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족 이해승이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은 것은 친일행위에 해당하고, 그의 재산도 친일재산에 해당해 환수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특별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9일 이해승의 손자 이모(77)씨가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자 지정처분 취소소송(2014두3235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이씨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재산 확인결정 처분 취소소송(2014두3228)도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5대손인 이해승은 1910년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와 함께 현재 가치로 수십억원에 달하는 은사금 16만8000원을 받았다. 이후에도 친일단체인 삼십본산연합사무소와 불교옹호회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꾸준히 친일행각을 벌였다. 2007년 이해승을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이 규정한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로 보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했다. 이어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도 2009년 이해승이 1913년과 1917년 취득한 서울 은평구 일대 토지를 친일재산이라고 보고 국고환수를 결정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친일재산환수법)'은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에 따라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것으로 인정된 사람의 재산을 환수하도록 한다. 이해승의 재산을 상속받은 이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1심은 이해승의 여러 친일행각을 친일행위로 인정하면서도 작위를 받은 행위는 "한일합병의 공으로 받은 작위가 아니다"며 친일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산환수 재판에서도 재산을 환수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이후 국회는 2011년 한일합병 공로와 상관없이 일제로부터 작위만 받은 경우에도 친일행위로 인정하고 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개정법 부칙에서 개정 내용을 소급적용하도록 하면서 이씨는 다시 재산이 환수될 처지에 놓였다. 이씨는 "개정법을 소급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지만 헌법재판소는 2013년 8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2심은 이해승이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행위는 친일행위에 해당하고, 그의 재산도 환수 대상이 맞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결론도 2심과 같았다.
대법원은 "개정법을 이 사건에 적용하는 것은 구법에 의할 경우 종전 판결에 따라 이해승이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는 원고의 신뢰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나, 개정법은 개정 이전에 비해 '한일합병의 공으로'라는 부분을 삭제하는 정도여서 종전 결정시 이루어진 조사 내용만으로도 개정규정에 따른 요건 충족 여부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구법 적용에 대한 원고의 신뢰가 확고한 것이라거나 보호가치가 크다고 할 수 없는 반면 개정법 규정을 적용함으로써 달성되는 공익은 매우 중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헌재도 '한일합병의 공으로' 부분을 삭제한 개정법 관련 규정이 소급입법금지원칙이나 신뢰보호원칙, 과잉금지원칙 등에 위배되지 않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회가 반민족규명법과 친일재산귀속법을 개정하여 '한일합병의 공으로' 부분을 삭제하고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면서 경과규정을 두어 구법에 따라 이루어진 결정에 대해서도 개정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소급입법금지원칙이나 신뢰보호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함으로써 현재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에 개정법을 적용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