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 근로자의 복지를 위해 설립된 사내근로복지기금은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가 아닌 일반투자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일반투자자는 전문투자자에 비해 더 두터운 보호를 받는데, 이번 대법원 판단에 따라 이 기금을 운용하다 원금에 손해를 입힌 자산운용사들이 거액의 배상책임을 지게 됐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한국도로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충정)이 유진자산운용과 미래에셋증권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청구소송(2018다218335)에서 "유진자산과 미래에셋은 39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한국도로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은 2014년 12월 유진자산운용과 미래에셋증권이 운용한 사모펀드인 TP펀드의 손실로 피해를 입었다며 두 자산운용사를 상대로 56억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자본시장법상 일반투자자와 전문투자자 중 어떤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자산운용사 측은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0조 3항 12호에서 전문투자자로 규정하고 있는 '법률에 따라 설립된 기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시장법은 전문투자자에 대해서는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등 일반투자자에게 적용되는 영업행위 규제의 대부분을 적용하고 있지 않다. 보호가 필요한 일반투자자에게 한정된 규제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규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따라서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전문투자자에 해당한다면 자산운용사 측의 배상책임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1,2심은 일반투자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2심은 "한국도로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의 주된 목적은 공사 근로자에 대한 복지후생 확충 및 내실화로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에 있고, 주된 활동은 근로자 재산형성을 위한 지원, 근로자의 생활원조 등 복지사업의 지원 규모와 대상을 결정하는 것"이라며 "금융상품 운용에 따른 수익 창출이 주된 목적인 법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개인투자자가 아닌 기관투자자라고 해 필연적으로 전문투자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은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가 아니라 일반투자자로 봄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39억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근로복지기본법 제50조 등에 따라 한국도로공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을 위해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아 설립된 법인인 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0조 3항 12호에서 전문투자자로 규정하고 있는 '법률에 따라 설립된 기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래에셋증권이 투자자 보호의무를 위반해 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에 투자 권유를 함으로써 투자원금 일부를 회수하지 못한 손해를 입게 했으므로 유진자산운용과 연대해 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다만 미래에셋증권의 책임도 유진자산운용과 동일하게 70%로 제한한 것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충정 금융·자본시장팀의 조치형(62·사법연수원 14기), 임치영(52·31기) 변호사는 “근로자의 생활 안정을 위해 마련된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일반투자자로 법적 인정을 받게 되었고, 투자자 보호의무를 적용 받는 선례를 남기게 된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상품이 점차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며 금융 소비자의 권익이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며 “금융당국 또한 이에 대응해 규제 체계를 마련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이 금융업권 내 판매 질서를 확립해 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