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 피해자를 상대로 계속 사기 행각을 벌여 돈을 뜯어냈더라도 범행과 범행 사이의 간격이 1년 이상 길게 떨어져 있거나 범행경위가 이전과 다르다면 전후 범죄를 모두 묶어 포괄일죄로 처단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범행의 단일성과 계속성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실체적 경합범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보험설계사 김모씨(국선변호인 정승일 변호사)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최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2016도11318).
A증권 소속 보험설계사인 김씨는 1991년부터 만나 알고 지내던 60대 여성 고객 이모씨가 돈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사기 행각에 나섰다. 김씨는 "A증권에서 운영하는 펀드의 수익률이 세후 연 6.5%나 된다. 안심해도 좋으니 투자를 하라"고 이씨를 속여 2008년부터 8월부터 2012년 6월까지 7회에 걸쳐 4억9000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또 "B증권의 7.5%의 고이율 펀드에 투자하라"고 해 2011년 12월부터 2013년 6월까지 6회에 걸쳐 이씨로부터 4억원을 추가로 받아내는 등 모두 8억9000여만원을 편취해 개인용도에 쓴 혐의로 기소됐다.
범행의 단일·계속성 인정 어려줘
실체적 경합범으로 봐야
검찰은 김씨의 범행들을 포괄일죄로 판단해 사기 금액을 모두 합산해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특정경제범죄법 제3조 1항 2호에 따르면 사기로 얻은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인 때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가중처벌 된다. 또 최고 이득액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벌금형으로 병과할 수 있다. 형법상 사기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특정경제범죄법보다 낮다.
1,2심은 "김씨가 이씨에게 수차례에 걸쳐 허위로 투자를 권유하고 돈을 받아 가로챘다"며 검찰이 기소한 대로 포괄일죄로 판단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김씨가 A증권 펀드 투자를 빙자한 사기 범행 가운데 5회와 6회 범행 사이에 약 2년 7개월, B증권 펀드 투자 명목 사기 범행 중 2회와 3회 범행 사이엔 약 1년 4개월의 간격이 있다"며 "이 가운데 한 차례는 피해자인 이씨가 먼저 김씨에게 연락해 여윳돈이 생겼다며 투자할 수 있느냐고 문의하자 비로소 김씨가 '빈 구좌가 생겨 투자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말해 기망행위에 이른 것으로 피고인인 김씨가 먼저 투자를 제의한 그 이전의 범행과는 범행경위에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각 범행 사이의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이 인정된다거나 그 범행방법이 동일한 경우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은 그 전부가 포괄일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각 죄가 성립해 실체적 경합범 관계에 있어, 그 각 죄의 이득액이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로 얻은 이득액이 5억원에 미치지 못해 형법상 사기죄만 성립할 여지를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체적 경합범은 각 죄에 정한 형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 이외의 동종의 형인 때에는 가장 중한 죄에 정한 장기 또는 다액에 2분의 1까지 가중하되, 각 죄에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을 합산한 형기 또는 액수를 초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