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부담하기로 합의한 약정금을 실제로는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믿고서 합의서에 서명했고, 합의한 회사도 이를 알고 있었다면 약정금은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부(재판장 한숙희 부장판사)는 한국전력공사가 전 직원 조모씨를 상대로 "공사비 초과 지급 책임에 대한 약정금 1456만원을 지급하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2014나21266)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취소하고 16일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씨는 공사비가 초과 지급된 업무의 실제 담당자가 아니었는데도 감사 담당자로부터 '후배들을 위해 배상금 일부를 분담하겠다고 진술하라'는 권유를 받았고, 실제 담당자 김모씨가 조씨와 감사 담당자에게 자신이 상환약정금 전부를 부담하겠다고 해 한전이 이를 믿고 합의서에 서명했기 때문에 조씨에겐 약정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조씨는 실제 약정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믿고서 감사에 필요한 서류작성을 위해 합의서에 서명했을 뿐이고 한전도 감사 담당자를 통해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씨의 상환약정은 민법 제107조1항 단서에 의해 무효다"라고 설명했다. 민법 제107조는 진의 아닌 의사표시를 규정한 조항으로, 1항 단서는 '상대방이 의사표시자의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 해당 의사표시를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전은 한 건설회사에 도급을 주고 맡긴 송유관 교체 공사에서 공사비 4856만원이 초과 지급됐다는 사실을 2011년 10월 정기감사에서 밝혀내고 조씨 등 3명을 책임자로 지목했다. 이에 따라 조씨는 2012년 2월 해당 비용의 30%인 1456만원은 자신이 부담하고 다른 두 부하 직원과 함께 초과 지급된 공사비 모두를 회사에 돌려주기로 하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한전은 조씨가 부담하기로 했던 1456만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고, 1심은 한전측의 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