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지난해 무렵까지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한국 정보를 수집해 온 사실이 CIA 소속기관 직원들의 해고무효 소송 과정에서 뒤늦게 확인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재판장 마은혁 부장판사)는 A씨 등 3명이 미합중국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2020가합3630)에서 최근 "A씨 등의 이 사건 소를 모두 각하한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각하란 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그 주장의 당부를 판단하지 않고 본안심리 없이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대한민국 국적인 A씨 등은 각각 2005년부터 2009년 사이에 주한미국대사관에 입사해 근무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소속 기관인 '오픈소스 엔터프라이즈'의 서울사무국에서 일했다. 이 기관은 CIA가 담당하는 국외 정보수집과 국외 매체 등에서 공적으로 확인되거나 이미 출간돼 있는 정보를 수집·주시·번역하는 업무 등을 수행했는데, 당시 A씨 등은 각각 재무·회계·인사, 전산운영, 정보 평가·수집 등을 담당했다.
그런데 미국은 2019년 11월 A씨 등에게 "기관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국외에 소재한 사무국을 폐쇄한다"는 취지의 통보를 한 뒤 2020년 2월과 3월 사이에 A씨 등 3명을 모두 해고했다. 특히 CIA는 2020년 6월 미디어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고 미국 정부가 사무실의 폐쇄를 요구하자 현지 시설 및 인력을 이용하는 것이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해 국외 모든 사무국들을 폐쇄하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A씨 등은 2020년 8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해고했다"면서 "이 해고는 근로기준법 제24조에 규정한 경영상 해고의 요건을 결여한 것으로서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 해고는 미국의 주권적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주권면제의 대상이 된다"며 각하했다.
재판부는 "원고들 중 한 명은 정보수집 업무를 직접 수행했고, CIA와 오픈소스 엔터프라이즈가 담당하는 업무의 내용, 설립 목적 등을 고려할 때 나머지 원고들이 담당업무를 수행하면서 처리한 정보들도 고도의 기밀에 해당한다고 평가될 수 있다"며 "원고들은 '오픈소스 엔터프라이즈' 안에서 이뤄지는 국외 정보수집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에 종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권국가가 외국에 정보기관을 설치할 것인지 여부, 그 안에서 국외 근로자를 고용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고도의 공권적 행위"라며 "피고인 미국이 A씨 등을 해고한 것도 고도의 공권적 결정에 따른 주권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 국가가 다른 주권국가의 공권적 결정에 따라 해고된 근로자를 복직시킬 것을 강요하는 것은 공권적 행위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