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족행위를 한 친일파의 재산을 보호해 달라는 소송은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 부적법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친일파 이완용 후손의 재산권을 인정해준 대법원 판례와 어긋나는 것으로 상급심의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4부(재판장 이선희·李善姬 부장판사)는 17일 일제시대 남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 이재극의 손자며느리 김모씨(77)씨가 국가를 상대로 "시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부동산을 돌려달라"며 낸 소유권확인 청구소송(99가합30782)에서 "소가 적법하지 않다"며 각하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이 3.1운동 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며 "이같은 헌법 정신에 비춰볼 때 민족의 자주독립과 자결을 스스로 부정하고 일제에 협력한 자 또는 그 상속인이 헌법수호 기관인 법원에 대해 반민족행위로 취득한 재산의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현저히 정의에 반해 부적법하다"며 소를 각하했다. 또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폐지됐으나 헌정질서파괴행위와 다를 바 없는 반민족행위의 위헌성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다"며 "한일합방 전후로부터 8·15광복 까지의 시대적상황과 반민족처벌법의 몰수 규정에 비춰 볼 때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반민족행위로 취득한 것으로 추인할 수 있는 만큼 이 사건 부동산 취득이 반민족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김씨의 입증이 없는 이상 이번 소는 정의와 신의칙에 현저히 반해 부적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보도자료를 통해 "이 판결은 적극적으로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거나 그 재산을 몰수 내지 국유로 할 수 있다는 취지는 아니며 입법부의 법률제정이 없는 한 불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99년 과거 이재극 소유로 자신이 물려받은 파주시 문산읍 도로 321㎡에 대한 국가의 보존등기를 말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한편 법원은 97년 친일파 이완용의 증손자가 조모씨를 상대로 "48년 농지개혁때 토지관리인들이 차지한 땅을 돌려달라"며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에서 "친일파라고 해서 법에 의하지 않고 재산권을 박탈할 수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