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입법부작위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입법자가 헌법상 입법의무가 있는 어떤 사항에 관하여 전혀 입법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입법행위의 흠결이 있는 경우”이고, 둘째는 입법자가 어떤 사항에 관하여 입법은 하였으나 그 입법의 내용·범위·절차 등이 당해 사항을 불완전, 불충분 또는 불공정하게 규율함으로써 “입법행위에 결함이 있는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전자를 진정입법부작위, 후자를 부진정입법부작위라고 한다(헌재 2007. 5. 31. 2006헌마1000, 공보 제128호, 674, 675).
이 사건에서 청구인들은 공직선거법에서 선거인이 투표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규정하지 아니한 것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는바, 이는 공직선거법의 어떠한 규정이 불완전, 불충분 또는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위와 같은 사항에 대하여 전혀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므로 이는 진정입법부작위에 해당한다.
나. 진정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헌법에서 기본권보장을 위하여 법령에 명시적인 입법위임을 하였음에도 입법자가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이거나, 헌법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헌재 1989. 3. 17. 88헌마1, 판례집 1, 9, 17; 헌재 2007. 5. 31. 2006헌마1000, 공보 제128호, 674, 675 참조).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과연 입법자에게 선거인이 투표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야 할 헌법상 의무가 존재하는지에 관하여 살펴본다.
(1) 헌법규정상 입법의무가 존재하는지 여부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라는 의미는 선거권이 법률에 의하여 비로소 그 행사절차나 내용이 구체화된다는 의미, 즉 선거권의 의미와 내용의 실현이 법률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의미이다(헌재 2007. 6. 28. 2004헌마644등, 공보 제129호, 763, 769). 따라서 입법자는 국민의 선거권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입법할 의무가 있는데, 이에 따라 공직선거법 제147조에서는 투표소를 설치하는 방법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에는 그 외에 선거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선거인이 투표소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입법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헌법규정상 선거인이 투표소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할 입법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
(2) 헌법해석상 입법의무가 발생하는지 여부
헌법 제24조에 의하여 보장되는 선거권에는 선거권을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된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국가로부터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아니하고 선거권을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선거권의 행사절차나 내용은 법률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고 그 내용이 선거권자의 선거권행사를 제한하지 않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는 없는데, 국민에게 선거권을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하여 투표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까지 헌법상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결정한 투표소가 적절하지 않은 경우 이러한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 소송 등을 제기하여 다투는 방법으로 투표소를 변경하면 되고 반드시 선거인에게 다른 투표소를 선택할 권리를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달리 헌법 제24조의 해석상 투표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권으로서의 기본권이 도출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양심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9조나 종교적 행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20조 제1항 등을 해석하여 보더라도 특정 선거인이 자신의 종교적 양심에 합당하도록 투표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권으로서의 기본권이 도출된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헌법해석상으로도 선거인이 투표소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할 입법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다. 소결론
그렇다면 선거인이 투표소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할 입법의무가 헌법상 도출되지 아니하므로, 이러한 입법의무가 존재함을 전제로 하여 그 입법부작위를 다투는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