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경일 재판관)는 27일 산업은행에 압력을 행사해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대출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형법 제123조의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라는 부분은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며 낸 위헌소원(2004헌바46)에서 재판관 8:1의 의견으로 합헌결정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과 연혁, 관련조항의 규정 및 법원의 확립된 해석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사건 법률조항이 의미하는 '직권'이나 '의무'의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 법률조항이 금지하고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권성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공무원의 직권은 내용과 범위가 언제나 법령의 규정을 통해 객관적으로 명확히 확인되는 것으로는 볼 수 없어 이 사건 법률조항의 적용범위가 사실상 무한정 넓어진다"며 "이런 모호성과 광범성은 수사기관이 어떤 행위가 이사건 법률조항에 해당하는지를 일관성있게 판단하기 어렵게 해 자의적인 해석과 적용의 여지를 남긴다"고 밝혔다.
권 재판관은 이어 "이런 결과로 정권교체의 경우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공직자들을 처벌하거나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에 이용될 위험성도 있다"며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해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