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더라도 비자금 조성행위 자체만으로는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수원지법 형사12부(재판장 위현석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거래 대금을 부풀린 뒤 차액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횡령)로 기소된 A주식회사 대표이사 박모(55)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2011고합22).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개인적인 용도로 비자금을 착복할 목적이 입증되지 않는 한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해서 곧바로 그 비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추단할 수는 없다"며 "박씨가 차명계좌의 비자금을 인출·사용했다고 하기 위해선 적어도 비자금이 조성된 후의 차액이 얼마인지 여부가 밝혀지거나 그밖의 다른 증거로써 사용 사실이 증명돼야 하는데 이를 인정할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A주식회사의 재무제표 중 손익계산서의 '경비'항목에는 '격려금', '경조사비용', '휴가비' 등의 항목이 기재돼 있지 않아 박씨가 비자금을 조성해 임직원 등에게 격려금 등을 지급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할 때 착복하거나 사용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1994년부터 A주식회사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2006년 12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직원 명의의 차명계좌에 13억7000여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관리해왔다. 박씨는 이 돈이 공사 현장 격려금, 휴가비, 특별격려금 등으로 사용됐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한편 대법원은 2010년 1월 법인의 돈을 빼돌려 조성한 비자금을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했더라도 횡령죄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2008도11967·법률신문 2010년 1월21일자 5면 참조). 이에 대해 이현복 수원지법 공보판사는 "대법원 사건의 경우 개인용도로 사용하려고 했다는 비자금 조성 목적이 확인돼 유죄판결이 나왔던 것이지, 이번 판결이 대법원 판결에 어긋나는 판결이라고 볼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