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모 요양병원을 운영하던 배모씨는 근로자를 고용할 때마다 '식사비 후불 납부 동의 및 서약서'에 서명을 받았다. 점심 때마다 병원 구내식당에서 한 끼당 4000원짜리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지만 고용주인 배씨가 추후 식사비를 청구하면 그동안 무료로 제공받은 식사 비용을 모두 납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2013년 2월 이 병원에 경리로 취직한 A씨도 입사 때 이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당시 식대를 청구받은 직원이 아무도 없었고, 입사 선배들도 "형식적인 서약서일 뿐, 별 일 없으면 식대를 청구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A씨가 입사 1년만에 병원을 그만두고 임금 체불을 이유로 노동청에 진정을 넣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배씨는 식사비 서약서를 근거로 "그동안 병원 식당에서 먹은 식사 비용 84만여원을 달라"며 A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1·2심에서 패소했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이 식대청구소송(2015다60382)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재판부는 "식대 청구 여부를 전적으로 배씨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는 것은 배씨와 다른 의견을 가진 근로자들을 부당하게 압박할 우려가 있고, 경우에 따라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이어질 우려가 커 이 약정 자체를 무효로 봐야 한다고 판단한 원심은 옳다"고 밝혔다.
이어 "배씨는 입사하는 직원들로부터 식대 서약서에 서명·날인만 받아서 보관해 오다가, 임금체불 등으로 갈등이 있는 근로자에게만 식대를 청구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 외에는 실질적으로 식대를 내고 있는 직원이 없는 점에 비춰봤을 때 근로계약상 식대는 별도로 청구하지 않기로 하는 묵시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