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유공자에게 훈장 등 서훈(敍勳)을 수여했다가 취소한 경우 유공자나 유족이 그 취소처분에 불복하려면 국가보훈처장이 아닌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특별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지난달 26일 고 장지연 선생의 유족이 국가보훈처장을 상대로 낸 독립유공자 서훈 취소결정 무효소송 상고심(2013두2518)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헌법상 영전의 수여는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이고, 서훈취소 통보서에 처분명의인이 대통령으로 명시돼 있지 않았더라도 그 기재의 전반적인 취지, 헌법상 서훈의 수여·취소 권한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 등에 기초해 봤을 때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거쳐 서훈을 취소했음을 대외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국가보훈처가 한 서훈취소 통보는 대통령의 서훈취소결정이 있었음을 알리는 것에 불과하고, 국가보훈처 명의로 서훈취소 처분을 했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유족들은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서훈취소 통지행위 자체의 취소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통지의 내용인 고인에 대한 서훈취소결정 자체의 취소를 구하고 있다"며 "결국 대통령이 아니라 처분이 있음을 알린 기관에 불과한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낸 소송은 피고를 잘못 지정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1·2심은 "헌법 제80조는 대통령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훈장 기타 영전을 수여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구 상훈법 제7조도 서훈대상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서훈의 취소권자는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전제했다. 다만 "서훈취소의 근거법인 상훈법이나 시행령은 대통령이 서훈취소에 관한 권한을 국가보훈처에 위임하고 있지 않으므로 보훈처장이 한 서훈취소 통지는 권한 없는 기관에 의한 행정처분으로 하자가 중대 명백해 당연무효"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장 선생은 1905년 일본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자신이 주필이던 황성신문에 사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싣는 등 언론인으로서 애국계몽운동을 펼친 공적을 인정받아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미화·장려하는 글을 다수 게재하는 등 친일행적이 확인돼 지난해 서훈을 취소당했다. 이에 유족들은 서훈취소는 무효라며 2011년 5월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