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한 중국의 유명 설치미술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아이 웨이웨이(Ai Weiwei·58)의 35억원짜리 설치미술작품이 광주비엔날레 전시를 위해 옮겨지다가 훼손된 사실이 확인돼 이 작품을 소유한 스위스 화랑과 전시를 주관한 광주비엔날레간에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이 벌어졌다. 법원은 "한국으로 운송되기 전 작품의 상태가 온전했다는 것을 증명할 자료가 없다"며 광주비엔날레 측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민사33부(재판장 이경춘 부장판사)는 13일 스위스 화랑인 마일러 쿤스트㈜가 "작품을 훼손한 책임을 지고 7억여원을 손해배상하라"며 광주비엔날레와 국내 미술품 관리 업체 A사 등 3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2014나18867)에서 1심과 같이 원고패소 판결했다.
광주 비엔날레는 2011년 9월부터 한달여간 열리는 전시 행사를 위해 국내 업체인 A사와 작품의 대여·운송·관리업무 용역계약을 맺었다. A사는 이후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화랑과 중국의 유명 설치미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필드(field·사진)'를 6개월간 대여하기로 계약했다. 대형 파이프구조물(7.4×7.4×1.15m)인 이 작품의 시가는 35억원에 달한다. 도자기 재질의 파이프로 만든 정육면체 구조물 49개를 하나로 연결한 형태다. 이 작품은 2010년 6월 스위스에서 열린 한 행사에 전시된 이후 해외 미술품 보관·운송 전문회사인 B사가 보관해 오던 중이었다. 화랑 측은 자신들과 오랜 거래를 해온 B사에게 운송 전 작품 해체 작업과 스위스에서부터 한국 부산항까지의 운송을 맡기겠다고 했다. A사는 화랑 측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부산항에서 작품을 건네받아 광주 비엔날레 행사장까지만 운송을 맡았다. 하지만 행사장에서 운송상자를 개봉한 양측 관계자들은 작품을 나눠 담은 총 16개 상자 중 13개 상자에서 작품 일부가 조각나거나 균열이 가 있는 것을 발견됐다. 양측은 작가인 아이 웨이웨이와 협의 끝에 전시를 위해 일시적으로 작품을 복원했다. 화랑 측은 2013년 1월 "피고 측이 작품을 운송할 때 주의를 기울였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작품을 다시 제작하는데 필요한 7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며 A사와 광주 비엔날레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화랑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작품 대여계약에 정해진 대로 운송 전 상태를 증명하기 위한 상태보고서만 정확히 작성했더라면, 작품이 손상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다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작품의 운송 전 상태를 증명하지 못하는 원고가 피고에게 손상책임을 돌리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작품이 한국에 운송되기 전 B사가 한차례 운송을 하고 보관한 적이 있는데 당시 운송 이후 상태가 온전했다는 점을 증명할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며 "이 작품이 고가이기 때문에, 보관 책임을 지고 있는 B사 입장에선 이전에 작품이 손상됐을 경우 그 사실을 숨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1·2심에서 A사를 대리한 구영채(35·사법연수원 42기) 태승 변호사는 "외국에서 고가의 작품을 발송하면서 온전한 작품을 보냈다는 점을 입증할 책임은 스위스 갤러리 측에 있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주장했다"며 "원고 측에서 발송 전 작품의 상태보고서를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그려놓았던 점 등 입증이 미흡한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