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여자친구 B씨가 헤어지자고 하자 과도를 들고 B씨가 일하는 한의원을 찾아갔다. A씨는 출입문을 모두 잠근 뒤 양손으로 B씨의 목을 조르고, 가슴 옆 부분을 흉기로 한 차례 찔러 전치 1주일의 상처를 입혔다. 그러고도 A씨는 계속해 "죽어라"고 소리치며 목을 조르다가 "경찰에 신고했다"는 한의원 직원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범행을 멈췄다. 이후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피고인 A씨는 "겁을 주려고 했을 뿐인데 실랑이를 하다 흉기가 B씨의 가슴 부위를 살짝 스쳤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배심원 9명 중 7명은 A씨에 대한 살인미수와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위반(특수강간) 혐의에 대해 무죄로 평결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부산지법 2010고합677).
C씨는 지난 1월 D씨의 애인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D씨를 살해하기로 마음 먹었다. C씨는 오른손으로 D씨의 멱살과 머리채를 잡아 흔들면서 왼손에 쥐고 있던 흉기로 D씨의 오른쪽 어깨 부분을 한차례 찔렀다. 이어 저항하는 D씨의 오른쪽 가슴 부분을 다시 한차례 찔러 전치 15일의 상해를 입혔다. C씨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D씨가 먼저 때렸기 때문에 방어하기 위해 폭행한 것은 맞지만 두려움에 떨면서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며 "술에 취해 있어서 흉기를 집어 D씨를 찌른 것은 기억나지 않으므로 살해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C씨의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무죄평결을 내렸다. 반면 재판부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울산지법 2011고합29).
이용구 사법연수원 교수(부장판사)는 지난 18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학술대회에서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평결과 판결 차이에 관한 분석'을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최근 배심원의 평결과 판결의 불일치 비율이 다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최근 국회가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국민참여재판 확대시행(▼하단 관련기사·법률신문 11월21일자 1면)과 관련한 제도 개선책에 관한 토론도 이어졌다.
이용구 사법연수원 교수(가운데)가 18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한국형사소송법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평결과 차이에 관한 분석'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배심원의 평결과 판결의 차이, 왜?= 이 부장판사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11월 10일까지 선고된 국민참여재판 186건 중 불일치 비율은 11.2%(21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법원행정처가 밝힌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선고된 국민참여재판에서의 불일치 비율인 9.0%(321건 중 29건)보다 다소 늘어났다. 이 부장판사는 "판단의 불일치가 전혀 없다면 비싼 비용을 들여 국민참여재판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런 차이를 분석하는 것은 국민참여재판제 개선 논의의 기본적인 고려요소"라고 말했다.
불일치 사례에서는 몇가지 공통점이 도출됐다. 먼저 배심원은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는 것이다. 이 부장판사는 "가령 피고인에게 '사람을 살해하려는 사람'에게서 통상 찾아볼 수 없는 가해행위의 동기나 행위의 우발적 성격, 범행 이후 피해자의 구호조치 등이 있는 경우 대부분 살인의 고의를 부정하고 있다"며 "이는 특정 행위를 통해 사람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적어도 용인한다는 심정적 태도인 미필적 고의 개념에 익숙치 않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배심원의 생활경험에서 나오는 사람에 대한 확신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도범행에서 폭행과 협박의 정도를 매우 엄격하게 보는 것도 배심원의 특징이다. 이 부장판사는 "피해자의 반항을 업악할 정도의 폭행·협박과 피해자를 외포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구분한다고 가정하면 배심원들은 강도범행에 가장 중한 정도의 폭행·협박을 필요로 한다는 규범적 태도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상해에 대해 규범적 판단보다는 생활경험상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경향도 있다. 그는 "상처가 뚜렷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그 정도의 상처만으로는 병원에 가서 입원을 하거나 치료를 받지 않고 충분히 치유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정도의 상해는 상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상해진단서나 상해부위 사진 등은 배심원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참여 재판 다양한 개선 방안 제시 돼= 노명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공판정에서 피해자의 진술조서에 대해 동의 절차만을 두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노 교수는 "(피고인이) 범의를 부인하는 경우 피해자의 과실이 있다거나 당해도 싸다는 식의 피고인 측의 상황설정을 (배심원이) 믿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며 "유능한 변호사는 피해자의 진술조서에 증거 동의함으로써 피해자를 부르지 않고 피고인의 일방적인 변명만을 법정에 들려줘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차동언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우리 증거법은 배심제를 실시하기에 너무 미흡한 실정"이라며 증거법 개선을 주장했다. 차 변호사는 "증거법규가 미국처럼 80여개는 아니더라도 50여개 이상 상세한 조문을 마련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국민참여재판은 이런 것도 없이 이뤄지고 있다"며 "한국적인 배심재판의 특이성을 주장할 게 아니라 몇백년을 해온 영미 배심제의 규칙을 자세히 이해하고 보편적인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교수는 배심원이 사실판단을 잘못하게 되는 원인과 관련해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이 검사가 제시하는 것에 대해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있는데 변호사를 통해 질문을 할 수 있는지, 또 그 내용을 메모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규칙이 마련돼야 한다"며 "공판중심주의이면 모든 것이 법정에서 다 끝나야 하는데 잘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실무에 '성격증거 규칙'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성격증거는 넓은 영역인데 '평소 평판이 안 좋았다'거나 '과거 무슨 행동을 한 적이 있다'는 등의 성격증거가 별다른 제지 없이 나와 배심원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수환 성균관대 교수는 배심재판에서 전원일치 평결이 나올 경우 기속력을 인정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노 교수는 "배심원 평결은 무죄평결에 과감하고 법원은 좀 소극적인데 그 불일치가 나타나는 점에서 배심원 평결이 더 타당해 보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예를 들어 법원은 살인미수만을, 배심원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만을 각각 유죄로 인정하고, 양형은 폭력행위 등 처벌법 위반으로 나온 사례가 있었는데 배심원 평결이 잘못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