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주식을 상속받거나 이를 매도해 수익을 올린 뒤 이같은 사실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상속세나 양도소득세를 제때 납부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곧바로 조세포탈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주식매도 차익이나 상속 사실을 단순히 신고하지 않은 소극적 행위에 머물렀다면 이를 사기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 조세를 포탈한 경우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12일 금융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채 직원 등의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차명주식 19만여주를 사고 팔아 32억여원의 시세차익을 거두고도 양도소득세를 제때 납부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에 대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고 양도소득세 등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해 벌금 1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2016도1403).
홍 회장은 부친인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던 회사 주식을 상속받고도 이같은 사실을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상속세 41억원을 포탈한 혐의 등으로 2014년 1월 불구속 기소됐다. 홍 회장은 또 이렇게 상속받은 차명주식을 금융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보유하면서 회사 직원과 거채처 사장 등의 명의를 빌려 개설한 증권위탁계좌로 이들 주식을 거래해 32억원 상당의 양도차익을 올리고도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양도소득세 6억5000여만원을 포탈한 혐의도 받았다. 홍 회장은 이외에도 아버지인 홍 명예회장 생전에 자기앞수표로 52억원을 증여받아 그림 등을 사들이고도 다른 사람이 산 것처럼 회계처리해 증여세 26억원을 포탈한 혐의도 받았다. 홍 회장은 문제가 불거지자 상속세 등을 납부했다.
1심은 "홍 회장이 차명주식을 신고하지 않고 보유하고, 물려받은 재산의 세금을 포탈하기 위해 미술품 거래를 하는 등 치밀한 방법으로 증여세와 양도소득세 등을 내지 않아 조세정의를 훼손했다"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그리고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홍 회장의 조세포탈 관련 혐의를 전부 무죄로 판단하고, 차명주식을 신고하지 않은 채 보유한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벌금 1억원만 선고했다.
2심은 "홍 명예회장이 아들인 홍 회장에게 자기앞수표를 증여한 것이 인정돼야 증여세 포탈도 인정될 수 있는데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또 "홍 회장이 상속세와 양도소득세도 제때 납부하지 않았으나, 단순히 신고하지 않은 소극적 행위를 넘어 사기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 조세를 포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원심이) 논리와 경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조세포탈죄에서의 '사기 그 밖의 부정한 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