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면서 범죄혐의사실과 관련없는 전자정보까지 압수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결정이 나왔다. 이 결정은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이 적법성을 갖추기 위해 갖춰야 하는 요건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어서 앞으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관행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정진후(54) 전 전교조위원장이 "2009년 검찰이 전교조사무실에서 한 압수·수색집행이 위법하다"며 낸 준항고기각결정에 대한 재항고(☞2009모1190)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이번 결정을 통해 피의자의 혐의사실과 무관한 부분까지도 압수·수색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개인의 사생활 비밀 내지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커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은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과 관련된 부분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수사기관이 사무실에서 파일을 복사할 때는 당사자측의 동의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파일의 검색 등 작업을 통해 대상을 범죄혐의와 관련있는 부분에 한정하고 나머지는 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므로 영장의 명시적 근거가 없음에도 수사기관이 임의로 정한 시점 이후의 접근파일 일체의 파일을 복사한 영장집행은 원칙적으로 압수·수색영장이 허용한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위법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당사자측의 합의하에 집행이 이뤄졌고 수사기관이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의 일시로부터 소급해 일정 시점 이후의 파일들만 복사한 것은 나름대로 혐의사실과 관련있는 부분으로 대상을 제한하려고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이고 당사자측도 조치의 적합성에 대해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봄이 상당해 압수·수색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수사기관의 추가적인 조치가 없었더라도 영장집행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교조는 2009년6월께 미디어법 입법중단과 한반도 대운하 추진의혹해소 등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같은달 서울중앙지검에 국가공무원법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이후 검찰은 법원에 전교조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해 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전교조 본부사무실에 영장을 집행했다.
그러나 검찰은 당시 사무실에 설치된 50여대 중 대부분의 컴퓨터에 하드디스크가 제거돼 있고 컴퓨터와 서버의 전원공급이 차단돼 있는 등 컴퓨터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게 되자 데스크탑 컴퓨터 3대와 서버 컴퓨터 10대를 압수했다. 전교조는 "검찰이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서버 등을 경찰서로 가져가 복사한 것은 영장에 적시된 압수·수색방법에서 벗어나 위법하다"며 준항고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