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들은 취업 혹은 재택근무를 시켜준다거나 대출을 받게 해 준다는 성명불상자가 진정한 취업담당자이거나 대부업자인지를 전혀 확인하지 않고 만연히 자신들의 체크카드와 통장을 건네주고 그 비밀번호까지 알려주었다. 피고 1의 경우 취직된 회사의 출입증을 만드는 데 체크카드와 그 비밀번호까지 요구한다는 것은 이례적이고, 피고 2의 경우 통장을 주면 직장이 있는 것처럼 통장에 급여내역서를 만들어 은행에서 대출을 받게 해준다는 성명불상자의 제안 자체가 정상적인 대출절차가 아니며, 피고 3 또한 재택근무를 위하여 통장 사본, 체크카드와 그 비밀번호까지 요구한다는 것은 이례적이므로 피고들로서는 성명불상자가 진정한 취업담당자나 대부업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피고들은 당시 성명불상자의 신원이나 소속 회사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통장이나 체크카드 등을 돌려받을 구체적인 시기나 방법도 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 전자금융거래법은 전자금융거래의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 등을 목적으로 전자금융의 접근매체인 통장이나 체크카드 등의 양도·양수, 대여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불특정 다수인을 기망하여 그들로부터 돈을 이체하도록 한 후 이를 편취하는 소위 피싱(금융기관 등으로부터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알아내 이를 이용하는 사기수법) 범죄행위가 수년 전부터 전국에 걸쳐 발생하고 있는 점, 그리하여 통장이나 체크카드 등의 접근매체를 양도한 경우 전자금융과 관련한 사기 범죄행위에 쉽게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볼 때, 피고들은 성명불상자에게 통장, 체크카드 등을 건네주고 비밀번호를 알려줄 당시 그 계좌가 이 사건 범죄행위에 사용될 수 있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게을리하는 과실을 저질렀다. 비록 피고들이 이 사건 범죄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자기들 명의의 통장이나 체크카드 등을 건네주고 비밀번호까지 알려줌으로써 성명불상자들의 사기 범죄행위를 쉽게 하여 이를 도운 것이므로, 피고들은 성명불상자의 불법행위를 도운 방조자로서 원고에게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