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사유 없이 재산관계 명시기일에 출석하지 않아 구 민사소송법위반 혐의로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채무자들에게 법원은 면소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민사집행법이 개정된 이후 비슷한 사건들에 대해 선고를 보류해 놓았던 일선 법원에 사건 처리의 지침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형이 확정됐더라도 집행되지 않은 경우에는 형법 제1조 3항에 따라 집행이 면제된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배기원·裵淇源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명시기일에 출석하지 않아 민사소송법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51)에 대한 상고심(☞2002도2086) 선고공판에서 이같이 판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지난 7월부터 시행된 민사집행법 부칙 등 어디에도 법 시행전의 행위에 대한 벌칙의 적용에 있어서는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는 명시적 규정을 두지 아니한 이상 이와 같은 법률의 변경은 형사소송법 제326조 4호의 범죄후의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됐을 때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구민소법 규정을 적용해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판시 범죄사실에 대하여는 면소의 판결이 선고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구 민사소송법 제524조의8 1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명시기일에 출석하지 않은 자에 대해 3년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으나, 새 민사집행법이 특수한 처벌인 감치규정을 신설해 법원의 결정으로 20일 이내의 감치에 처하도록 한 것은 민사채무불이행에 대한 간접강제수단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재산명시신청에 성실히 응하지 않은 채무자에 대해 바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박씨는 지난 2000년 8월 삼성카드(주)와의 신용카드이용대금청구소송에서 패소한 뒤 법원으로부터 재산관계명시기일소환장을 받고도 정당한 사유없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기소돼 1·2심에서는 벌금형을 선고받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