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장관이 의료계 집단폐업사태 중 '의료보험진료수가및약제비산정기준중개정기준'을 고시한 것은 위헌이 아니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韓大鉉 재판관)는 14일 박모씨가 "9월1일 보건복지부장관의 일방적인 요양급여비용 인상으로 재산권이 침해됐다"며 낸 헌법소원사건에서 재판관 5명은 위헌, 4명은 합헌의견을 냄으로써 위헌결정을 위한 심판정족수(6명) 미달을 이유로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했다.(2000헌마659)
이 사건의 쟁점은 7월1일부터 시행된 국민건강보험법 부칙 제11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부칙 제11조는 '이 법 시행당시 종전의 의료보험법 및 국민의료보험법의 규정에 의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 요양급여비용의 산정기준은 이 법 시행일부터 6월까지는 이 법 제42조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공단의 이사장과 의약계를 대표하는 자와의 계약으로 정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국민건강보험법이 시행된 이후부터 의료보험수가를 인상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의약계 대표간 계약이 있어야 하고 이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보충적으로 보건복지부장관이 고시하도록 돼 있는데 7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6개월동안은 유예기간을 둔 것이다.
이영모(李永模) 재판관 등 재판관 5명은 위헌의견을 통해 "부칙 제11조는 달라진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 결정체계 하에서 단지 산정기준의 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폐지된 의료보험법 등에 근거한 산정기준을 6개월동안 차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국민건강보험법이 시행된 이후에 보건복지부장관이 종전 의료보험법에 따라 요양급여비용 산정기준을 개정할 권한을 주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국민건강보험법이 시행되기 전인 6월26일 보건복지부장관이 고시한 요양급여비용산정기준을 7월1일 이후에도 적용하는 것은 옳지만, 보건복지부장관이 9월1일자로 새로운 산정기준을 고시한 것은 법률의 위임에 근거하지 않은 것으로서 위헌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합헌의견을 낸 윤영철(尹永哲) 소장 등 재판관 4명은 "부칙 제11조를 7월1일 이후부터 보건복지부장관은 새로운 고시는 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요양급여비용을 인상해야할 급박한 사정이 생긴 경우에도 이를 개정할 수 없는 등 경직되고 불합리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며 "종전의 의료보험법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이 필요에 따라 요양급여비용의 산정기준을 정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 관계자는 "의료수가가 인상된 9월부터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의료보험혜택을 받은 건수는 2억건에 달한다"며 "사실상 9월1일자 고시가 합헌 결정을 받음으로써 2억건에 달하는 요양급여비용을 다시 계산해 보험가입자에게 되돌려 줘야하는 사태는 막았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약계 그리고 정부가 지난달 21일 극적으로 약사법 개정안에 합의, 그간의 의약분업 시행으로 야기된 분쟁이 해결 기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5대4로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한 것은 새로운 분쟁의 불씨를 만들지 않기 위해 재판관들의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