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해외에서 국내 사용자의 지휘를 받고 국내와 동일한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다가 다쳤다면 해외파견이 아니라 해외출장 중 사고로 봐야 하므로 해외근무를 떠나면서 별도의 산업재해보험 가입 신청을 하지 않았더라도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단독 문준섭 판사는 최근 박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최초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2014구단1287)에서 "요양불승인 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경기 김포시의 중소 설비업체 A사에서 근무하던 박씨는 지난해 7월 멕시코에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덕트(공기 배관) 설치 작업의 현장관리를 하던 중 덕트가 바닥에 떨어져 발목 등에 골절을 입었다. 박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지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 따른 해외근로자의 보험가입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산재보험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이 법을 적용하도록 하되 위험률, 규모 및 장소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국외에서 행해지는 사업을 포함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정을 두지 않고, 법 제122조는 해외파견자에 대해서는 근로복지공단에 보험가입 신청을 해 승인을 얻은 경우에만 산재보험을 적용하도록 했다.
문 판사는 판결문에서 "산재보험법에서 국외 사업에 대한 특례를 정하고 있고, 해외파견자에 대해서는 근로복지공단에 보험가입 신청을 해 승인을 얻은 경우에만 비로소 법을 적용하도록 한 취지에 비춰보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내에서 행해지는 사업만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근무의 실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봤을 때 단순히 근로의 장소가 국외에 있는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국내 사업에 소속해 사용자의 지휘에 따라 근무하는 해외출장에 해당한다면 국내 사업주와의 사이에서 성립한 산재보험관계가 여전히 유지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문 판사는 △박씨가 A사 대표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은 점 △해외 업무 수행 중 A사로부터 급여를 받으면서 해외근무로 인한 추가수당 이외에는 국내 사업장과 별도의 임금체계에 따른 급여를 지급받지 않은 점 △국내 복귀 이후 A사에서 계속 근무한 점 △국내에서 제작된 덕트 등을 해외에서 조립·설치하는 과정 상에서 조립·설치 작업 부분만을 따로 떼어 국내사업과 구분되는 별개의 해외사업으로 인정할 수 없는 점 등을 들며 "박씨는 산재보험법이 적용되는 A사의 국내사업에 소속돼 사용자의 지휘에 따라 근무했고, 사고 발생 당시 근로의 장소가 국외에 있었을 뿐으므로 산재보험법이 당연히 적용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