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수사중인 사건이더라도 언론보도가 공익에 부합한다면 범죄 피의자의 실명공개는 정당하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실명공개의 전제조건으로 △보도목적의 공익성과 보도내용의 공공성을 갖춰야 하고 △보도에 앞서 범죄사실의 진실성을 뒷받침할 충분한 취재가 이뤄져야 하며 △보도의 내용 및 표현방법이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한다는 등을 제시했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H상조 전 이사장 이모(58)씨가 MBC와 PD수첩 담당피디인 김모(49)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2008다71)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10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죄사실의 보도와 함께 피의자의 실명을 공개하기 위해서는 피의자의 실명을 보도함으로써 얻어지는 공공의 이익과 피의자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이 유지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을 비교형량한 후 전자의 이익이 후자의 이익보다 더 우월하다고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PD수첩의 방영분은 사회적 약자인 한센병 환자들의 폐쇄적인 정착촌에서 사금고운영과 관련해 발생한 사회병리적 문제점과 피해의 심각성을 밝히고 원고를 비롯한 임직원들의 범죄혐의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것”이라며 “사회겙姸쫨문화적 측면에서 공공에게 중요성을 가지거나 공공의 이익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그 사태에 관해 최고 관리·감독자로서의 책임을 지고 있고, 이미 수사기관에 구속됐던 전임 이사장인 원고에 대해 실명을 보도함으로써 얻어지는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과 원고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이 유지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을 비교형량할 때 전자의 이익이 후자의 이익보다 우월하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PD수첩은 지난 2001년7월 한센병 환자와 그 가족들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만든 H상조회가 사실상 수억원의 자금횡령창구로 사용됐고,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횡령 관련자들이 음독자살하는 등 일련의 사태를 ‘소록도의 외침,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제목으로 두 차례 방영했다.
이 과정에서 담당피디인 김씨는 전임 이사장이었던 원고 이씨의 실명을 그대로 내보냈다. 이씨는 검찰에서 수사중이고 유죄판결이 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실명이 보도돼 명예가 훼손됐다며 MBC와 담당피디에게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