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시험 성적 공개를 금지한 변호사시험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법조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법무부는 당장 내년부터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로펌 등의 변호사 채용 문화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육과정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와 법학계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일부 로스쿨 교수와 학생들은 변호사시험 집중으로 인한 '로스쿨 교육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로 공정성 논란 해소"= 헌재는 로스쿨 재학생과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를 금지한 변호사시험법 제18조1항이 로스쿨생 등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사건(2011헌마769 등)에서 25일 재판관 2(합헌):7(위헌)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변호사시험 성적 비공개는 대학의 서열화를 부추기고, 변호사시험 응시자들의 알 권리를 제한해 위헌"이라고 밝혔다. 이어 "성적을 공개하지 않으면 법조인 지망생들에게 자신이 관심 있는 교육과정을 보유한 로스쿨보다는 기존 대학 서열에 따라 로스쿨을 선택하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해 다양하고 경쟁력 있는 법조인 양성이라는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으면 변호사 채용에 있어 학교성적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이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학점 취득이 쉬운 과목 위주로 수강하게 돼 학교별 특성화 교육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정미·강일원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변호사시험 성적이 공개된다면 시험 준비에 치중하게 돼 기존 사법시험의 폐해가 반복될 것"이라며 "학교별 특성화교육 등을 통한 우수 인재를 배출하고, 성적 공개로 인한 대학의 서열화 및 대학간 과다경쟁 등을 방지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법무부 "내년부터 시험 성적 공개"= 법무부는 헌재 결정에 따라 내년 시험 발표부터 성적을 공개하기로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성적 공개에 위헌 요소가 없는지 검토한 뒤 내년 시행되는 제5회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다만, 헌재 결정을 소급적용할 수 없어서 지난 시험 응시자들의 성적공개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출신의 한 법조인은 "과거 변호사시험을 봤던 사람들이 이번 결정에 따라 성적공개를 청구할 경우 법무부가 이를 거부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성적공개를 위한 변호사시험법 개정안 3건이 발의된 상태다.
◇로펌 채용에 미칠 영향에 촉각= 변호사단체 등 재야 법조계는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강신업(51·36기) 대한변협 공보이사는 "지방 로스쿨이 그간 상대적으로 채용 과정 등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던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영호 로스쿨협의회 이사장은 "성적공개가 변호사시험제도의 객관성, 공정성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로스쿨의 서열화, 시험과목 중심의 교과운영으로 인한 로스쿨 교육의 비정상화 등의 폐단 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험성적이 공개되면 로펌 채용 때 성적 비중이 높아져 로펌 채용 과정의 불공정 논란도 다소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현재 로펌 채용 방식을 현대판 '음서제(고려, 조선시대에 출신 성분에 따라 관리를 선발하던 제도)'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학교 이름과 부모의 배경 덕분에 진로가 결정되던 일부 특혜 사례가 성적 공개 이후 사라지면 대형 로펌의 불투명한 채용문화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한 로스쿨 교수는 "성적 공개는 대학 명성에 따른 지금의 로스쿨 서열화 판도를 깨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로스쿨들이 학생들의 변호사시험 성적을 올리는데 집중하면 로스쿨 교육이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반면 변호사시험 성적이 공개돼도 로펌의 채용 방식이 크게 바뀌진 않을 거라는 전망도 있다. 변호사시험 성적은 평가 기준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시험 성적이 공개돼도 로펌 채용 담당자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법시험 출신은 연수원 성적이 중요하듯 로스쿨 출신은 학교 성적을 중요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단 한번으로 평가하는 변호사시험 성적은 신뢰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형 로펌들이 다양한 경쟁력을 갖춘 학생을 우선 선발하는 '입도선매' 방식의 채용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다만 중소로펌 채용 과정이나 경력변호사 채용 패턴에는 다소 변화가 있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한 로펌 관계자는 "실력 있는 지방대 로스쿨 졸업생들은 성적 덕분에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상위로펌도 3~5년차 경력변호사를 뽑을 때는 변시 성적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세미·안대용·신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