여부에 관한 사용자의 정당한 의사결정까지 위축시키고 해고를 면하고자 하는 근로자의 이익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것이되어 형평을 잃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權誠·李相京 재판관은 "이 사건 법률조항은 준법정신을 가진 사용자가 실제상황에서 해고행위를 할 경우 형사입건과 처벌을 각오하여야만 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행위자에게 공정한 사전 예고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해 법률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청구인 조씨는 지난 2001년7월 '유류비를 15만원 한도에서 지원하겠다'는 방침에 영업직 사원들이 항의하면서 면담을 요청하자 "집단적으로 근로제공을 거부해 회사의 정상적 운영을 저해했다"며 해고, 부당해고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 위헌제청을 신청했다가 기각되자 헌법소원을 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