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증은 운전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므로 훔친 면허증으로 자신의 신원을 증명하는 용도가 아니라 연대보증인이 있는 것처럼 꾸미는 용도로 사용했다면 공문서부정행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단독 강현구 판사는 지난 8일 취객의 운전면허증을 훔쳐 대출과 휴대전화 구입에 사용한 혐의(사기, 공문서부정행사 등)로 기소된 이모(33)씨에게 공문서부정행사 혐의는 무죄로 인정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2013고단1881).
강 판사는 판결문에서 "이씨는 훔친 운전면허증을 대출이나 휴대전화 개통에 사용한 것이지 운전면허증의 본래 사용용도인 운전자의 신원 확인용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며 "공문서부정행사죄는 사용권한자와 용도가 특정되어 있는 공문서를 사용권한 없는 자가 본래의 용도로 사용해야 처벌할 수 있는 것이므로 본래 용도와 다르게 사용한 이씨를 공문서부정행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 판사는 "다만, 대출을 받으면서 훔친 운전면허증을 사용하려다 들킨 것은 사기미수에 해당하고 훔친 운전면허증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한 것은 사기죄와 사문서위조와 행사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2011년 8월 새벽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술에 취한 은모씨의 가방을 뒤져 지갑과 신용카드, 운전면허증 등을 훔쳤다. 이씨는 훔친 운전면허증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연대보증인 신분증으로 제시하며 500만원을 대출받으려다 신용도가 낮아 실패했다.
정상철(41·사법연수원 31기) 서울중앙지법 공보판사는 "훔친 운전면허증을 자신의 신원확인에 사용한 것이 아니고 연대보증인의 신분증으로 제시하거나, 자신이 친구의 휴대전화를 개설해주는 것처럼 꾸밀 때 사용했다면 공문서부정행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라며 "운전면허증이 최근 들어 신분확인 기능으로 주로 쓰이고 있는 만큼 꼭 운전 중이 아니더라도 이씨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야 할 때 훔친 운전면허증을 사용했다면 공문서부정행사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