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파기돼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부(재판장 임병렬 부장판사)는 최근 S통신사 고객센터에서 일하던 조모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2013나8125)에서 720만원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취소하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씨가 고객 상담 업무를 하는 '감정노동자'로서 평소 고객을 응대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음은 경험칙상 인정될 수 있으나 그로 인해 우울증까지 발병한 상태였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사용자에게 불법행위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근로자에게 우울증이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피를 위한 별다른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고의 또는 과실이 있음이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고객응대가 주업무인 회사 측으로서는 성과급 제도를 운영함에 있어서 고객만족도를 반영하는 것이 불가피한 점 △사측이 고객의 클레임이 있더라도 해당 상담직원에게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인 사과요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점 △사측이 매년 1회 스트레스 관리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는 점 등을 들며 "사측이 보호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원고 조씨는 지난해 3월 센터를 방문한 고객 A씨를 상담한 후 전화로 폭언을 들었지만 회사 측은 오히려 "고객에게 사과하라"는 명령과 함께 조씨를 징계했다. 조씨는 '정신적 압박의 고통과 충격으로 퇴직한다'며 사직서를 냈고 퇴직 후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급기야 자살시도까지 하게 된 조씨는 회사를 상대로 근로계약상 보호의무위반을 주장하며 3000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고객의 위신을 높이는 데 지나치게 집중해 사실관계를 따져보지도 않은 채 근로자에게 무조건적인 사과를 지시함으로써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어서는 안 될 의무가 있는데도 회사가 보호의무를 위반했다"며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감정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나 폭언에 대해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하고 대처 지침도 제공해야 한다"며 감정노동자의 개념을 처음으로 판결에 명기했다.
항소심에서 회사 측을 대리한 김소영(31·사법연수원 40기) 광장 변호사는 "원고가 고객의 불만 제기가 있었던 그 다음날 퇴사를 하고, 바로 그 다음날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 자살을 시도하는 등 그 구체적인 사정이 특수해 사실관계에 관한 다툼이 많았지만 항소심에서는 채무불이행책임 성립 요소들이 인정되지 않았다"며 "향후 감정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보호의무 및 배려의무가 문제되는 다른 사건에서는 사용자의 보호의무 및 배려의무가 어느 범위까지 인정될 것인지 여부에 대한 이론적 다툼이 치열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