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비례대표 당내경선에서 대리투표를 한 행위는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국회의원 비례대표 당내 경선에서도 헌법에 규정된 '직접투표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해 이 사건을 둘러싼 법리논쟁을 끝냈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28일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당내경선 과정에서 대리투표를 해 선거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백모씨와 이모씨에 대한 상고심(2013도5117)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헌법은 국회의원 선거를 포함해 대의민주주의 선거에 있어 보통·직접·평등·비밀선거가 원칙임을 천명하고 있다"며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을 확정하기 위한 당내 경선은 정당의 대표자나 대의원을 선출하는 절차와 달리 국회의원 당선으로 연결될 수 있는 절차로, 직접투표의 원칙은 경선절차의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된다"고 밝혔다.
또 "통진당 경선에서 전자투표를 하려면 시스템에 접속하고 후보자를 선택해서 클릭하는 과정에서 당원명부에 등록된 휴대전화로 전송받은 고유인증번호를 2차례 입력해야 하는데, 이는 한 사람이 여러 번 투표권을 행사하거나 대리투표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실제로 업무가 방해되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업무가 방해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발생했다면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며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정보를 입력하는 행위가 사람의 오인, 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킬 목적으로 행해졌다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해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서 '위계'가 없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진보당 조직국장을 맡았던 백씨와 이씨는 진보당 경선 과정에서 각각 35명과 10명의 당원 휴대전화로 전송된 인증번호를 받아 당시 비례대표 후보인 오옥만씨에게 대리 투표했다가 기소됐다. 1·2심은 이들에게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진보당 경선 부정선거와 관련해서 기소된 인원은 모두 510명으로 15명은 법원 판결이 확정됐고 495명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최근 상고심 판결이 확정된 이는 1명으로 양형부당을 상고이유로 내세웠다가 기각됐다. 따라서 대리투표가 선거 원칙을 위반해 진보당 당내 경선 관련 업무를 방해했는지에 대한 대법원의 본안 판단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1심이 진행 중인 사람이 439명, 2심 53명으로 서울·광주·대구지법 등 전국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대부분 유죄를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