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조합에 대한 설립인가처분이 무효가 됐다면, 조합 임원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위반했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2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주택재개발사업정비조합 조합장 이모씨와 총무이사 박모씨에 대한 상고심(2012도7190)에서 벌금 200만원 씩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조합임원이란 도시정비법에 따라 정비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토지 등 소유자로 구성돼 설립된 조합이 둔 조합장, 이사, 감사의 지위에 있는 자"라며 "조합설립인가처분을 받았다 하더라도 처분이 무효여서 처음부터 조합이 설립됐다고 할 수 없는 때에는 조합장, 이사 또는 감사로 선임된 자는 도시정비법 위반죄의 주체인 조합임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신영철·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내고 "조합에 대한 설립인가처분이 무효인 경우에도 도시정비법상 조합임원이 금지조항을 위반하면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도시정비법의 임원처벌 규정은 조합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이라며 "조합원과 조합의 법적 이익이 보호될 수 있기 위해서는 조합의 최종적인 운명과 관계 없이 조합설립인가 시점부터 조합이 지위를 상실하는 판단을 받는 시점까지, 또는 조합의 지위가 소멸되는 시점까지 조합임원의 의무가 존재한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조합에 대한 설립인가처분이 무효로 확인됐다고 하더라도, 조합이 행정청으로부터 조합설립인가처분을 받아 법인으로 등기한 이상 이씨 등은 조합의 임원에 해당한다"며 "조합임원으로서 실체가 부정돼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면 행위 당시의 시점에서 범죄 성립여부를 확정할 수 없어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이인복·이상훈·김용덕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통해 반대의견을 재반박했다. 이들은 "이 사건은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여서 처음부터 정비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행정주체인 조합이 성립되지 않은 경우로, 일단 조합이 유효하게 성립됐다가 처분이 취소돼 사후적으로 조합의 지위를 상실하는 경우와는 구별돼야 한다"며 "행정처분이 무효라는 것은 처음부터 아무런 법적 효력이 발생되지 않은 것을 의미하고, 조합으로서의 법적인 실체를 인정할 수 없는 이상 조합의 임원으로서의 실체도 인정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도시정비법상 조합의 임원을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여서 조합이라는 법적 지위를 전혀 인정할 수 없는 경우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형벌법규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장해석하는 것으로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이씨 등은 2009년 도시정비법상 조합총회 결의사항으로 돼 있는 철거감리업체 선정을 조합총회 결의 없이 선정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 등은 당시 조합설립인가에 대한 무효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조합총회 개최가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은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소송이 계속 중이었다는 사정만으로 조합총회를 개최해 결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볼 수 없다며 벌금 200만원 씩을 선고했다. 이씨 등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선고된 후인 2013년 5월 조합설립인가처분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자 이씨 등을 조합임원으로 보고 처벌할 수 있는지가 문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