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개의 주둥이에 대 감전시켜 기절시킨 뒤 도축하는 전살법(電殺法)은 동물보호법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동물보호법이 금지한 '잔인한 도살' 방법에 해당된다는 취지다.
이번 판결로 식용을 위한 개도살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9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개 농장 운영자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을 확정했다(2020도1132).
A씨는 2011년부터 2016년 7월까지 자신의 농장에서 사육한 개를 잔인한 방법으로 도축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전살법으로 연간 30마리를 도축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A씨의 행위가 동물보호법 제8조 1항 1호가 금지하고 있는 '동물을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A씨를 기소했다. 이 조항을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전살법은 축산물 위생관리법이 정한 적법한 도살방법 중 하나"라며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1,2심은 "동물보호법에서 예시로 목을 매다는 행위를 들고 있을 뿐 '잔인한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마련해 두고 있지 않다"면서 "'잔인'의 개념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할 경우 처벌 범위가 무한정 확장될 우려가 있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개에 대한 사회 통념상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특정 동물에 대한 그 시대, 사회의 인식은 해당 동물을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자체 및 그 방법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잔인한 방법'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A씨가 개 도살에 사용한 쇠꼬챙이에 흐르는 전류의 크기, 개가 감전 후 기절하거나 죽는데 소요되는 시간, 도축 장소 환경 등 전기를 이용한 도살 방법의 구체적인 행태, 그로 인해 개에게 나타날 체내·외 증상 등을 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전살법은 동물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다음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란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에 대해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2년간 특정한 사고 없이 경과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재판부는 "전살법은 동물보호센터 운영지침 및 미국 수의학협회 지침에서 정하는 인도적 도살방법이 아니다"라며 "A씨가 사용한 도살 방법은 동물보호법에서 정하는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도살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다만 "A씨는 당초 돼지 사육에 종사했으나 구제역 발생 등으로 더는 돼지를 사육할 수 없게 되자 생계유지를 위해 이와 같은 도살 행위에 이르렀고, 다시는 개를 도살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A씨의 재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동물의 생명보호와 그에 대한 국민 정서의 함양이라는 동물보호법의 입법목적을 충실히 구현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동물권연구단체 피앤알(PNR) 대표 서국화(35·사법연수원 42기) 변호사는 "동물보호법에서 정한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사실상 식용 개 도살을 금지하고자 한 것인데, 업자들은 전살법을 사용해 해당 조항을 빗겨갔다"며 "대법원이 마지막 남은 개 도살 방법인 전살법도 잔인한 행위라고 확정지음으로써 현실적으로 개 식용 논란 종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